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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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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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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 인간미

DUMMY

#028



언제인가 흥미로운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빌 게이츠는 땅에 떨어진 100달러를 주울까?’


100달러면 한화로 13만 원이 넘는 돈이다.

빌 게이츠가 아무리 1300억 달러의 자산가라고 해도 땅에 떨어진 돈을 마다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당연히 내 대답은 ‘줍는다’ 였지만, 놀랍게도 문제의 정답은 ‘아니오’였다.


이런 터무니없는 문제에 정답이 있다는 것도 황당한데, 아래에 적힌 답변은 더 황당했다.


빌 게이츠가 허리를 굽혀 돈을 줍는 시간.

기껏해야 몇 초 남짓한 시간의 값이 100달러보다 높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빌 게이츠만큼은 아니겠지만, 강천호 회장의 몸값 역시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내가 그런 사람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을까.


“···너무 막 뱉고 왔나?”


기회라는 생각에 우선 지르고 보기는 했다.

사업이 어떻고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강천호를 인맥으로 두면 천군만마를 얻을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서랍에 넣어둔 노트를 꺼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우선 계획부터 짜야지.”



< 27 >



“안녕하십니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거실에서 화초를 가꾸던 도우미 아줌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누구···.”

“오늘부터 회장님 건강을 책임질 백현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도우미 아줌마가 뭔가 들은 게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집 안을 걸으며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촌놈이고 아니고를 떠나 살면서 이런 거대한 저택에 와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화장실 급하면 바지에 싸야겠네.


“여기가 어르신 방이에요.”

“예,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문을 두들겼다.

이내 “들어와!” 하는, 호통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독서 중인 강천호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거기 앉아서 기다리지.”


강천호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얌전히 소파에 앉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고풍스러운 나무 향이 나는 방에는 책들이 가득했으며, 모두 손때를 탄 것처럼 색이 바래 있었다.


아날로그 쪽이 취향인 모양이다.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30분이 넘도록 책을 읽던 강천호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시계를 보니 1시 정각이었다.


“내가 자네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하루 1시간이야.”

“충분합니다.”


강천호가 묵직한 다리를 꼬았다.

저러고 있으니 강하윤과 묘하게 분위기가 비슷했다.


“알아보니 꽤 유명인사더군. 한약방의 젊은 영웅이라나 뭐라나···, 세상을 아주 떠들썩하게 했던데.”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나도 모르게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얼른 고개를 털어 지워버렸다.


“그래서 자네는 내 살을 어떻게 빼겠다는 거야?”

“우선 이것부터 드시죠.”


품에서 비닐에 돌돌 쌓인 약밥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접시라도 챙겨올까 했지만, 어차피 어떤 접시를 가져와도 이 집에선 개밥그릇만 못할 터였다.


“···약밥?”

“예,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강천호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약밥을 집었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강찬호는 나름대로 열심히 약밥을 씹고 있는 듯했지만, 딱히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약밥을 다 먹은 강천호가 이젠 뭘 하면 되냐는 듯한 눈을 나를 바라봤다.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구나.

그만큼 관심 없다는 거겠지.


“잠깐 걸으시겠습니까?”


강천호가 대꾸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귀찮음이 가득했지만, 나로서는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강천호를 데리고 나와 천천히 마당을 걸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10분 정도였으며, 혹시 모르는 변수에 대비에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20분쯤 되자 강천호의 숨이 약간 가빠졌다.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마당이 참 좋네요. 저희 할머니도 매일 이렇게 1시간씩 산책을 하세요. 아흔이 넘으셨는데 대단하시죠?”

“···걷는 게 뭐 대수라고.”


강천호가 큰 숨을 내쉬었다.


표정을 보니 잠깐 쉬었다 가려던 모양인데, 아흔 먹은 할머니도 이정도는 1시간씩은 걷는단 말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 한 듯했다.


그렇게 30분 정도의 산책이 끝났다.

강천호의 숨은 확연히 가빠져 있었지만, 표정 만큼은 어느 때보다 담담했다.


자기 집 마당을 산책하다가 지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이번에도 모르는 척 허리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끝이야?”

“예, 회장님.”


깔끔하게 몸을 돌려 저택을 나왔다.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다이어트는 어차피 성취감 싸움이니까.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진다면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속도가 붙을 터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간 내 일과는 완전히 강천호에게 맞춰져 있었다.

매일 점심 강천호를 찾아가 약밥을 주고 30분간 산책을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강천호도 딱히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할 건덕지가 없다고 해야 하나?

내게 1시간만 줄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실제로 내가 쓴 시간은 절반도 안 됐으니까.


강천호에게 변화가 생긴 건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들어와!”


문을 두드리려다가 흠칫 놀랐다.

아직 노크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천호는 이미 소파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공손히 허리를 굽히자 강천호가 손을 들어 보였다.


기다리고 있던 것도 모자라 인사까지?

감격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소파에 앉자마자 강천호가 손을 흔들었다.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약밥을 내놓으라는 것 같다.


흐름이 좋다.

품에서 얼른 약밥을 꺼내 내밀었다.


“이것도 먹다보니 괜찮지 않습니까?”

“괜찮기는. 더럽게 맛없어.”

“···예, 죄송합니다.”

"이게 뭐라고 해야 하나···."


강천호가 묵묵히 약밥을 바라봤다.


“우리 어머니가 만든 것 같단 말이야. 음식 만드는 솜씨가 영 별로셨거든.”


뜬금없는 어머니 타령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칭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적인 이야기가 섞였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강천호가 태평히 약밥을 씹었다.

한 달 새에 강천호의 두툼하던 턱살은 눈에 띄게 들어간 상태였다.


강천호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다.

노력이라고 해봐야 야식 안 먹기 정도겠지만.


“참.”


약밥을 먹던 강천호가 문득 나를 바라봤다.


“자네 뉴스를 쭉 봤어.”

“빨리도 보셨네. 뵌 지가 한 달인데···.”

“뭐?”

“아닙니다.”


강천호가 눈을 부라리기 전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윤이가 마케팅하려고 만든 인형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더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자네는 원래 남 돕는 걸 좋아하나?”


낯간지러운 질문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기는요. 그냥 얻어걸린 겁니다.”

“얻어걸려?”

“예.”

“자네가 농약 먹은 사람 살렸다며.”

“그랬죠.”

“그게 얻어걸려서 될 일이야?”

“고생한 건 이장님 업고 뛴 사람들이죠. 저는 그냥 한약방에 있던 것들 가져가서 먹인 게 전부입니다.”

“겸손한 척인지, 진짜 겸손한 건지···.”


의심 많은 영감탱이 같으니.

그리고 겸손할 게 뭐가 있어?

있는 그대로만 말하는 건데.


“방송국 피디 구한 건?”

“마침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냥 지나가면 되잖아.”

“자당천에서 사람 빠져 죽었다고 소문나면 저희 동네에 누가 놀러 오겠습니까? 안 그래도 관광객 없어서 죽겠는데···.”

“그래, 좋아. 그럼 병원비 대준 건?”

“마침 목돈이 있어서 빌려준 겁니다. 한 푼도 빠짐없이 다 받을 겁니다.”


뭔가 체스를 두는 것 같은 대화다.

강천호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은 아니다?”

“예, 착한 사람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런 일에 자꾸 엮여서 골치 아픈 사람이죠.”

“하! 하하!”


강천호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던 거지?


“오늘도 마당 산책인가?”

“마당만 걸을 필요는 없죠. 요 앞에 공원이 있던데 거기는 어떠세요?”

“가지.”


강천호가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글자글한 주름 속에는 묘한 설렘이 있었다.

가만 보면 표현이 서툴 뿐, 못된 사람은 아닌 듯했다.


강천호와 나온 곳은 저택 앞의 커다란 공원이었다.

한창 걸음을 이어가는데 공원 정자 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씨! 또 졌네!”

“자네는 나한테 안 된다니까?!”


물끄러미 정자를 바라봤다.

모여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듯했다.

슬쩍 강천호를 바라보니 그 역시 오묘한 눈빛으로 정자 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잠깐 구경하시겠습니까?”

“됐어, 구경은 무슨···.”

“에이, 튕기지 말고 가시죠!”


강천호를 끌고 정자 쪽으로 향했다.

정자에서는 예상대로 바둑이 한창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국을 바라보던 강천호가 돌연 바둑판으로 손을 뻗었다.


불안하다 싶은 순간 강천호의 입이 열렸다.


“쯧, 거기 두면 안 되지.”


아이고.

기어코 금기를 깨버리는구나.


바둑을 두던 노인이 강천호를 슬쩍 노려보더니 강천호가 짚어준 곳으로 돌을 놓았다.


문제는 상대편 노인이었다.


“자네 거기다가 안 놓으려고 했잖아?!”

“아니야! 나도 여기에 두려고 했어!”

“거짓말하지 마!”


투덕투덕하던 노인들이 결국 바둑돌을 엎었다.

강천호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서민 체험 같은 건가?


훈수에 성질내던 노인이 강천호를 노려봤다.

집에 TV가 없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라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쪽도 바둑 좀 두쇼?”

“좀 두지.”

“그럼 나랑 한 판 둡시다!”

“됐어, 바둑은 무슨···.”


강천호가 손을 휘 내둘렀다.

노인이 픽 웃었다.


“한 판 붙자면 내뺄 인간이 훈수는 왜 둬?”

“내, 내빼기는 누가?!”

“아니면 앉으래도!”


강천호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 꽤 치열한 대국이 이어졌다.

길거리 바둑으로 단련된 노인, 그리고 책으로만 공부한 노인의 숨 막히는 대결···.


먼저 실수를 한 쪽은 강천호였다.

나도 모르게 혀를 쯧 찼다.


“에이, 거기 두면 안 되죠.”

“나도 알아, 이놈아! 손이 미끄러진 거야! 내 잘못 아니니까 한 수만 물러!”

"그런 게 어딨어?!"

“맞아요, 낙장불입이라는 말도 있는데···.”


강천호가 나를 홱 노려봤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강천호의 실수는 꽤 치명적이었다.

실수를 이겨내며 잘 버티는가 싶었지만, 결국 몇 집 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에이, 씨!”


강천호가 신경질적으로 바둑돌을 내려놨다.


“하하! 못 믿겠으면 계가 다시 해보던가!”

“한 판 더 해!”

“제가 졌습니다 형님, 해봐. 그럼 다시 해 줄게.”

“뭐라고?! 이 영감탱이가 정말···!”

“싫으면 말아. 내가 이긴 거로 하지, 뭐.”


강천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조용히 그의 귀에 속삭였다.


“서민 체험이 쉽지 않죠?”

“너도 조용히 해, 이놈아! 정신 사납게 옆에서 훈수는 왜 둬?!”


얼씨구, 이제는 내 탓이네.

자기도 훈수 두다가 거기 앉아있는 거면서.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혀···, 형님, 제가 졌습니다! 됐지! 다시 해!”


강천호가 신경질적으로 흑 돌을 가져왔다.

노인이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 있어서 안 돼. 미안해, 동생.”


놀라서 강천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래 그룹 총수가 겪기에는 굉장히 굴욕적이고도 매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강천호 얼굴은 터질 듯이 달아올라 있었다.


“너···, 너 이리 안 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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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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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5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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