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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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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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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 (2)

DUMMY

말콤은 서류 더미에 파묻힌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당최 알 수가 없군."


서류를 들여다 보고 있는 말콤의 미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서류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던 도중, 마르코가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마르코는 말콤이 있던 책상 바로 옆까지 걸어왔다.

말콤은 자리에 앉은 채 부하의 얼굴을 슬쩍 관찰했다.

무뚝뚝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말콤은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죽상인걸 보니 렌카는 오늘도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말입니다."


그 후에 잠시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마르코가 불쑥 의문을 표했다.


"마스터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저희들의 방식이 잘못된 것 아닐까요?"


"무슨 방식을 말하는 거지?"


"무슨 방식이라뇨. 어떤 요구도, 재촉도 하지 않고, 그 쿠니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고 있는 지금의 방식 말입니다."


"흐음, 마르코 나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예?"


말콤이 그때까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 놓았다.

그러고선 마르코가 서 있는 쪽으로 의자를 빙글 돌려 앉았다.


"앉아.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까."


마르코가 자리에 앉았다.

말콤은 부하의 가치관을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기로 했다.

사실, 아침부터 씨름하던 서류에서 눈을 돌릴 좋은 기회였다.

말콤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양쪽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린 편안한 자세로 말했다.


"마르코, 이 방식에 불만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이는군?"


"사실 그렇잖습니까. 성분을 분석하라고 데려왔더니 열흘 동안 밥만 축내고 있으니까요."


"음,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너도 사람을 부리는 입장이 되었으니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을 거야. 자유로움이야 말로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많은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쥐어 짜낸다고 해서 일의 능률이 올라가지 않는 않아. 오히려 그 반대지. 옆에서 독촉하고, 짜증내고, 초조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능률이 떨어지는 법이야. 특히 이번처럼 창의력이 필요한 일은 더 그렇지. 창의력과 조바심은 일반적으로 사이가 아주 나쁘거든."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도 어릴 때 잔소리를 듣고 있자면 의욕이 쑥쑥 내려가는 기분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 세 쿠니들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태평하단 말입니다. 뭐, 렌카는 모르겠지만 어린 두 놈 쪽은 아예 원래의 목적마저 잊어버린 것 같던데요."


"이런 질문을 해 보지. 마르코 너는 바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나?"


마르코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서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이나 바닥을 바라보았다.

끝내는 끙끙대는 신음 소리까지 내뱉은 뒤에야 마르코는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역사에는 그리 관심이 없으니까요. 근데 누굽니까? 바퀴를 처음 만든 그 똑똑한 놈은?"


"그야 나도 모르지."


말콤이 말을 끝내자마자 마르코가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말콤은 부하가 보내오는 황당함과, 다분히 폭력성 섞인 눈빛을 일축하고 말을 이었다.


"누가 발명했는지는 몰라도 그 발명 자체가 시사하는 바는 있지."


"뭡니까 그게."


"역사적인 발명이란, 결국 어떤 비범하고 초인적인 한 사람의 생각 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지.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수십 만 명의 범재들은 몇 십 년을 살아가면서도 역사에 단 한 줄도 새기지 못하고 사라지곤 하지. 지금 인간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의 모든 발명은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놈들 손에서 나왔지. 신기하지 않아?"


"가끔 천재들에게 놀라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렌카라는 천재를 그냥 내버려두란 말을 하려는 거야. 그 옆에 있는 두 명의 쿠니들에게도 관심을 꺼. 그 렌카라는 쿠니는 적어도 약학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천재잖아. 범인은 절대 천재를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 그러니 천재가 무엇에 영감을 받는지도 알 수 없어. 어쩌면 렌카는 어느 날 갑자기 두 쿠니들의 복슬거리는 꼬리 털을 보고 영감을 떠올릴지도 몰라."


마르코는 그것이 지나친 확대 해석이며, 동시에 어이없을 정도의 논리 비약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상관을 바라보았다.

말콤은 부하의 표정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고서 작게 웃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런 거야. 놀라운 일들이란 대개 정말 시시하고 초라한 발상에서 시작되곤 하지."


"동의하진 못하겠지만 일단 지시대로 따르긴 하겠습니다. 세 쿠니들에게 건초나 채소를 제공한다고 해서 길드의 재정이 휘청거리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그보다, 저희들의 사업 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마르코의 질문을 듣자마자 말콤의 얼굴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마르코는 그 표정에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며 재차 질문했다.


"표정을 보아 하니, 그 쪽에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요."


"그래 마르코, 이 쪽은 아주 심각해. 심각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솔직하게 고백하지. 나는 지난 열흘 동안 이 사업에 대해 머리를 굴리다가, 지금 아주 난처하고 비경한 의심에 사로잡힌 상태야."


"의심이요? 어떤 의심 말입니까?"


"내가 어릴 적 선택한 이 직업이, 사실은 내게 지독하게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의심이지."


말콤이 다분히 의도적인 울상을 지었고, 마르코는 참지 못하고 킬킬대며 웃었다.

부하의 웃음에 한결 유쾌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콤이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번에 우리가 사업에 대해 얘기한 것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나?"


"대강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점은 세 가지 정도였죠. 자드 공작이 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왜 굳이 저희 같은 놈들에게 사업을 맡기는지, 마지막으로는 어째서 무벤의 피오 교단을 감시하라고 하는지였나요?"


"정확해. 한번씩 느끼는 거지만 마르코 너는 기억력 하나 만큼은 비상하단 말이야. 좋아 그럼 네가 말한 것들 중 어떤 것이 실머리인지도 말해 봐."


말콤의 질문에 마르코는 자신이 처음 정보 길드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이루어진 수업은 정보를 올바로 다루는, 그러니까 일종의 제왕학 같은 수업들이었다.

생각의 그 시점에서 마르코는 살짝 긴장했다.

여태 직접 정보를 다루고 있던 말콤이 내용을 몰라서 자신에게 묻고 있을 리는 없었다.

따라서 이건 말콤의 시험이 분명했다.


마르코는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상기해 보았다.

방금 말콤이 말한 실머리는 꼬인 실타래의 첫 부분을 의미한다.

실마리라는 표현이 있지만, 말콤은 직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

말콤의 그런 고집이야 어쨌든 마르코는 그 방법론에는 동의했다.

아무튼 꼬인 실타래를 풀자면 일단 실머리를 찾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말콤에게 거미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콤은 정말 지독하게 꼬인 실타래에서도, 기어이 실머리를 찾아낸 후 귀신같이 풀어내곤 했다.

꽤 오래 고민한 끝에 마르코가 확실치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이 경우의 실머리라면... 아무래도 사업의 목적 아닐까요? 어쨌든 목적만 알아내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풀릴 테니까요."


"훌륭해. 역시 내 교육 방식은 틀리지 않았군."


말콤이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심을 말하자면 마르코는 내심 뿌듯했지만, 당연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르코는 최대한 담담한 어투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아직 그 목적을 알아내지 못한 것 아닙니까."


"알아내지 못한 정도가 아니야 마르코. 이건 내 인생에서 풀었던 어떤 실타래보다 복잡하게 꼬여 있어. 심지어 실머리를 찾으려고 실타래를 파고 들면 들수록,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느낌이야."


말콤이 이 정도로 난항을 겪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마르코는 의문스러워졌다.


"왜 그렇습니까?"


이번에 말콤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말콤은 가만히 책상 아래에 손을 집어 넣더니 연초함을 꺼냈다.

이어서 마르코에게 한 대를 건넨 후, 자신 역시 한 대를 입에 물었다.

두 사람은 능숙한 동작으로 램프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댔고, 이내 그들의 입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뒤 말콤이 마르코를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런 식으로 함께 피는 것은 한두 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말콤은 연초를 피울 때 만큼은 편한 자세로 있으라고 말하긴 했다.

그렇다고 쳐도 현재 마르코는 상관 앞에서 거의 반쯤은 드러누운 채 연초를 피고 있었다.

말콤은 그 격의 없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마침 무벤에 지렁이가 있어서 말이야. 여기 있는 동안에도 여러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지."


"무벤에 지렁이가요? ...그 친구가 대륙을 돌아다니는 방식은 언제나 감탄스럽군요."


"공감하는 바야. 나는 가끔 이 자식이 텔레포트 같은 고대의 마법을 쓰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지. 얘기가 샜군, 아무튼 지렁이의 말에 따르자면 이미 이 연초는 무벤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연초를 유통하는 것이 사업의 내용이잖습니까. 이미 유통되고 있다면 자드는 대체 뭐 하러 저희들과 사업을 하자고 나선 겁니까?"


"바로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이 친구야. 내가 열흘 동안 찾고 있던 해답도 거기에 대한 거야. 도대체 자드는 왜 이 사업을 벌이려는 거지?"


"잠깐만요, 그거 혹시 질문입니까?"


마르코의 말에 말콤이 사납게 웃었다.

이후에는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두 남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각자 연초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말콤이 의자 앞으로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이어서 모종의 은밀함이 묻은 눈길로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이봐 마르코, 갑자기 떠오른 것인데 말이야. 이렇게까지 사안이 지난하다면 오랜만에 정보 길드의 전통적인 방법을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데."


"...그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저희 둘이서 하자는 말입니까? 하려면 혼자 하십쇼."


"혼자 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은 너도 알고 있잖아?"


마르코는 그리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콤은 계속해서 지그시 마르코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마르코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콤은 활기차게 말했다.


"좋아. 오랜만에 한 번 해보자고. 그럼 나부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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