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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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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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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9 - 결심

DUMMY

#029




노인네 둘을 말리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강천호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붙는 것으로 합의한 후에야 씩씩거리며 정자를 떠났다.


은근슬쩍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내일 저 영감탱이 콧대를 아주 납작하게 해줄 거야! 오늘은 운이 나빴던 거고 제대로 붙으면 열 집 차이로도 이길 수 있어!”


강천호가 분한 표정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항상 차분하고 위엄있는 회장님의 모습만 보아서인지, 노발대발하는 강천호의 모습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공원을 가로질러 입구로 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회장님, 모시러 왔습니다.”

“코앞인데 뭣 하러···.”


강천호가 혀를 쯧 차며 걸음을 옮겼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3시가 훌쩍 넘어있었고, 이는 내게 주어진 시간도 끝이라는 뜻이었다.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회장님.”

“이거 타고 가. 박 기사, 나는 그냥 걸어갈 테니까 저 친구 집까지 태워 줘.”


기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작업실까지 족히 2시간은 걸린다.

남의 차를 타고 어색하게 가느니 마음 편하게 버스를 타는 쪽이 편했다.


얼른 허리를 굽히며 몸을 돌렸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어어? 타고 가래도!”

“내일 뵙겠습니다!”


발목이 잡히기 전에 후다닥 몸을 돌렸다.


터덜터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강하윤이 쓰라고 준 차가 있었지만, 매번 서울까지 운전해서 오는 건 부담이었다.


멀찍이 버스 정류장이 보일 즈음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정류장 근처에서 시금치를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시금치 안 먹은 지도 한참 됐네···.”


엄마는 종종 시금치로 된장국을 끓여주곤 했다.

어릴 때는 된장도 싫고 시금치도 싫었는데, 나이 먹고 보니 종종 생각나는 맛이다.


“간만에 된장국이나 끓여달라고 할까.”


고민하는 시늉만 할 뿐, 발은 벌써 시금치 파는 할머니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할머니, 이거 얼마나 해요?”

“한 단에 오천 원씩!”


한 단만 사가려다가 도로 고민에 잠겼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던가?

된장찌개 한 번 끓이면 온 동네방네에 다 나눠주는 것도 모자라 옆집 뽀삐 먹이로도 주는 사람이다.


한 단만 사 갔다가는 이걸 누구 코에 붙이냐며 오히려 욕을 먹을지도 몰랐다.


고민하다가 지갑을 꺼냈다.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 29 >



“잠깐 세워 봐.”


고급 세단 한 대가 갓길에 멈춰 섰다.

강천호의 깊고 오묘한 눈동자가 창밖을 향했다.


“저놈 봐라?”


공원에서 백현호와 헤어진 뒤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회사로 가고 있던 참이다.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백현호였다.

강천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결렸다.

백미러로 바라보던 박 기사가 내심 놀란 티를 숨겼다.


강천호가 저렇게 웃는 걸 본 게 얼마 만이던가?


“박 기사.”

“예, 회장님.”

“지금 저놈이 뭘 사고 있는 거야?”

“어···, 그게···.”


박 기사가 가느다랗게 눈을 찌푸렸다.


“시금치 같습니다.”

“갑자기 시금치를 왜 사?”

“할머니 일찍 들어가실 수 있게 하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소문대로 사람이 참 착하네요.”

“제 말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던데···.”


강천호가 조용히 턱을 어루만졌다.


시금치를 산 이유는 순전히 된장국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고, 몽땅 사버린 건 어머니 손이 워낙 커서 그렇기 때문이었지만, 그걸 강천호가 알 리 없었다.


박 기사가 흘끗 백미러를 바라봤다.


“백현호 씨가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마음에 들기는 개뿔이···.”


강천호가 괜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출발해.”

“예, 회장님.”


* * *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밥이 끝도 없이 들어갔다.


“어으···, 배불러 죽겠네.”


소화의 물약 같은 건 없나?

있으며 당장 만들어서 먹었을 텐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며 누워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번호를 확인하니 강하윤이었다.


“네, 사장님.”


[ 작업실에 없네요? ]


“집에 잠깐 내려왔습니다. 작업실로 오셨어요?”


[ 네, 지나가는 길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왔죠. ]


“아하.”


태평히 대답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근데 제 얼굴을 왜 봐요?”


[ ···네? ]


“아니, 방금 제 얼굴 보러 왔다고···.”


[ 내가 언제요.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


잘못 들은 건가?

의아한 표정으로 있는데 강하윤의 말이 이어졌다.


[ 어쨌든 오늘은 작업실에 안 온다는 거죠? ]


“예, 내일 오후는 돼야 갈 것 같습니다.”


[ 알았어요. 쉬어요. ]


전화를 끊으려는데 강하윤이 마침 생각난 듯 덧붙였다.


[ 참, 아버지께서 현호 씨 얘기를 많이 하세요. ]


“···회장님께서 제 얘기를요?”


은근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드디어 나도 대한민국 최고 인맥 한 번 갖는 건가?


[ 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오늘 바둑에 훈수 둬서 졌다고 어찌나 투덜대시던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다른 얘기는요?”


[ 약밥이 더럽게 맛없다는 정도? ]


그럼 그렇지.

차라리 물어보지나 말걸.


다음 날, 일찍부터 집에서 나섰다.


작업실로 돌아와 물약을 만들고 곧장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충남에서 서울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일이었지만, 이것도 비즈니스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니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1시 즈음이었다.

벨을 누르려는데 돌연 덜커덩 대문이 열렸다.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까불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사업한다는 놈이 중국 쪽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오는 사람을 바라봤다.

마당에 서서 호랑이 눈을 한 사람은 강천호였고, 대문으로 나오는 사람은 강대현이었다.


강대현의 눈이 문을 막아선 나를 향했다.


“백현호?”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너 설마 박준영 일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네···.”


이건 또 뭔 소리야?

박준영 사건은 내 손을 떠난 지 한참이다.

간간이 재판 소식만 들을 뿐, 나머지는 강하윤이 알아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꺼져!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또 찾아오면 귀싸대기를···.”


빠악!


순간 강대현의 몸이 휘청였다.

미래 그룹 장남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인물은 대한민국에 한 명밖에 없었다.


강대현가 멍하니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자기가 맞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왜···, 왜 때려요?!”

“당장 백 선생한테 사과해!”

“뭔 선생이요?”


갑자기 웬 백 선생?

뜬금없는 호칭에 강대현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강천호는 내 생각보다 나를 가깝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보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한약방에서 포장기나 돌리던 놈이 미래 그룹 회장에게 선생 소리를 들을 줄을···.


강대현이 멍청히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너한테 돈 빌렸냐?”

"말이 되는 소리를···."

"근데 너 같은 놈한테 선생 소리를 하셔?"

“이 새끼가 근데···!”


강천호가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이러다가는 정말 일이 터질 것 같아 황급히 달려가 강천호를 말렸다.


“이거 놔! 이참에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든가 해야지!”

“고, 고정하세요!”

“에이, 씨!”


강대현이 휙 뒤돌아 대문을 나갔다.

여기서 한마디 더 거들었다가는 강천호의 손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강천호가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미역국을···.”

“진정하세요, 회장님.”


강천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얌전히 저택 쪽으로 걸어가던 강천호가 대뜸 나를 보더니 성질을 냈다.


“자네는 나를 말릴 게 아니라 저놈을 잡았어야지! 그래야 더 패주든지 했을 텐데!”

“그랬다가는 제가 먼저 죽을걸요.”

“자네가 왜 죽어?”

“회장님도 회장님이지만, 아드님도 미래 전자 사장님이시잖아요. 저 같은 놈이 대들었다간 뼈도 못 추린다고요.”

“별 쓸데없는 걱정을···.”


강천호가 슬쩍 나를 바라봤다.


“자네 뒤에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밀려왔다.

맨날 버럭버럭 화만 내서 몰랐는데 강천호도 내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기분 좋게 웃으며 강천호를 안내했다.


“얼른 들어가셔서 약밥 잡수시고 산책하러 가시죠. 어제 바둑 설욕전 하셔야죠.”

“맞아, 그놈! 얌체 같은 영감탱이!”

“형님으로 모시기로 하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혀···,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강천호가 다시금 길길이 날뛰었다.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갔다.

2시까지밖에 시간이 안 된다던 강천호는 무려 6시간이 넘도록 바둑을 뒀다.


전적은 3승 2패.


의외로 실력이 비등비등했던 탓에 지켜보는 나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마지막 승부에서 이긴 강천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이제 네가 형님이라고 해라, 이놈아!”

“아니···, 이게···.”

“하하! 하하하!”


강천호가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바둑에서 패한 노인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나름대로 자존심을 건 승부였음에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별로 없었다.


조심스럽게 강천호 쪽으로 다가갔다.


“회장님, 이제 들어가시죠.”

“지금 몇 시야?”

“6시 반 정도 됐습니다.”


강천호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이런, 내가 백 선생 시간을 너무 뺏었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괜찮습니다.”


강천호와 나란히 걸어 공원을 빠져나왔다.

공원 입구에서는 일전에 봤던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를 꾸벅 숙이는데 강천호가 가볍게 손짓했다.


“오늘은 저녁이나 같이 한 끼 하지.”

“예?”

“바쁘면 다음에 먹어도 되고.”

“네, 그럼 다음에 먹겠습니다.”


강천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에 하윤이도 오기로 했어.”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 보내시겠네요.”

“백 선생은 다 좋은데 눈치가 참 없다는 말이야. 늙은이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밥 한 끼는 먹어줄 수도 있잖아?”


강천호가 은근히 눈을 흘겼다.

고민하다가 결국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만들 물약이 한 솥이긴 했지만···, 나도 저녁을 먹기는 해야 하니까.


강천호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강천호가 가볍게 눈짓했다.


“한 바퀴 돌지.”

“예, 회장님.”


기사가 말없이 핸들을 돌렸다.

좋은 차에 베테랑 기사까지 있으니 차에 탄 것 같지 않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백 선생.”

“예, 회장님.”

“나는 카메라를 참 싫어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사업하는 인간들은 다 싫어할 걸?”


맥락 없는 소리에 강천호를 바라봤다.

그는 무심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자들이 귀찮게 해서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내 모습에 자신이 없던 거더라고.”


확실히 TV에서 본 지 오래되긴 했다.

옛날에는 기자회견이나 미래 그룹 행사에도 자주 모습을 보였던 것 같은데.


“미래 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야.”

“그렇죠.”

“그룹을 이끈다는 놈이 제 몸 하나 관리 못 한다는 소리가 싫었나 봐. 틀린 말도 아닌데 말이야.”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겪어보지 못 한 일을 함부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천호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미래 전자에서 신제품 발표회가 있어.”

“···그거 기업 비밀 아닙니까?”

“내 회산데 무슨.”


깊고 주름진 강천호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나도 공식 석상에서 모습 좀 보이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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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4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7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6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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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6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9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7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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