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농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새글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6.30 23:56
연재수 :
164 회
조회수 :
10,825
추천수 :
573
글자수 :
1,068,691

작성
23.12.21 20:14
조회
13
추천
0
글자
12쪽

행마 (13)

DUMMY

두 사람이 주문한 음식 몇 개가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스칼은 그중 재료가 불분명한 고기 스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당연히 재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스칼이 이내 고개를 들며 질문했다.


"우리가 감시 당하고 있다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 경비병 자식이 우리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왜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거야?"


"스칼, 우리가 나데자에 오기 전에 몇 개의 도시를 거쳤는지 기억해?"


"올가와 파올리 두 군데였지. 갑자기 그건 왜?"


"그래 두 군데였지. 그리고 그 작은 마을들은 롭스 산맥의 끝자락과 나데자 사이 최단 거리에 위치한 마을들이었고."


"그런데?"


"하지만 그 두 마을에서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들은 시노드는 커녕 우리의 위치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


스칼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조림을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흠, 그야 그 두 곳은 시골이잖아. 그러니 아직 거기까진 소문이 퍼지지 않았나 보지 뭐."


"아니 그럴 순 없어. 스칼, 나는 시노드에 대한 것이 일반인들에게 퍼졌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야. 네 말처럼 시노드는 가장 비밀스러운 동시에 가장 공공연한 야합이니까. 게다가 소문이라는 것은 언제나 페루스처럼 빠른 법이기도 하고."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이야?"


"소문의 전파 방향이 이상하다는 말이야. 생각해봐. 우리는 북부의 머리부터 이곳 정강이까지 정말 말도 안되는 속도로 달려왔어. 보통 소문은 행상인들이 퍼뜨리는 법이지. 하지만 아무리 썰매에 익숙한 상인이라도 우리보다 빨리 중앙 신전에서 여기까지 올 수는 없어. 그들의 썰매는 무거우니까."


"음. 그건 맞아. 내가 가장 좋은 카니쿨라들을 선별했으니 더더욱 그렇겠지."


스칼이 포크에 감자를 끼운 채 자랑하듯 흔들며 말했다.

스니블은 빙긋 웃으며 마저 설명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정상적으로 소문이 퍼졌다면 가장 빠르게 퍼진 경우라도 우리가 여기 도착한 후에나 퍼져야 해. 그러니까 머리가 소문의 근원지라면 목과 몸통, 그리고 다리를 통해 발까지 닿아야 하는 것이 순서겠지. 하지만 그 경비병은 어땠지? 네 번째 시노드의 결과와 추이까지 전부 알고 있었어. 심지어 우리는 네 번째 시노드가 끝난 직후 곧장 이곳까지 달려왔는데 말이야."


"어,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


스칼은 감자를 몇 개 집어 먹었다.

마침내 저작 활동이 소화 활동으로 바뀔 즈음에 스칼이 불쑥 소리쳤다.


"수도원의 누군가가 이곳까지 정보를 퍼뜨렸군!"


"조용히 해 스칼. 소리가 너무 커."


스니블의 지적에 스칼은 황급히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어서 스칼은 펍 내부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펍 주인은 가게 안 주방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스칼이 스니블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잠시만,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네 말처럼 우리는 누구보다 빨리 이곳까지 내려왔잖아."


"올가와 파올리 같은 작은 도시에는 없지만, 나데자같은 대도시에는 꼭 있는 건물이 뭔지 생각해봐."


"으음. 혹시 마탑인가?"


스니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수도원의 누군가 이곳의 마탑과 통신한 거야."


이번에는 스튜를 헤집으며 곰곰이 사안에 대해 생각하던 스칼이 이내 다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잠깐만. 근본적인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면, 소문이 퍼졌다는 게 왜 문제가 되는 거야? 어차피 네가 대주교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딱히 숨길 이유도 없는 안건이잖아."


"그래 소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북부의 머리에 있는 어떤 인물이 우리 동향을 이곳에 보고했다면, 이곳에 있는 누군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야. 꼭 어딘가로 전달하지 않아도 여기서 정보를 받은 인물은 지금 우리 둘의 동향을 살피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리고 그건 상당히 큰 문제가 되지."


스니블은 동향을 살핀다고 말했지만 스칼은 그것이 감시라는 말로 바뀌어도 똑같을 거라는 점을 쉽게 유추했다.

얘기 도중 스니블은 계속해서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스칼은 스니블의 가슴 안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스칼은 전부 깨달았다.

감시하는 눈이 있다면 스니블이 어째서 나데자에 오자마자 수도원부터 찾지 않은 것인지도 설명이 된다.

스칼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확연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가 스칼렛을 곧바로 찾아가지 않고 있는 것도 혹시 그런 이유 때문이야?"


"맞아. 그녀에게 이걸 전해주러 수도원에 들르면 그녀와 우리의 관계를 파악 당할 위험이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 만은 안돼. 스칼 너도 거기엔 동의하겠지."


"당연하지. 젠장할 일이 더럽게 꼬여버렸군. 어라? 그래! 약은 더글라스에게 전해주라고 하면 되는 것 아냐?"


스니블이 차분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글라스가 우리를 따라 나섰다는 건 수도원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이미 더글라스의 얼굴도 알려졌을 가능성이 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이야!"


스니블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칼이 그 침묵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 스니블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진탕 취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



어떤 여행객이 나데자에서 여관을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두 여관을 추천 받게 된다.

코이마나무 여관과 리기나무 여관이다.

두 여관은 많은 공통점과 한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두 여관은 전쟁이 끝난 직후 세워진 아주 유서 깊은 여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외에도 두 여관 모두 한꺼번에 수백 명의 여행자들을 받아들일 만큼 크다는 점.

그리고 크기에 맞게 종업원이 많다는 점이나, 전통이 있는 만큼 음식이 훌륭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언제나 코이마나무 여관이 붐비는 반면, 리기나무 여관은 한산하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리기나무 여관은 코이마나무 여관보다 숙박료가 세 배정도 비싸며 이것이 두 여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리고 두 여관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대비는 대부분 이 차이점에 기인한다.

물론 여관의 숙박료와 여관에 묵는 손님의 인품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데자에 사는 사람이나, 혹은 두 여관에 묵어본 적 있는 사람들은 분명 여실한 차이를 느끼곤 한다.

요약하자면 리기나무 여관의 손님들은 대부분 신사적이었다.

그리고 코이마나무 여관의 투숙객들은 야만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거칠었다.


스니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들은 도무지 품위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다.

어느 정도 술에 취한 놈들은 저마다 욕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누구나 다 화가 난 것처럼 굴고 있어서, 곧바로 드잡이질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개중 몇몇은 여급에게 질 나쁜 손장난을 치기도 했다.

총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식당은 낮에 지나왔던 시장의 소란스러움을 열 배 정도 부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관찰을 끝낸 스니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아주 만족스러운 분위기였다.

스니블은 정면으로 시선을 보냈다.

테이블의 맞은 편에는 이미 불콰해진 스칼이 연신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스니블 역시 가만히 호르체 한 잔을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스칼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의도가 명확했기에 스니블도 상체를 숙여 스칼 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닿을 듯한 거리에서 스칼이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이게 최선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될 것 같지가 않은데."


"그건 스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지."


스니블의 말에 스칼은 힐끔힐끔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내뱉듯 말했다.


"젠장 난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고!"


스칼의 투정에 스니블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스칼. 내가 보기에 이 여관의 인간들은 충분히 너를 화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스칼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스니블이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잔을 밀었다.

맞은 편에 있던 스칼에게만 보이는 교묘한 손놀림이었다.

테이블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맥주잔이 기어코 떨어졌다.

스니블은 황급히 몸을 숙이며 팔을 내뻗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잔을 잡기 위한 다급한 몸짓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스니블은 맥주잔을 공중에서 낚아 채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액체는 미처 잡지 못했다.


잔에서 쏟아진 술은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의 상체에 쏟아졌다.

그 호쾌한 장면과 스니블의 어설픈 연기에 스칼은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스칼은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맥주를 흠뻑 뒤집어 쓴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카니쿨라 같은 새끼가!"


남자가 크게 외친 것과 동시에 식당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때까지의 소란스러움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잠잠한 침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곧장 스니블의 멱살을 잡고 추켜세웠다.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타인에게 호의적인 사람도 감히 인상이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험상궂었다는 말이다.

반면 스니블은 누가 봐도 호리호리했고, 하얀 샌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결말이 될지는 명확해 보였고, 그래서 주변에 있던 몇몇은 스니블에게 다분한 동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스니블이 겁에 질린 비굴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로..."


남자는 스니블의 변명을 더 듣고 있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멱살을 한껏 들어 올린 남자가 반대편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스니블의 얼굴을 한대 후려갈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스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은 얼굴로 남자의 앞까지 걸어간 스칼은 멱살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더러운 손 내려 놔."


남자의 얼굴에 의문이 드러났다.

그리고 급변하는 상황에 여태 스니블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이제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스니블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남자는 스니블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스칼은 인상을 구기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너 이 새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시비를 거는 거야?"


물론 남자가 두 사람의 신분을 알 방도는 없었다.

스니블과 스칼은 조금 전 방 안에서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 입은 상태였다.

마침내 남자가 멱살 쥔 손을 풀었다.

남자가 대적할 상대가 누구인지는 명확해 보였다.

남자는 그대로 스칼 앞에 섰다.

마침내 손아귀에서 풀려난 스니블이 켁켁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스칼이 소리쳤다.


"스니블! 넌 빠져 있어! 나는 디스토니아 신의 이름으로 오늘 이 자식을 단단히 계도해야겠으니까!"


스니블은 순순히 스칼의 말을 따랐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스니블은 그 폭력적인 상황에서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당연하게도 스니블이 어디까지 물러났는지에 관해서는 식당 안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니블은 그대로 여관을 빠져나갔다.


여관에서 나오자마자 차가운 밤공기가 스니블을 덮쳤다.

지나치게 관심을 끄는 머리색도 감춰야 했기에 스니블은 얼른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잠시 후 식당 쪽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큰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스니블은 조용히 스칼의 무운을 한번 빌어준 뒤 수도원을 향해 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농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6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3) 24.01.04 10 0 13쪽
105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2) 24.01.04 8 0 13쪽
104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1) 24.01.03 11 0 17쪽
103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0) 24.01.01 8 0 15쪽
102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9) 24.01.01 8 0 17쪽
101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8) 23.12.31 7 0 13쪽
100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7) 23.12.31 6 0 12쪽
99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6) 23.12.29 8 0 13쪽
98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5) 23.12.28 10 0 13쪽
97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4) 23.12.26 9 0 13쪽
96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3) 23.12.25 12 0 15쪽
95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2) 23.12.25 8 0 12쪽
94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23.12.24 11 0 13쪽
» 행마 (13) 23.12.21 14 0 12쪽
92 행마 (12) 23.12.19 10 0 12쪽
91 행마 (11) 23.12.19 10 0 13쪽
90 행마 (10) 23.12.17 10 0 15쪽
89 행마 (9) 23.12.15 14 0 11쪽
88 행마 (8) 23.12.13 12 0 12쪽
87 행마 (7) 23.12.13 11 0 14쪽
86 행마 (6) 23.12.13 10 0 11쪽
85 행마 (5) 23.12.11 12 0 15쪽
84 행마 (4) 23.12.09 16 0 15쪽
83 행마 (3) 23.12.08 16 1 13쪽
82 행마 (2) 23.12.08 14 1 11쪽
81 행마 23.12.07 17 1 11쪽
80 다면기 (13) +1 23.12.07 18 1 14쪽
79 다면기 (12) 23.10.03 23 3 12쪽
78 다면기 (11) 23.10.03 22 2 10쪽
77 다면기 (10) 23.10.03 23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