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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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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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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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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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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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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3화.

DUMMY

대응국의 머리, 수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총 셋이었다.


대응국장, 부국장, 그리고 안보실장.


여기서, 안보실장은 제외한다. 안보실장은 연구소장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애초에 안보실이 연구소의 경호를 전담하는 곳이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간과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남는 건 국장과 부국장.


그중, 아무래도 국장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단순한 소거법이었다. 대응국 내의 모든 실권과 지휘권을 쥐고 있는 부국장과 국장이란 명함만 달고 있지 아무런 실권도 없는 대응국장, 둘 중에 누가 더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후자를 고를 것이다. 배신은 현 상황을 뒤엎고 싶은 자들이 고르는 최후의 선택지니까.


게다가, 국장이 정부 쪽에서 꽂아 넣은 친정부 인사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부 쪽에서 이번 일에 개입한 건가?’


젠장, 역시 일이 더럽게 얽혔다.


이진호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응?’


문득, 그가 멈칫했다.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 탓이었다.


고요하다.


방금까지, 시끄러운 욕설로 가득 찼던 3평 남짓한 구금실이 기이할 정도로 적막했다. 고래고래 욕설을 뱉던 이유영도, 매번 당황하면서도 그녀의 욕설에 꼬박꼬박 응대하던 요원도, 조용했다.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고 침묵에 일조한다.


이진호는 왜인지 모를 불길함에 마른 침을 삼키고, 회색빛 콘크리트 벽에 붙었다.


“선배님?”


조심스레 불러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주무십니까?”


쿵쿵.


가볍게 벽을 두드려봐도 마찬가지이다.


‘잠깐.’


이진호는 옷깃을 파고드는 허전함을 느끼고,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선배가 지금 몇 시간째 담배를 못 피운 거지?’


답은 금방 나왔다.


최소 72시간.


구금된 그녀에게 담배를 건넬 만큼, 사려 깊은 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적어도 72시간 이상 금연 중인 것이다.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고작 담배의 금단 증상을 우려하는 거냐 묻는다면, 맞았다. 지금 그는 이유영의 금단증상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 금단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담배에서 기인한 게 아니었다.


흑복.


각종 마법의 보조와 뇌 내에 온갖 약물을 때려 박는 것으로 초인적인 운동 능력을 발휘케 하는 현장 요원의 기본 무장.


그리고 뇌 내에 때려 넣는 약물들은 대부분 아주 강력한 마약 성분을 띄고 있었다.


현재에 와서 중독의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되긴 했지만, 과거엔 아니었다.


현재의 선임급, 초기의 요원들이 대부분 골초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중독의 대상을 돌려막은 것이었다.


흑복에서 담배로. 그 부작용이나 금단 증상이 비교하는 게 민망할 수준으로 미약하니 말이다.


실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이유영과 김우혁, 그리고 초기부터 활동해온 다른 요원들이 아직도 현역에 있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했다.


이유영은 그중에서도 금단 증상이 꽤 심각한 거로 알고 있다. 그녀가 하루 동안 피우는 담배의 개수가 그걸 증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복이든, 담배든, 의존할 수단이 전부 사라진다면?


잠깐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72시간, 3일이란 시간은 농담이라도 잠깐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격한 언행도 이해가 되었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방금의 그녀는 분명 과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선배님!”


여전히 벽 너머는 묵묵부답이다.


이진호가 다급히 철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간수! 이봐! 3팀! 아무도 없어!?”


바닥에 쓰러져 옅게 숨을 헐떡이는 이유영을 뒤로하고, 이진호의 간절한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부국장의 임명권을 포기하라.


즉, 대응국에서 완전 손을 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대응국의 모든 실권은 부국장의 지위에 집중돼 있으니까.


연구소장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 임명권을 요구하는 건지, 왜 자신이 임명권을 포기해야되는 건지, 왜 이제 와서 연구소의 손발을 자르려는 건지, 무엇 하나 묻지 않았다.


그도 알기 때문이었다.


대응국장, 정의신은 단순히 정부의 확성기일 뿐이며, 이 결정은 그의 윗선, 이 나라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내린 것임을.


그리고 그들이 결정했다면, 명분 따위야 어떻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의신은 그의 침묵이 기꺼워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역시, 싱거운 맛이었다.


“꽤 능력있는 구도자들을 구했나보군.”


이 또한 역시라고 해야 하나? 연구소장은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그간 귀소의 독점적 지위 덕분에, 이리저리 손해를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이게 전부,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구도자 집단이랍시고, 너희가 패악질 부린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 우리에게 너희는 대체 가능한 집단이다.


이제 그 독점적 지위에서 내려와, 양손에 쥔 권력을 하나둘 놓을 차례다.


부드러운 어조를 가장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상당히 과격했다.


아드득.


제법 살벌한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어금니를 얼마나 세게 깨문 건지, 차진성의 입가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한층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의신은 웃는 낯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한은 충분히 드릴 테니, 차후에 말씀을 주시면···.”

“만약에.”


연구소장의 그의 말을 잘랐다.


“만약에 말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정의신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의 자리를 대신할 구도자들이 전부 사라진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



험준한 산길을 내려가던 구원상이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무언가 이상했다.


시계視界를 가리는 어둠도, 흑복 위로 와닿는 서늘한 공기도, 군홧발에 몸을 누이는 잡초들의 바스락거림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구원상이 귀를 쫑긋 세웠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사위가 적막했다.


산짐승도, 벌레들도 모조리 잠자리에 든 듯, 조그마한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마치 불길한 전조를 알리듯.


그 순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파동이 전신을 휩쓸었다.



[ ——-! ]


삐죽,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두근, 공포에 질려 한 걸음 물러섰던 심장 박동이 크게 발을 구른다.


“푸하!”


호흡조차 잊었던 구원상이 뒤늦게 격한 날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뭐야···?”


떨리는 눈매를 감출 생각도 못하고, 구원상이 왔던 길을 거슬러 올려봤다.


그 끝에서, 어두운 밤하늘을 찢으며 거대한 선홍빛 살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 빌어먹을 이가 놈이!”


욕설을 씹어뱉은 고 박사가 코앞까지 다가온 선홍빛 촉수 다발을 보고 황급히 방어 마법을 펼쳤다.


수 톤짜리 화물차가 전력으로 들이받은 듯한 충격이 그를 강타했다. 그의 몸이 쏜살같이 날아가 새하얀 벽에 틀어박혔다.


쿵!


콘크리트 벽에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가고, 희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숨에 곤죽이 됐을 상황이었지만, 고 박사는 반백의 머리가 산발이 된 것을 제외하면 나름 멀쩡해 보였다.


“퉤!”


입안의 먼지를 뱉어낸 그가 가만히 시선을 올렸다.


선홍빛 촉수 다발이 허공에서 너울거린다. 은색 서류 가방에서 뿜어져 나온 촉수다발은 그 굵기를 점점 키워 종국엔 웬만한 건물 기둥보다 두꺼운 그것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질량으로 무자비한 파괴 행각을 벌였다. 건물이든, 사람이든, 구도자든, 가릴 것 없이.


“창생의 성총, 그것도 말로에 이른 참회자가 발현하는 성총인가?”


고 박사는 단숨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한 줄기 의문은 지우지 못한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 생명을 유지하며, 압축시킨 것인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저 무지막지한 걸 억눌렀단 말인가? 말로에 이른 참회자라면, 그것도 창생의 성총을 구사하는 참회자라면, 그 폭식의 논리에 휩쓸려 제 몸을 먹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본능을 억제하고, 어떻게 여태껏 깨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가?


함정에 걸렸다는 분노는 저 멀리 사라지고, 그의 머릿속엔 온통 탐구욕만이 들끓었다.


애초에, 구도자라는 족속이 그러했다. 탐구욕에 미친 자들. 진리의 끝, 구도의 마지막에 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촉수 다발의 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다른 구도자들 또한 고 박사와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고 있다.


저걸 해부하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 조각 한 톨 남기지 않고 해부해, 저런 현상을 가능케 하는 원리를 모조리 규명해내고 싶다!


그런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해부해보면, 알 터이지.”


가장 먼저 고 박사가 행동에 나섰다.


외부의 관측을 차단하는 결계가 깨졌다고는 하나, 이곳은 아직 그의 영지. 그가 정한 법칙이 통용되는 공간이었다.


고 박사의 눈꺼풀이 천천히 닫힌다.


1초, 2초, 3초··· 5초.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촉수 다발의 절반 정도가 산산이 해체돼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흐음.”


촉수 다발이 해체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구도자들이 두 눈을 경외의 감정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정작 그 이적을 부린 당사자는 불만 어린 콧소리를 흘렸다.


당초, 본체를 제외한 모든 촉수를 날려버릴 생각이었으나, 고작 목적의 절반 가량밖에 이루지 못한 탓이었다.


“제법, 저항이 거세구나.”


그리고 그가 다시 눈꺼풀을 닫을 때였다.


[ 우오오오아아아아- ]


서류 가방 안에서 귀를 찢을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 하지만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챈 고 박사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 아아아아아우우우-! ]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황급히 마법을 펼쳤지만, 이미 늦었다.


“어어?”


아무리 비밀리에 운용되는 시설이라고는 해도, 최소한의 관리 인원은 필요한 법이었다. 청소나, 시설 관리 등의 잡무까지 구도자 같은 고급 인력이 도맡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작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 어, 어, 내, 내, 파, 팔!”

“몸이, 몸이, 이, 이상···?”


접착제가 다한 듯, 팔이 늘어지다가 툭, 하고 떨어진다. 성인의 머리 크기 만한 혹이 아무런 전조 없이 불쑥 솟아나고, 뱃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참을 수 없어 뱃가죽을 미친 듯이 긁어댄다.


“사사, 살려줘!”

“으, 아아아아!”


팔이 있던 자리에 검은색 돌기가 돋는다. 부풀어 오른 피부를 찢고 들끓는 구데기 때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어코 뱃거죽을 벗겨내 나온 건, 기괴한 형상의 커다란 날벌레였다.


하지만 변이가 일어나는 건, 평범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구도자들 또한 느리게나마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수년.


아무리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고는 하나, 수년 간 쌓아온 기반이었다. 그 세월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날아가고 있건만, 고 박사는 경탄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해···.’


어떻게?


세 글자의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저건 정부의 계책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폭탄이자, 고무열 자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찾아오라는 거냐?’


구도자라면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초대장.


두근두근.


심장이 기분 좋게 맥동한다.


‘그래, 좋다. 내 직접 가주마.’


70년 만인가?


오랜만의 재회를 고대하며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참혹한 비명들을 뒤로하는, 산뜻한 발걸음이었다.



***



지잉지잉지잉지잉···


적막했던 소장실에 연신 거센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불이라도 난 듯 격렬히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보며, 정의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받지?”


그 강압적인 권유에, 정의신이 느릿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 국장님! 함정입니다! 그 무, 물건에서 괴물, 괴물이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괴물? 고 박사님은? 고 박사님은 어디 가셨길래···.”


상대방을 윽박지르던 정의신은 이어지는 말에 아연해졌다.


- 도망쳤습니다! 고 박사 그 인간은 도망쳤어요! 국장님, 여기는 이제, 악! 아아악!

“여보세요? 여보세요? 김 실장! 이봐!”


일정하게 울리는 신호음이 통화의 단절을 알려왔다.


뚜뚜뚜.


통화 종료의 신호음이 이토록 불길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정의신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소장실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1분 전의 그것과는 그 의미도, 그 처지도 달랐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연구소장은 평소와 같이 무심하게 답했다.


“청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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