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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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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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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6,529
유료 전환 : 2일 남음

작성
24.09.0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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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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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글자
12쪽

045 - D-1

DUMMY

#045



“고마워요. 이만 퇴근해요.”


최기현이 물끄러미 강하윤을 바라봤다.

이제 겨우 더블클릭이 뭔지 안 주제에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고려청자라도 만지듯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움직이던 강하윤이 흘끗 문 쪽의 상자를 바라봤다.


“가는 길에 저거 가져가요.”

“저게 뭡니까?”

“오늘 우주 생일이라면서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제일 비싼 거로 샀어요.”


최기현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했다.

아들 생일을 묻길래 알려주긴 했는데 그게 벌써 몇 달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기현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강하윤이 얼른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최기현이 나간 방은 금세 고요해졌다.


딸깍- 딸깍딸깍-


강하윤이 진중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남들이 보면 수백억짜리 서류라도 검토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강하윤이 검토하고 있는 건 캐릭터의 직업이었다.


“백화점 사장은 없나···.”


강하윤이 직업 목록을 쭉 내렸다.

문득 그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 ‘전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웃통을 훌렁 깐 채로 야성미를 내뿜는, 사람 키보다 큰 대검을 휘두르는 전사.


강하윤은 현실의 마르고 유약한 자신과 가장 반대되는 직업에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고민도 없이 ‘예’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잠시, 곧장 다음 시련이 찾아왔다.


【 캐릭터 이름을 설정해주십시오. 】


강하윤이 때아닌 고민에 눈을 찌푸렸다.


인간에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던가?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는, 어떻게 보면 유일한 ‘내 것’이 이름이었다.


【 강하윤 】


딸깍-


【 이미 존재하는 이름입니다. 】


“···내 이름을 뺏겼어?”


강하윤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태블릿을 만질 때의 그 능숙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나 쓸 법한 독수리 타법이었다.


【 미래백화점 】


딸깍-


【 이미 존재하는 이름입니다. 】


“어떤 놈이야?”


강하윤이 미간이 좀 더 좁혀졌다.

고작 게임 따위가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을 막아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하윤의 눈동자가 때아닌 승부욕으로 타올랐다.


“좋아···, 다음.”



< 45 >



늦은 오후, 작업실.


뚫어질 듯 사냥터 한 곳을 바라봤다.

퀘스트를 위해 잠깐 들렀을 뿐인데 이렇게 오래 발이 묶이게 될 줄은 몰랐다.


발이 묶인 이유도 황당했다.

사냥터 구석에서 검을 휘두르는 저 캐릭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진짜 더럽게 못 하네.”


족제비와 벌써 1시간째 싸우고 있다.

‘아더 월드’에 접속하면 직업 불문하고 가장 먼저 만나는 몬스터가 족제비였다.


사실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공격이라고 해봐야 3초 동안 기다렸다가 발톱을 휘두르는 게 전부인 허수아비였으니까.


그걸 1시간째 잡고 있다.


모든 공격이 다 빗나가는 처참한 실력에 놀라야 하는 건지, 그러면서도 끝까지 족제비 옆에 붙어있는 근성에 놀라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지.’


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저랬던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내가 본 어떤 유저도 저런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족제비와의 목숨을 건 혈투를 지켜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저 사람을 응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걸···!”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체력을 보니 조만간 또 죽을 모양이다.


설마 마실 물약도 없는 건가?


참다못해 슬금슬금 초보자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안 보이던 닉네임이 나타났다.


【 미래가 미래다 】


“···뭔 닉네임이 저래?”


미래가 미래지 그럼 과거야? 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다.


[ 저기요. ]


조심스럽게 채팅을 쳤다.

우락부락한 전사 캐릭터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섰다.


[ 네. ]

[ 이거 마시면서 해요. ]


캐릭터 앞에 물약을 몇 개 뿌렸다.

딱 보니 거래하는 방법도 몰라 보였고, 알려주는데 한세월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닥에 뿌린 물약이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침묵.

튕긴 건가 싶을 즈음 채팅이 올라왔다.


[ 감사합니다. ]


저 다섯 글자 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황당하던 심정이 금세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미적인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커스터마이징, 어딘가 정치가 생각나는 이름, 심지어 중년 남성들의 로망이라는 전사.


딱 봐도 나이 지긋한 형님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 일 끝나고 몰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저 사람의 하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는 와중에도 포기 따위는 없는 근성···.


괜히 마음이 짠해져 가방에 있던 물약을 몇 개 더 꺼내 바닥에 버렸다.


[ 고맙습니다, 방구석 백수 님. ]


* * *


다음 날 아침 일찍 백화점에 방문했다.

고급화 전략에 관해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장실 문을 두들기려는데 안에서 대화가 흘러나왔다.


“밍크 제품들도 할인 품목에 넣으세요.”

“갑자기 밍크는 왜···.”


어딘가 화가 난 듯한 쪽은 강하윤이었고, 어리둥절한 쪽은 최기현인 듯했다.


“최 비서, 밍크가 뭔 줄 알아요?”

“족제비 아닙니까?”

“네, 그러니까요.”

“···네?”

“나는 족제비가 싫어요. 그러니까 우리 백화점에도 족제비 털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무슨 일 있나?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두들겼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하윤이 나를 바라봤다.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퀭한 것이 잠을 설친 듯했다.


“어서 와요.”

“그럼 분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사장님.”

“네, 최 비서도 고생해요.”


최기현이 내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소파에 앉아 의아한 표정으로 강하윤 얼굴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빤히 봐요?”

“피곤해 보이셔서요.”

“간밤에 잠을 좀 설쳐서 그래요. 그보다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보자고 했어요?”

“아!”


준비해온 자료들을 꺼내 책상에 올려놨다.

강하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래프를 살폈다.


그래프는 홈페이지에 트래픽이 몰리는 날짜···, 쉽게 말해 방문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중 단연 압도적인 건 10월 3일이었다.


“유아이 씨가 파파라치한테 사진 찍힌 날이네요?”

“대놓고 광고한 게 아니라서 오히려 효과를 많이 본 것 같아요. 자연스러움이 원래 최고의 마케팅이라고들 하잖아요?”

“이젠 백현호 씨도 전문가네요.”


강하윤이 웃으며 자료를 내려놨다.


“그래서 생각해둔 방법은 있어요?”

“유명 연예인들 대상으로 몇 개만 풀어볼 생각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서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공석을 일부러 피하면 이번과 같은 광고 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고. 그런 다음은요?”

“음료가 아니라 계약서를 팔 겁니다.”

“···계약서요?”


강하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6개월짜리 음료수 이용권이요.”

“집 앞에 녹즙 배달 오는···, 뭐 그런 느낌인가요?”

“비슷하긴 한데 달라요. 계약서에는 아무나 사인할 수 없거든요. 간부진의 심도있는 회의를 거쳐 승인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계약서니까요.”


강하윤이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영 터무니없던 모양이었다.


강하윤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 다른 뜻이 아니라···.”

“간부진이 누구냐고요?”

“네.”

“저죠.”

“그리고 또 누군데요?”

“···사장님?”

“백현호 씨 배짱이 엄청나네.”


표정을 보니 비꼬는 건 아닌 듯했다.


지금 말한 방법은 강하윤의 말처럼 배짱장사가 맞았으며, 당연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발상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음료에···, 아니, 물약에 자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음료에 들어가는 회복 물약의 농도는 이전 제품 대비 '10배'에 달한다.


정제수보다 물약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원액보다는 못 해도 거의 그 수준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내게 논란이 터졌을 때 강하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이 있다.


‘상품만 좋으면 쇼핑몰은 다시 살아난다.’


이건 어떤 사업을 하든 통용되는 말이었다.


반일운동을 하면서도 일제 게임기에만 유독 프리미엄이 붙던 이유, 이름값 빼면 동대문 옷이랑 똑같다고 욕하면서도 결국 명품을 사는 이유···.


당연히 물건이 뛰어난 것도 이유겠지만, 100년 전통의 구두 장인들도 망하는 걸 보면 이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내가 생각한 답은 이랬다.


‘대체품이 있는가?’


대체품이 없으면, 결국 살 사람은 사게 되어있다.


내 물약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애초에 이쪽 세계에는 재료 자체가 존재하질 않으니까.


“음료에 굉장히 자신이 있나 봐요?”

“시제품 가져왔습니다.”


가방에서 빨간 유리병을 꺼냈다.

TV에 나왔을 때보다 더 진해진 루비 빛깔에 강하윤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강하윤이 조심스레 음료를 들어서 입에 댔다.

가볍게 입만 댔던 강하윤이 음료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반을 비웠다.


“···확실하네요.”

"좋죠?"

"네, 이정도면 백현호 씨 말대로 해보는 것도 가능성 있을 것 같네요."


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오늘 중으로 명단 뽑아서 다시 얘기해 봐요.”

“예, 알겠습니다.”


신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료수병을 잡으려는데 강하윤이 내 손을 턱 잡았다.


“이건 왜 들고 가요?”

“다 마시신 줄 알고 버리려고···.”

“반이나 남았잖아요.”


매서운 눈빛에 조심스레 손을 뗐다.

강하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근처에서 쉬고 있어요. 마케팅팀에 연락해서 바로 명단 뽑아볼게요.”


* * *


처음으로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배우 황윤식이었다.


영화판에서만 30년을 구른 베테랑으로, 직전 영화가 1000만을 넘기며 대한민국 최초로 ‘1000만 영화 다섯 작품 출연’이라는 커리어를 남긴 배우.


황윤식은 광고를 안 찍는 것으로도 유명한 배우였고, 그래서인지 유아이 때보다도 홍보 효과가 높았다.


상품도 안 파는 홈페이지가 터질 정도면 말 다 했지.


황윤식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는 유례없는 ‘빨간 유리병’ 앓이가 시작됐다.


글로벌 OTT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노민호, 프랑스의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 ‘L’ 사의 뮤즈 정민지, 유럽 팀을 휩쓸고 있는 축구 선수 최성민···.


대한민국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노민호의 소속사 측은 음료를 받아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주기까지 했다.


반신반의했던 마케팅은 실로 대성공이었다.


내게 음료를 받은 누구도 공개적으로 광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숨기지도 않았다.


회복 물약을 처음 경험한 톱스타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물약을 마셨고, 그만큼 사진이 많이 찍히는 것도 당연했다.


톱스타들의 삶에 녹아든 음료.


고작 음료 따위였음에도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건방지게도 인기의 척도가 되어버린 음료.


내가 만들고자 하던 이미지가 정확히 만들어졌다.

계획한 나도, 승인한 강하윤도, 일을 진행한 마케팅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논란 아닌 논란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고작 한 달 만에 ‘빨간 유리병’은 대한민국을 강타한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1일.


컴퓨터 앞에 앉아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공지는 다 써놓았고 이제 클릭 한 번이면 홈페이지에 ‘예약’ 버튼이 활성화된다.


마우스에 차분히 손을 올렸다.


딸깍-


【 공지사항이 변경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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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53 - 둥둥의 수집품 +9 24.09.10 2,042 85 12쪽
52 052 - 새로운 바람 +14 24.09.09 2,326 86 12쪽
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8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2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3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6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1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4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8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5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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