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612
추천수 :
1
글자수 :
168,826

작성
22.07.03 16:27
조회
40
추천
0
글자
11쪽

26화 응징

DUMMY

갈비가 나왔다. 내가 고기를 굽겠다고 했는데도 한성준은 자신이 구워서 자꾸 내 접시 위에 올려준다.


"많이 먹어라. 너 요즘 야위는 거 같애. 혹시 무슨 고민거리 있는 건 아니지?"

"... 사실은 있어요..."


한성준이 고기를 나르던 손을 멈췄다.


"응? 무슨 고민인데?"

"... 저 그게..."

"아, 잠깐만 연주야. 우리 식사 먼저 하고나서 얘기 나눌까? 좀 어려운 얘기인 것 같은데 그러는 게 어떠냐?"

"네, 감사해요."


한성준의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이렇게 사려깊게 생각해 준다는 사실이 조금 감동이다.

한성준은 사실은 좋은 사람인지도?

내 젊음을 원해서 가까이 할 뿐 내게 크게 바라는 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둘다 먹는데 집중해서 그다지 말은 나누지 않았다. 한성준은 필요한 말 외에는 일부러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배려 또한 몹시 고마웠다.

식사를 마치고 한성준은 나를 태우고 조용한 개인 카페로 갔다. 특이하게 4층 건물 전체가 모두 카페겸 레스토랑이다.


한성준은 옥상에 자리가 있느냐 묻고는 엘리베이터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꾸며진 정원에 파라솔과 의자가 놓여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후 한성준이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선 큰소리로 떠들어도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테니 마음놓고 말해보렴."


"... 사실은... 저를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어요...."


갑자기 치받는 무언가가 목을 꽉 매이게 만든다. 여기까지 말한다음 더 나가기가 어렵다.


한성준은 나를 보더니 뭔가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자꾸 올라오려는 어떤 것을 내리누르고 입을 연다.


"제가 싫다는데도 자꾸 따라다니더니... 얼마전부터는 스토킹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심해졌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혹시 아저씨께 말씀드려보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오늘 찾아왔습니다."

"... 음 그랬구나."


한성준은 테이블에 팔을 괴고 턱을 받쳤다.


"나한테 찾아온 걸 보면 정도가 심한 모양인데. 그 친구 행동을 나한테 다 말해줄래?"


나는 차도일이 내게 한 일들에 대해 모두 말했다. 모텔에 들어간 것만 빼놓고는 내 백을 가져갔다는 사실까지 모두.

말이 끝난 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걸 막지 못했다. 한성준이 얼른 휴지통을 밀어준다. 급하게 휴지를 뽑아서 눈물을 찍어냈다.


가볍게 다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일은 그다지 트라우마가 안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이 눈물에는 그런 트라우마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 고민을 누군가와 같이 나눌 수 있다는데 대한 고마움과 후련함도 있다.

차도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민이 반쯤 해결된 기분이었다.


"그냥 둬선 안 될 친구구나."


한성준의 표정이 한순간 험악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기는 했지만.


"그 친구 신상에 대해 아는것 있으면 모두 말해줄래?"


한성준은 마치 수사관처럼 상의 주머니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들더니 수첩에 끼워놓은 손가락만 한 길이의 펜을 들고서 말했다.


나는 차도일의 전화번호와 근무처, 그리고 자기 상황에 대해 얘기했던 것들을 모두 말해준다.


한성준은 내 말을 모두 수첩에 받아 적었다. 내 말이 끝나고서도 꼼꼼히 수첩을 체크하며 어떤 단어에는 동그라미를 치기도 한다.

평소에도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참 철저한 남자다.


한동안 수첩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성준이 어떤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쳐다본다.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날 정말 잘 찾아왔다. 이제부턴 걱정 안해도 된다 연주야. 이 아저씨가 일주일 안으로 네 백을 찾아주마. 넌 아무것도 신경쓰지말고 기다리기만 하면 돼."


"정말요? 어, 어떻게요?"


아무리 한성준이 인맥이 넓다해도 일주일만에 차도일을 해결한다니 그게 가능할까?

한성준이라면 혹시나 차도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해주겠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까진 연주가 굳이 알 필요는 없어.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테니. 어쨌든 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알겠지?"

"아, 네..."


차를 마신 후, 한성준이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서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차가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기 전 한성준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어깨 뒤로 머리칼을 매만진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손길이어서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한성준의 손이 뺨으로 옮겨가더니 손등으로 가볍게 뺨을 쓸었다. 나는 한성준을 만난이래 처음으로 그 행동이 싫지 않았다.

목덜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다.

나는 어느새 이 남자의 손길에 익숙해진 걸까.


나는 한성준을 보고 기쁜 듯이 웃어준다. 한성준의 얼굴이 다가온다. 눈이 마주쳤다. 한성준의 얼굴을 이처럼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한성준이 우뚝한 콧날과 건강한 구릿빛 피부, 뺨에 세로로 길게 패인 보조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눈빛이 그 얼굴이 가진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또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섹시할 수 있다는 것도.


"저 그럼 가 볼게요. 점심 잘 먹었습니다."


나는 어색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더욱 쾌활하게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집으로 올라갈 때 나도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령 한성준이 차도일을 그렇게 깨끗이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차도일은 깨달을 것이다. 만만찮은 뒷배가 내 뒤에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호락호락 날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할 것이다.




***




"야, 너 왜 톡 확인 안하냐?"

"어 액정 깨져서 서비스 맡겼어."


연희 언니가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내게 물어본다.


"엄마가 너 전화 안 된다고 하길래. 너 해일이 엄마 만났어?"


"응... 전화 오셨더라...."


"뭐래?"


"... 하아... 말하기 싫어. 힘들어...."


"뭐래 얘가. 엄마한테도 전화하셨다더라. 너 한테 무슨 일 있느냐고. 그 집 지금 난리났다던데 너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을 거 아냐. 뭐라던데?"


"아 몰라... 나가 줘. 나 힘들어, 잘래..."


"니년이 일으킨 사고니까 니년이 수습해야지 뭐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데?"


"... 아니 뭐 나는 헤어지자고 말도 못 해? 사귀다가 헤어질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왜 나만갖고 그러는데?"


"너네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잖아. 그러다가 갑자기 애가 딴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상하게 구니까 다들 그러는 거 아냐. 해일이 애가 완전 맛이 갔던데 좀 위험해 보이더라. 너도 좀 생각해 봐."


언니가 차분하게 말을 하니까 더욱 무슨 말을 하기가 힘들다. 사실 딴사람이 된 건 맞으니까.


"... 해일이랑 다시 시작하면 안 되겠느냐고, 뭐 그런 말씀이었어...."


"그래서?"


"그래서 뭐?"


"넌 어떡할 거냐고."


"일단 해일이 한 번 만나 본다고 했어."


"그게 다야?"


"그럼 뭐? 뭘 더 해야 돼?"


"해일이는 어떡하고 있대?"


"......."


"안 좋구나 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일이네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 집은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아무리 집안끼리 혼맥이 어그러지게 생겼다고는 해도 이건 좀 지나친 반응이다. 젊은 남녀가 사귀다 헤어지는 건 흔한 일이잖아?


"언니, 혹시, 그... 내가 기억이 아직 안 돌아와서 그러는데 내가 해일이랑 헤어지면 우리 집에 문제 생겨?"


언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나를 질책하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고 해야 하나. 무슨 잘못을 저지른 사람 표정이다.


"왜 그래?"


언니가 한숨을 내쉰다.


"문제 있구나? 아빠 사업이 그 집과 얽혀있구나?"


"그래... 안타깝지만 그렇다."


"근데 그렇다고 사업까지 영향이 가는 건가?"


"아무래도 좋은 감정이 되기는 어렵겠지... 그리고...."


"아빠 회사 S사 1차 벤더라고 하지 않았어? 해일이네랑 관계없는 거 아냐?"


"애초 해일이네 인맥으로 S사랑 이어진 거야."


"... 아...."


"아빠가 개꼰대에다 이상한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아빠 회사 덕분이니까. 그걸 모른체 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럼 내가 해일이랑 헤어지면 안 된다는 말이야?"


"......."


언니는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는지 말이 없다.


"뭐야! 그럼 내가 우리 집 소녀 가장이야? 내가 희생해달라는 거야?"


"누가 그렇대? 그건 오바고."


"그럼 언니까지 왜 그래?"


"해일이 좋은 애잖아. 그래서 너가 해일이랑 이어지면 그 보더 더 좋은 게 어딨겠냐. 너도 행복해지고 해일이도 행복해지고... 그리고 우리 집도 덩달아 행복해지고...."


"......."


이해한다. 그게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대로 흘러가는 것이던가.

내 인생을 좀 봐.


"근데 언니, 아빠가 이상한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언니에게 물어본다. 아빠가 설마 언니에게까지 그런 짓을?

언니의 표정이 또한번 묘하게 변한다. 이번엔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너 그 기억도 안나는 모양이네.... 이걸 잘 됐다고해야 할지 참...."


언니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끌어안는다.


"뭐야, 왜?"


"연주야, 니가 기억 안나면 굳이 몰라도 될 것 같다. 아빠가 이상하다고 한 말은... 어쨌든 지금은 이제 안 그러니까... 아니 이 말도 하면 안 되겠네. 못 들은 걸로 해. 알겠지?"


언니의 말로 유추해보자면, 아빠는 아마 나한테만 그런 짓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건 가족 모두가 알고 있으며, 언니는 지금은 아빠가 그 짓을 그만둔 걸로 알고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데. 나는 지난번 집에서 아빠가 내게 했던 일을 언니에게 말 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지금은 그 일을 들쑤셔서 좋을 건 없다. 그래서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


연주의 일기장을 보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

연주는 일기장을 어디다 숨겨뒀지?

일단 내 방은 샅샅이 뒤져봤지만 없다. 옷방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집에 놔뒀을리도 없고... 어디다 둔 걸까. 버리지는 않았을텐데.


언제 시간 내서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일기장을 찾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연주의 생각을 알 수 있으니까 읽어 볼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그전에 해일이를 먼저 만나봐야 한다.

해일이가 모든 걸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할 어떤 의무감을 느낀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싸이코킬러, 그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화 22.07.17 75 0 13쪽
29 28화 22.07.07 38 0 11쪽
28 27화 해일 22.07.04 36 0 12쪽
» 26화 응징 22.07.03 41 0 11쪽
26 25화 뭘 원해? (4) 22.06.26 49 0 11쪽
25 24화 뭘 원해? (3) 22.06.24 46 0 13쪽
24 23화 뭘 원해? (2) 22.06.22 46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43 0 13쪽
22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40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47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4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2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57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84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62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47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48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62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39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36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49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47 0 13쪽
8 7화 H 22.05.28 52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44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48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2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67 0 13쪽
3 2화 서연주 22.05.23 77 1 12쪽
2 1화 그녀 22.05.23 83 0 10쪽
1 프롤로그 22.05.23 104 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