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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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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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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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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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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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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8화.

DUMMY

깜빡, 암전되었다 돌아온 시야에 익숙한 전경이 들어왔다.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전경. 하지만 천장에서 거꾸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름을 주지시켰다.


먼저 공격해올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염자들은 제 몸뚱이를 풍경 속에 녹인 채 으르르, 성대를 긁어대며 끈적한 식욕을 드러낼 뿐이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김현은 틀림없이 수만 갈래로 찢겨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의는 이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면의 네피림은 감염자들을 향해 날 선 살의를 한껏 표출했다. 당장이라도 저것들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듯이.


김현은 고통과 충동으로 흐려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화장실 문을 겸한 짧은 복도를 꺾어 들어가자, 거실의 풍경이 한눈에 담겼다.


“아.”


붉게 채색된 거실, 그 한구석엔 커다란 고기 덩이리가 있었다.


“아아.”


성인 남성의 몸통 정도의 크기도 되지 않을 고기 덩어리는 일정한 리듬으로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마치 필사적으로 호흡하듯이.


“아아아아.”


몇 시간 전. 자신이 누웠던 자리. 바로 그 앞에, 김현이 주저앉았다.


“저, 점···점···.”


붉게 물든 눈꺼풀이 힘겹게 열렸다. 눈썹이 모조리 뽑히고 살색의 그것이 전부 박피 돼 그 부위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음에도 눈꺼풀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그 밑에 드러난 하나의 눈동자 덕분이었다.


“혀, 형··· 혀엉···!”


그 눈동자가 김현을 응시했다. 흰자위와 검은자위 모두 빨갛게 물든 눈. 흐릿한 초점이 허공을 더듬었다. 주르륵, 눈가를 타고 빨강이 흘러내렸다.


콱, 숨통이 조여온다. 김현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이다, 도와주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빳빳하게 굳은 혀는 어떤 단어도 표음하지 못한다. 그저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만 목구멍에서 배출된다.


“왔어?”


화장실에서 나온 한 남자가 물어왔다. 그 평이한 목소리가 마치 약속 시각에 늦은 친구를 맞이하는듯 여상스럽다. 그는 검은 사제복과 대비되는 흰 수건으로 손에 남은 물기를 닦아냈다. 새하얀 수건에 세탁되지 않을 붉은 상흔이 남았다.


“그건 네가 올 동안 심심해서 만들어본 작품이야. 네가 생각보다 빨리 오는 바람에 포장은 아직 덜 마무리 됐지만, 어때? 마음에 들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진석을 떠났을 때? 오진석에게 온 것부터? 참회자가 찾아왔을 때 내가 죽지 않아서?


그날 공원에서 맥주를 마신 일이 실수였다. 그곳에서 감염자를 만나고 장생농을 만나선 안 됐다. 모든 이변은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면, 오진석을 만나서는 안 됐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을 고용한 게 실수였다. 부모님의 죽음을 물은 그에게, 동정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거절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진석은 자신과 만나는 일 없이 지금쯤이면 느지막이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게, 왜 사람 피곤하게 도망치고 난리야? 네가 얌전히 잡혔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차라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은 날, 자신 또한 죽었어야 했다. 배란다 밖으로 몸을 날린 어머니의 품에서 또 다른 추락을 만들어야 했다.


아니, 부모님 또한 사실 ‘나’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오로지 내가 네피림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번엔 도망칠 수도 없을 거야. 네가 뿅 하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결계를 쳐뒀거든. 그분 앞에서 무슨 수로 도망쳤는지는 몰라도, 이번엔 안 통해.”


김현은 항상 따뜻함을 비춰주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눈동자는 더 이상 따뜻함을 담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다.


모든 것은 나 때문이었다.


김현 당장이라도 스스로의 목을 부러트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의식이 무겁게 추락한다.


의식이 검은 바다를 가르며 무서운 속도로 추락해 바닥에 내리꽂힌다.


쿵, 하는 단말마와 같은 추락음이 귓전에서 아스라이 흩어지고.


김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눈은 더 이상 슬픔을 담고 있지 않았다.



***



참회자, 단탈리온이란 세례명을 지음 받은 그는 이번 일이 내심 불만이었다. 아무리 네피림이 중요한 제물이라지만, 그가 알기로 요 김현이란 놈은 네피림으로 각성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이제 막 걸음마나 시작할 단계. 그 능력 활용은 물론이고 갑작스레 향상된 신체 능력에 아직 적응하지도 못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곤 하나, 명령은 명령. 게다가 내년에 치러질 의식에 있어 네피림이란 제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십여 년 전, 굴욕적인 협약을 맺어가며 오랜 기간 준비한 의식. 그 의식만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더 이상 연구소 놈들의 눈치를 보며 숨어 살 필요도 없을 거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제물을 회수하기 위해 그분께서 직접 고행자의 육신에 현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웬걸, 제물이 도망쳤다고 하지 않는가!


단탈리온은 제물의 도주 사실에 깊은 흥미를 느끼며 자신이 개심시켰던 고행자들을 이끌고 그 근방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한 오피스텔에서 제물의 흔적을 찾아냈다. 한 남자가 사는 오피스텔이었다.


하지만 정작 제물은 온데간데없었다. 냄새의 자취만을 길게 흘렸을 뿐.


단탈리온은 몇몇 고행자들에게 제물의 추격을 명하고, 도망친 제물이 괘씸해 남은 놈에게 화풀이했다.


그 남자의 피부와 털을 전부 벗겨내고, 사지를 고행자들의 먹이로 주고, 성총을 이용해 한낱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더러운 피를 씻어내고 제물을 위해 이쁘게 포장해주려는 찰나.


제물이 도착했다.


그가 추격을 명한 고행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제 발로 찾아왔다면 그걸로 된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손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이번엔 도망칠 수도 없을 거야. 네가 뿅 하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결계를 쳐뒀거든. 그분 앞에서 무슨 수로 도망쳤는지는 몰라도, 이번엔 안 통해.”


제물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충격이 너무 컸나?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 작품은 꽤 잘 만들었다. 포장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저걸 개심 시켜 고행자로 만들었을 때, 제물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는데.


하지만 제물은 무시로 일관했다. 그 작태에 불쾌한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너 지금 듣고 있어? 사람 말 무시하는 거야? 여보세요~?”


단탈리온이 지금이라도 저것을 개심시킬까 고민하고 있을 때, 불현듯 제물이 몸을 일으켰다.


“필요 없어.”

“뭐?”

“어차피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서로 피곤해지지 말고, 순순히 같이···.”


꽝!


단탈리온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상시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방어 마법이 우수수 깨져나간 까닭이었다.


“···뭐야!”


단탈리온의 새된 비명을 뒤로하고 김현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한 차례 충돌로 뭉개졌던 주먹이 재차 가속한다. 제 몸뚱이야 부서지든 말든, 한계까지 가속한 주먹은 곧이어 단탈리온의 방어 마법과 부딪치며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을 자아냈다.


“이 미친···!”


이 일곱 겹의 방어 마법은 가히 포탄조차 막아낼 수 있을 터!


단탈리온의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어왔다. 성총을 내려받은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위기감이다. 그가 황급히 방어막을 재구축하며 감염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새끼, 잡아!”


천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감염자들이 김현에게 달려들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거실의 풍경이 한껏 일그러진다.


“으아아아아!!!!!”


자신에게 달려드는 감염자들을 향해, 김현이 격렬한 분노를 토해냈다.



***



“미친.”


분명, 제물은 각성한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은 새끼 네피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무엇인가?


거실은 이미 고행자들의 시체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제물은 시체들을 밟고 서서 밀려오는 고행자를 으깨고, 부수고, 잘라서 시체의 언덕을 한층 더 높게 쌓았다.


단탈리온이 알기로는 네피림의 재생 능력은 수명을 담보로 한다.


하지만 저 제물의 모습을 보라.


이빨을 들이미는 고행자에게 팔뚝을 내어주고, 그 머리를 으스러트린다. 당연 팔뚝의 살점은 한 움큼 뜯겨나간다.


주먹을 뻗어오는 고행자에겐 마주 주먹을 내질러 서로의 주먹이 부러진다. 하지만 뭉개진 제물의 주먹은 한 차례 가속해 그대로 고행자의 머리를 부순다.


희번뜩 눈을 빛내며 상처를 도외시한 채 고행자들을 도륙하는 제물의 모습은,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걸 취미로 여기는 단탈리온의 간담마저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느낀 단탈리온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참회자, 위대한 욕망께 귀의해 속세의 모든 죄를 씻은 자이자, 그를 모시는 사제였다.


그들, 폭식暴食의 참회자들에게 내려진 성총은 창생創生.


어떠한 생명체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것이든, 이 세상의 것이 아니든.


단탈리온이 손을 폈다. 쫙 펼쳐진 손바닥에서 볼록하게 튀어나온 조그마한 살덩이가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살덩이는 이내 그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서서히 형체를 갖췄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그 수가 물경 수백에 이를 때까지.


단탈리온의 얼굴은 그새 핼쑥해졌다.


‘약 7kg 정도, 소모했나.’


창생의 성총, 그 대가는 시전자의 살점이다. 창생은 시전자의 살점을 매개로 생명을 빚어내는 성총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웽웽거리며 날갯짓하는 벌레들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가라.”


반딧불을 닮은 벌레들은 곧장 김현을 향해 날아갔다.



***



오진석의 온정이 느껴졌던 오피스텔 안은 이제 뜨신 피와 살이 난무하고 있다.


김현이 감염자 하나의 머리를 으깨고, 종아리를 물어오는 감염자를 걷어찼다. 그리고 그 감염자를 마무리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 하자, 또 다른 놈이 팔뚝에 달라붙는다.


감염자가 체중을 실은 채 팔을 잡아끌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김현이 주춤한 사이, 감염자들이 개떼처럼 달려든다.


감염자, 감염자, 감염자, 감염자···. 천장에도, 바닥에도, 양옆에도 모두 감염자 놈들뿐이다.


사방이 적이다.


“으아아!”


김현이 악을 쓰며 능력을 뽑아냈다. 투두둑,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나간다. 동시에, 한계까지 발현된 능력이 모조리 척력으로 전환되었다.


우당탕!


몸을 던져오던 감염자들이 전부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당황한 기색은 없다. 그들도 이와 같은 일을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현은 위기의 순간마저 한계까지 능력을 짜내 감염자들을 밀어내왔다. 그리고 이번이 꼭 여섯 번째.


주르륵, 간신히 그쳤던 코피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흐른다. 김현이 아무리 네피림이라지만, 능력을 과하게 남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핏물이 멈춘다. 수명을 공수표처럼 남발해댄 덕에 뇌의 손상이 말끔히 치유된다.


“하아, 하아.”


피 냄새에 무뎌질 대로 무뎌져 버린 김현의 후각은 스스로의 날숨 속에서 외부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김현의 입안 또한 온통 피투성이였던 까닭이었다. 더불어 역류한 내장조각과 입속에 들어온 감염자의 살점 약간 또한.


“퉤.”


이물질을 그러모아 뱉어낸 김현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속에서 피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분명 김현이 몇 번인가 맡아보았던 냄새였다.


두 번의 공간이동 후, 속의 내용물을 게워낼 때 맡았던 냄새. 살이 썩어들어가는 냄새.


지금 김현의 몸뚱이가 안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의 남용? 과도한 재생의 후유증? 과격한 격전의 여파? 짐작 가는 원인이 너무 많아서, 도리어 추려낼 수 없다.


‘문제는···.’


개코 보다 더한 후각을 지닌 놈들이 이 냄새를 맡지 못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웬일로 놈들이 쉴 틈을 주나 싶었더니, 감염자들 모두 한 발짝 물러선 채 눈을 반짝이며 김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타의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그들은 포식자. 상처 입은 맹수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사냥감의 숨통을 끊을 때가 머지않았음도.


아주 잠깐의 대치.


마저 호흡을 고른 김현이 재차 능력을 폭발시키려던 찰나,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이 이질적인 소음을 포착했다.


위이잉.


‘파리?’


작은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 그 소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웨에에엥-!


최소 수백. 수백의 날벌레가 곁으로 접근해왔다.


‘뭔···?’


이성의 판단은 느렸고, 본능은 빨랐다. 그의 머리가 채 의문을 품기도 전에, 김현은 전력으로 능력을 발휘해 방벽을 세웠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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