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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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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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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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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화. 비전교회 (12)

DUMMY

“간다.”


그 말을 끝으로 김현이 몸을 날렸다.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보이는 압도적인 속도! 그의 정면엔 괴물이 있었다. 괴물은 공중에서 윙윙, 날갯짓하며 달려오는 김현을 맞이했다.


김현과 괴물이 충돌했다.


세 쌍의 검은 갑각과 두 쌍의 팔다리가 격렬하게 교차한다. 괴물과 괴물의 처절한 박투에, 흙먼지가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뿜어진다.


잠깐 비슷한듯싶었지만, 곧바로 김현이 수세에 몰렸다. 갑각의 예리한 발톱이 김현의 몸 곳곳에서 번뜩이고, 붉은 핏줄기가 쉴 새 없이 솟구쳤다.


멍청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진호가 문득 욕설을 삼켰다.


이 씨발!


그리고 머릿속에 각인된 스위치를 딸깍 올렸다.


이진호가 바닥을 박찼다.


아드레날린이 뇌리를 타고 질주해 심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심장이 낮은음으로 쿵쿵 울린다. 맥동하는 심장을 통해 새로운 피가 사지백해로 뻗어 나간다. 대동맥에서 동맥으로, 동맥에서 세동맥으로, 세동맥에서 모세혈관으로. 그리하여 근섬유가 서로를 잡아당기고, 근육이 수축한다.


타앙.


발바닥과 콘크리트 바닥의 맞닿음, 서로 다른 바닥의 랑데부. 보보(步步)를 내딛는 소리가 고막에 닿아 아스라이 흩어진다.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다. 시간은 혼자인 게 억울한 건지 소리마저 붙잡아 늘어뜨렸다. 콰아아아앙, 쿠우우우웅, 타아아아악. 소리는 순순히 시간의 폭력에 순응했다.


이진호는 달렸다. 전력으로 내달렸다. 전신의 근육을 한계까지 쥐어짜 다리를 교차했다. 폭주하는 아드레날린을 발판 삼아 무엇보다 빠르게 질주했다.


사고가 가속하고, 가속하고, 가속한다. 눈동자에 비치는 세계가 느려지고, 고막에 닿는 소음이 잔향처럼 늘어지고, 종내에 몸뚱이마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듯 느릿하게 움직인다.


마치 꿈속과도 같은 세상의 풍경.


조금 전의 대화가 머리에서 되살아난다.



‘뭐? 미쳤어? 나보고 뭘 하라고? 너 진심이야?’

‘그래.’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바로 개죽음당할 걸? 너조차 애를 먹는 괴물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나 혼자서는 저 괴물을 못 죽여.’

‘······.’

‘만약, 저 괴물이 여길 빠져나가 거리를 활보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의 문제이지.’

‘나는···, 나는··· 너와 달라, 나는 너처럼 강하지 않아···.’

‘이진호.’

‘······.’

‘너는 그때 왜 날 구했지? 왜 날 살렸지?’

‘왜냐니, 그건···.’

‘이유만 있다면, 방법은 상관없다. ‘왜’가 채워지면, ‘어떻게’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건 변명이고 궤변이야. 잘못된 수단을 합리화는.’

‘아니.’


김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넌 날 살리고 싶어 했고. 그 수단으로 너의 선배이자 사수의 명령에 불복하는 걸 선택했어. 그것이 분명 규칙을 깨는 행위라는 걸 알고도, 넌 선택했어. 그것으로 너조차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넌 선택했어.’


궤변을 늘어놓는 김현의 눈동자는 본래의 투명한 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그것엔 분명 다른 색깔에 섞여 있었다.


이진호는 왜인지 그것이 분노의 색깔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이유조차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면 되는 그럴듯한 것에 지날지 모르지. 그저 기호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는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어. 그럼,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 너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나, 살리지 않고 싶나? 너의 기호는 어느 쪽이냐?’

‘나는, 나는···.’


이진호는 그의 말이 개똥철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그 개똥철학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살리고 싶어? 그럼 그냥 해. 방법은 달리면서 생각하고, 이유는 나중에 스스로 물어. 병신처럼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

‘간다.’



품 안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린다. 단단하고 동그란 물체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다.


이제 고작 약 이십여 미터.


이진호가 품 안에서 둥그런 물체를 꺼내 들었다.


이걸 사용하면 겨우 시말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 징계를 받을 터였다.


그 징계의 수위가 감봉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디 잠깐 구금돼 조사를 받거나, 최악의 경우, 해고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모든 기억이 지워질 수도 있었다. 유영 선배와 종후 선배, 김성훈 선배, 김현까지 모두 영영 기억 못 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척살 당할지도 모르지.


이진호가 피식 웃었다.


핑.


김현도 이것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아마 깜짝 놀라겠지. 그가 생각한 방법은 기껏해야 산탄총으로 괴물의 신경을 긁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의 생각과는 달리 이진호에게 남은 총탄은 없었고, 단 하나 유일하게 남은 무기가 이것이었다.


하나.


이진호가 속으로 숫자를 셌다. 눈대중으로 거리를 쟀다. 아마도 20미터 안팎. 다리를 뻗어 급정지했다. 어깨를 뒤로 젖히며, 자세를 잡았다.


둘.


바람이 훅 밀려온다.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발톱이 검은색 곡선을 그린다. 괴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발톱은 어느새 턱 끝까지 다가왔다.


느리지만, 빠르다.


증폭된 감각 속에서, 괴물의 참격은 되려 평이한 속도로 보인다. 그러나 대처할 수는 없다. 그의 몸은 고작 그 평이한 속도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발톱이 한 뼘을 다가오면, 그의 목은 솜털의 두께만큼 움직인다.


이진호는 웃었다. 그의 성대는 이제 막 찌르르 떨려, 여태 발성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는 웃었다.


괴물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싸우는 이는 괴물이 한눈팔 정도로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동전 하나가 혜성처럼 꼬리를 늘어뜨리며 괴물의 갑각과 충돌했다.


괴물의 갑각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동전은 고작 동전이었고, 열과 압력으로 녹아 문드러지기 전에 충돌해, 발톱의 방향을 바꾸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셋.


스각. 턱밑이 살짝 잘려 나간다. 사선으로 날아온 김현이 괴물의 역겨운 몸뚱이를 붙잡는다. 말 그대로 붙잡았다. 여태껏처럼 타격하고 부수는 것이 아니라 붙잡은 채 관성을 이용해 쭈욱 미끄러졌다.


재차 웃음이 나온다. 주의를 돌리라며 희생을 강요해놓고 나를 살리려는 꼴이란.


원래 김현의 계획에 나의 생존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원래의 계획은 내가 주의를 끄는 동안, 내 모가지가 날아가는 동안, 저 촉수 같은 걸 끊는 것이었을 거다. 틀림없었다.


무엇이 그의 계획을 바꾸게 만들었나.


손에 들린 고폭 수류탄? 아님, 목숨을 건 희생 의지에 대한 감동과 존중?


지랄.


이진호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유영의 말투에 완전히 물들어 버린 건지, 욕설이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셋과 넷의 어딘가. 아마도 셋하고 반. 어쩌면 넷을 넘겼을 때.


이진호가 팔을 휘둘렀다. 수류탄을 단단히 감싸고 있던 손을 쭉 뻗어, 앞으로 내던졌다. 손끝을 스친 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에서 빙빙 돈다. 회색빛 바닥에 착지하고도 힘을 잃지 않아 떼구루루 굴렀다. 그리고 툭, 고치와 부딪혀 완전히 정지했다.


이진호가 뒤돌아 달렸다. 머리를 감싸 안고,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세상이 뒤집어졌다.



***



기침이 멎질 않는다. 잿빛 먼지가 끊임없이 입안에 차 들어와 목을 괴롭힌다.


이진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위에 들어찬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저민다.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의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강력했다.


연쇄작용으로 분진폭발이 일어난 것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혹은, 바닥에 가득했던 점액질의 그것이 인화성이었나? 여전히 알 수 없다.


이진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몇 번인가 풀썩 도로 엎드렸다.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닥은 더 이상 평탄하지 않다. 뾰족한 돌조각들이 위로 날을 세워, 잡을 것도, 그의 몸을 긁어대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그는 나아갔다. 질질, 몸을 끌어가며 바닥을 기어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


“——-!”


그제서야, 이진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막이 아프도록 울리는 이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빈틈없이 고막을 감싸, 끊임없이 연속된다.


자신의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귓가를 툭툭 쳐 대다가, 이내 포기한다.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그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곳에 생각이 미친다.


사람들.


이진호의 얼굴에 쩍쩍 금이 간다.


김성훈과 같이 끌려왔던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실선이 새겨지고 겹친다. 이제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깨져나갈 것 같았다.


“——-!”


꽈악, 조그마한 회색빛 파편이 그의 손아귀 안으로 그러모아 졌다. 짐승의 절규와도 같은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몇 번인가 퍽퍽 바닥을 치고, 몇 번인가 쿵쿵 머리를 내리찍었다. 죄악감에 몸부림치며, 죄 없이 스러져 간 이들을 장송했다.


그는 감정을 토해낸다는 표현이 어찌하여 있는지 절절히 깨달았다.


한껏 감정을 토해내고 싶다. 죄악감과 자책감과 절망감과 슬픔과 후회와 분노를, 한낱 숙취 후의 토악질처럼 게워내고 싶다. 쓴물이 올라올 때까지 속을 전부 비워내고 싶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목청이 찢어져라 울부짖어도, 목만 아프다.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고, 아무것도 배출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이, 먹먹한 이명의 장막에 둘러싸여, 가슴 속에 묵직하게 들어찬 감정만이 한꺼풀, 한꺼풀 쌓여간다. 끓어오르는 열기가 분출되지 못하고 밀폐되어 부글부글 심장을 녹여온다.


그래, 가슴이 새까맣게 타고,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다.


이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이성과 사유가 아니라 타는 듯한 감정이 그의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두 발바닥을 접지했다. 주먹 밑으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콧잔등 옆으로 갈라지며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절뚝절뚝 몇 걸음을 옮기자, 시야의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걸린다. 사위를 가득 메운 회색빛도, 부서지고 부러진 장의자의 갈색빛도 아닌, 다른 색깔. 아마도 살아있는 사람, 혹은 죽은 시체.


이진호가 달렸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몇 번인가 넘어지고 뒹굴었지만, 그는 달렸다.


새까만 옷을 입은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다리에 박차를 가한다. 덜컥, 무언가 발끝에 걸려 데굴데굴 앞으로 구른다. 그러고도 손을 뻗어 아무거나 붙잡는다. 붙잡아 당긴다. 미약한 반동으로 몸통을 앞으로 보낸다.


이진호가 옆으로 돌아 누운 몸뚱이를 이끌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김성훈, 그였다.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둘 다 옅고, 희미하다. 의식은 여전히 없었지만, 살아는 있다. 이번에도, 다행히 살아는 있다.


뒤늦게 안도감이 밀려온다.


“—-!”


김성훈을 찾은 탓이었을까, 긴장이 풀려서인지, 전신이 욱신욱신 쑤셔온다. 특히, 등 쪽의 통증이 어마어마하다. 불에 덴 것 같기도 하고, 달려오는 1톤 트럭에 치인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고통에 헐떡이다, 이진호가 고개를 쳐들었다.


뻥 뚫린 천장, 그 너머로 처참한 1층의 전경이 흐릿하다. 그들이 있었던 예배당은 반파되다 못해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1층의 지반은 붕괴되었고, 그 여파로 그들 또한 같이 추락하고 만 것이다. 매몰되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진호가 휙휙 주변을 둘러봤다.


올라갈 길을 찾아야 했다. 가파른 경사가 보인다. 멀쩡한 상태라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훈을 짊어지고도, 저 정도 경사는 성큼성큼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몸이 멀쩡한 상태라면.


뇌리를 저미는 고통 때문인지, 가슴을 짓누르는 절망 때문인지, 이진호의 손이 덜덜 떨린다.


문득, 희뿌연 시야 너머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돌무더기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듯, 격렬히 꿈틀댄다.


이진호는 멀거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김성훈의 생사가 어찌 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이 홀연 일어났다.


명백히,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다. 삐쭉삐쭉 솟은 그림자가 불길하게 일렁였다. 위잉, 환청처럼 파리의 날갯짓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몸이 둥실 떠올랐다.


괴물은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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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21.09.20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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