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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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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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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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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수 :
341,565

작성
21.09.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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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48화.

DUMMY

“안지랑!”

“그럼, 저는 영대 병원이요!”

“이따 뵙죠!”

“예!”


쏜살같이 멀어지는 차량을 일별하고, 이진호가 주변을 둘러봤다.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곳인지, 역 앞은 한산했다. 그리고 대로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장례식장 건물이 스산함을 더했다.


[ 안지랑역 ]


이진호가 지하철 계단을 한달음에 내려갔다. 역사가 그리 크지 않아, 물품 보관함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품 보관함의 개수는 총 열 칸.


그가 무작정 보관함을 전부 열었다. 드문드문 잠긴 곳이 있다. 개수를 헤아릴 것도 없이, 총 세 칸이다.


“아저씨!”


행동이 꽤 소란스러웠는지, 역무원들이 다가왔다. 얼굴에 아니꼬운 기색이 가득하다. 그런 그들에게, 이진호가 대뜸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국정원입니다. 협조해 주시죠.”


역무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굳는다. 역시, 국정원이란 직함은 평범한 사람들의 심장에 해로운 것이었다.


“저, 어, 어떤 일로···?”


나이 든 역무원이 물어와, 잠시 핑계를 고민해본다. 머릿속에 번뜩, 괜찮은 핑곗거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덩달아 떠오르는 건 김우혁의 얼굴이다. 그가 겪을 고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이 이상 효과적이고 즉각적인 위력을 가진 방안이 있냐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별수 없었다. 김우혁의 명복을 빌 수밖에.


‘팀장님, 죄송합니다.’


소란을 각오하고, 이진호가 입을 열었다.


“테러 단체에서 이 물품 보관함에 폭탄을 숨겨뒀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



“폭탄은 제가 회수합니다. 여러분은 그냥 가만히, 태연하게, 시민분들이 혼란스럽게 않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해주세요.”

“그, 그런···!”

“괜찮습니다, 폭탄만 빠르게 찾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이진호가 재빨리 말을 덧붙여,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한발 먼저 막았다.


“그, 그, 그럼 어, 어떻께?”

“마스터키는 어디 있습니까?”

“여, 여기에 어, 없습니더.”


없다고?


절로 찌푸려진 미간을 보았는지, 역무원들의 안색이 한층 창백하게 질린다.


“마스터키는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 그 어, 업체에 다 저, 전화를 해야···.”


업체에 연락해서, 사람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진호가 얼굴을 구겼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진호의 남은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했다.


물건을 찾으면, 바로 그다음이 이유영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이진호는 조금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수죠.”

“에, 예?”

“저거, 부숩니다.”



***



속칭, 빠루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진, 쇠 지렛대를 쥐고서 이진호가 물품 보관함 앞에 섰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오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힐끔 돌아본다. 역무원들이 몸으로 가리며 최대한 주의를 돌리고 있다 해도, 사람들의 눈을 전부 가리는 건 무리였다. 소문이 퍼지고, 언론에서 냄새를 맡는 것 또한 금방일 터였다.


이진호가 쇠 지렛대의 머리 부분을 문 틈새로 끼워 넣었다.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묵직하다.


“후우.”


그가 가볍게 심호흡하고 빠루를 당겼다. 흑복의 보조를 받은 그의 근력은 평범한 사람의 수준을 간단히 상회하는 것이었다.


우지끈, 단단히 잠겼던 물품 보관함이 손쉽게 열린다. 갈색 실루엣이 보인다. 갈색 백팩이었다. 그리고 꽝이었다.


물건은 은색 서류 가방 안에 보관돼 있다. 그리고 물건은 뛰어난 구도자가 없는 이상,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담을 수 없다. 이진호가 유이唯二하게 전해 들었던 물건의 특징이었다.


재빨리 다음 사물함으로 넘어갔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사물함이 쉬이 몸을 벌렸다. 그 안엔, 웬 잡동사니가 즐비하다. 역시나 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진호가 괜스레 쇠 지렛대를 고쳐잡았다. 서늘하고 단단한 감촉은 붕 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다.


“후우.”


그가 마지막 사물함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사물함의 문이 홱 열렸다가 반동으로 다시 닫힌다. 그 잠깐의 틈은 이진호가 은색 실루엣을 시야에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가 활짝 문을 열었다. 서류 가방의 매끈한 은색 몸체가 드러난다.


은색 서류 가방이라는 외형상 특징이 일치한다곤 하나, 일말의 불안감이 가슴 속에 그늘을 드리운다.


이게 진짜 물건이 맞을까? 혹시, 이게 진짜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물건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하지만 그의 우려는 전부 부질없는 것이었다. 서류 가방을 손에 쥐는 순간, 가슴 속에 남아있던 모든 걱정과 불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근, 손잡이를 타고 심장 박동과도 같은 고동이 느껴진다.


불길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진호는 이것이 그토록 찾아 매해던 ‘물건’임을 직감했다.


“찾았다.”


두근, 손바닥 위를 맥동하는 불길한 감각과는 별개로, 복잡한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물건을 찾았다는 성취감과 다행히 물건을 찾아냈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 이유영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등.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진호가 재빨리 김우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물건, 확보했습니다 ]


잠깐의 딜레이 끝에,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송되었다.


그때였다.


짝짝.


“고생하셨어요, 진호 씨.”


이진호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담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억양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왜···?”


분명, 물건을 찾기 위해 갈라졌던 구원상이 태연하게 역사를 가로질러 온다.


“영대 병원 역으로 간 게 아니었습니까···?”


말꼬리가 흐려짐에 따라, 이진호의 의구심이 점차 경계심으로 변해간다.


주변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자신을 돕던 역무원들도, 오가며 이쪽을 기웃거리던 사람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역사 안은 구원상과 이진호, 둘을 제외하면 텅 비어 고요하다.


문득, 애써 묻어두었던 마지막 가능성이 떠오르며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감염자가 아닌 다른 이들, 요컨대 무장한 인간들과 그녀가 충돌했을 가능성.’


이진호의 눈빛에 차츰 적의가 떠올랐다.


“너였냐? 아니···.”


하나둘, 낯선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복장이다. 하지만 손목과 발목, 목 부위에 옷깃으론 차마 가리지 못한 통일된, 그리고 익숙한 옷차림이 눈에 띈다.


‘흑복.’


빠드득, 절로 이가 갈린다.


“···너희들이었냐?”


구원상이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거꾸로 묻는다.


“어라? 진짜 몰랐던 거에요?”


하지만 그 웃음에 담긴 조롱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이진호가 아니었다. 턱 근육에 한층 힘이 들어간다.


“설마, 유영 선배도 너네가 감금하고 있는 거냐?”

“하하, 그래도 머리는 여전히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거 같네요.”


구원상이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요, 유영 씨는 저희 쪽에서 안전하게 모시고 있어요.”

“안전? 모셔?”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런 놈들이 마구잡이 총을 쏴댔냐? 그것도 주유소 한복판에서?”


구원상의 어설픈 웃음이 한풀 꺾였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하하, 저희 쪽에서도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유영 씨의 반항이 워낙 거칠어서요. 우리 애들도 몇 명 골로 갈 뻔했다니까요?”

“지랄.”

“와, 진호 씨도 어지간히 입이 거치시네요. 역시, 그런 분을 사수로 두셔서 그런가요?”


성큼, 다가온 구원상이 손바닥을 쫙 펼친다.


“자, 순순히 물건을 넘기세요. 그럼, 진호 씨한테 해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이 물건이 감염자를 끌어들인다는 정보는, 거짓이었나?”

“글쎄요?”

“이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는 알고 있는 거냐?”

“어련히 알고 있을까요.”


확고한 태도이다. 더는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젠장.’


이진호가 슬며시 서류 가방을 빗겨들고, 품 안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구원상에겐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오늘따라 권총의 감촉이 서늘하다. 그 무게감 또한 유난히 무겁다.


“왜요? 못 쏘겠어요?”


구원상이 한 발짝 다가와, 반사적으로 한 발짝 물러선다. 대략 5m쯤 되는 거리. 뛰어오는 속도 보다 품에서 총을 꺼내 쏴 갈기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거리였다.


“그건, 사수랑 많이 다르네요.”


하하, 구원상의 웃음소리가 이때까지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온다.


“큭!”


이진호가 황급히 서류 가방을 세워 얼굴을 보호했다. 챙! 쇠끼리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귓전을 파고든다. 미친! 욕설이 절로 나왔다. 어렴풋이 본 칼나로운 형체는 분명 나이프의 그것이었다.


뻐억!


강렬한 타격에 중심이 크게 흔들린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구원상이 정강이를 후려갈긴 것이다.


‘반격을···!’


분명, 총자루를 쥔 건 이진호 자신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사람’. 손끝으로 전달되는 감촉이 무겁다.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을 정도로.


“제기랄!”


이진호가 대신 주먹을 말아쥐었다.


퍽!


주먹을 뻗기도 전에, 구원상이 주먹이 옆구리를 강타한다. 이진호가 잇새를 앙다물었다.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구원상은 회복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연격을 퍼부어온다.


“구원상!!”


악에 받친 이진호가 머릿속의 스위치를 딸깍, 올렸다.


화악-!


머릿속이 온통 증발할 정도로, 호르몬이 넘쳐흐른다. 극도로 고양된 감각, 이진호의 체감 시간이 급격히 느려진다.


피부 위로 꿀렁이며 와닿는 공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소리의 잔향이 고막에 와닿아 부딪치며 아스라이 사라진다. 구원상의 손가락에 돋는 털, 하나하나가 바람결에 날려 흩날리는 모습이 영화 속 슬로우 모션처럼 세세하게 포착된다.


이진호가 마주 주먹을 뻗었다.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은 아니었다. 세로로 뻗은 주먹을 구원상의 너클 파트를 충돌 시켜, 새끼손가락의 골절을 유도할 심산이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두 개의 주먹이 착실히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그 틈에, 이진호가 사위를 살폈다. 비단, 지금 상황은 구원상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다. 3팀의 요원들이 원을 그리며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빈틈없이 포위망을 구축한다.


‘이 녀석을 인질로 삼고, 여길 벗어난다.’


판단을 내린 이진호가 다시 구원상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어?’


오싹,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구원상의 눈이 반달로 휘어지며 웃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구원상의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스치며 안쪽을 파고든다. 쫙 펼쳐진 손바닥은 그대로 곧게 뻗은 팔을 타고 올라, 이진호의 어깨를 밀어쳤다.


발뒤꿈치가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과 함께 부유감이 온몸을 엄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


쿵!


“컥!”


시야가 뒤집어지고, 머리가 뒤흔들린다. 그런데도, 손끝은 필사적으로 서류 가방을 붙잡는다.


“끅!”


무방비한 목젖 위로 강압적인 폭력이 느껴진다. 두꺼운 팔뚝이 그의 목젖을 내리누른다.


“끄으윽!”


이진호가 전력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울대를 짓누르는 무게는 더더욱 강해진다.


“진호 씨, 같은 요원은 별로 상대해본 적이 없나 봐요?”

“끄으으!”

“어어? 조심하세요. 제가 여기서 더 힘주면, 진호 씨 목이 뚝 하고 부러질지도 몰라요.”

“끄윽!”

“옳지, 옳지.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바닥을 더듬는 손끝에 무언가 걸린다. 딱딱하고 작은 물체. 휴대전화였다.


지잉.


때마침, 메시지 하나가 떠오른다.


[ 잘했어. 물건은 다른 사람이 운반 임무를 맡을 테니, 넌 유영이 찾는 일에 집중해. 이걸 마지막으로 이 번호는 폐기된다. 수고. ]


‘안···돼!’


의식이 흐려진다. 가장자리부터 까맣게 시야가 천천히 변색된다. 검게 물들어가는 시야 속, 한가운데 자리 잡은 구원상의 얼굴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또···또···.’


무력하다.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유영 선배 하나 구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그것도 참회자도 아닌 같은 사람에게.


젠장!


목을 졸라오는 구원상 보다,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난다.


아득, 입안에 비릿한 냄새가 감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피의 그것은 역겨운 자기혐오의 맛이었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해 구역질이 나온다면, 토사물이 아니라 차라리 불꽃이 뿜어질 것만 같았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단단한 무언가에 쩍, 하고 금이 간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기도 전에, 구원상이 바짝 붙어왔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그의 입술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달달한 멘트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잘 자요.”


‘씹···.’


그렇게 이진호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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