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농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새글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6.30 23:56
연재수 :
164 회
조회수 :
10,834
추천수 :
573
글자수 :
1,068,691

작성
23.12.28 20:04
조회
10
추천
0
글자
13쪽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5)

DUMMY


얼마 걷지 않아 루나와 세 남자는 마을 앞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본 마을은 울창한 삼림 속에 폭 박혀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고, 그 탓에 마을의 전체적인 외곽이 전부 숨겨져 있었다. 저 멀리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인 듯했다. 마을은 일행이 걸어온 방향을 제외하면 어디서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마을 입구 앞에 있는 수풀에 몸을 감추고서 잠시 마을의 모습을 관찰했다.

마을의 크기는 상당해 보였다. 목책은 얼기설기 엮여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무 하나하나가 꽤 컸다. 유심히 마을을 관찰하던 길버트가 말했다.


"화전민들의 마을은 아닌가 보군요. 눌러 살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저 정도로 목책에 공을 들일 필요는 없었을 테지요. 마침 잘 됐습니다. 저 정도 규모라면 다른 산골 마을처럼 외지인을 배척하지는 않을 겁니다. 또 저흰 고작해야 네 명이니까요. 그런데..."


어정쩡하게 말을 끝 맺은 길버트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토비를 바라보았다. 토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길버트는 마주 바라보았다. 그때 리버가 말했다.


"이런 산골까지 저희에 대한 소문이 퍼지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럴듯한 사정만 잘 꾸며내면 하룻밤 묵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한데요. 음. 뭐랄까요."


리버는 요상한 침음 같은 것을 내뱉으며 말을 끝냈다. 그리고 유심히 토비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남자와 마찬가지로 루나 역시 토비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을 받던 토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런 젠장할! 설마 내가 문제라는 말이냐?"


토비가 노호하자 길버트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물론 저희야 토비군의 사람됨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신은 황혼 무렵 숲 속에서 불쑥 등장한 5큐빗에 가까운 아돌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타당한 의견이었고 토비는 객관화를 잘 하는 아돌프였다. 토비는 팔짱을 끼며 거세게 콧김을 내뿜었다.


"그럼 나는 숲에 남아 있을 테니 너희들끼리 다녀 와!"


"자자, 토비군 그런 얘기가 아니라..."


길버트가 토비를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말을 꺼냈지만 토비의 태도는 확고했다. 다만 설득의 시간이 그리 길어지지는 않았다. 네 사람이 있던 수풀 앞 쪽에 인간 남자 몇 명이 불쑥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길버트는 우선 토비의 귀부터 확인했다. 토비의 귀는 계속해서 쫑긋거리고 있었다. 길버트는 토비가 일부러 남자들의 접근을 얘기해주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한숨을 내쉬며 길버트는 남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네 사람을 힐끗대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길버트는 호의적으로 보이길 바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보아하니 마을에서 나오신 분들인 것 같군요."


남자들은 길버트가 앞으로 나서자 흠칫 놀라는 듯했다. 이내 가장 선두에 있던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명백히 의심 섞인 눈초리로 일행을 관찰했다. 물론 남자의 시선이 주로 머무른 것은 토비 쪽이었다. 남자는 경계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콥스라고 하오. 당신 말대로 저 마을에서 왔지.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길버트입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행 중 아돌프가 있긴 하지만, 저희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콥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그 말에 길버트를 시작으로 일행을 한번 쭈욱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한쪽 눈을 치켜뜬 채로 대꾸했다.


"비싼 검을 차고 있는 노련해 보이는 중년과, 이상하리만치 피부가 허여멀건한 여자와, 우락부락하고 사나워 보이는 아돌프와, 그리고 이..."


리버를 유심히 바라보던 콥스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이 소년까지. 아무리 봐도 당신네들은 너무 이상한 조합이잖소. 게다가 당신들은 방금 전까지 여기 숨어서는 우리 마을을 훔쳐보고 있었소. 굳이 내가 피해망상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이건 충분히 수상쩍은 일 아니오?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콥스는 눈썰미가 좋은 편인 것 같았다. 길버트는 콥스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마을 주민이었더라도 지금 콥스와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자신들은 너무 수상한 조합이었다.

콥스의 지적이 지나치게 적확했던 탓에 길버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적어도 남자들의 접근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대책을 세워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웠다.

길버트가 우물쭈물대고 있자 갑자기 리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리버는 당당한 태도로, 일견 남자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저희들은 수행원인데요."


"수행원? 누가 누구를 수행한다는 거냐?"


콥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길버트와 토비가 거의 동시에 리버를 바라보았다. 리버는 주변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야 물론 저희들이 수행원이죠. 저희는 레이디 루나님을 수행하고 있어요."


말을 끝낸 리버는 한 팔을 옆으로 쭉 뻗어 루나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흔히 귀족들이 더러운 것을 마주할 때 시종들이 취하는 행동이었다. 리버는 루나를 보호하듯 팔을 뻗었지만,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그 시점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남자들 쪽이기는 했다. 남자들은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아돌프에게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 아닌가요?"


남자들이 겁을 집어먹건 말건 리버의 태도는 확고했고 그 내용은 명확했다. 콥스는 조금 벙찐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디 루나님이라니. 그럼 그 여자, 아니지... 그 분이 귀족이시란 말이냐?"


"경거망동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이 분은 콘트 라르토 루나 글로렌 더들리 피제트 버너 피오 드 듀라트공이시니까요."


콥스는 당황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콥스는 사람 이름이 그렇게까지 길 수 있다는 점에 당황했다.

콥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대륙의 상식 모음집을 뒤적여 보았다. 하지만 그 모음집은 너무 얇았고, 내용 또한 형편없는 것이었다.

잠시 후 콥스는 어렴풋이 귀족들의 이름은 원래 길다는 것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그 이름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콥스는 야생이 그에게 가르쳐준 가장 효용 있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콥스는 다시 리버 일행의 모습을 꼼꼼히 관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꼼꼼한 관찰 끝에 콥스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이 경우 콥스의 관찰력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루나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된 것이었다. 어느 경우나 그렇지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역시 사람의 표정이다. 하지만 루나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그 표정은 혹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콥스는 그녀의 무표정에서 산골의 무지렁이들을 경멸하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실제 귀족이라면 꼭 저런 표정을 지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루나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설득력을 불어 넣었다.

아무튼 하얀 피부란 남부에서 일부 귀족과 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쯤은 콥스도 알고 있었다.


다음으로 콥스가 관찰한 인물은 길버트였지만, 그에게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었다.

리버가 말을 꺼내자마자 의도를 알아챈 길버트는 대화의 시작 지점부터 지금까지 쭈욱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콥스가 느끼기에 그것은 귀족 저택에 유구하게 머무른 집사들이나 지을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리버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귀족의 시종처럼 보였다.

리버의 연기력은 아주 훌륭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리버는 자신의 직업을 재구성 하는 일에 익숙했다.

예컨대 잡화점의 물건을 팔 때마다 리버의 과거 직업은 수시로 바뀌곤 했다.

낚싯대를 팔 때 리버는 과거에 조사였고, 새총을 팔 때는 사냥꾼이었으며, 꿀주를 팔 때는 주정뱅이의 이력을 가지곤 했다.

이번에는 귀족 자제의 시종이자 수행원이 됐을 뿐이다. 리버에게 그 역할을 연기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었다.


아직 토비가 남았지만 콥스는 애초부터 토비에게는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콥스는 살면서 아돌프를 만나본 일이 없었다.

만약 콥스가 아돌프에게 익숙한 인간이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토비는 네 사람 중 유일하게 당황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표정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콥스는 토비의 표정이 당황한 것인지, 혹은 자신들을 손톱에 꿰어버리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관찰을 끝낸 콥스는 의심과 비굴함이 혼재된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콥스는 남자들의 무리로 돌아갔다. 콥스를 포함한 남자들은 리버 일행에게서 좀 멀찍이 떨어진 후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때 갑자기 토비가 리버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이 자식아.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한 거냐?"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토비? 당연히 곧이곧대로 우리의 처지를 말할 수는 없잖아요. 저희들이 자드 공작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하면 저 인간들이 퍽이나 극진히 대접해주겠네요."


"어, 그거야 그렇군.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영 켕기는데."


토비가 머쓱하게 굴고 있자 길버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썩 괜찮은 얘기였습니다 리버군. 귀족이라고 하면 저희 사정을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저들도 아마 귀족이 어떤 목적으로 여행하는지 따지고 들지는 못할 겁니다."


길버트는 토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양심에 찔리기는 합니다만, 저희는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니잖습니까. 고작 하룻밤입니다. 그리고 대가 없는 호의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에 적절한 숙박료를 지불하면 되겠지요. 딱히 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제 생각엔 토비군 당신만 조심하면 될 겁니다."


"나 말이냐? 뭘 조심하라는 거냐?"


"아돌프들은 거짓말에 서툴잖습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인간은 거짓말에 능숙합니다. 리버군과 제가 말을 맞추겠습니다. 어차피 루나양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과묵함이라는 것은 귀족 자제가 마땅히 함양해야할 미덕이니까요. 그들은 알아서 오해해 주겠지요. 그러니까 토비군이 오늘 하룻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됩니다."


토비가 주둥이를 크게 꿈틀거리는 것과 동시에 콥스가 다시 일행 앞으로 걸어왔다. 코 앞에서 회의를 열 수는 없었으므로 토비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콥스가 일행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어, 그러니까 그것이... 조금 전 무례했던 제 행동과 언사는 부디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여긴 외진 마을이잖습니까. 저희들은 아돌프를 본 일도 귀족을 본 일도 없어서 그랬습니다. 예, 정말입니다."


한결 정중해진 태도로 말한 뒤 콥스는 자신의 뒤 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콥스의 시선을 받은 남자들이 황급히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콥스가 말을 이었다.


"저 그런데... 나으리들은 혹시 저희 마을에 묵으시려는 겁니까?"


길버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묵으시는 것이야 전혀 상관없지만 저희들은 나으리들을 손님으로 맞이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저희 나름대로 극진히 대접하기야 하겠지만 나으리들의 대접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잘 모릅니다."


"그리 거창한 대접은 저희도 원치 않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간단한 저녁 식사와 목욕 정도입니다. 물론 무전취식을 할 마음도 없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 충분한 사례를 해 드릴 겁니다."


목욕이란 말에 콥스는 루나를 한번 흘깃 바라보았다. 콥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그 정도라면야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농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6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3) 24.01.04 10 0 13쪽
105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2) 24.01.04 8 0 13쪽
104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1) 24.01.03 11 0 17쪽
103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0) 24.01.01 8 0 15쪽
102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9) 24.01.01 8 0 17쪽
101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8) 23.12.31 7 0 13쪽
100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7) 23.12.31 6 0 12쪽
99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6) 23.12.29 8 0 13쪽
»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5) 23.12.28 11 0 13쪽
97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4) 23.12.26 9 0 13쪽
96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3) 23.12.25 12 0 15쪽
95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2) 23.12.25 8 0 12쪽
94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23.12.24 11 0 13쪽
93 행마 (13) 23.12.21 14 0 12쪽
92 행마 (12) 23.12.19 10 0 12쪽
91 행마 (11) 23.12.19 10 0 13쪽
90 행마 (10) 23.12.17 10 0 15쪽
89 행마 (9) 23.12.15 14 0 11쪽
88 행마 (8) 23.12.13 12 0 12쪽
87 행마 (7) 23.12.13 11 0 14쪽
86 행마 (6) 23.12.13 10 0 11쪽
85 행마 (5) 23.12.11 12 0 15쪽
84 행마 (4) 23.12.09 16 0 15쪽
83 행마 (3) 23.12.08 16 1 13쪽
82 행마 (2) 23.12.08 14 1 11쪽
81 행마 23.12.07 17 1 11쪽
80 다면기 (13) +1 23.12.07 18 1 14쪽
79 다면기 (12) 23.10.03 23 3 12쪽
78 다면기 (11) 23.10.03 22 2 10쪽
77 다면기 (10) 23.10.03 23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