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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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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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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68,826

작성
22.05.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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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3화 서연주

DUMMY

연주 아빠의 표정에서 내가 읽어낸 건,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옆에 엄마가 있으니 그 점이 더 잘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표정에서 아주 미세하게 읽힌 것은, 놀라움과 당황이었다. 예상하던 것과 다른 것을 마주쳤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아빠는 어떤 것을 예상했을까.


일단 나는 이 부녀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빠가 딸을 대할 때 부자연스러움, 즉 자의식을 가진다는 건 범상한 일은 아니다.


"연희는 이따 저녁때 온대. 이 사과랑 오렌지 좀 먹어봐라, 너무 달다 얘."


엄마가 부산스럽게 들고온 백에서 사과와 오렌지를 몇 알 꺼내서 껍질을 깐다. 사과 깍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홀린듯 그 모습을 바라본다. 엄마는 씽크대에서 접시를 가져와 사과와 오렌지를 가지런히 담아서 내게 준다.


이걸 먹어도 되는건가?

신기하게도 통증이 거의 없으니 뭐 괜찮으리라 생각하면서 오렌지 한 조각을 골랐다.


오렌지 색깔이 예쁘다고 느끼며 한 조각 입에 넣는다. 그러고는 시어서 인상을 찡그린다. 조금 전 이를 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방금 오렌지 색깔이 예쁘다고 생각한거야?


나 답지 않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 아빠가 돌아간 후 점심으로 깔끔한 한식이 한 상 나왔다. 맛있게 먹은 후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내 몸을 찾아봐야지! 넌 네 몸이 궁금하지도 않냐?


슬리퍼를 끌고 터덜터덜 병실을 나왔다. 사실 수액을 달고 있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빼버렸다. 나중에 다시 꽂으면 될 터다.


외과는 3층이다. 데스크로 가서 물어본다.


"저, 혹시 정상인 선생님 좀 뵐 수 있을까요?"


간호사가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조금 기다리니 익숙한 얼굴의 의사가 한 사람 나왔다. 외과 레지던트 4년차 김동훈이다. 이 녀석이 내 담당의인가?


그는 내게 고개만 까딱 하더니 아무말 없이 나를 5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데려갔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한쪽 병상에 보인다. 내가 인공호흡기와 수액 더미를 달고 누워 있었다.


순간 나는 초현실적 감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누워있는 병상 근처 공간이 마치 파도가 일듯 일렁인다.

나는 접근하지 못한다. 김동훈이 내 팔을 잡고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네, 조금 어지러워서. 이제 괜찮아요."


"닥터 정은 수술실에서 쓰러지셔서 지금까지 저런 상태입니다.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지금 자가호흡이 안 될뿐이고 몸의 다른 부분은 아무 이상이 없어요. 잠을 재워놓기는 했지만 깨어나는 징후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네요."


"물론 서연주님 수술은 무사히 마쳤고요. 네, 지금 보니 수술이 아주 잘 된 것 같네요."

김동훈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자식은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지? 서연주 보지말고 병상에 누운 나를 잘 돌보란 말이야.


어차피 더 물어볼 것도 없어서 나는 다시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눈이 타는 듯이 뜨거워진다.

나도모르게 손등으로 눈을 슥 닦았다. 손등에 물기가 묻어 나온다.


내가 울다니, 왜?


혼란스럽다. 눈물을 흘린 적은 평생 처음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질질 짜는 모습을 보이면 큰 일이라 생각할 뿐이다.


짝다리를 짚고 엘리베이터를 멍하니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로 가득 차서 발디딜 틈이 없다. 딱보니 실습 온 인턴들이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린다.

"...아..."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 거 타야겠다.


"타세요."


누군가의 외침이 신호라도 되듯 엘리베이터 내부가 홍해처럼 쫙 갈라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인턴들은 이십층까지 아무도 내리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뒤통수가 따갑다. 내 뒤에 선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해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아 맞다 일주일 넘게 샤워 안 했는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 느리지? 어이 거기 뒤에 좀 밀지 말라고.


이십층엔 공중정원이라는 옥외공원이 있다. 벤치와 산책을 할 수 있는 양탄자 깔린 트랙이 있다. 거기에 가서 생각을 좀 정리 해보자. 인턴들과 같이 내렸다. 문을 두개 통과하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모처럼 햇볕을 받으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하으으으응..."

"저기요?"


누가 어깨를 톡 건드린다. 놀라서 돌아보니 의사가운을 입은 키 큰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예?"

"저,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뵀었죠..."

"그런데요?"


나는 돌아서서 남자를 마주 보았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피곤이 모공마다 박혀있다. 소 처럼 커다란 눈은 충혈됐고 턱엔 수염이 까칠하다. 그래서 어딘가 절박해 보인다.


얼굴 믿고 들이대는 건가? 하하 나하고 똑같잖아. 근데 나도 인턴 때는 안 그랬는데.

풉 웃음이 났다. 남자가 내 웃음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뻔뻔하게 나온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번호를 좀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휴대폰을 쓱 내민다.


"인턴 아니신가요? 안 바빠요?"

"예? 아, 아. 그게...너무 예쁘셔서...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예쁘셔서 저도 모르게 따라왔어요. 죄송합니다. 번호 좀..."

"의사가 환자 번호 따는 거 괜찮아요? 그리고 번호는 몰라서 못 드리겠네요."


사실이다. 나는 연주 번호를 모른다.


남자의 얼굴이 저녁노을 보다도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남자가 팔을 축 늘어뜨리고 뒤돌아서 비척비척 걸어간다.


"나중에 번호 알게 되면 가르쳐 드릴게요."


남자가 급 화색이 도는 얼굴로 인사를 꾸벅한다.

귀엽네 짜식. 근데 나 뭐야? 번호를 왜 줘?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쬔다.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졸음이 밀려온다. 병든 닭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졸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좀 변한 것 같다. 내가 나가 아닌 것 같다. 어쩌자는 거지?


***


이틀 후에 나는 퇴원을 했다. 그동안 이해일이 극진히 간호를 해줬고 (간호랄 건 없지만) 연희가 왔다갔다. 연희는 나, 아니 연주의 언니였다. 스물 일곱살 미모의 카피라이터다.


이 집안은 미모가 그냥 온 가족이 미남미녀다. 이 사람들 어디가서 얼굴값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주만 봐도 수상쩍잖아.


하지만 내 알 바냐. 나는 빨리 내 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퇴원수속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장에서 트레이닝복을 꺼내니 해일이 극구 말린다.


"연주야, 그건 왜 입냐. 예쁜 원피스 놔두고."

"어? 아, 이게 편하잖아."

"에이 그래도 퇴원하는데 예쁜 거 입지."


근데 도저히 원피스는 못 입겠다. 속옷도 겨우 입었는데. 나 서른두 살 아재라고 아재.

결국 내 고집대로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집으로 갈거지?"

"집, 어... 그렇지."

"어머님께서 댁으로 오라고 하시던데, 어떡할까? 그리로 갈까?"

"음...아니, 부모님집은 나중에 들리는 게 좋겠는데..."

"오케이, 그럼 삼성동으로 출발!"


연주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모양이다. 부모님 집에 들어가는 건 부담스러웠는데 잘됐다.


이해일은 어쩐지 신이 난 듯한 모습이다.


해일의 차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삼성동에 있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아파트다. 평수가 오십오평부터 시작하는 엄청 비싼 곳.


여기 산다고? 연주네 집은 대체 얼마나 부잔거야?


엘리베이터에 타서 내가 머뭇거리자 해일이 층수를 눌렀다. 이십삼층. 사십오층짜리 타워다. 해일이 앞장서고 내가 따라간다. 문 앞에서 해일이,

"내가 도어락 번호 눌러줄까?"

"어."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는데 해일이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연주야!"

"어 왜 왜...?"

"연희 누나 없어. 괜찮아."


해일이 나를 돌려세우더니 거칠게 입술을 들이박는다.


윽! 뭐하는 거야 이 새끼야!


얼굴을 돌리려했지만 해일의 두 손에 붙들려서 돌릴수가 없다. 입술을 비집고 혀가 들어온다. 나는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으려 입을 앙다문다. 앞니를 해일의 혀가 강하게 누른다.


"웁웁..."

내가 허리를 비틀면서 몸을 빼내자 해일이 입을 떼고 나를 쳐다본다.

왜 그러냐는 표정이다.


"헉헉... 조 좀 갑작스러워서..."


뭐, 연주랑 해일은 이미 볼 장 다 본 사이겠지.

그런데 나는 처음이라고 이 새끼야 남자랑은!


해일이 얼빠진 얼굴로 다가와서 나를 벽에 밀어붙인다.

벗어나려 몸부림쳐보지만 도저히 힘을 이길 수가 없다.


해일의 무릎이 내 다리 사이로 들어온다.

몸을 밀착하면서 다리 사이를 강하게 눌러댄다.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더니 내 가랑이를 움켜쥔다.

왼손은 가슴을 더듬고 있다.


입술은 내 목덜미에. 투우처럼 내뿜는 콧김에 등의 잔털이 모두 곤두서는 것 같다.


아 미치겠네. 너 이거 할 생각에 신났던 거지?


"잠깐, 잠깐만!"


소용없다. 녀석은 미친듯이 내 몸을 더듬는다. 아예 현관에서 내 옷을 벗길셈인가 보다. 진짜로 녀석의 손이 바지춤으로 쑥 들어왔다.


"아 그만! 그만하라고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정색하고 소리 지른다. 그제서야 녀석이 몸을 뗐다.


"...하아... 좀 천천히 나중에 해. 좀 피곤해서 그래."

"그 그래 미안. 내가 너무 서둘렀네. 미안."


해일은 벌개진 얼굴로 겸연쩍게 웃으며 짐을 침실에 가져다 놓는다.

아 씨 큰일났네 저 놈이 계속 치근거릴텐데.


연주의 몸으로 해일과 무엇을 하는 건 내 책임도 아니고 내가 굳이 막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못 하겠다.


사실 나는 수동적인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


지금껏 한번도 접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리고 힘으로 해일을 못 당하는 상황이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소파에 앉아서 집안을 둘러본다. 엄청 넓고 잘 꾸며놓았다. 인테리어는 통통 튀면서도 품위 있다.


"이거 좀 마셔. 너 좋아하는 거."

해일이 미안한지 차를 가지고 왔다. 카모마일이다. 난 페퍼민트 좋아하는데.


"연주야 저번에 내가 얘기했던 거 생각해 봤어?"

"어? ...저기, 미안해 기억이 잘..."

"너 병원에 가서 MRI라도 찍어봐야 하는 거 아냐? 머리에 이상이라도 생겼으면 어떡하냐."

"그러게..."

"너 남 얘기 하는 거 같다. 너 병원에서부터 좀 이상해. 멍 때리는 것도 그렇고. 아까도 그렇고."

"어?"

"아니, 난 네가 그렇게 정색하고 싫다는 거 첨봐서..."

"아... 내가 그랬나?"

"그래 너답지 않았단 말이다."


해일이 일어나서 내 옆에 바싹 붙어앉는다.


히익...

나는 자리를 슬슬 옆으로 옮겼다. 해일이 따라온다.


"저기 잠깐만 해일아. 나 진짜 기억이 많이 삭제됐거든. 그래서 네가 좀 말해줄래?"

"뭘?"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주면 기억이 돌아올 거 같거든?"


해일이 픽 웃었다. 그리고 줄줄 읊었다. 학교 남자 화장실에서 했던 얘기, 해일이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하려다 실패했던 얘기, 여행지에서 폐교된 학교 건물에서 하려다 쫓겨난 이야기 등등.


"어,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충격 받아서 기억이 좀 돌아오려고 해."

"너 내가 하자는 거 다 해줬는데. 어떤 땐 네가 먼저 하자고 한 적도 있었어. 그런 네가 이렇게 삭막하게 변할 줄은. 빨리 돌아와."


해일이 장난스레 내 뺨을 잡아 늘이면서 말했다.


"아 뭐래 미친..."


하... 연주야, 너 이렇게 살았구나. 조신하게 생겨가지고...


가만있으면 해일이 또 덮칠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해일이 쫓아온다.


"저기, 해일아 미안한데... 나 피곤하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그래그래 오늘은 안 된단 말이지? 알았어. 나 간다. 쉬어."


해일은 시원하게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다말고 해일이 묻는다.


"연주 너 내가 저번에 말했던 거 대답 언제 해 줄 거냐."

"기억나면."

"기억 안나면 지금 다시 해 줄 수 있고."

"아냐, 됐어. 기억해 볼게."


해일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침대로 가서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아 피곤하다. 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전화 벨소리.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벨소리에 잠이 깼다.


도일이다. 차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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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22.07.17 51 0 13쪽
29 28화 22.07.07 17 0 11쪽
28 27화 해일 22.07.04 15 0 12쪽
27 26화 응징 22.07.03 13 0 11쪽
26 25화 뭘 원해? (4) 22.06.26 26 0 11쪽
25 24화 뭘 원해? (3) 22.06.24 20 0 13쪽
24 23화 뭘 원해? (2) 22.06.22 19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16 0 13쪽
22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17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22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18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25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23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32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24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21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20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20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18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18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26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25 0 13쪽
8 7화 H 22.05.28 30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28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35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39 0 13쪽
» 3화 서연주 22.05.24 52 0 13쪽
3 2화 서연주 22.05.23 57 1 12쪽
2 1화 그녀 22.05.23 62 0 10쪽
1 프롤로그 22.05.23 77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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