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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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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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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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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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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3화.

DUMMY

제법 중요한 거래를 마치고 기분 좋게 돌아가던 장생농은 문득 김현의 집 앞에서 심상치 않은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그에게 두 눈이 있었다면, 빌라 입구를 가로막은 폴리스 라인과 수 대의 경찰차를 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장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발걸음을 멈춘 채 주변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게 다 뭔 일이래?”

“아까 구급차가 막 여러 대 다니더라고, 뭔 큰일이라도 났나 봐.”

“아이고~”


동네 아줌마들의 대화에서는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장생농이 더 멀리, 빌라 안쪽에서 들리는 희미한 대화로 의식을 집중했다.


“어, 김 기자.”

- 김 형사님, 무슨 사건이에요? 들어보니까 구급차가 무슨 열 대 넘게 들락날락거렸다는대?

“아아~ 뭐 별사건 아니야. 그냥 어떤 미친놈이 집 안에서 마약을 키웠는데···.”

- 예? 집에서 마약을 재배했다고요? 무슨 마약이요?

“뭐 헤로인보다 센 거라고 하던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더라고, 데···뭐시기 였는데. 아무튼, 우연히 그 집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마약이 전부 홀라당 타버렸나 봐. 그거 때문에 유독가스가 발생해서 사람들 몇 명 쓰러지고.

- ···와 진짜 큰일이었네요.

“별일 아니라니까, 일단 그 노트부터 내려놔. 기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발표할 때, 알지?”

- 예, 예.


마약이라, 납득할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장생농이 의식을 돌렸다. 이번에는 3층에서 들려오는 대화였다.


“씨파, 우리가 지들 경비야 뭐야.”

“형님, 조심해요. 쟤들 국정원이에요!”

“뭐? 내가 틀린 말했어? 지들이 다 해 처먹을 거면 우리는 왜 불렀냐고.”

“일손이 딸리대잖아요.”

“옘병. 나는 솔직히 테러라는 것도 잘 안 믿긴다.”

“형님, 쉿! 누가 들으면 어떡해요! 테러라는 거, 극비라고 했잖아요. 목소리 낮추세요.”


그말에 목소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확연히 낮아졌다. 장생농이 더욱더 의식을 집중했다.


“···너는 건실하게 잘 살던 청년이 갑자기 홱 돌아버려서 생화학 테러를 저질렀다는 게 믿기냐?”

“솔직히, 못 믿죠.”

“그러니까, 내 말이!”

“형님.”

“후, 미안하다. 답답해서 그래. 아무튼, 지인들한테는 연락해봤어?”

“지인이라 부를 사람도 몇 명 없어서, 금방 끝났어요. 전부 연락한 지 꽤 오래된 사이더라구요.”

“그 편의점 점장은? 그 사람이랑 꽤 친밀한 관계인 거 같던데.”

“그쪽은 저쪽에서 연락해보겠대요.”

“후, 옘병. 그 새끼는 지갑이랑 휴대폰도 두고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저야 모르죠.”

“아오 이게.”


그 뒤로 쓰잘데기 없는 투닥거림이 이어졌다. 장생농은 그들의 대화에서 의식을 거뒀다.


“가자, 주현아.”


알? 알알.


솜뭉치가 무어라 짖어왔지만, 장생농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급할수록 돌아간다고 하지 않느냐, 혹여나 연구소 놈들과 엮이면 괜히 골치만 아파질 게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거라.”


장생농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불쾌한 습기가 피부 위로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비가 오겠구만.”



***



쏴아아-.


“갑자기 비가 오네···.”


투둑투득, 차창으로 드문드문 몸을 부딪쳐오던 굵은 빗줄기가 어느새 맹렬한 기세로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폭우였다.


“비를 싫어하나?”


혼잣말을 들었는지, 오종후가 말을 걸어왔다.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옷도 젖고 습하지 않습니까.”


이진호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담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앞으론 좋아하게 될 거다.”


묘하게 확신에 찬 말투였다.


“어떻게 아십니까?”

“비가 오면 감염자들의 활동이 잦아든다.”

“감염자가 우천 활동을 꺼리기라도 하는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식인괴물이 날씨도 따지고···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놈들입니다.”

“지성이 있는 놈들이니까.”


이진호도 명백히 느낀 바였다. 어제 마주했던 감염자는 멀쩡한 사람처럼 대화하고 상대를 도발까지 해댔다. 그들에겐 확실히 지성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지성으로 감염의 경과를 알 수도 있지.”

“어떻게 말입니까?”


뿌드득, 오종후가 시트를 구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덩치가 덩치이니만큼 운전석이 불편한 모양이다. 하긴, 그의 덩치에 비하면 운전석은 확실히 비좁아 보였다.


“감염 초기엔 대부분 이성을 상실한다. 감염자치곤 매우 약한 상태이긴 하나, 식욕에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잡아먹고 말지.”


방금 보았던 한 감염자의 파일이 떠올랐다. 오종후의 말을 듣고보니, 파일의 내용이 얼추 이해가 되었다. 파일에 서술된 그의 심리상태는 감염 이후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그 기간은 매우 짧아, 피해자가 보통 두셋으로 그친다. 그리고 감염자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지.”

“죄책감이나 도덕성, 그런 것들도 되돌아오는 겁니까?”


오종후가 고개를 내저었다.


“적어도 나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는 감염자를 보지 못했다.”


흠. 하긴, 감염자에게 도덕성이 남아있었다면, 이미 몇 명쯤 죄책감으로 자살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이진호가 입을 열었다. 말문을 튼 김에 궁금했던 걸 물어볼 심산이었다.


“감염자의 재생능력은 무한한 겁니까?”

“아니. 그놈들의 재생능력은 우리의 운동능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많이 쓰면, 그만큼 약해진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예외라면?”

“아까 말했듯 그놈들의 재생능력은 우리의 운동능력과 비슷한 개념이다. 에너지를 섭취하면 더욱더 오래가고 강해진다.”

“그 에너지 섭취는 음식을 먹으므로 이루어지는 거고요?”

“맞다.”

“참··· 편리한 능력이네요.”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빌라에서의 일로 냉각되었던 분위기가 차츰 풀어졌다. 한창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오종후의 태도에서 이진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 자신을 부사수로 대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김우혁의 스카웃 제안을 수락하긴 했지만, 아직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게다가 정식으로 경찰 배지를 뗀 것도 아니었다. 분명 갓 달린 부사수란 직위보다 생판 모르는 타인에 훨씬 가까울 자신을, 오종후는 진짜 부사수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던 이진호는 결국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일은 항상 이런 식입니까?”


운전석에 앉은 오종후가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마치 뭐가?라고 묻는 듯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인 줄은 몰라서요.”

“우린 경찰도, 국정원도 아니다.”


오종후가 품에서 꺼낸 초코바를 한입 와그작 베어 물었다.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니, 초콜릿을 썩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았다.


“탐문, 추적. 그런 섬세한 일은 우리의 주특기가 아니다.”

“그럼 주특기가 뭡니까?”


오종후가 남은 초코바를 한입에 털어놓고 우물우물 씹었다.


“살인.”


바스락, 폭우의 소음을 뚫고 비닐 포장이 무참히 구겨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특히 감염자 죽이는 게, 우리 주특기다.”


오종후가 글러브 박스를 열어 그 안에 구겨진 비닐 포장을 던져넣었다. 그 안에는 똑같은 포장지의 초코바와 빈 포장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왔군.”


오종후의 시선을 따라가니, 커다란 장우산을 쓴 사내가 굳게 닫혔던 편의점 문을 열고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가자.”


오종후는 손잡이를 잡는 것으로 나갈 채비를 마친듯했다. 쏟아지는 폭우 따위는 개의치 않는 기색이다. 심지어 우산도 없는데 말이다. 어지간히 터프한 사람이었다.


이진호는 복잡한 감정을 괜히 내비치고 싶지 않아, 충동적으로 차 문을 열었다.


쏴아아-!


시원한 폭우가 이진호를 반겼다. 그는 쏟아지는 빗방울을 고스란히 맞으며 눈앞의 목적지를 들여다봤다. 녹색 간판의 편의점, 빗물이 드문드문 들러붙어 불투명해진 유리창 너머로, 우산을 접어 넣고 있는 오진석의 모습이 보였다.



***



딸랑, 현관종의 소리가 제법 빗소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이진호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빗물을 뚝뚝 흘려대는 손님을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보던 오진석이, 이진호의 얼굴을 보고는 아리송한 말투로 물어왔다.


“형사님?”

“안녕하십니까? 또 뵙습니다.”

“예, 또 뵙네요.”


표정과 말투에서 언뜻 불안감이 묻어나온다. 오진석의 생각이 뻔히 읽혔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온 거지? 김현이 잘못됐나? 안 좋은 일 생긴 거 아니야? 뭐 이런 생각이겠지. 익숙한 반응이었다. 게다가 험악한 인상의 양복쟁이까지 대동했으니 불안감이 배가 될 터였다.


이진호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표정을 풀었다.


“별일은 아니고 김현 씨랑 연락이 안 돼서요. 점장님은 혹시 연락되시나, 하고 지나가는 김에 들렸습니다.”

“아아~ 그럼 대신 전화 해드리면 될까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진석이 곧바로 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제 전화도 안 받네요.”

“아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김현의 휴대전화는 이진호의 주머니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점장님, 혹시 김현 씨가 찾아오면···.”

“예,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진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을 때, 뒤에서 무서운 눈초리로 감시하고 있는 곰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그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어제만 해도 과로로 쓰러졌던 놈인데···.”


이진호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별일 없을 겁니다.”



***



“상황은?”

“경찰 쪽엔 반사회적 테러행위라고 언질해뒀습니다. 기억 소거 대상자가 47명이고, 그 참회자의 행적은 아직···.”


이제 막 잠이 든 차에 다급히 불려나온 김우혁이 미간을 꾹꾹 눌러가다가, 지원팀 요원의 말을 끊었다.


“아니, 그거 말고. 저거.”

“예? 아···.”


김우혁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지원팀 요원이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길이 날뛰고 있습니다.”

“하아,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봐.”

“옙, 고생하십쇼.”


지원팀 요원의 애도를 뒤로하고, 김우혁이 문앞으로 다가갔다. 그놈의 히스테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에게 외면이나 도망 같은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똑똑.


“1팀장입니다.”


김우혁은 허락도 구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주인은 한창 통화 중이었다.


“예, 예. 현장에서 노출된 민간인들은 전부 이송한 상태입니다.

예, 경찰 쪽도 문제없이 처리했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예.”


살이 뒤룩뒤룩 찐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흔히 돼지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눈앞의 중년 남성을 동물로 비유하자면, 돼지보다는 독두꺼비에 가까웠다. 지금은 간사하게 굽실거리고 있지만, 곧 볼 수 있을 표독한 인상이 그런 이미지에 단단히 한몫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보이지도 않을 90도 인사를 하며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중년 사내, 박민상 부장은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끼워 맞추고 허리를 폈다.


“지금 부른지가 언젠데 이제야 와?”


이쪽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다. 역시 독두꺼비. 이번에도 꽤 고달플 것 같다고 생각하며, 김우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상황을 전달받은 즉시 침대에서 뛰쳐나왔다는 등의 변명이 별 영양가 없을 거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됐고. 난 지원팀장이랑 부국장님께 대면 보고하러 갈 테니까, 네가 여기 좀 통제해.”

“예.”


외투를 챙기고 밖으로 나서던 박 부장이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아 맞다. 너 이번에 특채 하나 뽑았대며?”

“예. 경찰 출신이고, 이진호라고 합니다.”


박 부장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게 중요해? 너 이 새끼, 자꾸 절차 무시할 거야? 회사가 니 집이야?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지멋대로야, 어!?”

“죄송합니다.”


박민상이 쯧, 혀를 차고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래서 군인출신은 안돼, 하나같이 대가리가 비어서···.”


김우혁은 모멸감으로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허리를 깊숙이 숙여 감췄다.


“간다.”

“예.”


쾅!


김우혁이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동자는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열려있는 문밖, 그곳에 대기하고 있을 지원팀 요원에게, 김우혁이 말했다.


“나가 있는 애들 전부 소집해, 당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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