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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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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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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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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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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4화.

DUMMY

“안녕히 가세요~”

“어, 그래. 수고해~”


딸랑, 교대를 마친 오진석이 장우산을 집어 들고 유리문을 열었다.


쏴아아-!


빗줄기가 참 시원하게도 쏟아졌다. 감상에 빠지기 딱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우산을 펼쳤다.


찰팍찰팍, 빗길에 나서니, 빗방울이 옷자락을 적셔온다. 그 축축함이 불쾌감을 일으킬 법도 하건만, 오진석은 왜인지 한 사람을 떠올랐다.


김현의 첫인상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죽은 눈과 채 몇 줄 채워 넣지 못한 이력서가 고용주에게 좋은 인상을 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오진석 또한 여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였고, 김현이란 이름 두 글자는 그의 머릿속에서 금세 잊혔다. 면접이 끝나고 김현이 편의점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러했다.


그날, 교대를 마치고 이력서를 정리하는 와중에 김현의 이력서 한켠을 보지 못했다면, 필히 그랬을 것이다.


김현의 이력서는 오래된 것이었다. 오래된 만큼 양식 또한 구닥다리였고, 요즘 것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항목이 있었다.


가족관계.


형제는 없었고, 부모님 둘로 단출했다. 거기까진 평범했으나, 공란이 오진석의 눈에 밟혔다. 채워진 건 부모님의 이름 석 자뿐. 나이, 전화번호, 동거 여부는 전부 공란이었다.


단순히 쓰기 싫어서 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부모와 의절해 독립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김현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통화는 충동적이었다.


- 예.

‘혹시, 양친께서···.’


아차 싶어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한 번 입에 담은 말을 되돌릴 순 없었다.


‘아 죄ㅅ,’

-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


김현은 오늘 아침에 먹은 메뉴를 알리듯, 담담히 부고를 전했다. 그 목소리에선 한 점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아, 가슴이 턱 막혀왔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 아닙니다. 워낙 오래 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납니다.


그 무던함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니면 죄책감의 발로였을까, 어쩌면 그 시꺼멓게 죽은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다음 주, 출근 가능해요?’


또다시 충동적인 행동이었고, 대답을 듣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예.


찰팍.


이제 와서 그때 당시 왜 그랬을까를 떠올려 본다면, 오진석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가장 높을 가능성은, 아마 동질감일 터였다. 둘에게는 양친을 모두 잃은 천애 고아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썩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었다. 백사병 사태 이후, 그들과 같은 고아는 세상에 넘쳐났다. 오진석은 여태껏 그들에게 일일이 동정심을 베풀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으로 간신히 편의점을 차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상황에, 동정심은 가장 먼저 죽어버린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새 집 앞이다. 오피스텔의 입구에 웬 남자가 새우처럼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비도 오는데 참 고생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를 지나치는데, 그 얼굴을 알아보고는 툭 우산을 떨어트렸다.


“야! 김현!”

“저, 점장님···.”


김현이 설핏 고개를 들었다가, 검붉은 무언가를 왈칵 토해냈다.


“웩!”

“미친! 야! 너 괜찮아?”


그것은 언뜻 고깃덩어리를 닮아있었다. 그 정체가 절로 연상돼 현기증이 밀려왔다. 오진석이 머리를 부여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야야! 바로 구급차 부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벼, 병원, 은··· 아, 안 돼···.”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김현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


이진호와 오종후는 급한 호출을 받고 회사로 복귀했다.


딩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펼쳐진 11층의 전경은 이진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하암 졸려, 뭔 일로 이렇게 다 호출했대?”

“몰라~ 아, 담배 땡겨.”

“아서라, 니가 유영 선배냐? 그러다가 선임님들한테 척추 접힌다.”

“궁예질 하지 마라~ 나도 자살이 취미는 아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오야,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똑같지. 뭐~ 우리가 달라지는 게 있나.”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적막했던 사무실은, 대략 사오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시장통으로 변해있었다. 급히 호출받아 심각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예상과는 영 딴판인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생경한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종후~ 오랜만.”

“유영.”


왠지 낯이 익은 여성이었다. 여기가 분명 사무실 안일 텐데,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얘가 이번에 키운다던 부사수야?”

“맞다.”


훅, 이진호의 얼굴 위로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익숙지 않은 담배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진호는 불쾌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새로운 집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천지 분간 못하는 등신은 아닌 거 같네.”


이거, 칭찬인가? 만약 칭찬이라면 이진호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신랄한 칭찬이었다. 너무 매워서 정신이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딩동,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누군가 11층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잘 아는 인물이었다.


“팀장님.”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우혁은 눈짓으로 대강 인사를 받고는 좌중을 쓱 둘러봤다.


“대충 다 왔군.”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기다려.”


이유영의 껄렁한 질문을, 김우혁은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이 사라지더니,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목.”


뚝, 시장통 같은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단순히 침묵뿐만이 아니었다. 의자에 반쯤 누워있는 이도, 책상 위에 걸터앉았던 이도,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이도, 모두 순식간에 올곧이 직립한 채 김우혁을 응시했다. 그 소리 없는 일사불란함을 한눈에 담은 이진호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선임 요원들은 전부 회의실로 집합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완전무장한 채 대기한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헤쳐.”

““헤쳐!””


그에, 사무실의 모든 인원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회의실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전부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거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아 참.”


김우혁이 뚜벅뚜벅 회의실로 향하다가, 얼어있는 이진호를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종후. 아무나 진호한테 붙여서, 장비 좀 챙겨줘. 아직 장비 안 챙겨줬지?”

“아직입니다.”

“그럼 아무나 붙여.”

“알겠습니다.”


오종후가 적임자를 물색하려 두리번거리는데, 한 사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네가 하겠다고?”

“예!”


오종후가 김우혁을 보았다.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었다.


“성훈이가 전 막내였으니까, 잘 알려주겠지.”


그렇게 잠시동안 오종후의 대타를 맡을 사람이 결정되었다.


그들이 모두 회의실로 떠나자, 그가 이진호에게 다가왔다. 잘 쳐줘도 20대 초반쯤 됐을까, 생글생글 웃는 낯이 묘하게 꺼림칙했다.


“후배님?”

“아 예.”

“김성훈.”

“예?”

“내 이름.”

“아, 이진호입니다.”

“잘 부탁해.”


다짜고짜 말부터 놓는 건가, 이런 분위기가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이미 내친걸음, 엎질러진 물이었다. 좀생이마냥 과거의 결정을 후회해봤자, 앞으로의 일에는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밀어온 김성훈의 손을 이진호가 굳게 마주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


“으으···.”

“야! 김현! 정신이 들어!?”

“무, 물···.”


목구멍이 까끌까끌해 들이마시는 호흡이 푸석하게 느껴진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봤지만, 안구마저 따가워 쉽지 않다. 그게 마치 사막의 유사 속에서 며칠 푹 썩다 간신히 건져 올려진 느낌이라, 김현은 애타게 물을 찾았다.


“뭐, 물?”


오진석이 황급히 냉장고를 열었다가, 환자에게 냉수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떠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부엌 구석에 반쯤 남은 생수가 눈에 띄었다.


“여, 여기 물!”


오진석이 생수를 컵에 따라 김현의 입가에 가져갔다. 조심스럽게 기울어진 컵을 따라, 미적지근한 생명수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꿀꺽꿀꺽, 한 컵을 다 비운 거로 모자라 두어 번을 더 반복하니, 차츰 몸에 활기가 돌았다. 마지막 컵에 이르러선 김현이 상체를 들어 직접 물을 마실 정도였다.


“하아.”


우선순위에 밀려 길을 찾지 못했던 날숨이 단번에 밖으로 새어 나갔다. 얼추 정신이 돌아오자, 물을 건네주었던 은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점장님?”

“몸은? 괜찮아?”


걱정스러운 말투와 표정. 그 모습을 보자, 왜인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점장님,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어어, 그래. 부축해줄까?”

“괜찮아요.”


몸을 일으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크게 휘청였다.


“야야! 괜찮아?”

“네, 진짜 괜찮아요. 그냥 힘이 없어서 그래요.”


김현이 벽을 짚은 채 오진석의 손길을 정중히 거절했다.


“······.”


오진석의 침묵이 가슴 한켠을 내리눌렀지만, 애써 외면했다. 일부러 그의 얼굴 또한 보지 않았다. 괜스레 그와 눈이 마주치면 추태를 보일 것 같아 목을 꼿꼿이 세웠다.


탁.


화장실에 들어간 김현은 곧바로 수도꼭지를 틀고 변기를 붙잡았다. 왈칵, 소리 없이 토해진 그것의 색은 붉음보다는 검정에 가까웠다. 그렇게 몇 번이나 괴사한 내장 조각을 쏟아내고서야 김현이 비틀비틀 세면대 앞에 섰다.


얼굴 꼴이 말도 아니다.


퀭한 눈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 입가에는 끈적하고 불쾌한 색의 침이 밑으로 길게 늘어졌다.


“살아는 있네··· 살아는···.”


정말 어찌어찌 살아있었다, 아직까지는.


그 사실이 너무 우스워, 김현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씨팔···.”



***



“몸 괜찮은 거 맞아?”


화장실에서 나와 입가를 슥 닦고 있자니 오진석이 물어왔다. 그 목소리에 담긴 따듯함 때문인지, 눈시울이 달아올라 살짝 미간을 말아쥐었다.


“예, 진짜 괜찮아요. 아까는 바로 일어나서 그런 거예요.”


다행히 목이 메진 않아 목소리가 매끄럽게 나왔다.


“누울래? 앉을래?”

“앉을게요.”

“여기 앉아.”

“예.”


김현은 오진석의 권유를 따랐다. 그가 탁탁 두드렸던 자리는 맨바닥이었으나, 벽 쪽이었다. 그 나름대로 벽에 기대앉으라는 배려였으리라.


벽에 기대앉으니, 새삼 집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엌과 일체형 거실. 거실 안에 가구는 일절 없었다. 탁자도, 의자도, 소파도, 하다못해 카펫이나 러그도 없이 휑했다. 아, 한구석에 치워놓은 이불이 하나 있긴 했다. 끝자락이 핏자국이 묻어있는 걸 보아, 아마 김현이 기절해있는 사이 바닥에 깔아주었던 이불인 것 같았다.


“뭐가 없지?”


오진석이 물컵을 건네며 바닥에 앉았다. 그 투명한 컵은 언젠가 주류회사에서 진행했던 행사의 사은품이었다. 김현의 집에도 똑같은 컵이 하나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거실은 거의 안 쓰고, 집에 오면 방에만 짱박혀있거든.”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과연 문이 하나 보였다. 애당초 투룸 형식의 오피스텔이었던 것이다. 삭막한 거실의 전경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무슨 일이야?”


언젠간 물어올 줄 알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쳐오자 가슴 한켠이 찌르르 떨려온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어린 시절의 비극을 초래했던 참회자가 찾아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죽을 뻔한 순간,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이 오피스텔 앞이었다고?


아예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부모님이 죽은 이유, 감염자의 정체, 김현 자신이 네피림이라는 사실 등.


하지만 오진석이 과연 믿어줄까, 라는 의문은 둘째치고, 무엇 하나 쉬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애당초 김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이 태반이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김현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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