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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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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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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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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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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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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DUMMY

“어?”


감염자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무언가 번쩍한다 싶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뭐···.”


의문을 표하던 입이 으적, 하고 사라졌다.


이익!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된 감염자가 양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 엉성한 발버둥으로는 포탄과도 같은 김현의 주먹을 막아 세울 수 없었다.


퍼걱. 감염자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졌다. 김현은 감염자를 죽였다는 성취감도 없이 다음 상대를 물색했다. 아직도 감염자는 많았다.


“야야, 제물이 쟤 죽였는데?”

“어디 어디? 진짜네?”


동료의 죽음에 감염자들이 하나둘씩 시체 포식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노랑빛으로 번뜩이는 안광과 피범벅 된 얼굴. 보통 사람이라면 제자리에서 졸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저거, 분명 좁밥이라고 하지 않았냐?”

“알게 뭐야.”

“야, 그러지 말고 반항했다고 하면서 몰래 한입 먹어보자.”

“오, 존나 찬성.”


김현은 그들의 시답지 않은 잡담을 귓등으로 흘리며 가장 가까운 감염자에게 달려들었다. 맨 처음 죽었던 경찰관을 뜯어먹고 있던 감염자였다.


감염자는 여유롭게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인간치고 꽤 빠른 것 같지만 그뿐이었다. 감염자의 신체능력은 인간의 그것을 한참이나 상회한다. 저 정도로 속도라면 손쉽게 발 한쪽을 붙잡고 파리채처럼 휘두를 수도 있었다.


김현이 발을 쭉 뻗어왔다. 소위 사커킥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감염자는 바닥에 대자로 찌그러질 김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발목을 잡아갔다.


“어?”


하지만 감염자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감염자의 손아귀에 잡히기 직전, 김현의 발이 한 차례 가속한 것이다.


감염자의 턱이 박살 나고, 균형을 잃은 김현이 감염자와 함께 뒹굴었다. 감염자는 얼굴이 반쯤 뭉개진 상황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반항했으나, 이번에도 김현이 한발 빨랐다.


어떻게 하는···.


허공에서 한 차례 가속한 김현의 주먹이 감염자의 머리를 으깨버려,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뭐야? 아까 봤어?”

“어, 발이랑 주먹이 갑자기 빨라지던데?”

“와, 신기하다. 우리는 저런 능력 없냐?”

“존나 쎈 걸로 만족해라.”


동료가 둘이나 죽었음에도 감염자들은 김현을 바로 응징할 마음이 없는지 시체를 뜯으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들에게 동료의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김현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허억허억.”


김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새로 깨달은 능력이 서서히 몸에 익는다. 하지만 스스로의 몸에 직접 적용하는 건 아무래도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그런 김현에게 무언가 눈에 띄었다.


그래. 몸이 안 되면, 도구를 사용하면 된다.


김현이 그것을 손안에 쥐고 비척비척 일어섰다.


“헤이, 제물보이. 괜찮아? 너 죽으면 안 돼. 우리가 혼난단 말이야~”

“혼난다는 기준이 능지처참이냐?”

“처참한 건 니 능지고, 왜 나한테 그래.”

“와, 미친.”


아직 농담을 지껄일 정도로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김현은 호흡을 가다듬고 손아귀에 꽉 힘을 쥐었다. 해본 적은 없었지만, 반드시 된다는 확신이 뇌리를 지배했다.


천천히 호흡을 내뱉는다. 길게 늘어진 호흡이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그 끝이 한 감염자를 가리킬 때, 김현이 손에 쥔 뼛조각을 전력으로 내던졌다.


공기를 꿰뚫는 굉음과 함께 감염자의 뼛조각이 쇄도했다. 위기감을 느낀 감염자가 본능적으로 팔을 들었지만, 뼈의 강도에 비하면 근육은 연약하디 연약했다.


“쿨럭.”


뼛조각에 피격당한 감염자가 왈칵 핏물을 토했다. 팔뚝을 방패삼아 직격은 피했지만 뼛조각에 담긴 위력이 워낙 강력해 목의 살점이 한 움큼 뜯겨나간 것이었다.


일순, 정적이 찾아오고 감염자들의 시선이 김현에게 쏠렸다.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길거리에 가득 들어찼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명백한 적의. 감염자들이 이제 김현을 사냥감이 아닌 동등한 포식자로 인정한 것이다.


섬뜩한 살의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다.


김현은 격렬한 분노로 살의를 받아치며 감염자들에게 달려들었다.



***



“오진석에게 연락이 왔다고?”

“예, 방금 전화가 와서 김현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네 당부는 듣지 않은 모양이군.”


이진호가 얼굴을 굳혔다. 김현이 찾아오면 연락을 달라던 당부. 오진석은 그 당부를 무시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짜고짜 김현이 사라졌다며 전화를 할 리는 없었으니.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오진석의 오피스텔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쪽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죠.”


오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도 같다는 표현이었다.


“타라. 나머지는 가면서 얘기하자.”

“예.”


둘은 검은색 세단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오종후가 운전석, 이진호가 보조석이었다.


검은색 세단은 곧장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 커다란 부지를 가로질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 속도가 꽤 빨랐다.


“경찰 쪽은 전부 해결됐다고 한다. 이제 네가 신경 쓸 일은 없다.”

“예? 아아···.”


퇴직 당사자도 없었는데 이렇게 빨리?


의문이 뇌리를 스쳤지만, 이진호는 이내 납득하고 말았다. 국정원 소속이 아님에도 국정원을 당당하게 사칭하는 곳이었다. 심지어 가짜 신분도 아니다. 국정원에서 자신들을 사칭하라고 만들어준 진짜 신분이었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기관이라면, 이 정도의 일 처리는 당연한 것이리라.


하지만 내심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1년뿐이지만 열정을 다한 경찰 생활이, 몇 줄 서류도 아닌 고작 ‘해결됐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네 휴대폰은 오진석과 연락할 때만 쓰고, 이제부턴 이걸 써라.”


오종후가 품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건넸다. 최신기종은 아니지만 바로 1년 전에 출시된 나름 쓸 만한 모델이었다.


“이건 왜···?”


일단 휴대전화를 받아들었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회사의 요원은 사제 폰을 쓸 수 없다. 네 휴대폰도 김현을 잡으면 곧 파기해야 해.”

“아···.”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흘리고 이진호가 손안의 휴대전화를 보았다.


“연락할 가족이나 지인은?”

“친구 몇을 제외하곤 없습니다···.”

“오늘 내로 연락 마쳐라.”

“예···.”


알고는 있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 기존의 생활과는 완전히 단절된다는 사실을. 그가 서명한 계약서에도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성급했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어지러워, 이진호는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



“쿨럭.”


감염자가 핏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다 타들어 간 초. 그것이 지금 그의 상태였다.


식음(食飮)을 행하더라도 육체가 재생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성의 판단과는 별개로 입안에서 풍기는 피 내음은 향기롭기 그지없다. 감염자가 그 본능에 따라 무어라도 입에 집어넣고자 팔을 들었으나,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팔이 없구나.


팔과 다리. 사지는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그의 본능이자 근원, 위대한 욕망이 재차 명한다.


먹어라.


감염자가 핏물을 왈칵 토하고는 희게 웃었다. 그리고 그 달콤한 향기를 줄줄 흘리는 자신의 혀를 와그작 베어 물었다. 그것을 질겅질겅 씹고있자니, 새어나오는 육즙과 그 식감이 일품이었다.


질질.


저작운동에 열중인 감염자 위로 그늘이 졌다. 그 서늘한 눈빛은 자기포식에 한창인 감염자를 일별하고, 그에게 죽음을 고했다.


퍼걱.


마지막 감염자의 머리를 으깨버린 김현이 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구닥다리 폴더폰의 액정에 거미줄처럼 금이 쳐졌다.


김현은 버튼을 누르려고 보니, 엄지손가락의 부재를 깨달았다. 당장에 손가락이 급한 건 아니었다. 그는 사라진 손가락을 찾는 대신 오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젠장!”


내팽개쳐진 휴대전화가 바닥을 뒹굴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간신히 억누르고, 김현이 다른 감염자의 시체로 다가갔다. 콧대 위로 머리가 전부 뭉개져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였다.


김현은 그 감염자의 입안을 뒤져 엄지손가락을 꺼냈다.


상처 부위에 손가락을 갖다 댔지만, 단면이 깔끔하지 않은 탓에 재생이 더뎠다.


젠장, 젠장.


김현이 욕설을 되뇌었다. 전투의 흥분감이 한 차례 가시자, 후회와 자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내가 사라져야 진석이 형이 안전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의 얄팍함이 거꾸로 돌아와 심장을 날카롭게 저몄다.


김현이 절박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발길 닿는 대로 온 터라, 이곳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택시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


김현이 이를 악물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오늘 아침, 감염자의 탈을 빌려 참회자가 찾아왔고, 자신은 도망쳤다.


당시에는 어떻게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네피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지금에서야, 그때의 일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사지육신이 조각조각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는 감각. 당시의 그는 분명 이 세상에서 잠깐 추방되었다가, 다시 되돌아왔었다.


하지만 그 방법엔 커다란 맹점이 있었다. 애초에 이건 순간이동 같은 손쉬운 이동법이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를 추방하는 것 따위에 불과했다. 거리의 이동은 그에 따른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김현조차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고, 최악의 경우, 영영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럴 터였다.


김현이 두 눈을 감았다.


그는 평생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다.


신이 존재한다고 하기엔, 그에게 세상은 너무 잔혹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를 물어뜯어 죽이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배란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의 쿵, 하는 소리를 김현은 잊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김현이 네피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몸을 이 세상에서 배척했다.



***



“우웩!”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현실감이 밀려온다.


서, 성공인가···?


김현이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건물 구조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진석의 오피스텔과 그 구조가 똑같았다. 여기까지라면 성패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겠지만, 꽂혀오는 시선이 성공을 확인시켜주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이 적나라한 식욕을 드러내는 눈빛. 그리고 그 시선은 단수가 아닌 복수였다. 그것도 아주 많은.


은신한 감염자가 어찌나 많은지, 천장이 온통 아지랑이 져 있다.


하지만 다행히 먼저 공격해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우웩!”


한 차례 검게 죽은 내장조각을 토해내고 있자니, 감염자들의 시선이 한층 강렬해진다. 피 냄새가 그들을 자극한 것이다.


김현이 대강 입가를 쓱 닦아내고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마치 온몸이 믹서기에 갈린 듯, 몸 상태가 끔찍했다.


김현은 고통이나 감염자의 시선 따위의 잡스러운 것들을 전부 무시한 채 오진석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1408 ]


몇 시간 전 만에도 오진석의 따듯함이 느껴지던 문 앞은, 이제 불길한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고 있었다.


김현이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아 끼익, 쉬이 그 안의 전경을 들어냈다.


그 안엔 칠흑 같은 어둠이 커튼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김현이 떨리는 손을 꾸욱 말아쥐고 칠흑의 베일 너머로 손을 뻗었다. 손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어둠 속에 잠겼다. 수면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듯한 옅은 반발력만 느껴질 뿐이었다.


김현이 지체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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