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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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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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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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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차도일

DUMMY

음료가 나왔고 우리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맨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층에도 사람이 많은 건 마찬가지다. 도일은 앉아서도 말이 없다.

라떼는 한 모금 마시더니 손 대지 않는다.


나는 목이 말라서 반 컵을 한번에 비웠다. 이제 술이 깨는 모양이다.

연주는 맥주 반캔에도 취하는 체질인가보다.


도일을 단 칼에 쳐내려 한 게 실수였다.

조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달래면서 끊었어야했는데. 내게 악의를 품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도일은 지금은 감정이 상한 상태다.


자존심이 센, 자존심 밖에 없는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이제 좀 힘들게 됐다는 느낌이다.


일단은 달래야겠다. 달래서 좋게좋게 떨어지도록 해야지. 소름끼치지만.


"얘기 안 해요?"


목소리에 애교를 녹여서 생긋 웃었다. 도일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 웃는 건 좀 과했나. 미친년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저기 제가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열흘이나 입원했었거든요? 근데에 기억을 좀 많이 잃었어 가주구... 그 오, 오빠도 기억이 잘 안나요. 그래서 오빠가 갑자기 욕하니까 당황했던거구요."


"욕은 연주 네가 해달라고 해서 한 건데."


"네? 제가 그랬었나요?"


"어, 너 그랬어. 재밌어했잖아. 난 별로였는데. 내가 여자한테 욕이나 하고 다니는 이상한 놈인 거 같아서. 사실 난 욕 별로 안 하거덩. 그래도 네가 좋아하니까 해줬던 거야."


욕 잘하게 생겼는데?


"저, 근데 저희 집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너 PT 받았던 거 생각 안나? 우리 헬스장에서. 여기서 차로 십분 거리에 있는데 너 거기 다녔었어. 기억이 많이 안 나나보네. 네 정보 본 건 미안하다."


회원 정보를 왜 함부로 봐 이 새끼야.


"나 이쪽에선 꽤 유명한 트레이너야. 청담동 골드짐 기억 안나? 너 몇 개월 다녔었는데."


도리도리.


"글고, 우리 사이, 진짜 기억 안 나?"


"우리 사이요?"


"그래, 너랑 나랑 키스도 하고 애무도 했잖아."


도일이 성명이라도 발표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옆 테이블에서 남자가 푸웁 커피를 뱉어낸다. 사방에서 우리를 힐끔거리고 킥킥댄다.


"아 예 알겠어요. 좀 조용히..."


하 자괴감 ㅈ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고개를 못 들겠다.


이 새끼 이렇게 떠벌리려고 사람 많은 카페에 들어왔구나.


나 너하고 이런 것까지 다 했어. 그러니까 넌 내꺼야. 사람들아 얜 내꺼야, 이러려고.

기선제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의외로 마지막 선은 아직 안 넘은 모양이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갑자기 도일이 테이블 위로 상체를 숙이고 나와 눈을 맞춘다.


움찔했다. 연인모드 같다. 도일은 이걸로 우리가 화해한 줄로 아는 모양이다.


"연주야, 이번에 내 친구가 과천에 참치집 개업했거덩? 거기 참치가 아주 그냥 죽여주는데 오늘 가볼래?"

"차, 참치집이요?"

"어, 걔가 강남에 그 왜 유명한 참치집 있잖아 뭐더라, 황금참치던가, 거기 주방장한테 5년간 배웠잖아. 아주 좆 뺑이... 아 아니 많이 고생하면서 기술을 배웠거덩. 내가 가면 제일 좋은 부위로 얼마든지 준다고 했어. 공짜로. 내가 걔 좀 많이 도와주고 했었거덩."


거덩거덩. 저 등치에 귀여운 척 말투 듣기 싫어 죽겠네.


토나와. 내가 너랑 참치집엘 왜 가.


"오빠, 저기 나... 기억도 아직 안 돌아오고, 오빠랑 기억도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나 기억 영원히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아무도 못 만나요.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 수도 있대요."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거짓말을 술술 읊었다. 사실 백퍼센트 거짓말은 아니잖아.


"기억이 안 나?"

"네..."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끄덕끄덕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네에..."


도일이 주먹을 꽉 쥔다. 어금니를 힘껏 물어서 턱의 저작근이 무시무시한 빗살무늬를 만든다. 몸까지 부들부들 떤다.


"후우..."


도일이 숨을 뱉는 소리.


"그래, 그럼 오늘은 안 되겠네. 퇴원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니까 힘들겠다. 집에 가서 쉬어."


도일이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라? 어쩐 일이지.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가자."

"아, 괜찮아요 오빠. 요 앞인데 혼자 갈 수 있어요."

"내가 데려다 준다니까."


도일의 눈빛이 변했다. 더 거절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나를 강간해버릴 분위기다.


아 폭력적인 놈들 존나 싫어. 힘만 믿고 나대는 놈들 죽여버리고 싶어.


카페에서 나오자 도일의 손이 내 어깨에 슬쩍 올라갔다.


나는 티나게 몸을 피했다. 내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참이다.


"내가 싫냐?"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오빠를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좀..."


아파트 동 입구까지 가는 오륙 분 동안 나는 도일을 떨궈낼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안 떠오른다. 연주네 집은 102동인데 일부러 101동 앞으로 갔다.


"여기 101동인데 너네집 102동이잖아."

"아, 맞아요. 제가 기억이..."


도일이 픽 웃는다. 뻔한 수작하지 말라는 걸까.


"나 간다. 잘 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더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몇 발짝 걸어가던 도일이 돌아서서 나를 부른다.


"연주야."

"네?"

"욕은 계속해도 되냐? 계속 해 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저 또라이.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해서 도어락을 보자 내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오늘 개 같네.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언니 전화번호를 찾아봤다. 언니에게 전화를 거는 도중에 갑자기 숫자가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숫자 다섯개가 머리에 또렷이 떠오른다.


휴대폰 잠금 패턴도 그렇고 어째서 그런 정보들은 기억에 남아있는 걸까?


다른 대부분의 연주의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대뇌피질 깊숙이 박혀있는 정보나 기억들은 영혼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고 전달이 되는 모양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영혼이 바뀌는, 웹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났는데 뭐 그런 것 쯤이야. 굳이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띠리릭..."


키패드에 숫자를 입력하니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다리에 힘이 풀려 마루바닥에 모로 쓰러져 누웠다.

집안의 어둠에 묻힌 채 나는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차도일과 같이 있는 동안 생각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 누워있다가 침실로 들어가서 서랍장을 뒤져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저녁때지만 밥을 먹고싶은 생각보다는 빨리 자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잤다.


한밤중에 연희 언니가 방으로 들어와서 내 이마를 짚어 보고 나갔다.


언니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이 놓여 편안하게 다시 잠들었다.



***




나는 내가 싸이코패쓰라고 생각해 왔다.


미완의 싸이코. 아직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모든 싸이코가 살인을 저지르는가? 그건 아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살인' 은 필수 요소였다. 내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돼 있었는데다가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사람들과 관계 맺는데는 흥미가 없었고, 그들의 감정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은 목적물, 목표물이었다.


호랑이가 사슴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사슴의 감정이 궁금하지는 않은 것처럼.


나는 멋진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내게 즐거움을 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외모는 나에게 고백했던 여자애들을 집에 데려가서 옷을 벗기고 몸을 만질 때 유용한 도우미일 뿐이었다. 여자애들을 만지는 건 딱히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내 말 한마디에 웃음짓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진한 그 얼굴들이 좋았을 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애들은 내게 줄기차게 고백했다.


따라서 여자애들을 집에 데려가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래서 초등학교시절은 따분하나마 그런 즐거움 정도로 그냥저냥 지낼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 점심시간에 학교 뒷산으로 여자애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이번엔 내게 좀 다른 탐구를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으슥한 나무그늘에 앉아 달래거나 얼러가면서 옷 속에 손을 넣어 더듬으면 여자애들은 가만히 있거나 저항하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대체로 이 세가지 중에 하나의 반응을 보였는데, 뿌리치고 도망가는 애는 한명도 없었다.


나는 그게 언제나 신기했다.


내가 키스를 하고 여자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셔츠단추를 두개 풀어 손을 쓱 넣을때까지도 멀뚱히 바라보다가 내 손을 잡거나, 갑자기 울거나, 아니면 모른체 가만히 있는 애들이 나는 저으기 신기했다.


왜 도망을 가지 않을까. 나는 그들을 잡아먹을 작정이었는데.


나는 그 애들 가슴을 만지고 싶어 만지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때 나는 이미 여자의 가슴따윈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여자 가슴을 만지고 있었으니까.

내 또래 여자애의 밋밋한 가슴이건 중학생의 꽤나 발달한 가슴이건. 이미 중학생처럼 커 보이던 내겐 접촉하기 그다지 어려운 인체부분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나는 브라속에 손을 넣으면서 내 손에 칼이 들려있다 상상하고, 어떤 식으로 찔러 넣을때 보다 깊숙히 날을 박을 수 있을까, 가슴뼈를 어떻게 피해가야 심장에 직격으로 칼날을 박아넣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발갛게 달아오른 진지한 얼굴로 손을 놀리면 그 애들은 부끄러운 얼굴로 저항하거나 울거나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내 손에 들린 메스를 보지 못했다. 물론 메스는 내 눈동자 속에 있었겠지만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들고 나를 바라보던 애들도 그 속의 메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그들이 겉으로는 순진하게 끔뻑이는 내 눈동자 속의 메스를 깨달을 리가 없었다.


사람의 가슴뼈는 과연 모두 똑같을까, 겨드랑이 쪽에서 박아 넣는다면 뼈를 둘러 가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한곳으로 모은다거나 겨드랑이를 더듬는다거나.


"뭐 하는 거야?"

"아 간지러워 손 빼!"

"으....흑흑...훌쩍훌쩍..."


이런 말과 소리들을 들을 때까지.

그러면 나는 화들짝 놀란 것처럼 손을 빼고, 사과를 하고, 나를 얼빠지게 만든 그애의 미모를 칭찬하고, 집에 초대해서 비싼 초콜릿을 안긴다거나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비싼 엑세서리를 몇 개 사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고나서는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멀어지면 된다.


물론 쓰레기가 되는 위험 때문에 가급적이면 타 학교 여학생을 목표로 삼았지만, 한국에서 손꼽히는 비싼 사립학교인 내 모교 - 중, 고교가 붙어있는 - 에는 나만큼이나 되바라진 애들이 많아서 (물론 나와는 다른 의미로), 사실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기는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내 친구는 자연스레 메스가 되었다.


'그것'이 애타는 듯한 눈길로 내가 메스를 쥐기 원했다.


나는 가끔씩 그것이 싫어질 때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가 내가 탈출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전문의, 펠로우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은 의사로 성장해갔지만 나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걸 알았다.


(참고로, 나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어찌 된 건지는 모르지만 내 인적성 검사지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검사관이 나에게서 극도로 위험한 성향을 발견하고 부적합 판정을 내렸는지도 알 수 없다.)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한번 살인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려움 없는 끝을 향해.


그러다 이렇게 돼 버렸다.



그리고 서연주가 된 이후에, 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지만,

나는 어쩐지 진짜 서연주가 된 것 같은 허위의식 속에서 살고있다.


이것을 단순히 착각이라고 진단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서연주로서의 행동과 생활을 즐기는 기분을 순간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진짜 나였던 사람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포에 질리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서연주로 살아가는 시간이 일분일초 누적될수록 그런 공포도 점점 희미해지고 어쩌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두렵다. 나 자신이 사라질까 봐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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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4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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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63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47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48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6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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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혼돈 22.06.03 3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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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47 0 13쪽
8 7화 H 22.05.28 53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44 0 12쪽
» 5화 차도일 22.05.26 49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2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6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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