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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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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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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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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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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9화.

DUMMY

흔들리는 차 안에, 총 네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정확히 분류하자면, 멀쩡한 사람 셋과 인사불성으로 기절한 하나. 그리고 유일한 하나인 이진호는 짐짝처럼 뒷좌석에 늘어져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그에, 보조석에 앉은 사내가 대번 인상을 찌푸리며 삿대질했다.


“마! 정종석! 쟤 깨면 우짤라고 운전을 이따구로 하는데!”

“죄송합니다.”


정종석이라 불린 운전자가 목을 움츠리며 사과했다. 오히려, 선배라는 작자에 대한 불만은 뒷좌석에서 터져 나왔다.


“선배님, 그쪽 목소리가 더 시끄러운 거 같은데요?”


구원상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보조석을 노려봤다. 자칫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완만한 눈매에 한층 날카롭게 날이 선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저 꼬리를 만 쪽은 선배라는 작자였다.


“크흠!”


그런데도, 자존심은 남아있는지 헛기침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구원상은 패배자의 칭얼거림을 가볍게 무시하고 정종석을 달랬다.


“종석 후배, 그냥 편하게 운전해. 진호 씨는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예에···.”


덜컹.


구원상이 손안의 물건을 매만지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안에는 낯선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었다. 이진호의 것이었다.


안을 대충 훑어봤지만, 나오는 건 별로 없었다. 1팀의 팀장이자 부장 대리라는 김우혁과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도 특별한 게 없다. 기껏해야, 이번 임무의 경과를 보고하는 내용 정도 전부였다.


덜컹.


옆자리에 널브러진 이진호가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끙끙댄다. 악몽을 꾸는 모양이다. 하긴, 질식으로 기절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이진호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됨됨이를 아는 데는 고작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구원상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덜컹덜컹.


차량의 흔들림이 더해진다. 그나마 남아있던 비포장도로마저 뚝 끊긴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차량이 천천히 속도를 줄여갔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나가자,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펼쳐졌다. 산 중턱에 절묘하게 은폐된 공터, 그 한가운데에 어울리지 않게 웬 3층 건물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무렇게나 자란 덩굴로 덕지덕지 치장한 폐건물이다.


때마침, 차량이 멈춰서고 정종석이 도착을 알렸다.


“도착했습니다.”



***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한 어둠이 이진호를 반긴다.


입안은 건조하고, 등 뒤로 닿는 감촉은 서늘하다. 딱딱한 철제의자의 감촉이다.


“일어났어요?”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던 이진호가 설핏 고개를 들었다.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급격히 현실감을 되찾는다. 몇 가지 이미지가 뇌리를 스친다.


대구, 임무, 물건, 이유영, 3팀, 구원상, 그리고 배신.


“구원상···!”


이진호가 발작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철컥, 얇은 쇠사슬 소리가 양팔을 단단히 붙든다. 익숙한 소리. 수갑이었다.


양팔과 양발이 봉쇄된 채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이진호를 구원상이 양손을 내두르며 진정시켰다.


“워워. 진호 씨, 진정하세요.”

“지랄하지 말고 당장 이거 풀어!”

“진호 씨가 이러시는 데 제가 어떻게 풀어요. 제가 파바박, 후드려 맞을 수 있는데요.”


목소리가 미미한 웃음기가 담겼다. 명백한 조롱의 의미였다. 구원상과의 충돌에서 이진호는 별다른 수를 쓰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이 개자식이···!”

“하하, 그래도 진호 씨는 욕을 다양하게는 안 하시네요. 이 선임은 막, 입으로 똥을 싼다느니, 머리통을 **에 쑤셔 넣겠다느니, 그런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더라구요. 어휴,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네요.”

“이···!”


이진호가 재차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진정하자, 진정.’


지금 이 녀석에게 화를 내봤자,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갉아먹는 것에 불과하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였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구원상의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라, 이제는 화 안 내시는 거에요?”

“그래, 너한테 화낸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근데 갑자기 반말이 술술 나오시네요? 처음엔 그렇게 습니다, 뭡니다, 하시면서 예의를 차리시더니.”


하하, 웃는 구원상의 주둥이를 전력으로 후려갈기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하지만 그게 무리라는 건, 이성과 본능 둘 다 절감하고 있다.


대신, 이진호가 혀끝에 냉소를 가득 담았다.


“배신자 놈들한테 차릴 예의가 있을까.”

“흠, 배신자라···.”


배신자, 배신자.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던 구원상이 문득, 바짝 붙어왔다. 담백한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진호 씨에게 말했죠? 입사한 이유. 그건 진심이었어요.”


사투리의 억양이 섞이지 않은 그의 평탄한 어조를 처음 들어서일까, 이진호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이번 일은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에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호 씨.”


안대가 씌워진 탓에, 이진호는 구원상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사과의 말을 담는 그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있으면, 심문을 시작할 거예요. 진호 씨도 잘 알고 있는 방법으로요.”


원래의 말투로 돌아온 구원상이 작별 인사를 남기고 멀어졌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점차 작아지다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쿵.


철문이 굳건히 닫히고, 이진호는 이 방안에 홀로 남았음을 직감했다.


‘젠장···.’



***



끼익.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여럿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세 명쯤, 이라고 어림잡고 있는데, 우악스러운 손길이 팔뚝을 단단히 붙잡는다. 덩달아, 피부 위로 서늘하고 뾰족한 감촉이 와닿는다.


이진호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언제였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빌어먹게도 강렬한 것이었으니까.


‘심문용 기물!’


이진호가 뒤늦게 몸을 비튼다. 하지만 이미 주삿바늘은 연약한 팔뚝을 파고들어 그 안으로 기물을 흘려넣고 있었다.


두근, 푸른 정맥이 삽시간에 까맣게 물들어간다.


두근거리는 고동 소리에 맞춰 의식이 급속도로 흐려진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감각이 희미해지고, 주변의 소음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그를 단단히 잡아끌던 중력은 이제 한없이 옅어져,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부유감마저 느껴진다.


‘이런 씹···.’


이진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풀썩, 고개를 꼬꾸라트렸다.



***



위잉. 둥그런 릴이 회전하고, 두 개의 릴을 따라 갈색 테이프가 매끄럽게 움직인다.


“이진호 씨, 당신의 현 소속이 초자연현상 대응국 국내 대응부, 제1팀. 맞습니까?”

- ㅇㅖㅔ.

“당신의 직속 상관이 누굽니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녹음기를 뒤로하고, 한 사내가 빽빽한 글자로 도배된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또박또박 질문을 이어갔다. 그 옆에선 다른 요원이 분주히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녹취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 기ㅁ우혀ㄱ 티ㅁ···자ㅇ···.


유리창 너머, 철제 의자에 단단히 포박된 이진호가 파편화된 단어들을 띄엄띄엄 늘어놓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좌우로 늘어지는 고개가 영 위태로워 보인다.


가만히 심문 과정을 지켜보던 구원상이 문득,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그게··· 참관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요원에게서 나왔다.


“참관을 안 하신다고?”

“예.”


구원상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덕분에, 일그러지는 눈매를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저··· 선배님, 피곤하실 텐데 쉬고 오셔도 됩니다. 여기는 저희끼리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선글라스 하나로는 그 분위기마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구원상이 휴식을 권유한 후배 요원을 보았다. 선글라스의 낮은 명도 너머로도, 걱정 어린 기색이 숨겨지지 않는다.


그에, 구원상이 피식 웃고 말았다. 후배에게 걱정받는다는 사실이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기꺼웠다.


“그래, 부탁한다.”



***



아무도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휴게실엔 이미 선객이 있었다. 그것도 꽤 요란스러운.


짝!


“마, 니 구원상이가 옆에 있으니까 내가 우습드나? 말해봐라, 어?”

“죄송합니다.”

“아니~ 대답을 해보라고요, 대답!”


짝!


구원상과 같은 차량을 타고온 두 사람이었다. 고개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이는 운전자였던 정종석. 그리고 그런 그의 뺨을 때리며 갈구는 이는,


“내가 걔보다 선배잖아, 아니야? 근데 왜 걔 말만 듣는 건데? 어?”

“저기요, 김머시기 선배님.”


보조석에 탔던 김머시기 선배였다.


그의 본명이 ‘머시기’란 건 아니었다. 분명 그의 성이 김 씨란 건 기억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이 매번 기억나지 않는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구원상을 본 김머시기가 대뜸 인상을 구겼다.


“너! 내가 이름 기억하라 했지? 내 이름은 김···!”


공교롭게도 갑자기 귀가 가려워, 구원상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그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김머시기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우연이었다.


구원상이 새끼손가락을 후 불고 말했다.


“선배님. 김머시기든, 김아무개든, 지금 선배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 개스이가···! 그리고 구원상이, 니가 여기 와있는데, 너 지금 참관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이가? 너 지금 근무지 무단 이탈한 거가?”

“에이, 무단이탈은요~ 잠깐 커피나 마시러 온 거죠.”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 이런 현장을 보고 말았네요.”


김머시기가 아드득, 이를 갈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이가 부러지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구원상은 후배된 도리로 진심 어린 조언을 아낄 수가 없었다.


“선배님. 옛말에요. 이는 오복 중 하나라고, 이의 중요성을 조상님들께서 그렇게 강조했대요. 그런데 그렇게 이를 갈고 계시면, 나중에 남아나는 게 없어서 먹고 싶은 고기도 못 먹고, 죽만 먹을 수도 있어요. 아, 요즘은 임플란트 기술이 좋아서, 상관없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혹여나 부러지면 전부 새 거로 바꾸면 될 테니까. 아니면 혹시···.”


나긋나긋한 어조가 한껏 비웃음을 담는다.


“틀니 쪽이 더 좋나?”

“너···!”


김머시기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왜요? 뭐가 불편하신가요?”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김머시기의 얼굴은 꽤 볼만했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토마토 같달까. 어지간히 배알이 꼴리는 모양이다.


김머시기가 파르르 입술을 떨며 말했다.


“구원상이 너···! 아주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게 없지? 팀장님이랑 선임 분들이 이런 짓을 언제까지 두고 볼 거 같은데? 니도 이제 끝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김머시가 구원상의 어깨를 퍽, 치며 스쳐 지나갔다. 소위, 어깨 빵이라 부르는 행동이었다.


“근무가 있어서, 먼저 간다.”


빠드득, 이를 가는 모습에 구원상이 다시 선배에 대한 우려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다른 멋진 선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뒤를 돌아본 김머시기를 향해, 구원상이 주먹감자에서 갓 뽑아낸 따끈따끈한 신상 엿을 선물하며, 빙그레 웃었다.


“선물이요.”

“이익!”


제 분을 이기지 못한 김머시기가 쿵쾅쿵쾅, 거칠게 발을 구르며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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