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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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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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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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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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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비전교회 (11)

DUMMY

‘그것’이 세로 길게 난 고치의 틈을 비집고 나왔다.


희게 내리쬐는 달빛이 ‘그것’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 적나라함은 ‘그것’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 더욱 배가 되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몸 전체가 점액질 범벅이었고, 전신의 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감염자의 그것처럼 매끈했다. 입술도, 유륜도 피부의 그것으로 통일된 색깔을 가졌다.


그리고 분명 성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이 매끈했고, 항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탱탱한 탯줄과도 같은 촉수가 고치 안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감염자와 비슷한 외형이었다. 하지만 이진호는 도저히 ‘그것’이 평범한 감염자라 생각할 수 없었다.


감염자와 비슷한 외형이나, 무언가 달랐다.


이진호가 본능적으로 숨죽여 자세를 낮췄다.


불길하다. 불길하기 그지없다.


“배고, 파···.”


‘그것’의 입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쩍 벌어졌다. 그 안에는 이빨 대신 날카로운 돌기들이 무수히 박혀있었다.


‘그것’ 바로 앞에 있는 김현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먹을, 거···!”


끝 음이 몇 옥타브씩 껑충껑충 뛰어넘다 비명처럼 찢어진다. 이내 인간의 가청영역을 벗어나 이진호의 골을 찌르르 울려댔다.


“큭!”


이진호가 황급히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리를 막을 수 없는, 예컨대 창문과도 같은 것들은 몸을 파르르 떨어내다가 쩌적 갈라졌다. 한계를 버티지 못한 창문들이 와작와작 사방으로 비산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퍼걱.


‘그것’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어?”


이진호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등장할 때의 위용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김현의 의견은 다른 것 같았다.


“이진호, 도망쳐.”


여태까지와 다른, 억눌린 목소리. 김현이 주먹을 그러쥐며 말을 이었다.


“이건, 진짜 괴물이다.”

“뭐?”


하지만 김현은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지, 말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서걱.


그의 팔뚝이 허공을 날아, 털썩 이진호의 옆에 와 나뒹굴었다.


이진호가 멍청하게 자신의 옆에 떨어진, 사람의 팔뚝을 보았다.


그건, 김현의 팔이었다. 화인처럼 남은 기억 속에서 감염자를 모조리 쳐 죽이던 네피림의 팔. 감염자들과 그 감염자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참회자들을 누구보다 증오하던 사람의 팔. 자신과는 가는 길이 어긋났지만, 그 강함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굳건한 존재의 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도, 그 팔은 그의 옆에 있었다.


문득,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갑자기 찾아온 비현실이 억지로 현실의 틈바구니에 몸을 끼워 맞추자, 사각사각 저 아래서부터 몸을 기어오르는 벌레떼처럼 스멀스멀 공포가 피어오른다.


훅, 거친 바람이 밀려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무언가가 뒤편 저 멀리 콘크리트 벽을 부순다.


쾅!


무엇이 스쳐 지나간 것인가.


이진호는 보지 못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을 통해 그 대상은 자연스레 압축된다.


괴물이 홀로 서 있다.


그리고 괴물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김현이 부쉈던 머리는 여전히 없다. 목 위로 거칠게 돋아난 단면만이 보인다.


양팔은 길게 늘어져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걸 대신이라도 하듯, 세 쌍의 검은색 갑각이 갈빗대로부터 뻗어 나와 있다. 마치 거미의 그것과도 같은 갑각. 그리고 갈빗대의 가운데, 괴물의 몸통은 좌우로 쩍 갈라진 채 그 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안은, 내장도 무엇도 없이 하얀색 날카로운 돌기들만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촤악, 괴물의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돋는다. 투명한 막질의 그것은 파리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날개를 몇 번 털어 점액질을 떨쳐낸 괴물이 우우웅,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내 쓸모가 없어졌다는 듯 인간의 그것과 같은 팔과 다리들이 쭈욱 늘어지다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괴물은 조금의 거리를 날아 이진호의 앞에 왔다.


갑각의 다리로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엎드린 자세와 비슷하다. 기어 오는 괴물의 발소리는 그극그극, 쇠로 돌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이진호의 코앞까지 당도해, 괴물이 킁킁거렸다. 목의 거친 단면 사이로 드러난 기도가 코를 대신해 움찔거린다.


이진호는 석상처럼 굳은 채 괴물의 모습을 멀거니 보았다.


빈틈을 노리기 위해서? 아니.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아니.


그저,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괴물의 아가리가 자신의 머리통을 와그작 삼킬 것만 같은 예지에 가까운 공포가 그의 시선을 괴물에게 붙박았다.


킁킁.


괴물의 숨구멍이 이진호를 모로 스쳐지나 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엔 김현의 팔뚝이 있었다.


김현의 팔뚝이 가까워지자, 괴물은 짐승의 소리도 아니고, 인간의 소리도 아닌 괴이한 소리를 내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진호는 괴물이 입맛을 다신다고 느꼈다. 실제로, 목구멍에서 투명한 점액질 액체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괴물의 갑각이 김현의 팔뚝이 집어 드는 순간, 섬전과도 같은 빛이 반짝이더니 괴물의 남아있던 목 부위를 박살 냈다. 그리고


훅, 밀려드는 바람과 함께 눈 깜짝할 새 나타난 김현이 괴물을 후려쳤다. 괴물의 몸뚱이가 시야에서 벗어나 아득히 먼 곳으로 쾅, 부딪쳤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


김현이 자신의 팔뚝을 주워들며 말했다.


“휘말리면 죽는다.”


팔뚝을 상처의 단면에 갖다 대자, 새살이 돋는다. 그 과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감염자 수준, 어쩌면 그 이상의 재생력이다.


이진호가 그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김현이 그를 일별했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가.”


김현의 어투에, 이진호가 덜컥 정신을 차렸다. 이를 악물었다. 그는 지금 김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된다. 지금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진호가 바닥을 기듯 몸을 일으켰다. 김성훈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서둘러 교회 밖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본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콘크리트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입구를 막고 있었다.


“김현! 길이 막혔···!”


이진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보라, 한 쌍의 괴물들이 춤추고 있다.


수직으로 뛰어올라, 유성처럼 하강하며, 모로 치솟고, 횡으로 서로의 몸을 던진다. 서로의 몸을 이끄는 것은 파트너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손길이 아닌, 포탄이 터지는 듯한 주먹질과 상대방을 찢어발기는 톱날과도 같은 발차기.


반파된 예배당은, 이미 괴물들의 연회장이었다.


이진호가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연회를 지켜봤다.


알 수 없는 비애감이 젖어온다.


이진호는 비애감의 정체를 언뜻 알 것도 같았다.


무력감.


항거할 수 없는 괴물들의 싸움 앞에서, 그는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씨···발···.”


이진호의 눈빛이 무채색으로 가라앉았다.



***



김현이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신경이 드문드문 끊어졌는지, 손끝의 감각이 무뎌졌다. 전황이 썩 좋지 않았다.


스아아악-!


바람이 절단되며 비명을 지른다.


섬찟한 예기는 어느새 그의 몸 앞까지 도달해 그가 두른 방벽을 찢어내고 있다. 김현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젖히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능력으로 가속된 주먹은 음속에는 닿지 못해, 소리보다 조금 느리게 괴물의 몸뚱이에 가닿았다.


퍼걱, 괴물의 몸뚱이가 포탄에 얻어맞은 듯 터져나가고, 김현의 가슴팍에 붉은 실선이 그어진다.


예리하게 휘둘러오는 발톱에, 김현은 연이어 공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괴물의 상태는 처참했다.


허리는 반쯤 꺾여 척추를 삐죽 드러내고, 근육과 살점은 어디 갔는지 숭숭 구멍이 뚫려있다. 피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아 마치 점토가 짜부라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누가 보아도 이득인 교환이었으나, 김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건 이득이 아닌 손해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바로 밝혀졌다.


푸확, 파열된 부위에서 살점이 분수처럼 솟아올라 괴물의 육체를 재구성했다.


그것은 재생이 아닌 살점의 분출에 가까웠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감을 뜻하지 않았다.


그로테스크하게 살점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형태로 괴물이 재차 달려들었다.


김현이 동전을 걸어 엄지를 튕겼다.


번쩍, 섬광이 치솟고 괴물의 몸뚱이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아주 조금의 시간만 벌었을 뿐, 괴물의 돌진을 막지는 못했다.


김현이 주머니 속 동전의 개수를 헤아렸다.


앞으로 2개. 동전을 가속해 쏘아내는 포격은 앞으로 2번이 끝이었다.


리스크 없는 원거리 공격이 곧 한계를 맞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싸움이 길어질 수록, 불리한 건 그였다.


원거리 포격은 이제 한계. 그 또한 뛰어난 재생능력을 갖고 있지만, 괴물처럼 리스크 없이 남발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그의 재생능력에는 엄연히 대가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대가가.


수명.


방금 팔뚝을 이어붙인 것도 사지 하나가 통째로 잘려 나가 재생한 것이지, 피륙의 상처였으면 어림도 없었다. 아무리 네피림이라도 그의 수명은 유한했고, 아무 데나 남발할 정도로 그토록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수명은 적어도 복수를 이룰 때까지는 이어져야 한다.


서걱.


괴물의 갑각과도 같은 다리, 그 끝에 달린 검고 날카로운 발톱이 앞섬을 스친다. 가슴팍에 붉은 실선이 하나 더 아로새겨진다. 괴물의 다리를 부수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김현의 폭력보다 괴물의 다리가 강건했다.


서걱.


괴물의 발톱이 귓불을 잘라낸다. 바람을 가르는 섬찟한 절단음이 고막을 요란하게도 울려댄다. 김현은 쩍 벌어진 괴물의 가슴팍에 주먹을 내질렀다가, 하마터면 주먹을 잃을 뻔하였다. 빽빽하게 돋아있는 돌기들은 발톱만큼 날카로웠다.


서걱. 허벅지가 베인다. 서걱. 팔뚝이 베인다. 서걱. 갈빗대 밑으로 길게 실금이 생긴다. 서걱. 어깨가 반쯤 쪼개진다. 서걱. 이번엔 종아리. 서걱. 발등. 서걱. 복부. 서걱 턱 끝. 서걱. 왼뺨. 서걱. 이마.


김현의 피륙이 온통 핏물로 도색되었다.


핏물이 흘러내려 눈꺼풀을 따라 눈으로 스며든다. 핏물의 무게가 더해져서인지, 눈꺼풀이 무겁다. 시야가 점점 빨갛게 물든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적을 직시한다. 끊임없이 칼날의 궤도를 읽어내고, 쉬지 않고 적의 약점을 탐색한다.


문득, 김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촉수였다. 괴물의 촉수. 탱탱해 보이는 촉수는 길게 뻗어 고치 안까지 이어져 있다. 처음엔 그냥 꼬리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김현이 뒤로 몸을 물렸다.


간격을 재며 거리를 벌린 것이 아니라 아예 훌쩍 물러났다. 자칫하면 추격하는 괴물에게 어이없이 당할 수도 있는 파격적인 후퇴였다.


탁.


다행히 김현은 무사히 물러날 수 있었다.


괴물은 그를 쫓아오지 않고, 제자리에서 날개를 윙윙거렸다. 허공에서 가만히 멈춰서 조용히 김현을 응시했다. 분명 눈이라는 기관이 없을 텐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여기까진, 예상이 적중했다.


김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진호.”


공교롭게도, 아니 김현이 의도한대로 착지한 곳은 이진호의 옆이었다.


그는 이진호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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