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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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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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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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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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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화.

DUMMY

“큭!”


등판이 깨질 것 같았다. 아무리 네피림인 김현이라도 이 정도 충격까지는 외면할 수 없었다. 억지로 눈매를 부여잡아 시야를 확보하는데, 검은 그림자가 가슴팍을 덮쳐왔다. 뻑! 순간 호흡이 멎었다.


감염자가 그대로 지긋이 가슴팍을 내리눌렀다. 끅!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지,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김현이 감염자의 발을 떼어내려 발버둥쳤다. 가만히 있으라는 듯 발에 힘을 더하며, 감염자가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까, 네가 그분이 찾는 제물이더라고?”


그분? 제물?


“무슨, 개소리야···!”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일이여?”

“싸움났나 봐, 싸움.”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경찰에 신고 좀 해봐요!”


소란에 이끌려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혀온다. 하지만 감염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바짝 낮춰 김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보아라, 제물아. 널 위해 그분께서 직접 임하시니.”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댔다. 감염자의 헛소리에 신경을 끄고 발을 밀어내는데, 후두둑 얼굴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흩뿌려졌다. 빨갛고 따듯하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핏물에 김현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쳘진 광경은 그의 머리마저 굳게 만들었다.


두근두근.


감염자의 손아귀 안에서 둥근 무언가가 맥동했다. 생애 처음 목격하는 물체. 하지만 그 정체를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출처 또한.


감염자는 제 몸뚱이에서 뽑아낸 심장을 높이 치켜들고 와그작 씹어 삼켰다. 한 박자 늦게,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미, 미친! 저 사람 자기 심장을 먹었어!”


눈속에 스며든 핏물 때문인지, 김현의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까맣게 물들었다. 마치 시체에 들러붙는 파리떼처럼 새까만 어둠이 몰려왔다.


‘——.’


서늘한 감각이 귓전을 스쳤다. 김현이 흠칫 놀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나 싶었지만, 파리의 날갯짓만이 맴돌 뿐이었다.


김현은 가슴 속 깊이 저며 들어오는 불길함을 애써 억누르며 감염자를 보았다. 하지만 감염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새까만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검고 검은 어둠.


어둠의 한가운데가 세로로 쭉 찢어지며 노란색 눈동자가 볼록 솟았다. 눈동자의 초점이 빙그르르 돌다가, 덜컥 김현에게 고정되었다.


그 눈빛에 닿는 순간, 김현은 직감했다.


아, 죽는다.


‘——-.’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음이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굳이 비유하자면, 수십 마리의 파리떼가 웅웅 날개짓하는 것도 같았고, 그들이 여섯 손을 마주 잡고 부르는 합창을 시체처럼 쌓아올린 것과도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면, 김현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느껴질 뿐.


다만, 시체 밑에 깔린 폭력적인 의지만은 한치의 왜곡도 없이 적나라하게 전달되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새까만 어둠이 김현의 뺨을 어루만졌다. 어둠과 닿은 피부에 엄지손톱 크기의 수포들이 불룩불룩 솟아났다. 뺨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게 최후를 직감한 자의 그것인지, 신경이 죽어버리면서 저절로 배출된 것인지, 김현은 알 수 없었다.


김현은 어둠의 손길을 떨쳐내고, 밀어내고,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육신은 이미 공포에 정복된 채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의지마저 꺾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저 샛노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미치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유일하게 네피림의 힘만이 저 절대적 존재에게 이를 드러냈다. 복수의 대상이 제 발로 걸어왔음을 기뻐하며, 당장 주먹을 휘두르라 독촉해왔다.


김현은 회의적이었다. 까마득한 저 존재를 목도하는 순간, 불연 듯 깨달아버린 것이다. 저건, 닿을 수 없다고. 자아를 전부 포기한대도, 수명을 전부 불태운대도, 절대.


하지만 김현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네피림의 힘은 때때로, 본인의 의지 따위는 가뿐히 무시해버린다는 것을.


김현의 목을 휘감아오던 어둠이 우뚝,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역장이 어둠을 막아 세운 것이다. 노란색 눈동자에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식욕으로 번들거리는 노란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소한 감정이기도 했다.


‘호오?’


흥미, 탐색, 가소로움.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의 어리석은 몸짓을 관찰하는 듯,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어둠이 손짓했다. 역장은 가볍게 찢어졌다.


“웩!”


그 반동으로 김현이 격하게 피를 토했다. 극심한 고통이 뱃속 깊숙이 치밀어올랐다. 마치 내장이 전부 갈기갈기 찢겨나간 것만 같았다.


김현의 눈동자가 시꺼멓게 죽어갔다.


어둠이 찾아온다. 결코 쇠하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이 그를 휘감아온다. 내면의 네피림은 제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발악을 해댔다. 어둠을 밀어내고, 찢어발겨 비로소 네 존재의의를 완성하라고.


다가오는 어둠, 발광하는 내면의 네피림.


모두 원하는 바는 같았다. 무엇을 선택하든, 김현이 맞이하는 결말은 같았다.

김현이라는 존재의 파멸.


그래서 김현은 소망했다.

그래. 차라리,

자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



이진호와 오종후가 김현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상태였다.


“이게 무슨···!”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이진호는 저도 모르게 억눌린 비명을 토했다.


시체, 시체, 또 시체.


빌라의 입구부터 시작해 계단과 복도까지 빠짐없이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빳빳하게 굳은 사지, 부릅뜬 눈, 크게 벌린 입. 그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생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이진호는 공포에 질려 죽어간 시체들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아직 살아있다.”


한발 앞서 시체를 살피던 오종후가 입을 열었다.


“예?! 그럼, 빨리 신고를, 구급차를···.”

“그만.”


허둥지둥 전화기를 꺼내 드는 이진호를, 오종후가 막아 세웠다.


“민간은 안돼. 내가 한다.”


오종후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부속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환자 다수 발생했습니다. 위치는 노원구···.”


오종후가 전화를 하는 사이, 이진호가 시체처럼 축 늘어진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두근두근, 목에 손을 얹으니 미약하게나마 약동하는 맥박이 느껴진다.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이진호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불연 듯, 본래의 목적이 뇌리를 스쳤다.


“김현.”


이진호가 단숨에 계단을 타고 올랐다. 오종후가 무어라 붙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바람결에 스쳤다.


김현의 집은 4층. 성큼성큼, 두어 계단씩 뛰어오르던 이진호의 발걸음이 금세 조심스러워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쓰러진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3층에 도달했을 땐, 계단에 몸을 누인 사람들이 발에 챌 정도로 빽빽했다.


이진호는 꿀꺽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러운 발걸음만큼이나, 불안감이 꾹꾹 쌓여갔다.


이진호는 몇 걸음 나아가다, 꾹 무언가를 밟는 느낌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밑을 확인해보니, 한 사람이 손등이 보였다. 손톱 끝이 무슨 매니큐어를 칠한 듯 빨갛게 물들어 있다. 묘하게 불길했다. 그 불길함에 이끌려 이진호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손톱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미···친.”


손톱들이 모조리 뒤로 꺾여있다. 손톱이 부러지는 것도 모른 채 바닥을 벅벅 긁어가며 기었다는 뜻이었다. 무언가에서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 사람이 도망쳐나온 방향은 명백했다. 이진호가 4층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3층과 4층 사이의 계단에는 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쓰러진 사람들이 많았다.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인 사람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틀림없이 죽었다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반면, 4층의 복도는 깨끗했다. 계단에는 빽빽하다 못해 기절한 사람들이 수북하게 쌓아있건만, 4층 복도만이 유일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부조화가 불안감을 부추겼다.


4층. 김현의 집이 있는 층.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두려운 무언가가.


“처참하군.”


어느새 뒤쫓아온 오종후가 눈앞의 광경을 한 마디로 평했다.


“김현이 사는 집이, 4층이랬나?”

“예···.”


오종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간을 디딤발 삼아 단숨에 4층으로 뛰어올랐다. 곰과 같이 생긴 주제에 몸놀림만큼은 표범처럼 날렵했다. 그 몸놀림에 잠시 넋을 놓았던 이진호가 다급히 외쳤다.


“위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밑에 깔린 사람들을 당장 꺼내야 해요!”


그에, 4층 복도에 도착한 오종후가 이진호를 보았다. 푸근한 인상과는 영 딴판인 눈빛이 마치 칼날과도 같이 엄정하다.


“임무.”

“예?”

“임무에 집중해라.”


그 말을 끝으로 오종후는 모퉁이를 돌아 이진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임무라면, 사람 목숨쯤은 내버려둬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이진호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젠장, 몸서리 칠만큼 무심한 태도였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밑에 깔린 몇몇 사람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피를 철철 흘리는 게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진호가 급히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 틈에서 특정한 사람을 정확히 끄집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포개져 마치 쓰레기장을 연상시킨다 하더라도 그들이 진짜 쓰레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부상자여서 취급에 세밀한 주의가 요했다.


이진호가 끙끙대며 사람들을 끄집어내었다. 가장 밑에 깔렸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척 봐도 상세가 위중해 보였다. 그렇게 몇 사람을 끄집어내 빈 복도에 가지런히 눕혔다.


“후우.”


다친 사람들을 옮긴다는 심적 부담감 탓에 또르르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이진호가 허리를 폈다. 때마침, 오종후가 계단 앞까지 와서 그를 호출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확인할 게 있다. 올라와.”


딱딱하게 굳어있는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일임을 암시했다. 그에, 이진호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4층 복도는 계단에서 올려다본 것과 마찬가지로 깨끗했다. 딱 한 가지만 빼면.


“저거, 혹시··· 김현입니까?”

“난 그의 얼굴을 모른다. 네가 확인해야 돼.”


이진호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오종후를 뒤따라갔다. 복도의 한가운데에는, 시체 하나가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가슴이 뻥 뚫린 채 검게 말라비틀어진 저 형상을 시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체는 김현의 집 앞에 몸을 누였다. 그리고 그 집의 현관문은 엉망으로 찌그러져 모종의 충돌이 있었음을 짐작게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의문을 삼킨 채, 이진호가 떨리는 눈으로 시체를 관찰했다. 검게 눌어붙은 피부는 언뜻 분사(焚死)한 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화상 자국은 일절 없었다. 단지, 검게 괴사하여 가죽이 뼈에 달라붙었을 뿐이었다.



이진호는 시체를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 작년 겨울 처음 출동 나갔을 때 목격했던 시체와 매우 흡사했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 5년간 방치된 채 미라화된 한 할머니의 시체와.


그 탓에 얼굴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진호가 결론을 내렸다.


“이건, 김현이 아닙니다.”

“왜지?”

“일단 키가 다릅니다.”


어제 보았던 김현의 키는 대략 170 중반. 하지만 눈앞의 시체는 얼추 보아도 180cm가 훌쩍 넘었다. 그리고 하나 더.


“털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모증 환자조차 머리카락이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죽으면서 온몸의 털이 죽죽 빠졌을 수도 있지만, 글쎄.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 정도의 털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와 망가진 현관문을 제외하고 주변은 기이할 정도로 깨끗했다.


이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이 하나도 없는 존재를, 공교롭게도 이진호는 하나 알고 있었다.


“이거 감염자의 시체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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