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언젠가는 살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줄곧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내 핏속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학교에 갈 때도 그것의 존재를 느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할 때 그것이 내 입과 콧구멍 속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지는 걸 보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드려본 적도 있다.
"어머니, 저게 뭐예요?"
"무엇 말이니?"
"저기 저거요."
"아, 그런 게 있니? 내일 상희에게 치우라고 할 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그냥 자도 아무 일 없을 거다."
어머니는 방을 한번 둘러보시고 따뜻한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준 다음 이불을 덮어주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자는 척했지만 어머니가 방을 나가시기 전에 사방을 유심히 한 번 둘러보았다는 걸 눈치챘다.
초등학교 삼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그런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계속 내게 들러붙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내가 이상한 아이라는 자각이 생겼다.
그것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어떤 일을 했으면 한다는 눈길로 나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하는 상희 누나에게 내 방 벽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닦아달라고 말했을 때, (그때 나는 다섯 살이던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벌써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상희 누나가 깨끗한데 왜 닦느냐고 말했을 때 나는 더 닦으라고 명령했다.
입을 삐죽이던 상희 누나에게 지금 닦지 않으면 어제 계단 밑 창고방에서 젊은 보일러공과 상희 누나가 무슨 일을 했느냐고 아버지께 여쭤볼 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 벽이 상희누나에 의해 깨끗이 닦였다. 그것이 자꾸 벽을 더럽히니까.
꼭, 살인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왕에 하는 거라면, 그게 살인이 될 확률이 높은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또한 감옥에 갈거라는 것도 안다. 감옥은 필시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옥에 가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감옥을 택할 수 있다.
감옥은 택하는 게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감옥을 택하는 것이다.
의대에 진학한 뒤로, 그것은 더이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제 그것과 이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이별은 커녕 내 인생의 행로가 거의 확실히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구태여 표면에 드러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내가 이 사회와의 접점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가 갈수록 내 심력을 소모시키고 있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내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내 신경은 팽팽히 당겨질 대로 당겨져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애초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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