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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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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
추천수 :
1
글자수 :
168,826

작성
22.05.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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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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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서연주

DUMMY

"연주야 머리 아파? 누울래?"


연주... 이 여자의 이름인 모양이다. 그럼 나는? 내 몸은 어떻게 됐지?

머리가 핑 돌았다. 눈을 감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연주라는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할거고, 그리고 내 몸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러고나선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남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저기, 제 제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요. 그 그쪽은 누구...시죠?"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어? 기억이 안 나? 전혀? 나도 기억 안 나?"

"아 아니,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 그게 조 조금 헷갈려서..."

"나 해일이야. 이해일. 서연주 너 남자친구. 우리 사귄지 벌써 2년 됐잖아."


남자의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나는 마치 이제 기억이 좀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에서 여자 목소리 나오는 거 진짜 적응 안된다.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는 게 아니라 화상채팅을 하는 것 같다.


이해일은 로스쿨 졸업반이고, 서연주는 로스쿨 1학년을 마치고 휴학상태라고 한다. 둘은 로스쿨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렸다고 하는데, 글쎄 그건 넘어가고.


서연주, 이해일, 둘다 강남출신에 금수저들이다.

서연주네 집은 전자부품 생산회사를 경영하고있으며 삼성의 일차 납품업체. 이해일은 강남 S병원 아들이다. S병원은 우리병원과도 협력관계에 있어서 병원장 이강찬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집 아들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풍문에 의하면 그 집 큰 아들인가 작은 아들인가가 개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들었다. 이해일은 망나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범생 스타일이다.

큰 키에 딱봐도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겼다.

사고 당시 둘은 청평에 갔다가 국도를 이용해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좀 기억이 나?"


해일이 열심히 설명하다가 물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살색 밴드가 붙어있고 뺨에 긁힌 상처가 여러군데 있었다.


이해일과 서연주는 같은 자동차를 타고 있다가 사고가 났었구나.


서연주는 내가 수술하던 그 여자 환자인 것 같다.


응급천자를 위해 메스를 갖다댔을 때 엄청난 피가 솟고, 그러고나서 이렇게 됐다.

그럼 서연주의 영혼은 내 몸속에 있는 건가?


'그것'의 장난일까?

'그것'이 이런 능력을 부릴 수 있는 존재였나?


"무슨 생각해?"

"...아..."


해일이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어, 어 왜요?"

"우리 말 놨었는데. 그것도 기억 안나는 모양이구나."


해일이 나를 껴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일이 내 목에 얼굴을 파묻는다.

껴안은 팔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아, 이, 이것 좀..."

너 뭐하는 거야 이 자식아. 이상해, 이상하다고.


"연주 너 잘못되면 따라 가려고 했어. 나 너무 힘들었어."

해일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


"아 좀 답답한데..."


나는 견딜수가 없어서 해일을 힘껏 밀어냈다. 연주는 부러진 늑골이 폐를 찔러서 죽을 뻔했다고 이 자식아. 그렇게 힘껏 껴안으면 어떡해.


"아, 미 미안..."

해일은 무안한지 얼굴을 붉히면서 물러났다. 그런데 중상 환자 치고는 통증이 거의 없었다.


"내가 며칠이나 누워 있었어...요...?"

"너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었어."


후, 일주일이라. 갑자기 몸이 찝찝해졌다.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잠깐 화장실 좀..."

"어, 어 그래."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바지를 내리고 허벅지를 확인했다. 예상했던데로, 허벅지 안쪽에 깨알같은 점. 수술실에서 내게 발길질을 했던 그 환자가 맞다. 그런데 뭔가 좀 허전하다.


헐...


팬티 없이 바지만 입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술환자는 알몸에 환자복만 입는다. 그리고 내가 여자의 그곳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놀라서 요란을 떠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그곳에서 눈을 뗄수가 없어서 계속 보다보니 연주에게 좀 미안해진다.

근데 너도 내 거길 걷어찼으니 이걸로 퉁치자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뽀얀 피부의 예쁜 여자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마치 자기를 훔쳐보는 이를 나무라는 것 같다. 키는 그리 큰편은 아닌듯하다.

그렇다고 작은편도 아니다.

짙은 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눈썹문신인가 싶어 만져본다.

문신이 아니다. 촘촘한 눈썹털이 가지런히 한방향으로 누워있다.


여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쌍꺼풀 진 큰 눈에 살짝 가운데로 몰린 눈동자. 좀 맹한 느낌을 주는 눈이다.


그런데 눈빛이 어둡다.


그늘이 드리워진 눈에 얼핏 우울하고 슬픈 빛이 감돈다.

전체적인 얼굴의 인상을 묘하게 비트는 눈이었다. 말하자면 스펙트럼이 다양한 얼굴이라고나 할까. 차갑고 도도한 인상임에도 어딘가 살짝 풀려있는 느낌.


이 여자는 어딘가 망가져있다.


가만, 지금은 내가 이 몸의 주인인데 어째서 눈빛이 이렇지? 내 눈빛이 우울하고 슬플리는 없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이 몸으로 죽을때까지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 여자의 인생에 대해 단 하나도 제대로 아는게 없다.


다만 한가지 희망은, 눈은 영혼의 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눈빛이 연주의 영혼을 보여주는 거라면, 연주의 영혼이 내게도 기억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벽에 붙은 캐비넷을 열어보니 칫솔과 치약, 바디와시, 샴푸, 수건 같은 욕실용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있다. 칫솔 포장을 하나 뜯어 이를 닦고 얼굴과 손 발을 씻고 나왔다. 카테터 자국이 아직 아물지 않아서 샤워는 할 수 없었다.

이해일은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연주야 나 이제 갈게 이따 밤에 다시 올테니 잘 쉬고 있어."

"어 으응 그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해일에게 손을 들어줬다. 너 힘들어.


방안을 둘러보다 옷장을 열었다. 옷이 몇벌 걸려있다.

베이지색 원피스 한벌과 연두색 카디건 하나, 트레이닝복 한벌. 플리스 자켓 하나.

중간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팬티와 브라 세트가 두 상자 들어있다. 침대 옆에 놓인 나이트 테이블 수납장에는 푸른색 가죽 핸드백이 들어있었다.


백을 열고 물건들을 다 꺼냈다.


볼펜, 지갑, 물티슈, 낱개 포장된 고디바 초콜릿, 립밤, 작은 화장품 파우치, 팬티 라이너, BMW 엠블럼이 붙어있는 차 키, 핑크색 고양이 귀 케이스가 끼워진 휴대폰.


휴대폰 액정이 깨져있다. 충전기를 찾아 연결하고 핸드폰을 켰다. 액정이 깨졌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다.


검은 화면에 하얀 점 9개가 나타난다.


나는 한숨을 쉬고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러면 암호가 생각나기라도 하듯이.

그런데 떠올랐다.

갈지자다. 아홉개의 점을 Z형태로 잇는다. 메인화면으로 넘어갔다.


읽지 않은 카톡 320개

부재중 전화 45통

문자 메시지 25통


톡 320개? 여자 카톡창은 원래 이런거냐?


단체톡방을 제외하고 1:1 메시지 중 읽지 않은 것은 200여개 가량이다.

나는 비행기 모드를 켜고 카톡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모드를 켜두고 카톡에 들어가면 내가 메세지를 읽어도 상대방에겐 읽지 않은 걸로 나타난다.


대부분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남자들에게서 온 톡이 훨씬 더 많았다. 간혹, 안녕하세요, 낮에 본 누구누구입니다 어쩌고 하는 톡도 몇 개 있다.


그 중에 싸한 느낌이 드는 톡이 두 개 있었다.


H 아저씨와 도일이란 이름의 카톡.


H 아저씨: 수요일 스케줄 어떻게 돼?

: 난 점심때부터 하루종일 비는데 점심 같이 먹을까?

: 날씨가 너무 좋은데 너도 수요일날 시간 비면 좋겠다.

: 연주야 대답 좀

: 연주야 무슨 일 있는거냐? (다음날)

: 연주야 문자 남겼으니 좀 읽어봐. 별일 없으면 좋겠다 (그 다음날)

(문자) 연주야 별일 없는거지? 정말 답답하네 연락할 방법도 없고.


H 아저씨... 누굴까?


과거의 톡을 살펴봤다. 대부분 스케쥴을 물어보고 약속을 잡는 톡이다. 연주의 대답은 거의 단답형 예, 아니오다. 반면 H의 톡은 상냥하다.


만남은 일, 이주에 한번 정도로 식사나 커피 마시자는 약속이 대부분이다. 카톡만으로는 이 둘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뭔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도일이라는 사람이다.


도일: 야 이번주 목요일 저녁에 뭐하냐.

: ??

: 씹냐?

: 이젠 뭐 씹기로 했냐?

: 당장 전화해라 씨바라

: 전화 받아라 씨발년아

: 이제 아주 막나가자는 거지요? 그래봐야 좋을거 없을텐데요? 좆같은 년아? (다음날)


부재전화를 확인해보니 도일의 전화가 20통이 넘는다.

톡 내용은 H 아저씨와 비슷하긴 했지만 도일은 반말을 썼고 욕설이 많았다. 차이점은 H 아저씨와의 톡은 거의 일년이 넘었고 도일은 삼개월, 시작한지 얼마 안된 관계라는 것.


비정상적 관계. 이 둘과 연주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나는 연주라는 여자의 양파껍질을 한꺼풀 벗긴 느낌이었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지극히 좁은 관계의 스코프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 반면 오직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자신을 규정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잘생긴 엄친아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두 남자와 수상쩍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연주. 이 여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병실문이 열렸다.


"연주야, 엄마 아빠 왔다"


어제 저녁에 들었던 아줌마 목소리다. 엄마인 모양. 그렇다면 저 키 크고 풍채좋은 아저씨는 아빠. 엄마는 체구가 자그마한 미인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누구나 보면 좋아하게 생겼다. 입은 옷들은 화려하지 않은데 고급스럽다. 장신구는 작은 금목걸이 하나만 하고있음에도 기품이 넘친다.


씹고인물 부자집안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다. 굳이 티나게 꾸밀 필요가 없는 사람들. 오히려 좀 감추고 싶어하는 그들.


"좀 어떠니? 얼굴은 괜찮아 보이는데."

"아, 네 괘 괜찮아요."

"어머 너 아프고 나더니 철들었니? 호호"

"예?"

"아니 연주 네가 이제 나한테 존댓말을 쓰니까 하는 말이야."

"으...응... 그 그랬네..."


진땀이 난다. 여자 말투를 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표정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무표정이 특기인데 그렇게 했다간 기분나쁜 일 있냐고 끊임없이 물어봄 당할지도 몰라서.


이제 표정연습도 해야 할 판국이다.


"근데 연주 너 왜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던 거냐?"

키 큰 아저씨가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전벨트요?"

"응, 의사선생이 안전벨트를 풀어서 많이 다친거라고 하던데? 해일이는 많이 안 다쳤잖아."


이게 뭔소리지?

나는, 아니 연주는 왜 안전벨트를 풀었을까... 아, 아까 해일이가 뭐 엎드려 있어서 살았느니 어쩌니 하던 말이 그 말인가? 해일이 오면 물어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이번 주 안으로 퇴원할 수 있단다. 정말 다행이지 뭐냐.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해라. 알겠냐?"


연주 아빠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위엄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이 부녀의 사이를 판단하기 어렵군.


그런데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있다.


나는 사람의 행동에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취미였다.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패턴을 관찰하는 건 놀랄만큼 재미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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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뭘 원해? (2) 22.06.22 46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43 0 13쪽
22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40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47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4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1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57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84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62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46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48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62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38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36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49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47 0 13쪽
8 7화 H 22.05.28 52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43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48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2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67 0 13쪽
» 2화 서연주 22.05.23 77 1 12쪽
2 1화 그녀 22.05.23 83 0 10쪽
1 프롤로그 22.05.23 103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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