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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싸이코킬러,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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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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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8,826

작성
22.07.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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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8화

DUMMY

해일이네 집은 성북동에 있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네, 평x동 입니다." 하는 동네와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여기도 전통적 부촌이 있는 곳이다.


내비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성벽처럼 높은 담이 둘러쳐진 고급 주택가가 나왔다. 얼핏 봐도 대지가 몇백 평은 돼 보이는 집들이 즐비했다.


성북동 비둘기는 아마 이 집터들이 형성될 무렵 날아다닌 새가 아니었을까.

시인은 사랑하는 성북동 산기슭이 마구 파헤쳐 지는 걸 슬픔에 젖어 바라봤겠지만 지금은 시인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 만한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 집들 중 하나에 도착하자 내비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전화를 하니 차고문 3개 중에 하나가 열렸다. 비어있는 공간에 차를 넣고 내부 통로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사모님은 거실에 계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를 맞아주는 분에게 인사를 하고 거실로 내려갔다. 넓다란 거실이 현관에서 세 계단 아래에 마치 선큰 광장처럼 펼쳐져 있다. 해일 어머니가 정원을 바라보고 서있다가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와라. 차가 많이 밀리진 않았니?"

"네, 그리 혼잡하지는 않았어요."

"잘왔다 연주야. 안 그래도 너 불렀으면 했는데 미안해서 부를 수가 있어야지. 해일이는 곧 올거니까 좀 기다릴래? 여긴 불편할 테니 해일이 방에 가서 편하게 쉬고 있으면 돼."

"네...."


해일이 방이 어딘지 모른다.


"참, 너 기억을 많이 잃었다고 했지? 박여사, 연주 좀 해일이 방에 안내 해줘요."

"네 사모님."


박여사란 분이 나를 윗층으로 안내해준다. 해일이 방은 삼층이었다. 이층에도 거실이 있었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거실이 나오고 한쪽에 방문이 있다. 박여사가 방문을 열었다.


"거실에 계셔도 되고 방에 들어가셔도 돼요. 그럼 편히 쉬세요."

"네 고맙습니다."


삼층 방인데도 왠만한 아파트 안방보다 넓다. 창문으로 정원이 내려다 보이고 정원 너머로는 서울 시내풍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져있다.


나는 해일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해일은 내가 온 걸 모를 텐데, 나를 보면 화를 낼까?

'니가 여기 왜 있어' 라고 화를 내면 뭐라고 대답하지?


빈 집안에 혼자 우두커니 있는 게 못 견디게 쓸쓸해서 라고 말해주면 수긍할까.

아니면 그냥 누구든지 얘기 나눌 상대가 필요했다고 대답하면?


솔직히 말하면 나도 왜 온 건지 내 마음을 설명하기 어렵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박여사가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커피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나간다.


"고맙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박여사가 가지고 온 것을 살펴봤다. 물과 음료수, 생크림 케익 한조각이었다. 나는 테이블로 가서 케익 한조각을 포크로 잘라서 입에 넣었다.


얼핏 봤을 땐 생크림인줄 알았는데 코코넛 케잌이다. 채썬 코코넛 조각의 향이 특별하다. 입에 넣자마자 혓바닥 위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다.


이건 시중에 파는 코코넛 케잌이 아니다. 시중에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부잣집에서는 케잌도 특별주문한 걸 먹는구나.


그때 계단을 쿵쾅쿵쾅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해일인가?

나는 얼른 포크를 내려놓고 옷 매무새를 고쳤다.


문이 벌컥 열리고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해일이 아니다. 해일보다 키가 좀 더 크고 좀 더 덩치가 있다. 뚱뚱하다기 보단 근육 위에 살집이 있는 유도선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어! 연주야!"


남자가 방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마치 코뿔소가 돌진하는 느낌이다. 나는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야, 이게 얼마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유일아! 인사만 하고 빨리 내려와!"


2층에서 해일 어머니가 소리친다.


"알았어요 엄마. 누가 잡아먹어?"


남자가 고개를 돌려 거칠게 대답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가늘게 뜬 눈이 느낌이 별로다.

이 사람이 유일이구나.

약간 긴장한다. 이 사람이 날 따라다녔다고 했지.


유일의 목에 걸려있는 굵은 사슬 목걸이가 셔츠 사이에서 둔한 금빛을 뿜고 있다.

유일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고 해일과는 달리 눈이 작고 눈초리가 날카롭다. 그러나 총명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노타이에 고급스러운 양복을 차려입었지만 행동거지가 약간 건들거리는 데다 어딘가 불량스러운 인상마저 있다.


"안녕하세요."


"어 여기 어쩐 일이야? 그동안 통 안 오더니, 어? 한 번 보고싶어도 볼 수가 있어야지.


"해일이 좀 보려고 왔어요."


"해일이는 매일 보지 않나? 음? 아! 그러고 보니 요즘 그 새끼 좀 이상했어. 술에 취해서 업혀들어오지를 않나 하루 종일 누워있지를 않나 안 하던 짓을 많이 하던데!"


유일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여자친구 앞에서 동생을 그 새끼라고 부르는 것 하며, 동생에게 무관심한 거 보면 양아치끼가 다분해 보인다.


"연주는 어떻게 지냈어? 해일이랑 싸웠나? 아, 뭐 싸울만할 거야 그 새끼 좀 답답하지 않아? 솔직히 그 새끼보다 내가 연주한텐 더 어울리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유일이 나한테 한발 더 다가온다. 이 사람은 만난 지 5 분도 되지 않았는데 보통 사람 5년치 비호감을 한 번에 준다.


"유일이 너 뭐 하니? 빨리 내려와라. 연주 귀찮게 하지 말고!"


밑에서 외치는 소리.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내려가요!"


유일이 문쪽을 보고 외치고는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얼른 나를 돌아보고 빠르게 말한다.


"저기 연주야, 내 방에 죽여주는 비디오 게임 있거든? 너 VR이라고 들어봤냐? 머리에 쓰고 하는 가상현실 게임인데 죽여준다니까. 1년 전만 해도 해상도가 안 좋아서 별로였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건 해상도도 엄청 좋아져서 진짜 현실감 끝내 줘. 롤러코스터나 비행기 타는 게임도 있고, 골프도 있고 테니스도 있어. 어때 가볼까?"


"아, 저 해일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해일이 곧 온다 그래서."


"에이, 이건 한 번 해 봐야 가치를 아는 거야, 진짜 딱 한 번만 해도 홀딱 반한다니까? 나 혼자 하기는 너무 아까워서 그래. 너도 이건 꼭 해봐야 돼. 자, 가보자."


유일이 다가와서 불쑥 내 손목을 잡더니 끌어당긴다.


"아, 아니 전...."


내가 버티는데도 막무가내로 끌어당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뭐 이런 양아치 같은 형이 다 있지? 자기 제수가 될 수도 있는 여자한테.

이런 사람에게 소개해 줬다가 싫다 하니 동생한테 소개를 시켜주는 이 집안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집안일까? 또 그걸 넙죽 받은 엄마 아빠는?


유일 한테 반쯤 끌려 가는데 누가 문을 쾅 열어젖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형?"


문간에 해일이 서 있다.


"어 왔냐."


유일이 아쉬운듯이 내 손목을 슬그머니 놓아주고는 천천히 방을 나간다.


"어, 연주한테 내 게임있지? 그거 구경시켜주려고 했어. 너 왔으니 나중에 보여주지 뭐. 재밌는 시간 보내라."


유일이 응큼한 눈길을 내게 던지고 해일의 어깨를 툭 치고는 방을 나가자 해일이 문을 쾅 닫았다.


"안녕. 그... 아까 우리 얘길 다 못한 거 같아서."


내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문을 닫고 잠시 서있던 해일이 내쪽에는 눈길을 주지않고 책상으로 갔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 아니, 우리 할 말이...."


"난 할 말이 없는데?"


해일이 책상에 가방을 덜컥 내려놓고 회전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의자를 빙글 돌려 내 쪽을 향했다. 나는 해일이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해일아 있잖아. 아까 얘기 나눴던 거 말인데, 너 뉴욕 안 가면 안 돼?"


나는 말투에 약간의 응석을 섞었다. 애교라고 해야하나. 애교 떠는 짓은 죽어도 못 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보니 영 못 할 것도 아니다.


내 옷자락이 해일의 무릎에 닿을 정도까지 다가갔다.

해일이 나를 올려다본다.


해일은 내 말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이 약간 떨리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해일은 지금 나를 껴안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거다.


해일이 의자를 빙글 돌려서 책상으로 향했다. 행동의 마지노선에 다가가기 전에 자제한 것이다.


"그건 연주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 이제."


해일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날카로운 구석이라고는 없다.


"그래도 안 가면 안돼? 난 너 가는 거 싫어."


나는 해일 옆에 바싹 붙어 서서 팔걸이에 허벅지를 갖다댔다.

내가 지금 뭐하는지 나도 잘 모른채로. 나는 해일의 품이 그리운 걸까.


"그림은 학교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지않아?"


나는 해일의 팔걸이에 허벅지를 툭툭 찧으면서 해일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해일이 가만 있는다.


해일의 어깨에서 머무르던 내 손이 해일의 목을 타고 올라서 뺨에 닿았다.

해일의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뺨이 뜨겁다. 해일이 내 손등에 자신의 손바닥을 댄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뺨에서 떼어냈다. 완강하지만 부드러운 동작이다.


"이러지 마라. 왜 이러는 거야? 갑작스럽네."


"이러는 거 싫어? 내가 손대는 거 싫어?"


"너 좀 이상하다. 갑자기 왜 이러는데?"


"해일아 나 좀 봐줘."


나는 해일의 의자를 내쪽으로 돌렸다. 의자가 돌아가자 해일이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약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손을 등 뒤로 돌려서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왼손 오른손 번갈아 가면서 지퍼를 내리고 팔을 빼냈다.


"너... 이러지마...."


해일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허리에 걸린 원피스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원피스가 발치에 툭 떨어진다.


"해일아, 나 좀 봐."


해일이 고개를 숙인 채 팔짱을 끼고 의자를 돌렸다.

나는 의자를 다시 내 쪽으로 돌리고 해일의 무릎에 내 무릎을 끼워 넣었다.

해일의 무릎이 힘없이 벌어진다. 나는 그 사이로 들어가서 섰다.


"왜 안 봐줘?"


나는 해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저항없이 끌려온다. 해일이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해일아, 나는... 너 멀리 가는 거 싫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내 생각밖에 안 하는 이기적인 계집애 맞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너 가는 거 싫어."


"최성구는?"


해일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


"몰라... 그건 생각 안 해봤어...."


"너 미쳤구나?"


"어 아마..."


우리는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다. 서로의 냄새를 맡고 비벼대면서 살갗의 감촉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좋다. 머리를 텅 비우고 타인의 살을 마주 대고 그 살갗의 온기를 느끼는 것.

이 행위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롭지 않고, 권태롭지 않아서 좋다.


해일이 나를 안은 채로 일어났다. 나는 해일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달라붙었다.

해일이 침대로 가서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를 내려다본다. 나도 누운채로 마주본다.

우리는 마치 공범자들처럼, 부끄러운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머뭇거렸다.

나는 해일의 목을 끌어안았다.


해일이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위로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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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뭘 원해? (3) 22.06.24 55 0 13쪽
24 23화 뭘 원해? (2) 22.06.22 51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49 0 13쪽
22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48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54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5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9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68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93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70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52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55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67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46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50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58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53 0 13쪽
8 7화 H 22.05.28 63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50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58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9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74 0 13쪽
3 2화 서연주 22.05.23 83 1 12쪽
2 1화 그녀 22.05.23 90 0 10쪽
1 프롤로그 22.05.23 110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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