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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울프 님의 서재입니다.

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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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8,826

작성
22.06.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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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1화 테니스 클럽 (4)

DUMMY

나는 잔을 받을까 말까 순간 망설였다. 이 여자가 또 무슨 수작일까.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잔을 미처 받지도 않았는데 벌써 김유리가 제 손에 든 잔에 맥주를 따른다.

그만큼 술이 취한 건지, 아니면 취한 척하는 건지 잔이 앞뒤 좌우로 춤을 춘다.


김유리가 굳이 일어서서 이러는 통에 여러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런지 궁금해하는 표정들이다.


나는 마치 시험대에 올라선 기분을 느낀다.

내게서 뭘 원하는 건데요들?


내가 여기서 잔을 거절하면 김유리 쪽으로 여론이 기울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오늘 처음 모임에 나온 새파란 신입이고 김유리는 당당한 자기 지분을 가진, 아니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기성 회원이니까.


김유리가 설령 잘못이 있다 해도, 아까 아무리 남자 회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해도 내가 신입으로서 '건방진' 행동을 보인다면 내게 우호 지분은 남지 않을 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잔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이 미처 잔을 잡기도 전에 김유리의 손에서 잔이 미끄러져 내렸다.

테이블 끝부분에 착지한 잔이 쓰러지며 가득 담겨 있던 맥주를 내 바지 위로 남김없이 토해낸다.


"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지만 이미 바지 앞섶은 맥주를 한껏 빨아들여 푹 젖어버렸다. 내 얼굴에도 맥주가 튀었다.


"아아 시수예요 시수... 미안 미안해여."


김유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젓는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에 졸린듯 뜬 눈, 핑크색 반투명 바람막이와 흰색 미니 테니스 치마, 그리고 그 밑으로 뻗은 하얗고 매끈한 허벅지가 짜증나게 예쁘다.


내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이 의식돼서 더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김유리를 매섭게 노려본다.

실수일리가 없다. 일부러 잔을 놔버린 거다.


"아니, 아까부터 도대체 뭐 하는 거 임까? 님 우리 연주한테 왜 그러심까?"


별안간 송미영이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실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이쪽을 집중한다.

사실 조금 전 김유리가 비틀거리며 이쪽으로 올 때부터 흥미롭다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신 구 권력 투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누가 승자가 될지, 흥미로와 못 견디겠다는 표정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맥주를 김유리 머리 위에 부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방방 뛰는 미영을 말리는 입장이 됐다.


"이젠 아주 사람도 패겠슴다 김유리 씨? 잔이 깨져서 유리조각이라도 튀었으면 어쩔뻔 했음까? 경쟁이면 정정당당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님까?"


"네? 뭐라그요? 경쟁? 무슨 쏘리하느 그야?"


김유리 혀가 아까보다 더 꼬였다.

저거 취한 척하는 거 아냐?


"미영아, 그만 해. 난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았다.

화가 나서 손이 바르르 떨렸다.


미영은 평소에 김유리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쉽게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다. 삿대질까지 하면서 김유리를 비난한다. 김유리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고 그녀의 시녀들이 몰려들어 김유리를 에워싼다.

그제서야 덩치녀를 비롯한 츄리닝파들이 나서서 미영을 말린다.


백현우는 나를 보더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디론가 나간다.


나는 응급처치라도 해 볼 생각으로 화장실로 갔다. 아래가 다 젖어서 걷는게 몹시 불쾌하다. 푹 젖은 속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인다.


이래가지고 집까지 어떻게 가지.

맥주 냄새가 풀풀 풍길텐데.


나는 화장실 칸에 들어간 다음 팬티를 벗고 바지만 입고 나와서 세면대에서 팬티를 물로 헹궜다. 누가 볼까 싶어 조마조마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 개인칸에 들어가 바지를 벗고 쥐어짠다. 이미 맥주를 다 흡수해 버린 천은 단 몇 방울도 토해내지 않는다.

바지도 물에 헹궜으면 좋으련만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몸을 부르르 떨며 팬티와 바지를 다시 입었다. 벌써부터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하 미친 또라이 같은 게. 당장 뛰어가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다.


화장실을 나와서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백현우가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저 이거 혹시 필요하실까봐 사왔는데...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백현우가 쑥쓰러운듯이 웃으면서 비닐포장된 꾸러미를 내밀었다.

받아서 자세히 보니 여자 속옷이다.

그럼 아까 급하게 나간게 이걸 사러 갔던 거야?


고마운 마음 보다는 황당함과 창피함이 앞선다.


"이런 거 필요없어요."


나는 꾸러미를 다시 백현우의 품에 안기고 냉랭하게 쏘아붙인 후 눈을 내리깔고는 쌩하니 지나쳤다. 백현우가 보기엔 내 입이 댓 발쯤 나왔을 것이다.


아니 누가 그런 거 사다 달래?


내 속옷 사러 갈 시간에 김유리나 붙들고 있지 그래. 더 사고 못치게.


김유리에게 자꾸 어이없는 일을 당하다 보니 백현우가 가까이 오는 게 싫어진다. 백현우의 잘못도 아니고 백현우에 대한 감정도 나쁘지 않지만 그를 보면 김유리가 자동으로 떠올라서 괴롭다.


자리로 돌아가니 깨끗하게 정리가 돼있고 김유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다.

슬슬 한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1차는 여기서 종료인가 보다.


"너 바지 괜찮음? 술을 많이 쏟았던데."

미영이 묻는다.


"응 그럭저럭 집까진 갈 수 있겠어."


"김유리 저거 무지성 개돌하는 거 보니 지도 대책이 안 서는 모양이네. 하긴 니 얼굴을 보고도 대책이 선다면 그게 사람이겠음?"


미영이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넌 별소릴 다 한다. 난 관심없어."

"넌 관심없어도 김유리의 레이저 포인터가 널 찍은 이상...."


"나랑 같이 클럽 옮길래? 나 이제 여기 무서워서 못 다니겠어."


내가 말했다. 미영이 입을 헤 벌린다.


"와이 갑자기? 백현우 놔두고?"


"난 관심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여기 사람들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다 너? 저 불여우 저거 빼고. 니가 남자들 봐서 좀 참아보기 바람. 다들 집안도 괜찮고 매너 좋은 사람들이니까. 불여우 개짓거리 하나 때문에 이런 좋은 델 나가는 건 너한테도 손해임."


"내가 나가면 너도 따라 올거야?"


"왜 자꾸 나간다고 그럼. 멘탈 깨졌군."


"어 나 완전 멘탈 나갔어. 안 그래도 골 아픈일 많은데 여기서까지 이러니 못 다닐것 같아."


"어이구 우리 연주 씨 불쌍해서 어떡함."


송미영이 팔을 벌리고 나를 안아준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군다.

그게 어색하지 않고 기분이 좋다. 송미영 품안에 안겨서 펑펑 울고 싶다고 생각한다.


"백현우 온다."

미영이 말하고는 내 뒤를 보고 고개를 꾸벅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저, 연주 씨.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짓을 했죠. 기분 상하시라고 한 건 아닌데.

제 생각이 짧았네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백현우가 내 등에 대고 길게 사과를 한다. 굳이 저렇게 죄지은 듯이 사과 할 행동은 아닌데.


오늘 처음으로 얘기해본 여자에게 속옷을 사주는 행동은 변태로 오해받기 딱 좋은 행동이긴 하지만 이 경우엔 완전히 맥락없는 행위는 아니었으니까.

회식자리에서 같이 재미있게 떠든 '친분'을 바탕으로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진 행동이니까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는 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 얼굴로 그런 행동을 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뭐든 용인해주려고 하겠지.


"왜, 백현우가 너한테 뭔 일 저질렀음? 혹시...?"


송미영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나는 미영의 등을 가볍게 때려준다.


"나중에 말해줄게."



회식이 공식적으로 끝나고 이 차 갈 사람들끼리 따로 모이는 분위기다.

김유리가 남녀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나오자 백현우는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김유리는 백현우가 우리와 같이 서 있는 걸 보자 표정이 썩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노래방을 가자느니, 호프집에 먼저 들렀다 가자느니 일행들과 큰 소리로 떠든다.


덩치녀와 또 한명의 츄리닝녀가 자석에 끌린 듯이 우리쪽으로 슬슬 온다.

같은 극끼리는 밀어낼텐데 찐따 패션들 사이에서는 자연 법칙도 왜곡되는 듯.

아닌가 백현우 때문인가.


츄리닝파가 아닌 다른 문파 여자 두 명도 이쪽으로 왔다. 그 여자들을 따라 남자 세 명이 또 끌려온다.

백현우는 이 클럽에서 태양 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수많은 행성들이 주위를 도는.

백현우 말고도 잘난 남자들 몇 명 보이더만.

사람이 모이는 광경을 보고 몇 사람이 더 합류해서 어느덧 우리쪽 그룹이 제일 커질 모양새다.


"자 이차 갈 사람 여기 붙으세요."

"가요, 가요."


이차 제안이 나오고 덩치와 다른 문파녀들이 백현우를 끌고 제안자 옆에 붙는다. 다들 이차 갈 태세다.


"어때요? 갈까요?"

백현우가 안경과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미영아 넌 따라가. 난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내가 미영에게 말했다. 아래가 축축한 데다 라켓에 맞은 이마가 쏙쏙 아려와서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너 정말 컨디션 안 좋아 보임. 내가 데려다줌."

"아냐 아냐, 내가 운전할 수 있어. 얼마 걸리지도 않아."

"알써, 너 폰 좀. 내 전화번호 찍어줌."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정신이 말짱한 걸 보니 맥주 두 잔 분량의 알콜은 그 소동을 겪느라 다 날아간 모양이다.


집에 거의 도착해 갈 때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언니."

"너 지금 어디야?"

"거의 다 왔어."

"그래 그럼 조심해서 와."

"어 왜? 그 말하려고 전화했어?"

"그래, 올라와서 말하자. 끊어."


언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한데 다급한 느낌이 섞여있다.

무슨 일이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쁜 생각들이 일시에 머리로 쏟아져 들어온다.


혹시 차도일이 집앞에서 난동부리는 거 아냐?

불안함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차도일 이 개자식.


차를 세우고 급히 엘리베이터에 탔다. 혹시 무슨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귀를 쫑긋세웠다.

집에 도착해서 도어락 번호를 누를때까지도 조용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언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차도일은 아니다. 나는 그제서야 한 숨 돌린다.


거실 소파에 해일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동상처럼 앉아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섰다. 술 냄새가 해일의 우울처럼 거실에 자욱히 깔려있다. 언니가 나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본다.


"너 이리 와 봐!"


언니가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고 내 방으로 끌고 간다.


"너 갑자기 왜 이러는데? 해일이 한테 무슨짓을 한 거야?"

"......"

"말 안 해? 도대체 왜 그래? 무슨 문젠데?"

"... 문제는 없어. 그냥 난 우리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해."

"안 맞는다니, 그걸 이제 느낀다는 게 말이 돼? 니들 지난 2년간 별 트러블 없었잖아. 해일이 말로는 니가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 같다고 하는데. 똑바로 말해 봐 너 바람폈냐? 딴 남자 생겼어?"


어차피 해일이 이미 알고 있으니 언니한테 숨겨도 소용없다.


"... 바람 폈다기 보다는..."

"뭐어? 이 기집애가 진짜 바람폈나보네 쯧쯧 이 일을 어째... 어떤 놈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나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어쩔 수 없이? 그걸 말이라고... 혹시 너... 그때 너 업고 온 남자... 그 남자야?"

"......"

"맞구나! 이 계집애야 미쳤어? 어쩌자고 그랬어!"

"......"

"... 아휴 정말... 근데 너 술 마셨어? 음주운전 한 거야?"

"아니, 바지에 술을 쏟아서 그래. 갈아입어야지. 좀 나가 줄래?"

"테니스 레슨 받으러 간다더니 바지에 술이나 쏟고 해일이나 울리고 잘 한다. 미친년."


한참 나를 노려보던 언니가 방문을 쾅 닫고 나간다.


차라리 잘 됐다싶다. 생각지도 못하게 빨리 겪게 돼서. 이러면 이제 한 삼분의 일은 넘어간 거겠지. 이제는 양가부모한테 알려지는 일만 남은 셈이다.


나는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씻지 못해서 찝찝하다.

해일은 아무말도 없이 아까 그 자세로 앉아있다. 언니는 자기방에 들어갔나보다.

이해일, 넌 뭘 원하는 거야.

해일의 옆에 앉았다.


"해일아, 괜찮아? 술 많이 마셨어?"


나는 고개를 숙여 해일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해일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뭐라고 위로해 줘야 할 지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심란해진다.

가만 있는 사람을 때려 기절시켜놓고 괜찮으냐고 손 내미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는 해일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그만둔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그만두자.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다.


거실에는 시계초침 소리만 요란하다. 1분, 2분, 적막한 시간이 흘러간다.


해일이 고개를 들더니 나를 쳐다본다. 눈동자가 눈물로 안개낀것처럼 흐릿하다. 내게 촛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를정도다.

해일이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끌어당겼다. 나는 쉽사리 끌려갔다.

해일이 나를 끌어안는다.


"우리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내가 달라질 게. 더 잘할 게. 헤어지지 말자, 응?"

"......"


해일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하다. 목소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게 느껴진다.

가슴이 찡하다.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안겨 있는 것 말고는.

해일이 원한다면 안아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연인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일 같은 건.


"어 연주야? 내가 더 잘할 게 그러니까... 나연이랑 사귀라는 말은 하지마 응?"


해일이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바라본다.


"연주야?"

"......"

"말 좀 해봐. 난 나연이한테는 관심없어. 난 너밖에 없다고."

"......"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 말해 봐, 내가 고칠 게. 나한테 말을 해줘야 알지."

"......"

"왜 말이 없어. 이렇게 갑자기... 적어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은 해줘야 되잖아 어?"


해일의 언성이 높아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해일은 하나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거고 조금의 위로도 되어주지 못할 거다. 그래서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나한테 말 좀 해 달라고!"


해일이 소리쳤다. 언니가 방에서 나왔다.


"해일아, 괜찮아? 술이 좀 취한 거 같네. 지금은 얘기 나눌 상황이 좀 못되는 거 같다. 연주 너 뭐해, 해일이 좀 달래 봐."


나는 꿀먹은 벙어리같다. 도무지 무슨 말로 해일을 달래야 할 지 모른다.

억지로 한 마디 입밖으로 내 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미안해, 잘살아. 무너지면 안돼.


해일이 나를 노려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간다. 언니가 따라 나간다.


"너 집에 갈 수 있겠어? 잠깐만 기다려 내가 택시 불러줄 테니."

"괜찮아요."


해일이 대답하고 나간 후에도 나는 소파에 그대로 앉아있다.

해일이가 더 이상의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나가준 게 고맙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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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뭘 원해? (4) 22.06.26 48 0 11쪽
25 24화 뭘 원해? (3) 22.06.24 46 0 13쪽
24 23화 뭘 원해? (2) 22.06.22 46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42 0 13쪽
»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40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46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4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0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57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79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57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42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45 0 13쪽
13 12화 균열 22.06.05 59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35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33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46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44 0 13쪽
8 7화 H 22.05.28 49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40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47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1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66 0 13쪽
3 2화 서연주 22.05.23 7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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