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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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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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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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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1)

DUMMY

식당에서 길버트는 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홉스는 여전히 더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눈빛은 더 이상 광인의 그것은 아니었다.

헛간에서 잠시 얘기해본 결과 오히려 홉스는 놀라울 정도로 사려 깊었고, 또 예의범절에도 충실한 남자였다.

길버트와 홉스는 테이블에 마주 앉은 채 말없이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리버가 2층에서 옷을 찾아서는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때까지 거의 헐벗고 있던 세 사람은 일단 옷부터 걸치기로 했다.

잠시 뒤에 세 사람은 헛간에 갇히기 전의 단정한 차림으로 돌아왔다.

말 없는 차분한 분위기가 흘렀다.


리버와 토비가 길버트를 흘끔대며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대표로 질문하라는 시선이었다.

어차피 망설이고 있을 시간도 없었기에 길버트는 질문했다.


"우선 이 질문부터 해야겠군요. 홉스 당신은 어째서 우리들을 풀어준 겁니까?"


"그야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서요. 눈 앞에 곧 죽을 사람이 있다면 살리고 보는 것이 마땅하잖소."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콥스의 말에 따르자면 당신은 그의 형입니다. 어째서 형제가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그 놈이 하는 짓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소. 그래,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우리는 꽤나 우애 깊은 형제였소. 콥스는 아주 순박하고, 또 마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착한 녀석이었지. 하지만 그놈들이 등장한 이후로 완전히 변해버리고 말았소."


"...결국 다시 그 문제로 돌아가는군요. 예, 알겠습니다. 일단 그 문제부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대화에 진척이 없을 것 같군요. 홉스 당신이 말하는 그놈들이란, 혹시 헛간에서 콥스가 산신이라고 부른 자들과 동일한 자들입니까?"


홉스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산신이라고 불리곤 있지만, 아마 마을 사람들 중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놈은 한 명도 없을 거요."


"그 산신이라는 놈들의 특징을 제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여태 담담하던 홉스의 눈에 왠지 모를 두려움의 빛이 스쳤다.

길버트는 유의 깊게 홉스의 반응을 관찰했다.

홉스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내 말하길 주저하던 홉스가 어느 순간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홉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특징 정도는 말해보겠소. 우선 그들의 몸은 덥수룩한 까만 털로 뒤덮여 있소. 유일하게 털이 없는 부분은 상반신의 앞면이지. 그 맨둥맨둥한 상반신은 정말이지 인간과 흡사하더군. 하지만 놈들의 신체부위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역시 팔이오. 역시 인간의 팔과 비슷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살면서 그렇게 두껍고 억센 팔을 본 적이 없소. 심지어 그놈들은 얼굴마저 인간과 비슷하오. 어느 정도냐면, 밤에 얼핏 보면 좀 험상궂은 인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지.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과는 확실히 다르오. 그들의 얼굴은 온통 시커먼 빛깔이고, 또 입이 앞으로 지나치게 돌출돼있었소."


홉스의 말이 끝나고 길버트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길버트가 아주 낮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몸을 덮은 검은 털과, 인간과 지나치게 닮은 외모, 그리고 두꺼운 팔과 돌출된 입... 홉스씨, 그들은 상반신이 하체에 비해 월등히 비대합니까?"


"...그렇소만?"


홉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홉스의 대답에 길버트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혹시 그들은 양 팔을 앞 쪽에 축 늘어뜨린 채, 가끔 그 팔로 몸을 지탱하며 걸어 다니진 않습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홉스는 점쟁이나 무당을 보는 눈빛으로 길버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홉스의 표정을 본 길버트는 자신이 예상하던 것이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길버트는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은 채 고민에 잠겼다.

곁에 있던 세 사람은 길버트의 사유를 방해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식당 안에는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불쑥 길버트가 고개를 들었다.

세 사람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며 길버트는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아마 마을 사람들이 산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후인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곧 그 자리에서 가장 안달 나 있던 리버가 길버트를 채근했다.


"후라뇨? 대체 후가 뭐죠?"


"후는 요괴입니다. 홉스씨가 말한 여러 특징들을 전부 종합해보면 그들은 후가 분명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룰러의 백과에 그려진 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홉스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들이 산을 지키는 신성한 것들이 아니라 한낱 요괴란 말이오?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여태..."


"예, 당신들은 여지껏 요괴들에게 마을의 여자들을 바치고 있었던 겁니다."


홉스는 충격 받은 얼굴로 고개를 떨궜고, 입을 벌린 채 메마른 눈빛으로 오랫동안 바닥을 주시했다.

길버트는 그런 홉스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길버트는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홉스에게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버의 생각은 길버트와 조금 달랐다.

리버는 지금은 그런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놈들이 산신이건 요괴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지금 루나가 그놈들에게 잡혀 있다는 사실이에요. 놈들에게 잡혀간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 후라는 요괴들은 왜 여자들을 필요로 하는 거죠?"


"미안합니다 리버군, 저도 거기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룰러가 기술해 놓은 것은 후의 외양 뿐입니다. 생태까지는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홉스씨가 알겠네요! 당신들은 직접 그 빌어먹을 것들에게 여자를 바친 장본인들이잖아요. 말해 봐요! 대체 요괴들에게 왜 인간 여자가 필요한 거죠?"


홉스의 얼굴에 주름이 한껏 깊어졌다.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홉스는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테이블은 세 사람이 쓰러졌던 당시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홉스는 갈색 빛이 맴도는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웠다.

그리고 세 남자가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한잔을 비웠다.

토비가 놀란 투로 외쳤다.


"이봐! 그걸 마시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


"몇 잔 정도는 아무런 지장도 없소. 애초에 당신들이 유별난 거요. 이 독한 술을 그토록 아무렇지 않게 퍼마실 수 있는 건 당신들 뿐일 테니까."


길버트와 토비가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술잔을 비운 홉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끄러미 홉스를 관찰하던 길버트는 그 모습에 이제 홉스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판단했다.

길버트는 설명을 요구했다.


"저도 궁금하군요. 알고 있다면 설명해주십쇼. 어째서 요괴가 인간 여성들을 필요로 하는지, 또 마을 사람들은 대체 왜 자발적으로 여자들을 후에게 바친 건지 말입니다."


"그놈들이 데려간 여자들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모르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있겠군."


"말해주십쇼."


홉스는 다시 한 잔을 비운 뒤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몇 달 전 그들은... 아니, 이젠 정체가 드러났으니 그들이라고 할 필요도 없겠군. 후들이 몇 달 전 불시에 이 마을을 습격해왔소. 도무지 처음 보는 형태였고, 또 지나치게 강해서 우리들은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했지. 모두가 당황했고, 모두가 혼란스러운 순간이었소. 결론적으로 그 최초의 습격은 어찌저찌 끝나긴 했소. 물론 우리의 저항이 거세서 그들이 물러난 건 아닐 거요. 후들은 그저 시간이 지나서 물러나는 듯했소. 그렇게 공습이 끝난 후에, 우리들은 어떤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소. 마을 처녀 몇몇이 후들과 함께 사라져 있었던 거요."


그 대목에서 토비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이 베르미처럼 생겨 먹다 만 조잡한 자식들아! 마을의 여자들이 당했다면 목숨을 걸고 복수 해야 할 것 아니냐!"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해하오. 우리들도 처음엔 맞서 싸웠소. 길버트씨 당신은 마을 입구에 있던 목책을 봤소?"


"예 봤습니다.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치기엔 아주 견고하고 두껍더군요. ...혹시 그것들은 후들을 대비하기 위해 개수한 것입니까."


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토비를 바라보았다.


"믿을지 안 믿을지는 당신들의 자유요. 하지만 양심껏 말하건대 우리는 처음엔 상당히 분전했소."


"끄응... 처음에 그랬다면 지금도 그러고 있었어야지! 어째서 지금은 꼬리 내린 카니쿨라마냥 굴고 있는 거냐!"


"아돌프 양반. 당신네들 종족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이런 숲 속 마을에서 생을 이어가기란 인간들에겐 썩 쉽지 않은 일이오. 게다가 후는 하필 두 번째 만이 질 때쯤 습격해왔소."


홉스의 말을 듣고 있던 길버트는 문득 별채의 풍경이 떠올랐다.

수 많은 양털과 먼지 쌓인 방적기들.

잠시 그 모습을 떠올려 본 길버트는 결국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길버트가 말했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 건물의 별채에서, 그러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방적 공장에 양털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후들이 습격해 온 것은 양털을 벗길 시기였군요. 콥스의 말대로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 양모라면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했겠지요. 방적과 방직을 맡은 여자들이 없으니까요."


"놀라운 통찰력이군. 고작 공장의 모습을 보고 거기까지 유추했단 말이오? 그렇소 정확하오. 그 시기는 일 년 중 마을이 가장 가난한 시기였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양모를 생산할 수 없으니, 먹고 살기란 퍽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지. 굶어 죽지 않으려면 남자들은 사냥을 나가야 했고, 하다 못해 열매를 줍거나 강에서 생선이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소. 아돌프 양반, 그때 우리는 당장 먹고 살기에도 급급했소."


"...생계가 어려웠다는 건 알겠지만 너희들이 비겁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들을 싸그리 물리치고 나서 너희들끼리 살 길을 도모했어도 되지 않았냐!"


홉스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아득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했다.


"그랬다면 좋았을 거요. 놈들을 전부 죽였다면 이런 비극이 시작되지도 않았겠지. 실제로 나는 그런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소. 하지만 실제적인 문제가 있었소."


"실제적인 문제?"


"우리 마을은 그들에게 노출되어 있지만, 우린 그놈들의 거처를 몰랐던 것이지. 그래, 당신 말처럼 어느 날은 마을의 남자들이 전부 몰려나가서 놈들의 거처를 찾아 돌아다녔소. 전부 죽여버릴 셈으로 말이오. 결과가 어떻게 됐을 것 같소?"


"...못 찾은 거냐?"


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끝내 놈들의 거처를 찾지 못했소. 그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마을에 남겨둔 여자들 대부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소. 우린 철저히 농락 당했던 거요."


이번에 토비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토비는 과연 어떤 대처가 가장 옳았는지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홉스는 이제 거의 체념한 투로 말을 이었다.


"그 후에 우리는 저항하기를 멈췄소. 그리고 여자들을 바치기 시작했소. 그들이 습격해오는 주기는 일정했고, 그래서 선택한 도박이었지. 우리는 기일에 맞춰 마을 입구에 잠든 처녀를 눕혀 놓았소. 그 때도 당신들을 기절시킨 이 술이 쓰였지. 그들은 우리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소. 당연하다는 듯 잠든 여자를 메고 돌아가더군. 그 후 그들은 보름 정도는 마을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소. 우리들의 천인공노할 짓은 그렇게 시작됐소. 여자들을 대가로 보름씩 마을을 연명한 것이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길버트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홉스 당신은 그때 식당에서 루나양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 알겠군요. 그건 당신 나름의 배려였습니다."


"그렇소. 후에게 잡혀가는 걸 보고 있을 바에야, 내 손으로 깔끔하게 죽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봤소. 이곳은 외진 곳이지만 패트릭 영지와는 그리 멀지 않으니까. 당신들 이전에도 가끔 이 마을에 흘러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지. 당연히 그중엔 여자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고. 비겁하다고 욕해도 좋소. 실제로 비겁한 행동이었으니까."


식당 안에 짙은 우울함이 감돌았다.

리버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길버트가 약간 다른 주제의 질문을 꺼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마을은 그리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홉스 당신 말대로라면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급급해야 앞뒤가 맞겠지요. 저는 소동이 있기 전에 이 저택을 둘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저택이나 마을의 모습에서 딱히 궁핍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궁핍하지 않소. 저것 때문이오."


홉스가 식당 한 켠에 걸려있던 소쿠리를 가리켰다.

길버트는 그 소쿠리가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주친 남자들이 들고 있던 것임을 알아챘다.

콥스는 그것이 어업을 하는 일종의 그물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꼼꼼히 살펴봐도 그 소쿠리는 물고기를 퍼 올리기엔 너무 촘촘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쭉정이를 골라낼 때 쓰곤 하는 키에 더 가까웠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때 남자들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저도 콥스의 말처럼 조잡한 그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말하던 도중 길버트의 머릿속에 어떤 착상이 떠올랐다.

길버트는 그 착상에 집중했다.

잠시 후에 길버트는 그 소쿠리의 쓰임새를 알 수 있었다.


"혹시 저것은 사금을 채취하는 데 쓰이는 키입니까?"


"...이젠 당신의 머릿속이 무서워질 지경이군. 이번에도 정확하오. 우리들은 녀석들의 거처를 수색하던 도중 사금이 잔뜩 쌓여 있는 강을 발견했소. 저것으로 돌을 걸러 채취하는 것이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신들은 그래서 마을을 떠나지 않은 것이군요."


길버트는 마을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리버와 토비는 그때까지도 길버트가 당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토비가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금이라니? 이 잡것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은 것과 강에 사금이 있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토비군, 홉스씨가 말한 것처럼 당시 이 마을은 아마 극도로 가난했을 겁니다. 그리고 가난하다는 것은 거처를 옮기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예컨대 이만한 마을을 짓는 일에는 세대 단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 굉장히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따라서 여길 떠난다면 마을 남자들은 영지에 발을 붙이고 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럴 경우 밑천이 있는 편이 아무래도 낫습니다. 한 푼도 없다면 마을의 남자들은 그곳이 어느 영지건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할 테니까요."


설명이 끝나자마자 토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홉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놈들은... 고작 금을 더 캐겠다는 이유로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것도 마을의 여자들을 하나하나 제물로 바쳐 가면서!"


"그렇소 방금 길버트씨가 설명한 그대로요. 아돌프인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대개의 인간들은 한 명의 여자보다 한 줌의 금을 택하는 법이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세간의 인식을 말하자면 여자란 소모품에 가까운 존재니까."


"이런 미친놈들이!"


대화의 그 지점에서 토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탁자에 주먹을 내리쳤다.

콰직-하는 큰 소리와 함께 탁자가 반으로 갈라졌다.

비산하는 음식과 그릇들, 그리고 술병을 바라보던 홉스가 왠지 모를 공허한 눈빛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아돌프 양반. 그런데 당신은 해결사요?"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토비는 씩씩거리며 대답했고, 홉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잘됐군. 당신이 해결사라면 의뢰를 하고 싶소. 보수는 충분할 거요. 이 마을의 전부를 가지시오. 의뢰는 단순하오. 나는 당신들이 이 저주 받은 마을을 산산이 부숴주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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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행마 (9) 23.12.15 13 0 11쪽
88 행마 (8) 23.12.13 11 0 12쪽
87 행마 (7) 23.12.13 11 0 14쪽
86 행마 (6) 23.12.13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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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행마 (3) 23.12.08 15 1 13쪽
82 행마 (2) 23.12.08 13 1 11쪽
81 행마 23.12.07 16 1 11쪽
80 다면기 (13) +1 23.12.07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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