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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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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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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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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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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5화.

DUMMY

똑똑.


“3팀장입니다.”

“들어와.”


권일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달짝지근한 알코올의 냄새가 방안에서 진동했다. 술 냄새였다.

역시 그 증거로, 책상 위엔 빈 와인병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박민상의 얼굴은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 우리 권 팀장~”

“좀··· 과하게 드신 거 아닙니까?”

“괜찮아, 괜찮아.”


박민상이 손사래 치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여간 위태로워 보였다.

한숨을 꾹 눌러 담은 권일환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애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그를 보고, 권일환은 당연히 그가 이번 일의 성공을 자축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애들은?”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박민상이 고개를 설핏 들었다. 좌우로 흔들리며 눈을 어지럽히던 고개가 꼿꼿이 멈춰 섰다.


“권 팀장, 일은 실패했다.”


권일환은 하마터면 부축하던 손을 놓을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진심이십니까?”

“······.”


긍정을 뜻하는 침묵이었다.

권일환이 잇새를 악다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수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의문, 걱정, 우려, 분노, 후회, 자책, 원망 등등.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하지만 그는 끓어오르는 모든 감정을 접어두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 들어, 권 팀장.”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권일환은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일단, 두 사람. 그 연놈들을 죽여야 해.”


취기가 가신, 절박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스쳤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



***



“야, 1팀 아저씨들이 그래 골 때린대매?”


동기의 질문에, 김성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 말도 마라. 욕을 을마나 해대는지 아직도 골이 울린다, 골이.”

“키킥.”

“아, 벌써 시간이 이리됐노.”


힐끔 손목시계를 확인한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털었다. 슬슬 복귀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 간다~”

“어, 수고~”

“어야.”


그가 흡연실을 빠져나갔다.

근무지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구금실에서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한 여자를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쓰벌.”


하지만 복귀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까진 엄연히 그의 근무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뚜벅뚜벅.

구금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복도 끝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니가 와 여깄노?”


정종석이었다.

마침, 기분도 별론데 잘 걸렸다.

김성규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야, 니가 지금 왜 여기 있냐고. 뭐, 1팀 아저씨들 구하러라도 왔나?”


김성규가 슬슬 시동 걸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정종석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공경도, 두려움도, 긴장감도 담기지 않는 그야말로 무표정.

선배 된 입장으로서, 상당히 배알 꼴리는 얼굴이었다. 아주 불손했다.


“마! 니 도랐나? 지금 나 무시하나?”


김성규가 위협적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뺨이라도 한 대 맞아야, 이 건방진 후배 놈이 정신을 차릴 거 같았다.


“선배님, 저는 나름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뭐?”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무라도 썰어라.”


정종석의 엉터리 속담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자꾸 개소리를 씨불이고···.”


“이제 어쩔 수 없겠죠.”


김성규가 말을 채 마치기 전에, 정종석이 불쑥, 거리를 좁혀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시야 밖에서 솟구친 손바닥이 김성규의 턱 끝을 후려쳤다.


퍽.


골이 흔들리고, 시야가 어지러워진다.

왜? 라는 의문을 가질 틈은 없었다.

김성규는 반사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퍽!


하지만 그보다 먼저, 끔찍한 충격이 재차 머리를 강타했다.


“이 새, 끼··· 가···.”


풀썩.


콘크리트 바닥의 딱딱한 감촉이 피부 위로 와닿는다. 의식은 걷잡을 수 없이 흐려지고, 포근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바닥의 서늘함조차 의식을 붙잡을 순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보며, 정종석이 작별 인사를 남겼다.


“안녕히 계십쇼, 김머시기 선배.”


‘내 이름은 김머시기가···.’


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 말은 전달되지 않았다.



***



쾅쾅!


“문 열어! 이 미친놈들아! 사람이 죽는다고, 사람이!”


피부가 찢어지고 핏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하지만 이진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철문을 두드렸다.

이유영이 죽어가고 있었다. 피륙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죽음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구금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진짜로 문이 열렸다는 기쁨과 당혹감도 잠시, 이진호가 눈앞의 사내에게 격렬한 분노를 토해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비록, 그 의미를 달랐지만, 정종석이 순순히 사과했다.

하지만 순순히 멱살잡이를 당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가 가볍게 이진호의 손을 뿌리쳤다. 이진호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맨몸의 이진호는 감히 흑복을 착용 중인 그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 개자식이!”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재차 달려드는 이진호에게, 그가 불쑥,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 아직 팔팔한 거 보니, 살 만한가 봐?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진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팀장님?”

- 오랜만이다. 아니, 아직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오랜만은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 일단, 장비부터 챙겨. 얘기는 그다음에.

“아니, 장비를 어떻게 챙기라는 겁니까? 3팀 놈들이 득실대는···.


정종석이 웬 서류 가방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흑복과 나이프, 그리고 권총까지. 모든 기본 무장이 들어있었다.


- 나머지 얘기는 유영이까지 모이면 하자고.


수화기 너머로, 김우혁의 웃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



끼익.

구금실 문이 열리고, 이유영이 걸어 나왔다.


“선배!”


그녀가 문 앞에서 잠시 비틀거리자, 이진호가 화들짝 놀라며 다가갔다.

부축할 듯 말듯 어정쩡하게 다가온 이진호의 손을 보며,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치워.”

“옙.”


이진호가 재빨리 물러섰다.


“담배.”

“여기 있습니다.”


그녀가 담배를 입에 물자, 이진호가 능숙한 손길로 불을 붙였다.

그녀와 함께하며 골백번은 해온 일이었다.


“후.”


그녀가 문틀에 기대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어느새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그녀였다. 이진호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구금실 안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녀를 보았을 때는 정말 기겁했었다.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실로 천만다행이었다.


“야, 근데 너 제정신이냐? 기절한 사람 입에, 담배를 꽂아 넣어? 제사상 앞에서 향 피워? 아주 그냥 죽으라고 제까지 지내지 그랬냐? 그것도 모자라서, 환자한테 직접 옷까지 입게 하고 말이야, 어?”

“하하, 죄송합니다···.”


이진호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그녀를 깨우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냥 흑복 입히고 긴급 구명 썼으면, 쉽게 가는 걸 몰라?

“알고는 있었는데···.”

“알고 있었는데···?”


이유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설마.”

“하하하, 하···.”


의심의 눈초리에, 이진호가 어색하게 웃음소리를 늘어트렸다.

이유영이 그의 정강이를 후려 찼다.


“악!”

“아주 내 몸뚱이에 발정났다고 고백이라도 하지? 어?”

“아니, 선배님. 그게 아니라···.”

“악!”


그녀는 변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진호에게 다시 한번 응징을 가하고, 그녀가 사나운 눈초리로 새로운 사냥감을 물색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피해 애써 눈 돌리는 낯선 사냥감이 보인다.

정종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


“넌 뭐야?”

“저 말입니까?”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흠흠.”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애써 원래의 차분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되찾고 말했다.


“저는 부국장님 직속···.”

“쁘락치야?”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유영이 대뜸 물었다.

프락치라니! 터무니없는 매도였다.

정종석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예? 쁘락치라뇨. 저는 엄연히 부국장님 직속···.”

“그러니까 쁘락치라는 거잖아.”

“아니, 저는 언더커버Undercover로 3팀에 잠입했을 뿐인 부국장님 직속···.”

“언더커버, 잠입. 쁘락치 맞네.”


정종석은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예···. 맞습니다, 프락치···.”


그래서 결국, 그녀의 논리를 인정하고 말았다.


“휴대폰이나 내놔.”

“예?”

“팀장님이 연락하라고 했다며.”

“아···.”


어물쩍 건넨 휴대전화를 그녀가 낚아채듯 빼앗아 들고, 혀를 찼다.


“정신 좀 차려라. 부국장 직속이란 놈이, 이진호랑 다를 게 없네.”


이 사람은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정종석은 문득 이진호의 시선을 느꼈다. 다 이해한다는 눈빛이다.

둘이 동병상련의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 통화가 연결되었다.


“팀장님.”

- 걱정했는데 나름 멀쩡한가 보네?

“머리가 쪼개지게 생겼는데, 멀쩡하다는 말이 나와요? 아무튼, 빨리 암시나 풀어주세요.”

- 알았어,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수화기 건너편에서 무언가 조작하는가 싶더니, 높낮이가 다른 전자음이 들려왔다. 마치 TV의 화면 조정의 그것과 같은 소리였다.


‘이걸, 어디서 들어봤지?’


왜인지 모를 익숙함에 이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전자음이 끝나고, 새로운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건 마치,


이진호의 동공이 한계까지 확장됐다.


길고 얇은 실뱀이 귓바퀴를 스치운다. 갈 곳을 잃어 귓바퀴를 이리저리 맴돌던 뱀이 마침내 목적지를 찾았다. 검고 좁은 구멍은 뱀이 들어가기 딱 알맞은 장소였다.


부르르.


뱀이 귓구멍을 비집고 들어온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얇은 고막을 지난다.

이제 뱀을 맞이하는 건, 주름이 자글자글한 회백질의 둥근 덩어리.

뱀이 주름 구석구석을 훑어가며 그 위를 미끄러져 간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마침내, 그 뱀은 회백질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 검고 사악한 무언가를.

쉭쉭, 뱀이 경계하듯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화살처럼 쏘아져 그걸 콱, 물어 삼켰다.



***



“으음.”


이유영이 불쾌감에 몸서리쳤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지만, 이 불쾌한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선임 요원들은 기본적으로 암시가 걸려있었다. 행동이나 생각을 강제하는 강력한 암시는 아니고, 몇몇 기억을 억제하는 가벼운 암시였다.

가볍다고는 해도, 전적으로 그녀의 기준이었지만 말이다.


암시를 거는 이유는 알다시피 회사의 주적인 참회자 때문이었다. 그들이 선임급 요원들의 기억을 읽어내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그리고 방금의 이명은 암시를 푸는 트리거였다.


이유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수많은 정보가 한 번에 물밀 듯이 밀려와 머리를 쿡쿡 쑤셔댄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상당히 거슬렸다.


- 괜찮냐?

“예, 뭐. 답답한 거보단 나으니까요. 그래도 계획은 성공했나 보네요?”

- 그래, 이번 일로 정부 쪽 라인을 전부 도려낼 거다.

“뭐, 잘 됐···.”


그때였다.


털썩.


좌우로 기우뚱거리던 이진호의 몸이 기어코 허물어졌다.


“야, 이진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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