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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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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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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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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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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DUMMY

이야기는 3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진호가 병원 신세를 지고, 비전교회가 불탄 그날, 이유영은 한 가지 임무를 받았다.


“연구소에서 직통으로 내린 임무였다.”


임무의 내용은 간단했다.


한 물건을 부산까지 운반해라.


그리고 그 물건이란, 이진호가 목격했던 참회자의 말로, 그것의 부산물이었다.


“그놈의 뇌와 몇몇 중요한 내장기관을 압축해 서류 가방 하나에 온전히 담아냈다는데, 별로 궁금한 내용은 아니지?”

“예에···.”

“이건, 나도 역겨운 얘기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연구원들은 그것을 해부하던 중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참회자들끼리 공통된 의식을 공유한다는 말입니까?”

“공통된 의식···이라고 하기까지엔 무리고. 무슨 정신적 네트워크를 공유한다고 해야 하나?”

“무슨 칼라입니까?”

“칼라? 그게 뭔데?”


아, 스X크레프트 모르시는구나.


“아닙니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에 흥미를 가진 연구원들 중 하나가 한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된다.


만약, 이 네트워크의 방화벽을 뚫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참회자들의 위치를 역추적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최종적으로는 그놈의 근거지, 그 위치까지.


“그 가설은 거의 확실시된 상태고, 이젠 실험만 남았다고 한다.”

“그럼, 그놈들을 소탕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게 쉽게 박멸될 놈들은 아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커다란 타격은 줄 수 있겠지.”


한 박자 쉰 김우혁이 재차 말을 이었다.


“문제는 우리 쪽 또한 역추적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거야.”

“아아···.”


참회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그 위치를 추적하다가는, 연구소의 위치가 노출될 위험성 또한 있는 것이었다,


적의 본진을 털기 위해, 아군의 본진을 노출한다. 연구소에서는 이런 구도를 썩 달갑지 않게 받아드렸다.


그래서 한 가지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그래서, 일본까지 운반해서···.”

“그래, 해외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연구소의 위치가 역추적 당할 염려도 없으니까. 게다가, 현재 일본과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으니 협력을 얻기도 쉬웠겠지.”


흔히 일본을 무정부 상태라고 하지만, 사실 엄격히 따지면 무정부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야쿠자 세력이 정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으로.


이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상황은 이해되었다. 국내의 참회자들을 박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 연구소에서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이유영은 그 프로젝트의 핵심인 ‘물건’을 운반하던 중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하나 남는다.


“왜 하필 접니까?”

“말했잖아, 다른 애들은 지금 한창 바빠. 비전교회의 참회자들이 수도권 감염자들의 머리 역할이었는지, 그놈들이 죽자마자 감염자들이 사방팔방으로 미쳐 날뛰고 있거든.”


이진호의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비전교회의 일 때문이라면 그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가용 병력이 너 하나뿐인 상황이다.”

“예에···.”

“왜? 자신 없어?”


이진호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유영의 실종도 큰일이었지만, 그녀가 운반하던 물건의 중요도는 차마 말할 수 없을 지경인데!


“네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김우혁이 반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어느덧 부장실에서의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다.


“3팀에 이미 협조는 구해뒀다. 너는 그냥 가서 걔네들 하는 거 보고 이 새끼들이 뺑끼를 부리는지, 아니면 가라를 치는지 그런 거나 나한테 보고하면 돼. 네가 가서 할 일은 별로 없을 거야.”

“그런 일이라면, 공문 하나로 해결될 문제 아닙니까?”

“그게 말이야···.”


김우혁의 얼굴에 급격히 피로한 기색이 깃들었다.


“이미 공문은 보냈지.”

“그럼 해결된 거 아닙니까?”

“근데 문제는, 내 직책이 팀장이란 거고, 그쪽 대가리도 팀장이란 거지.”

“아···.”


이진호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팀장님께서 현재 부장 대리긴 하지만, 아직 팀장이고, 3팀장도 동일한 직책이기 때문에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겁니까?”


문장 하나에 팀장이란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말하는 도중 혀가 몇 번이나 꼬일 뻔했다.


김우혁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슷해. 동일한 직책이기 때문에 명령 하달 자체가 불가능하고, 협조 형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지.”

“거지 같은 상황이군요.”

“그래, 전부 박민상 그 새끼 때문이지.”


김우혁이 어느새 자리를 비운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박 부장을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박 부장은 아직도 별다른 연락이 없다고 한다. 그건 윗선에 문의해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행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진호가 옅게 한숨을 흘렸다. 김우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안심시키듯이 말했지만, 여전히 몇 가지 걱정거리는 지울 수 없었다.


“팀장님의 명령도 같은 팀장이라면서 까는데, 그쪽에서 과연 제 말을 듣겠습니까? 여기서도 제가 막낸데···.”

“걱정하지 마. 넌 가서 3팀 놈들이 뭘하는지만 감시하면 돼. 그놈들이 설렁설렁하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보고하고. 윗선에 고대로 보고하면 되니까.”


김우혁이 입매를 비틀었다. 금방이라도 음흉한 웃음을 흐흐 흘릴 것 같은 미소였다. 3팀의 반항 아닌 반항이 그에게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준 모양이었다.


이진호의 측은한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김우혁이 재빨리 신색을 회복하고 말했다.


“흠흠, 그럼, 임무는 네가 맡는 거로 알고··· 언제 출발할래? 차량이랑 장비는 이미 준비된 상태다.”


장비도, 차량도 전부 준비가 된 상태. 그렇다면 굳이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이진호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이번 대구 출장은 그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애초에, 이유영을 찾아라, 가 이번 임무의 주요 골자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갖고 있는 물건.


아무튼,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찾는다면 곧바로 복귀하는 것이고, 그녀를 못 찾는다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복귀는 요원한 일이었다.


임무를 언제 끝마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이진호가 대류에 체류하는 기간은 예측 불가능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비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이진호의 짐은 단출했다. 정장 한 벌과 운동복 두 벌, 양말 네 켤레, 그리고 간단한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속옷은, 비밀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이진호가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전신 근육을 꽉 조여주는 흑복이 감촉이 새삼 정겨웠다.


처음엔 그저 이상한 쫄쫄이 같았던 흑복이 어느샌가 익숙해져 버렸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겨우 반년, 충동적인 선택으로 몸담았던 회사에 어느덧 녹아든 느낌이다.


반년 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시체를 목격하거나, 감염자가 된 또 다른 피해자들을 죽이거나, 훈련하거나. 회사에서의 반년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간 추억이라 불릴 만한 기억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 추억은 대게 이유영에게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사수로서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그녀. 괴팍한 면이 있다곤 하나, 그녀에게서 받은 도움은 하나하나 손에 꼽기 어려웠다. 뛰어난 선생님이자 실력 있는 요원인 그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이진호를 도와줬다.


그리고 이제, 이진호가 그녀를 도울 차례였다.


“가자.”


스스로 다짐하듯 읊조린 이진호가 차량을 이끌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끼기긱.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차량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깜짝이야!”


이진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상대 차량을 살폈다. 이진호의 것과 똑같은 검은색 세단. 현장 요원들에게 지급되는 차량이었다. 즉, 저 차량의 운전자도 이진호와 같은 현장 요원이라는 뜻이었다.


난폭하게 지하주차장을 내려온 운전자가 벌컥,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진호의 얼굴이 굳었다.


‘아, 똥 밟았다.’


초자연현상 대응국, 통칭 회사라 불리는 이곳의 정체성은 한없이 군대에 가깝지만, 엄격히 따지면 군대는 아니었다. 회사를 만든 연구소는 그들의 마음대로 운용 가능한 무력집단을 원했지, 군대의 구시대적이고 경직된 문화까지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군인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거수경례하지도 않고, 경례 구호를 붙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집단을 가든, 오래된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온몸에 시뻘건 핏물을 뚝뚝 흘리며 그가 다가온다. 방금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건지, 온몸에서 살기가 풀풀 날린다. 당장 칼부림을 내도 이상하지 않은 기세다.


키는 약 180 초반, 마른 체형, 짧게 친 스포츠머리, 홀쭉 들어간 볼, 날카로운 눈매.


전체적으로, 뱀이 떠오르는 인상이다.


이진호가 재빨리 차량을 빠져나와 거수경례했다. 그에, 뱀과 같은 눈매가 가늘어진다.


“뭐야? 진호냐?”

“예, 박정기 선임님.”


선임 요원 박정기, 그는 오래된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가장 신봉하는 사람이다.


“쉬어.”

“감사합니다.”


이진호가 양손을 허리 뒤로 포개는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흐음.”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진호의 자세를 꼬집어보던 박정기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미미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입원했었다며?”

“예, 맞습니다.”

“퇴원은, 오늘?”

“예, 그렇습니다.”


박정기가 이진호의 차를 쓱 훑어보고 말했다.


“오늘 퇴원한 놈이,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고 있었어?”


급하다니, 이진호로서는 억울한 말이었다. 자신은 아주 천천히 차를 몰고 있었다. 난폭 운전을 한 건 엄연히 박정기였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기는 오래된 방식을 좋아하는 만큼, 상하 관계를 아주 엄격히 따지는 거로 유명했다.


“출장을 가고 있었습니다.”

“출장? 어디?”


‘이걸 말해도 되는 건가?’


순간, 대답을 망설인 이진호였지만, 박정기의 날카로운 시선에 결국 목적지를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입니다.”

“대구?”

“예, 그렇습니다.”


이진호는 박정기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인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그 번뜩임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래? 고생해라.”


박정기가 고생하라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갔다.


‘뭐지?’


예상과 달리 순순히 넘어가는 듯한 태도이다. 하지만 이진호의 의문은 곧바로 지워졌다.


“뭐해? 차 안 빼?”

“아, 예!”


역시나, 저 지랄맞은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



이진호의 차가 멀어지는 걸 지켜보던 박정기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대구, 대구라···.”


무언가를 떠올린 듯, 뱀과 같은 눈매가 더더욱 가늘어졌다.


그가 주변을 경계하며 좌우를 둘러보고는 글러브 박스Glovebox를 열었다. 그 안에는 흔히 삐삐라 불리는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가 있었다.


박정기는 두 물건을 꺼내고, 품 안의 휴대전화를 글러브 박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삐삐를 꾹꾹 눌러 숫자로 된 메시지를 전송했다.


지잉-.


새로 꺼낸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린 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박정기입니다.”

- 어, 박 선임. 안전한 회선이야, 말해.

“이번에 대구로 출장 가는 인원이 있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아무래도···.”

- 뭐? 누가? 몇 명이나?

“이진호라고, 김우혁 팀장이 임의로 선발했던 인원입니다.”

- 이진호, 알지. 그리고 또?

“제가 알기로는 그 인원 하나입니다.”

- 뭐?


상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 하하하, 하나? 하나라고?

“예.”

- 걱정할 것 없어, 박 선임.


속닥이는 목소리가 한층 음흉함을 담았다.


- 그런 풋내기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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