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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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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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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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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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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0화.

DUMMY

이진호는 취조실로 인도되었다. 눈을 꽁꽁 싸매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면, 딱딱한 철제의자와 등받이 뒤로 묶은 수갑이 취조실을 연상시켜서,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은 취조실이었다.


취조실은 고요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없어, 이진호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음 귀덮개가 쓰인 건가 의심될 정도였다.


꿀꺽, 이진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역시 결심과 긴장은 별개의 문제였다. 어느 정도의 심문은 각오했으나,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국정원, 혹은 국정원의 탈을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국가단체였으니, 긴장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이진호는 심호흡하며 의식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를테면, 감염자의 정체나, 김현과 관련된 일들. 자신은 철저히 부외자로 남아야 한다. 감염자의 이름도 모르며, 우연히 노란 눈의 식인괴물을 만난 어리바리한 형사로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김현을 저들의 시야에서 가릴 수 있다.


하지만 회사라는 집단은 이진호의 생각만큼 신사적이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벌컥,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발걸음 수를 따져봤을 때, 대략 셋. 그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이진호의 양팔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리고 팔뚝에 무언가를 주사했다.


따금한 감각과 함께 밀려오는 이질적인 감각, 이진호는 순간 소름이 돋아 몸서리쳤다. 하지만 발버둥 친다 한들 장정 셋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만무했다.


이진호는 삽시간에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지 못해 욕지거리를 삼켰다.


젠장, 설마 자백제를···.


그리고 이진호의 고개가 꼬꾸라졌다.



***



결론부터 말하면, 이진호에게 주사된 건 자백제가 아니었다.


재의 마법으로 빚은 기물(忌物).


제작된 목적과 기능은 비슷하나, 효과는 감히 자백제 따위에 비할 수 없었다. 무려 마법으로 만든 약물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기물을 개량했다며 직접 찾아온 불청객을 향해, 김우혁이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흰 가운, 드문드문 빈 머리,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금테 안경, 신경질적인 인상.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는 특징들이었다.


차진성 수석연구원.


수석연구원이라는 사람이 고작 개량된 기물을 테스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다? 김우혁은 믿기 힘들었다. 워낙 귀하신 몸들이 아닌가.


어인 일로 예까지 행차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김우혁은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응국의 팀장이란 직위는 그럴 깜냥이 없었다.


김우혁은 검지를 까딱거리며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보통 취조실이라 하면 칙칙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조명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범인과 형사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대응국의 취조실은 경찰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두운 조명도, 철제 테이블도, 윽박지르는 경찰도 없다. 그저 환한 불빛과 덩그러니 놓인 의자, 그에 묶인 심문 대상자만 있을 뿐이다.


질의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이루어졌다. 신분이 노출될 경우를 대비한 만약의 조치였다. 심문 후엔 항상 기억을 깡그리 지우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간 이유는?”

- 기, 김현을 만나려고···.


스피커를 타고 이진호의 흐릿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이따금 눈을 뒤집어 까고 입에선 검은 연기 같은 게 새어 나왔는데, 지극히 정상이었다. 심문용 기물을 주사 당했을 때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들이었다.


지원팀의 요원이 마이크에 대고 재차 물었다.


“김현은 누구지?”

- 사, 살인 사건의 목격자···.

“무슨 살인사건?”

- 어, 어떤 여자가 남자를 주, 죽이고 자, 자살한 사건···.


까딱거리던 김우혁의 검지가 멈칫했다.


“편의점에서 김현과 만나서 뭘 했지?”

- 모, 목격담을··· 감염자···.


감염자라는 명칭이 언급되자, 참관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감염자는 존재 자체가 극비, 관련자가 아닌 민간인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김 팀장.”


차 수석이 김우혁에게 책망을 눈길을 보냈다. 네가 말했냐, 라는 뜻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김우혁이 재차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저희 애들도 아닙니다.”


차 수석의 눈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그럼 도대체 누구냐, 라고 묻는 듯했다. 하지만 그 또한 평범하지는 않은 인물, 금세 정답에 근접했다.


“그렇다면, 김현이라는 작자가···.”

“예, 높은 확률로 그럴 겁니다.”


김우혁이 지원팀 요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지시했다.


“김현이라는 놈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봐.”



***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무어라 읊조리자, 이진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검은 연기는 소용돌이치며 이진호의 얼굴 부근을 맴돌다가 투명한 유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구원이 재빨리 유리병을 밀봉했다. 이제 그들은 연구소로 가 회수한 기물을 분석하며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다.


참관실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던 김우혁이 문득 입을 열었다.


“수석께서는 김현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약자 혹은 네피림이겠지.”


김우혁의 예상과 같은 대답이었다.


둘 중 하나라···.


하지만 문제는 둘 모두 흔치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계약자들은 한국이란 나라를 꺼린다. 선호도를 따지자면, 아마 전 세계 국가 중 최하위를 달릴 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안정된 지역보다는 분쟁지역을 선호한다. 암중에서 혼란을 종용해 음흉한 욕망을 채우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극히 안정돼있는 데다가, 연구소라는 집단의 위치가 확고부동했다. 도저히 파고들 틈이 없는 것이다. 고로, 계약자는 한국에서 극히 드문 존재였다.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반면, 네피림은 그 수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매우 희귀한 존재에, 그 능력도 제각각. 거의 전설의 포켓몬쯤으로 취급되는 존재였고, 회사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네피림의 존재는 여태껏 딱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네피림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 계약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경찰한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댈 일은 없을 테니까.”


김우혁의 생각 또한 차 수석과 다르지 않았다.


네피림, 김현의 정체가 어렴풋이 특정되는 순간, 김우혁이 미미하게 눈매를 구겼다. 옛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김우혁의 표정에서 그 생각을 읽었는지, 차 수석이 엄중히 경고했다.


“김 팀장, 자네도 알다시피 일단 포획이 우선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잡고 나서 그놈의 정체를 파악해도 늦지 않다고.”

“예.”


차 수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이제 소장님께 보고하러 가보지. 새로운 네피림이라면 소장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야.”


김우혁이 가볍게 고개 숙여 그를 배웅했고, 차 수석과 연구원들은 인사조차 없이 조용히 참관실을 빠져나갔다.


김우혁이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끄으, 정신을 잃은 채 신음을 흘리는 이진호의 모습이 보였다.


김우혁이 지원팀 요원에게 지시했다.


“녹음기 끄고, 나가봐.”



***



“끄으으.”


입안이 삐쩍 말라 들이쉬는 호흡이 꺼끌꺼끌했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아 한없이 땅으로 기울어지고 있자니, 덜컥 수갑의 단단한 감촉이 손목을 붙잡았다.


“일어났나?”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우혁이었다.


“끄으, 당신들, 무슨, 짓을···.”

“뭐든지 말하게 하는 마법의 약물을 몇 방울 놓았지.”

“뭔, 개, 소리야···!”


이진호는 순순히 협조한다는 원래의 마음가짐도 잊은 채 거칠게 욕설을 뇌까렸다. 저쪽에서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순순히 협조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약물이라니! 까득, 스스로의 순진함에 구역질이 나왔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 꼴이군.”


그 순간, 노기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등허리를 따라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이진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가 아는 한 자백제의 성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현실은 결코 영화가 아니었다. 자백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고문과 병행해야 그 효과가···.


“김현.”


이진호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가 꽁꽁 감췄던 두 글자의 이름은 충분히 그런 위력이 있었다.


“이진호, 너에게 선택권을 주마.”


짙은 암막 너머, 얼음장 같은 김우혁의 표정이 절로 그려졌다.


“하나, 기억을 소거한다.”


이진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억 소거, 달콤한 말이다.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영영 부외자로 남으라는.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김우혁의 사무적인 목소리는 기억의 소거가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 우리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 감염자와 김현에 대한 기억을 포함해 전부.”


굳게 닫힌 눈꺼풀,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진호는 자신이 왜 이들과 대면하고 싶었는지 떠올렸다. 그건 아주 사소한 감정이었다. 누군가는 정의감 혹은 의협심이라 추켜세우겠지만,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이진호는 그저 외면하기 싫었을 뿐이다. 감염자라는 식인괴물의 존재를 알아버린 이상, 눈을 돌릴 수 없었을 뿐이다.


눈꺼풀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왔다. 곧게 뻗은 빛은 마치 이정표와도 같아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암시하는 듯했다.


“둘.”


이진호가 각오를 다지며 눈을 떴다.


“네가 직접 김현을 잡아 와.”


하지만 짙게 드리운 암막은 단 한 점의 빛도 용납치 않았다.


“타협은 없다.”


눈앞은 여전히 어둠이었다.



***



째잭, 짹.


김현이 번쩍 눈을 떴다. 과하게 가뿐한 몸이 묘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을 확인해 보니 6시 30분. 지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지각···.


“아.”


황급히 바지를 주워입던 김현이 그대로 굳었다.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오진석이 그에게 좀 쉬라며 휴가를 주었다. 알바생에게 휴가가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지만···.


김현이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방안엔 김현 혼자뿐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던 장생농과 솜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한 쪽지를 발견했다. 어디서 용케 발견했는지, 노트를 찢어다가 휘갈긴 것이었다.


[ 발품 좀 팔고 오겠네 ]


어제 말했던 대로, 어머니를 감염시킨 참회자의 행방을 의뢰하러 간 모양이었다.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더라도, 이름 세 글자 정도는 확실히 받아온다며 호언장담했었다.


김현은 대자로 뻗어 멀거니 시선을 던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정적과 평온은 어색했다. 뭐하지? 란 고민이 먼저 떠오른다. 여태껏 친구도, 취미도 없어 쉬는 날에는 그저 맥주 한 캔으로 속을 달랬다. 김현이 애꿎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전화할 사람이 오진석밖에 없음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한창 자신의 대타로 근무 중일 사람에게 전화하는 건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뭐하지?


김현은 낯선 시간을 감내하지 못하고 또다시 되물었다. 역시 떠오르는 건 없었다. 기껏해야 담배나 생각날까. 하지만 오늘따라 몸뚱이가 무거웠다. 중력의 사슬이 일어나지 못하게 몸을 칭칭 감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김현은 하릴없이 눈을 감았다. 쿵···쿵···, 느린 맥동을 뒤로하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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