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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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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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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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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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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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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0화.

DUMMY

온몸이 축 늘어졌다. 마치 젖먹던 힘까지 짜내 육체가 방전돼버린 기분이다.


“이진호.”


억센 손아귀가 멱살을 잡아끌었다. 감염자의 그것과 비견되는 무지막지한 완력은 성인 남성 하나쯤 가볍게 들어 올리기에 충분했다.


맥없이 딛고 선 바닥. 준엄한 눈동자가 이진호를 응시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 감염 초기에는 이성을 잃은 채 미쳐 날뛴다는 걸.”


오종후는 정신 차리라느니, 냉큼 일어서라느니 하는 식상한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알아낸 사실만을 담담히 입에 담을 뿐이었다.


“방금의 감염자들은 모두 초기의 증상을 보였다.”

“······.”

“이건, 이들을 감염시킨 참회자가 아직 이곳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진호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오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사람들을 감염시킨 원흉을 잡기 위해.


뒷말은 필요 없었다.


이진호가 바닥을 딛고 섰다. 잃어버린 균형감이 이제야 되돌아온 느낌이다. 멀찍이 떨어졌던 현실감마저 같이 돌아와, 온몸을 얼얼하게 찌르는 통증이 점차 선명해진다.


이진호가 권총을 고쳐잡았다.



***



현 상황에 대해 짧게 보고하자, 김우혁은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병력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마냥 손 놓고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층계를 올랐다.


층계를 오를 때마다, 맞닥뜨리는 감염자의 수가 많아졌다. 전부 이성을 되찾지 못한 초기의 감염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은 채 이빨부터 들이미는 감염자들은 이진호의 연습 상대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왼쪽!”


오종후가 버럭 외쳤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이진호는 재빨리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기민한 사격에 감염자의 가슴팍이 붉게 물든다. 하지만 돌진해오는 기세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짓쳐오는 감염자. 이진호가 나이프를 거꾸로 쥔 채 정면으로 세웠다. 그 때문에, 감염자는 마치 나이프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콱!


칼날이 감염자의 명치 부근에 파고든다. 하지만 그러고도 여력은 해소되지 않아, 이진호와 감염자가 한 덩이로 뒹굴었다.


탕탕!


그 사이, 머리에 바람구멍을 뚫어준 이진호가 시체가 된 감염자를 옆으로 치우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12층과 13층 사이의 계단참에서 오종후가 감염자 셋과 전투 중이다.


오종후가 감염자의 주먹을 팔꿈치로 막는다. 짧은 충돌. 승자는 오종후였다. 주먹을 쥐어야 할 감염자의 손가락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감염자의 손해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 짧은 충돌 새에 역수로 쥐어진 나이프가 팔꿈치의 오금을 찔렀다. 절묘하게 요골과 척골 사이를 파고들어, 감염자의 팔뚝을 길게 찢었다.


연이어 오종후가 상체를 뒤로 젖혔다. 홱! 애꿎은 허공을 가격한 다른 감염자가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감염자의 팔뚝을 성공적으로 해체한 나이프가 새로운 목표를 노렸다. 허공에서 빙글 돈 칼날이, 감염자의 턱밑에 꽂혔다. 가로로 쭉 베어진 감염자의 목이 꿀렁, 핏물을 토해냈다. 그 사이, 외팔 감염자를 권총으로 마무리한 건 덤이었다. 탕탕!


이제 남은 감염자는 하나.


감염자가 오종후의 살점을 한입이라도 베어 물려고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지만, 주먹질 몇 방과 미간에 꽂힌 총알 한 방으로 간단히 처리되었다.


후우, 전투의 열기를 진정시키려는 듯 길게 호흡을 늘어트린 오종후가 얼굴에 꽂혀오는 시선을 느껴 밑을 보았다.


“끝났나?”

“아···예, 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격투 장면을 넋 놓고 관람하던 이진호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오종후는 그 멍청한 표정을 이미 봐버린 상태였다. 그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이제 초기가 아닌 중기 감염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정신 차려.”

“예.”


이진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기 감염자. 절로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김현을 거의 죽이고, 자신마저 죽일 뻔했던 감염자의 모습이.


‘지금이라면?’


흑복의 보조를 받는 지금이라면 어떨까? 가정이 떠올랐지만, 도출되는 답은 부정적이기만 하다. 이진호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층계를 올랐다. 사위를 경계하며 13층에 도달했지만, 감염자의 습격은 없었다. 13층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화르르.


게걸스레 제 배를 채우는 화마의 식사 소리만이 귓전에 맴돌 뿐이었다.


이제 14층까진 단 한 층계.


흑복이 분명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줄 터인데, 이진호는 왜인지 더위를 느꼈다. 기묘한 고요가 긴장감을 더한다. 이진호는 괜스레 코끝에 걸쳐진 흑복을 만지작거리며 오종후를 뒤따랐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번째 계단을 올랐을 때, 단단한 팔이 이진호를 막아 세웠다.


‘뭐지?’


이진호가 오종후를 보았다. 흑복 위로 반쯤 드러난 그의 얼굴이 화마에 비쳐 주황빛으로 번들거린다. 전에 본 적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 곰과 같은 사내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이진호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대각선 위. 천장을 향한 시선의 끝에서, 여름철의 끓어오르는 아스팔트처럼 한껏 일그러진 풍경을 목도했다.


폭력적인 시선이 꽂혀온다. 그 안에 담긴 샛노란 식욕이 노골적이다. 그들에게 자신을 감출 생각 따윈 없어 보였다.


“어? 사람?”

“사냥개다.”

“연구소의 개들?”

“먹을까?”

“먹자.”

“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

“내장은 내꺼야.”

“뇌수는 나.”

“그럼 허벅다리는···.”

“야,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지!”


감염자들이 깔깔대며 그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들은 이미 잘 차려진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이진호는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수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감염자 무리 앞에서, 부정의 말을 입에 담을 용기는 파랗게 질린 입술과 함께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진호.”


오종후가 성큼 계단을 올랐다.


“뛰어.”



***



몸을 돌린다. 탕탕! 소리가 죽은 뭉툭한 총성이 귓전을 스친다.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올라올 때 세 걸음이 필요했던 계단은 이제는 한 걸음이면 족하다. 착지하며 무릎이 살짝 굽는다. 다시 한번 허벅지에 힘을 꽉 준다. 발목을 비틀고 바닥을 박찬다.


쿵!


그 순간, 희끄무레한 형체가 눈앞으로 뚝 떨어졌다. 이진호는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몸을 난간을 붙잡아가며 전력으로 제지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관성을 해소되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딜가려고?”


샛노란 눈동자가 완만하게 휘어지며 초승달을 그렸다.


탕탕!


이진호가 총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진호의 시선과 총구의 방향을 읽은 감염자는 팔뚝을 세우는 것으로 가볍게 총알을 막았다.


그 사이, 이진호가 내달렸다. 감염자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13층의 복도를 향해.


‘젠장! 젠장!’


이진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오종후에게 하등 도움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도움은커녕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때문에, 이진호는 선택했다. 오종후와 최대한 멀어져, 그에게 향할 감염자의 수를 하나라도 줄여주자고.


이진호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뒤를 쫓는 감염자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그 수가 전부 오종후 쪽으로 붙은 건가?


불길한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뜀박질이 점차 느려지다가, 이내 그가 완전히 멈춰 섰다.


여전히 그를 쫓는 감염자는 보이지 않는다.


‘젠장!’


바짝 당겨진 턱근육에 어금니가 부서져라 흔들린다.


‘적어도 하나 정도는···!’


이진호가 손안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권총을 고쳐잡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였다.


“와, 지금 돌아가려는 거야?”


귓불을 간지럽히는 낯선 숨결. 온몸의 솜털이 삐쭉 솟는다.


“의리 한번 죽이네?”


이진호가 몸을 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은 위험하잖아~”


감염자가 실실 웃었다. 총알은 애꿎은 천장에 꽂혀 화마에 집어 삼켜졌다. 감염자가 이진호의 손목을 중간에 붙잡은 탓이었다.


이진호가 감염자의 정강이를 후려 찼다. 무쇠를 걷어찬 듯, 꼼짝하지 않는다. 실제로 감염자도 인상을 살짝 찌푸릴 뿐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뭐···.”


뭐 하는 거냐고, 물으려던 감염자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복부에 착 달라붙은 칼자루와 그걸 쥐고 있는 이진호의 손이 보인다.


“···야?”


이진호가 나이프를 비틀어 쭉 그었다. 부욱, 가죽 찢는 소리와 함께 울컥 새빨간 내용물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온다.


정강이를 걷어차 주의를 돌린 뒤, 나이프로 기습한다. 완벽한 양동이였다.


퍽.


나이프를 회수한 이진호가 감염자의 복부를 밀어 찼다. 거리를 벌려 사격으로 마무리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감염자는 밀려나지 않는다.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도 전과 마찬가지. 도리어 이진호의 발목마저 붙잡은 감염자의 샛노랑 눈동자가 희번뜩거린다.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


꽈악, 발목과 손목에 부서질 듯한 압력이 가해진다. 연이어 짧은 부유감이 느껴지고, 강렬한 충격이 등 뒤에 꽂힌다.


“커헉!”


감염자가 팔다리를 붙잡은 채 이진호의 몸을 휘둘러 콘크리트 벽에 메다꽂은 것이다.


다시 한번 몸이 붕 뜬다. 다리의 압력은 사라졌다. 대신 그 힘을 모두 감내하는 팔과 어깨가 금방이라도 뚝 하고 끊어질 것만 같다. 이진호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쿵!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꽂힌 이진호가 물수제비처럼 몇 번인가 튀어 오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비틀비틀 몸을 추스르는 사이, 감염자가 이진호의 앞에 당도했다. 이진호가 발악하듯 권총을 겨냥했지만, 고장 난 손목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콱, 감염자가 이진호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샛노란 시선을 맞추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제일 쓸모없는 부위가 어디야? 내가 특별히 쓸모없는 부위부터 먹어줄게.”

“닥···쳐!”


이진호가 왼손의 나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칼날이 감염자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강렬한 충격이 왼손을 강타한다. 챙! 나이프가 거친 쇳소리를 내며 바닥 위를 미끄러졌다.


“반항하면 서로가 힘들어~ 응? 그냥 얌전히 굴어. 그래야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지.”


키득, 감염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베여있다.


‘어떻게···.’


오른손은 부러졌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권총의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해 축 늘어져 움찔거릴 뿐이다. 나이프는 잃었고, 권총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감염자가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활로를 모색하던 이진호의 눈에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자아, 어디서부터 시식해줄까?”


입맛을 다신 감염자가 아가리를 쩍하고 벌렸다. 입안에 고인 침이 불꽃의 빛을 받아 번들거린다. 훅, 비릿한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 안에 섞여 있는 피 냄새 역겹도록 선명해 위장이 움찔거린다.


감염자의 아가리가 시시각각 다가온다. 이진호가 필사적으로 밀어내도 무리였다. 그의 발버둥은 인간을 초월한 막강한 완력에 허무한 몸짓으로 전락했다.


온다. 내 살점을 물어뜯을 이빨이 다가온다.


이진호의 눈동자에 깃든 절망감이 깊어진다. 광대에 닿은 이빨은 날카로운 감촉을 아로새기며 서서히 이진호의 뺨으로 향했다. 그리고 압력을 더한다. 이진호의 뺨을 와그작 씹어먹을 기세로 조금씩 그 압력이 강해진다. 주르륵, 연약한 피부가 먼저 찢겨나가고, 그 틈을 파고든 이빨이 살점을 한 움큼 베어 물 때,


콰아앙!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화마가 일렁이는 13층의 천장이 내려앉았다.


무너져내린 천장. 그 위에 꼿꼿이 서 있는 한 사내의 그림자가 이진호의 눈동자에 틀어박혔다. 그 사내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한 이진호의 눈이 찢어져라 크게 뜨였다.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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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21.09.20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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