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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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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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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 (3)

DUMMY

정보 길드는 사실 길드라기보다는 조합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일반적으로 길드는 상품을 생산해낸다.

대장장이들나 목수, 혹은 농부, 광부, 어부들이 전부 그렇다.

그들은 각자 공예품을 만들어내거나, 들과 산과 바다에서 다양한 것들을 생산해낸다.

하지만 정보라는 것은 이런 종류의 생산과는 약간 궤가 다르다.

궤가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는 위에 나열한 것들과 달리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이 시점에서 일반적이고 선량한 시민들은 자연스러운 의문을 품곤 한다.

예컨대 콜텐의 명소인 절구바위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절구를 닮았다'는 정보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그런 정보가 아니더라도 바위가 그곳에 있다는 점.

바위가 현무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또는 바위가 무겁다는 점이 모두 바위가 가지고 있는 정보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정보에 포함된다.

실제로 정보 길드에서 다루는 것에는 지형지물에 관한 정보나, 여행자들을 위한 지리 안내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에서 얻은 정보는, 역시 다른 길드의 생산품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런 정보들은 결국 사람이 없으면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이다.

다시 절구바위 얘기를 하자면, 그것이 절구를 닮았다는 것, 그곳에 있다는 것, 성분, 광상, 무게, 온도 전부 계측할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생긴다.

자연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해석할 사람이 없으면 그저 자연으로 남을 뿐이다.

그저 자연에 불과한 것은 어떤 의미도 없으며, 의미가 없는 것은 정보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정보를 다루는 일은 생선이나 광석, 곡물을 다루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들은 해석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들이다.


바로 여기까지가 정보 길드에 2년 정도 몸을 담은 인간이 배우는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연차가 더 쌓이고, 길드 내에서 여러 정보를 다루다 보면.

마침내 위 모든 것들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보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정보를 해석하는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즉 정보의 본질은, 자연이 자연을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해석의 과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맛을 보고, 누군가는 만져 보며, 누군가는 듣는다.

그리고 정보 길드의 인간들은 보통 도둑들의 전통에 따라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길드원들은 이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명명하곤 한다.

마르코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말콤이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방법은 알고 있겠지? 정리는 내가 할 테니 질문은 네가 해라."


"...이럴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마스터의 사고 과정에서 누락된 정보라면, 제가 집어낼 수 있을 리가 없는데요."


마르코가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말콤이 다시 말했다.


"일반적으론 그렇겠지. 하지만 살면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베테거조차 반상 위에 정수만 놓았던 것은 아니야. 가끔은 그 노련한 기사도 헛수나 악수를 놔. 왜냐하면 그는 직접 돌을 놓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직접 돌을 놓아서 그렇다구요?"


"그래, 바둑에서 훈수를 두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옆에서 보면 수가 훨씬 잘 보이거든. 이 상황도 마찬가지야. 나는 지금 사안의 가장 중심부에 있어서, 오히려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정치인들이 시류를 읽기 힘들어 하는 것과 똑같지, 그들은 누구보다 시류의 한 가운데에 있는 놈들이니까."


"음. 강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말이군요."


말콤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대화 준비는 끝났다.

사실 마르코는 심리적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방법의 효율성에 대해서 의심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꽤 효과가 있는 방법이며, 항상 말콤 본인이 스스로에게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좋은 비유였어. 기꺼이 칭찬하지. 자, 그럼 처음부터 얘기해 보자구. 너는 강변에 서서 내가 헤엄치는 것을 잘 지켜보고 있어. 그러다 만약 내 주위에 어떤 부유물이 떠오르면 마음껏 뒤집어 봐. 시덥잖은 것이라도 상관없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영감은 원래 그런 것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자신은 없지만 명령이니 일단 시행하겠습니다."


그 시점에서 두 사람은 연초를 껐다.

말콤은 어디서부터 헤엄쳐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강에 뛰어 들었다.


"우선 이 사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부터 나열해 보자. 이것은 대외적으로 보자면 무벤에서 연초를 파는 사업이야. 아주 간단한 사업이지. 연초는 북부제야. 그 성분에 대해선 우리 깜찍한 쿠니 학자들이 밝혀내 줄 테고."


"잠깐만요."


말콤이 팔을 몇 번 휘젓기도 전에 마르코가 나섰다.

말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고작 이 얘기를 듣고 벌써 뭔가를 건져냈나?"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렌카라는 쿠니가 실제로는 상당히 터프한 성격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데요. 게다가 렌카는 저희보다 나이도 한참 많을 테니, 깜찍하다거나 귀엽다거나 앙증맞다는 표현은, 그가 이 자리에 없다고 해도... 아무래도 실례가 아닐까요?"


얘기가 끝나자마자 말콤이 사나운 표정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마르코가 공모자의 미소로 화답했다.

두 남자의 말 없는 응시가 이어진 후 다시 말콤이 말을 이었다.


"좋아, 적당한 환기가 됐어.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겠지.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말이야. 자, 다시 얘기해 보자고.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역시 사업의 주체인 자드의 목적이야. 그렇지?"


"그렇죠."


"우선 자드가 돈을 원한다고 볼 수는 없어. 그는 대륙을 가지고 있으니까. 고작 황금에 연연할 필요는 전혀 없지."


그 대목에서 잠시 고민하던 마르코가 입을 열었다.


"혹시 말입니다. 자드는 북부에게 모종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북부에는 파스토르가 있잖습니까. 어쩌면 이 사업의 주체는 자드가 아니라 파스토르일지도 모릅니다."


"거래의 주체는 항상 복수(複數)이긴 하지. 그래서?"


"그러니까... 자드는 이 연초를 유통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생겨서, 억지로 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뭐, 북부는 직접 통치할 수 없는 땅이잖습니까? 사업을 하지 않으면 파스토르가 말을 듣지 않겠다고 나온 건 아닐까요?"


말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마르코가 혹시 하는 심정으로 말콤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자 말콤이 말했다.


"이런 멍청한... 아니, 이 경우엔 나를 멍청하다고 해야겠군. 사과하지 마르코, 네가 그 정도로 멍청할 줄 몰랐던 내가 멍청했다."


"...처음에 분명 시덥잖은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하셨잖습니까."


확실히 그런 말을 하긴 했다.

마르코가 억울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말콤은 한숨을 한번 내쉰 뒤에 친절한 태도로 부하에게 설명했다.


"북부는 종교전쟁 때 철저하게 부서졌어. 재기할 힘이 없다는 말이야. 그리고 전쟁 후 남부에는 그전보다 훨씬 많은 부가 쌓이고 있지. 장담하건대 지금 남부에 남아 도는 식량만 원조해도, 북부인들 대부분이 훨씬 더 행복해 질걸."


"그런가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군.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파스토르가 자드에게 어떤 협박을 했다고 쳐 보자. 내용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자드에겐 간단한 해결법이 있어."


"뭐죠?"


"다시 한 번 군대를 모아 북부를 짓밟아버리면 돼. 이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 심지어 지금은 종교전쟁 직전처럼 제후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아냐. 하나로 모인 힘은 간단하게 북부를 부수겠지. 그러니 어떤 협박이라도 힘의 차이를 보여주면 그만이야. 반항적인 카니쿨라에게 몽둥이를 드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아. 그러니까 넌 정말 멍청한... 응?"


"올바른 지적이 아니었다는 걸 겸허히 인정하겠으니, 멍청하다는 말 좀 그만 하십쇼. 수잠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정적인 단어는 내뱉는 것 만으로도 사고 방식을 제어한다고... 어라? 왜 그러십니까?"


마르코가 말하던 도중 말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어서 서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내 그 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이 맴돌기에 탁자 뒤 공간은 너무 좁았다.

그래서 마르코는 말콤이 편히 맴돌도록 의자를 멀찍이 뒤로 뺐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자신의 상관이 탁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모습을 구경했다.

말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부에는 부가 쌓였어... 부는 이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썩어버리니까... 아니, 그렇지만 북부는 재건할 힘이 없을 텐데... 카니쿨라를.. 하지만... 그럼 광산을?"


처음에는 그나마 의미있는 주술관계가 성립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것은 문장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일종의 단어와 조사의 나열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마르코는 상관의 정신 상태에 지대한 의문을 품으며 그 쇼를 지켜보았다.

사실 꽤 흥미로운 장면이기도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말콤이 불현듯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말콤이 경악한 얼굴로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마르코! 그, 그 남자의 이름이 뭐였지?"


"바퀴를 발명한 인간 말입니까? 아까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참고로 제 무지에 대해 힐난하실 거라면 저는 마스터도 모르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기꺼이 항변하겠습니다."


"아니 이 멍청아! 그러니까... 자드의 방이 원래 누구의 방이었지?"


마르코는 이제 거의 실성한 것 같은 상관의 모습에 난처함을 느꼈다.

실성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말로 실성해버렸다면 이직을 고려할 작정이었다.

마르코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 방의 원래 주인이라면... 길버트 맥킨 황태자를 말하는 겁니까?"


"길버트! 맞아!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이 망할 자식! 정말 기억력 하나는 기가막히다니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몇십 년 전에 폐위 당한 황태자 아닙니까."


"얘기하자면 길어. 아직까지는 그것이 정확한 실머리인지 나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잠시만, 지금 돼지는 뭘 하고 있지?"


마지막에 말콤이 던진 질문은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일견 황당해 보였을 말이었다.

하지만 마르코는 정보 길드에서 언제 목축업까지 손을 뻗었냐고 대꾸하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콜텐에 있을 겁니다. 그 자식은 엉덩이가 무거우니까요."


"좋아 콜텐에 있단 말이지. 상황이 아주 잘 돌아가는군."


"저 마스터."


"응? 아 미안해. 멍청하다고 한 것은 진심으로 사과하지. 넌 굳이 말하자면 범재는 아니야. 확실히 그보단 더 위에 있어. 그 비상한 기억력만 봐도 알 수 있지. 사실 너도 천재일지 몰라.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뿐일지도 모르지."


말콤은 흥분해있었고, 마르코는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조금 진정되고 나면 말콤은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물론 그 설명의 과정에는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비하와, 다분히 인격 모독적인 발언이 섞여 있을 테지만.

말콤은 외투를 껴 입으며 말했다.


"너는 여기서 계속 쿠니들을 감시해. 아까 말한 것처럼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 제공해주라고. 성분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야."


"마스터는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황궁으로 간다. 찾아야 할 게 있거든."


"뭘 그리 급히 찾아야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마르코는 멀뚱한 얼굴로 물었고, 그제서야 말콤은 자신이 아직 부하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말콤은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말했다.


"황태자의 저서야. 젠장할, 자드 그 카니쿨라자식이 홧김에 태워버리지 않았어야 할 텐데."


그것이 말콤의 마지막 말이었다.

마르코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말콤은 방에서 나가버렸다.

방에 홀로 남은 마르코는 이미 이립을 넘긴 나이에 이직을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직종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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