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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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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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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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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9)

DUMMY


길버트는 눈을 떴다. 이어서 자신이 정말로 눈을 뜬 것이 맞는지 의심했다. 눈을 떴음에도 시야는 완전한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몇 번인가 몸을 뒤척인 길버트는 그러나 곧 그 짓을 그만두었다. 몸을 뒤척일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머릿속은 몇 백 개쯤 되는 바늘을 쑤셔 넣은 것처럼 지끈거리고 있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려던 길버트는 잠시 어이없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언제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길버트의 수족은 난생 처음으로 길버트의 요청을 싸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길버트는 다시 팔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모든 행동이 무의미함을 알아챈 길버트는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길버트가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해보려 했을 때, 바로 옆에서 리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버둥쳐도 소용없어요 길버트씨. 저희는 지금 꽁꽁 묶여 있거든요."


"...리버군? 살아 있습니까?"


"일단은요."


"살아 있었다면 혹시 제가 옆에서 뒤척이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그런데요?"


"그럼 다음부턴 제가 묶여 있다거나 하는 중요한 사실은 좀 일찍 말해주십쇼. 하마터면 어깨가 빠질 뻔했잖습니까."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움직이지말고 가만히 있어봐요. 줄은 못 풀지만 시야는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요."


상황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길버트는 일단 리버가 시키는 대로 굴었다.

리버가 뒤척이는 소리가 몇 번 들려온 후, 길버트는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서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이어서 매끈한 혀가 길버트의 코 근처를 낼름거렸다. 길버트는 기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끈적한 침과 더운 바람이 계속해서 길버트의 얼굴 위를 오갔다.

길버트가 비명을 지르려던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환해졌다. 길버트는 입에 안대를 물고 있는 리버를 발견하고 나서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길버트는 찜찜한 투로 치하했다.


"적절한 대처였습니다만, 다음부터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미리 얘기해 주십쇼."


"미리 얘기해야 할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에는 꼭 그렇게 할게요."


"...됐습니다. 그보다 리버군은 언제부터 깨어 있었습니까."


"저도 얼마 안됐어요."


그쯤에서 길버트는 일단 대화를 중단하고 주변을 관찰했다. 그곳은 헛간인 듯했다. 천장에 조명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조명이 너무 약했던 탓에 헛간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다음으로 길버트는 리버의 모습에서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리버는 속옷을 제외하면 알몸인 채 팔이 뒤로 묶여 있었고, 또 발목부터 무릎까지도 밧줄이 칭칭 감겨 있었다.

리버의 모습을 보며 길버트는 그것이 현명한 동시에 바보 같은 처사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반항을 막기 위해 무장을 해제시키고 단단히 속박해 놓은 것은 현명하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들일 바에는 그냥 곧장 자신들을 죽여버리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마침 리버도 길버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놈들이 왜 저희를 살려뒀을까요?"


"글쎄요..."


대답을 뭉개며 길버트는 그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콥스의 말로 유추해 봤을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루나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다. 이런 일을 벌여 놓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우습지도 않은 농담일 것이다.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길버트는 결국 콥스 일당의 목적을 알아낼 수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어서 길버트가 우울해 하는 사이, 리버는 어떻게든 밧줄을 끊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만두십쇼 리버군. 이런 두꺼운 밧줄을 그런 식으로 비벼서 끊으려면 1년 정도는 걸릴 겁니다."


"뭐라도 해 봐야죠.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요."


다시 리버가 무의미한 작업에 착수했을 때 헛간 한 구석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끄응..!"


길버트와 리버는 동시에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여태 완전히 잊혀졌던 토비가 있었다. 길버트는 안쓰러운 눈길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물론 리버와 길버트의 상황도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토비는 가관이라고 해야 할 모습이었다.

묶여 있는 것은 두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토비에게 들어간 밧줄의 총량은 두 사람에게 사용한 것의 다섯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상체부터 다리까지 빈틈없이 쭉 감겨 있는 밧줄 탓에 토비는 끔찍하게 큰 도롱이를 둘러 쓴 사람 같았다. 더불어 송곳니를 의식한 것인지 토비는 그 긴 입마저 꽁꽁 묶여 있었다.

주둥이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는 토비의 모습에 길버트는 적잖은 동정심을 느끼며 말했다.


"그들은 토비군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나 보군요."


"끙..!"


토비의 콧잔등이 잔뜩 구겨졌다. 그때 리버가 길버트 옆으로 꾸물대며 기어갔다. 길버트의 바로 옆에 도달한 리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길버트씨. 이쯤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는데요. 저희들이 왜 여기 있는 거죠?"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리버군.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음... 제가 술잔을 깨뜨리는 바람에 식당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까지는 기억이 나요. 그 후로는 전혀요. 그보다 그 자식들, 설마 제가 술잔 하나 깨뜨렸다고 이렇게까지 쩨쩨하게 나오는 건 아니겠죠?"


"그랬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연히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나 보군요. 그 사람들은 루나양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리버군과 토비군이 쓰러진 후에 그들은 루나양을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길버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버가 다급하게 헛간을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는 헛간 안에 루나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리버는 경악하며 외쳤다.


"이 베르미 같은 자식들이...! 길버트씨 그 놈들은 루나를 어떻게 할 셈이죠?"


"저도 거기에 관해서 생각 중입니다만 통 모르겠습니다. 콥스는 저희들 중 여자가 없었다면 무사했을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마을에 여자가 들어와서 안될 이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질 않습니다."


리버가 뭔가 대답하려던 순간 갑자기 헛간의 문이 벌컥 열렸다. 곧 횃불을 든 한 남자가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리버가 소리쳤다.


"콥스!"


콥스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리버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콥스는 불평하듯 말했다.


"이 자식들, 재갈과 안대를 씌워 놓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하여튼 일처리가 어수룩한 놈들이라니까."


"이 베르미 같은 자식아! 루나를 어쩔 셈이야!"


리버는 격렬하게 외치며 콥스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콥스는 리버의 돌격에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리버의 돌격이란 덩치 큰 에벌레가 다소 격하게 꿈틀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잠시 후 리버도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리버는 끊임없이 콥스를 향해 기었다. 리버는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가 묶여 있는 탓에 그럴 때마다 번번이 헛간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콥스는 입 안에서 건초를 내뱉고 있는 리버를 무심하게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그 레이디 루나님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군?"


다음 순간 리버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리버의 표정은 콥스에게 그 자체로 충분한 설명이 된 것 같았다. 콥스는 꼭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투로 빈정거렸다.


"하긴, 너희들처럼 초라한 행색을 한 귀족이 있을 리 없지. 만나본 적이야 없지만 나으리들의 여행은 으리으리한 마차 수십 대와 수백 명의 식솔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


마치 스스로의 말에 설득된 사람처럼 콥스는 말하는 도중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길버트는 그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바로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길버트는 콥스에게 자신이 황태자였으며,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비루한 순행을 몇 년 간 해왔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물론 길버트는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콥스를 자극하는 일에는 어떤 이점도 없을 것이다.

콥스는 헛간에 들어온 후부터 내내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콥스는 자신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것 같았다. 콥스는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깜빡하면 속을 뻔하기는 했지. 너희들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 근엄한 집사와, 촐랑대는 시종과, 과묵한 아돌프 해결사의 연기를 말이지. 뭐, 사실 너희들이 누구던 크게 상관은 없었겠지. 실제로 귀족이었어도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무슨 소립니까? 콥스 당신은 우리들이 실제 귀족이었어도 이와 같은 짓을 벌였을 거란 말입니까?"


"안될 것은 또 뭐야? 지금 네가 귀족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나?"


콥스는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콥스의 말처럼 실제로 달라질 것이 없었기에 폐위 당한 황태자는 입을 다물었다. 콥스는 자신의 촌철살인으로 길버트를 침묵시켰다는 것에 만족한 것 같았다. 길버트는 그런 콥스의 태도에 착잡한 기분을 받으며 재차 질문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식당에서 당신의 형은 마을에 절대 여자는 들일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또 당신도 루나양이 없었다면 저희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지요. 도대체 이 마을에서 여자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겁니까."


"놀랍군, 아주 놀라워.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침착하군. 차라리 인간미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구만. 그래 맞아, 우린 댁들에겐 볼일이 없지만 그 루나라는 계집에겐 볼일이 좀 있지."


콥스가 비아냥대는 투로 말했지만 길버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콥스는 약간 김이 샜다는 얼굴로 바뀌었다. 길버트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짓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입니다. 당신도 아마 속으로는 알고 있겠지요. 예, 잠시 얘기해 봤을 뿐이지만 콥스 당신은 멍청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이렇게 위험하고 부도덕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어쩌면 우리들이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길버트의 말 도중에 콥스가 콧방귀를 뀌며 끼어들었다.


"너희들이 해결해준다고? 터무니 없는 소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자연 재해야. 산사태를 사람이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이냐."


길버트는 콥스의 말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콥스는 의아한 얼굴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길버트라고 했나? 너는 정말 지나칠 정도로 이유와 원인에 집착하는군. 마치 적합한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마냥 말이야. 뭐 알려주도록 할까. 어차피 내일 이맘때쯤이면 더 이상 너희들을 볼 일도 없을 테니까. 그 루나라는 계집은 제물로 바쳐질 거야. 다시 볼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제물...입니까?"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길버트는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콥스는 길버트의 얼굴을 보고선 빙긋 웃었다.


"그래 제물. 위대한 분들의 제물이지. 오늘 너희들이 나타난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그 계집을 바치고 몇 주 동안 마을에 더 머무를 수 있게 됐으니까. 어떻게 보면 너희들에게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분들은 피 냄새를 아주 싫어하지. 그러니 오늘은 너희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 피 냄새를 묻히고 갈 순 없거든."


길버트는 콥스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대한 분들이라면 사람이라는 말이군요. 그 위대한 분들이 누굽니까. 이런 산 속에 악취미를 가진 귀족이라도 기거하고 있는 겁니까?"


"귀족? 귀족 같은 속물들과는 다르지."


거기까지 말한 뒤 갑자기 콥스의 표정이 험상궂게 바뀌었다. 콥스는 눈을 부릅뜨며 길버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분들은 산신이시다."


길버트와 콥스가 가만히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었을 때, 돌연 헛간 밖에서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콥스님! 달이 높이 떴습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합니다!"


"젠장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중얼거린 콥스는 망설임 없이 길버트에게서 몸을 돌렸다. 콥스는 마지막으로 길버트와 리버를 한번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종종걸음으로 헛간 밖으로 걸어나갔다. 헛간 문이 닫혔다. 조도가 지나치게 낮은 조명이 다시 헛간 내부를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길버트는 콥스가 사라진 후에도 콥스의 말에 대해 한참 고민했다. 문득 옆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버트는 고개를 돌렸다. 리버가 엎어진 채 건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소리에 집중한 길버트는 리버가 건초 속에서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을 내뱉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길버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길버트는 자책하며 리버를 위로했다.


"미안합니다 리버군. 이건 전부 제 불찰입니다."


리버가 건초 속에서 얼굴을 꺼냈다. 바늘 같은 건초로 범벅 된 얼굴로 리버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길버트씨 잘못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들 중 아무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잘 알지도 못하는 술을 멋대로 마셔버린 토비의 잘못이 제일 크죠. 토비가 처음에 그렇게 받아 마시지 않았다면 저도 마시지 않았을 텐데요."


"끄으응..!"


리버의 말이 끝나자마자 헛간 한 구석에서 격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리버는 그 신음소리가 '너와 길버트도 쓰러질 때까지 넙죽넙죽 받아 마시지 않았냐'는 항의의 목소리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리버는 물끄러미 토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단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뒤 다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길버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에 징후들은 많았습니다. 제가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면 미리 알아챌 수 있었을 겁니다."


"징후요? 제가 보기엔 평범한 마을인데요."


"사실, 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외진 마을이라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니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예, 이 마을은 수상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리버는 마을을 발견한 시점부터 현재 시점까지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상기해 보았다. 하지만 리버는 어떤 특이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어떤 점이 수상하다는 거예요?"


"리버군은 이 마을에서 여자를 본 일이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어라? 그러고 보니 한 명도 못 봤네요. 양젖을 짜던 것도 남자였고, 식당에서 음식을 차려준 것도 전부 남자들이었죠. 음. 확실히 이상한데요. 그런 일은 보통 여자들의 일이잖아요."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자들의 일이지요.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리버군과 토비군이 식당에 있는 동안 별채를 구경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수십 대의 방적기는 모두 벨트가 빠져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지도 수북이 쌓여 있었고, 공장 구석엔 가공되지 않은 양털마저 가득하더군요."


"어, 잘 모르겠는데요. 그게 왜 이상하다는 거죠?"


"방적기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한 겁니다. 리버군도 마을 중심에 있던 목축장을 봤잖습니까. 그 정도 규모의 목축 시설과 양 떼라면, 아마 이 마을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방적에 매달려야 할 겁니다. 방적기에 먼지 쌓일 틈이 없다는 말이지요. 결론은 한 가지 뿐입니다. 양털도 충분하고, 방적기와 방직기의 수도 충분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던 겁니다."


"방적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여자들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방금 콥스가 말한 산신이라는 단어와, 그것들이 피 냄새를 싫어한다는 말에 한 가지 더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길버트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없이 침울한 얼굴로 리버를 바라보았다.


"이건... 무서운 상상입니다. 어쩌면 루나양은 아주 끔찍한 짓을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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