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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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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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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88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8.08 21:21
조회
420
추천
19
글자
12쪽

16. 미지未知를 찾아(4)

DUMMY

"호장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요."


"정말 잘 돌아오셨습니다!"


"자네들도.. 정말 반갑구만."


군을 거쳐 왕을 보좌하는 직속 호위 무장까지 올라간 덕문이 군인들을 모른다는 건 사실 말도 되지 않으리라. 덕문도 사람인지라 그중에서도 유독 뜻이 맞고 의리가 통하는 인물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뜻하지 않은 희소식에 동굴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시끄럽게 벅적거렸다. 새로 합류한 창현 일행을 제외하더라도 쉰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이 사람아. 에첵도 계시는데 자리가 너무 정신 사납지 않은가!"


덕문이 웃는 낯으로 정택에게 호통을 쳤다. 에첵은 여전히 이르웨스의 등에 매달려 있는데 아직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구 내 정신 좀 보게! 이르웨스여, 이쪽으로 오시지요."


덕문의 말에 이르웨스는 두꺼운 목을 끄덕거리면서 정택의 뒤를 따라갔다. 비록 군인의 신분은 아니었으나, 이르웨스와 하르착 역시 덕문과 친분이 있었기에 서로를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에첵께서 무사하신 걸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정택이 이르웨스를 인도하는 사이, 사십 줄에 접어들었을 만한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태(志泰)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군의 백인장(百人將) 출신으로, 대양 내에서도 남다른 무예를 보유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지금 그는 멀어져 가는 에첵의 뒷모습을 보며 매우 감동하고 있었다. 덕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여러 위험이 있었지만 하늘의 보살핌인지 무사할 수 있었네."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앉으시지요. 이야기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허허. 그럴까."


마음이 풀렸는지 덕문은 여정 동안 보이지 않던 웃음까지 지으며 그가 안내하는 자리로 갔다. 창현과 명모가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조용히 속닥거렸다.


"이거 일이 생각보다 편하게 풀리겠는데?"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야. 다행이지 뭐. 아까 너가 미쳐 날뛰지만 않았으면 더 완벽하지 않았겠냐. 그게 조금 아쉽다."


"이 자식! 누가 날뛰었다고..!"


"쉿."


창현이 급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댔다. 때마침 정택이 이르웨스와 같이 나타난 것이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이곳까지 오는 내내 정택의 눈치를 살폈던 명모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창현은 실소를 지으며 덕문의 옆에 가서 앉았다.


"이 청년들은 저와 에첵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준 은인들입니다. 어쩌다 같이 동행하게 되었으니 여러분도 잘 부탁합니다."


덕문이 공식적으로 창현과 명모를 소개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쑥스러웠던지 그들은 동시에 뒷머리를 긁으며 인사했다.


"이창현입니다."


"추명모라 부르쇼."


은인이란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창현과 명모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대번에 달라져 있었다. 이전 덕문이 대양을 이야기할 때, 마치 악의 소굴인 양 말했지만 사람 사는 곳이 어딘들 다르랴. 창현이 보기에 대양의 보통 사람들은 의외로 은원을 중요시하고 정이 많은 것 같았다.


"하하! 어쩐지 힘과 용맹이 보통 이상이라 궁금하던 참인데 에첵의 은인이라니! 아까 일은 너무 담아두지 말게. 나는 이미 털어버렸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칼을 맞댄 사이도 인연이라 생각했는지 정택이 사람 좋게 선뜻 나서서 먼저 악수를 청했다. 말을 편히 하는 데도 전혀 불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큭큭큭..."


명모가 어색하게 손을 잡고 흔드는 폼이 워낙 멍청해 보여 창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를 향해 눈을 흘기던 명모가 정택의 말을 받았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수다."


"하하! 괜찮아. 담아 두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대단한 실력이었네! 누구에게 배운 건가?"


"가르쳐 주기는. 그냥 혼자 터득한 거요. 누가 가르쳐줄 사람이 있어야지 말요. 만약 내 팔이 성했다면 노인장도 꽤나 애먹었을 거요."


"예끼! 이 사람 보게. 누가 노인장이라는 건가? 아직 이렇게 팔팔한데 말이야. 그리고 아까 애들이 만약 군인이었다면 애를 먹은 건 자네였을걸세. 근데 그 팔은 어쩌다 다쳤나 그래? 젊은 나이에 안됐구만."


유쾌한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택의 허물없는 태도가 확실히 분위기를 좋은 쪽으로 이끌었다. 명모도 은근히 띄워주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는지 덩달아 주절주절 말이 늘어지고 있었다. 덕문이 그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자자! 그런 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라고. 정택 자네, 말 많은 건 여전하구만?"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그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하지 않는가. 난 죽기 싫단 말일세."


"죽기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세히 말 좀 해보게. 어떻게 된 건가?"


"아하하핫! 그걸 얘기 안 했군. 깜짝 놀랄걸세. 우리도 먹고살려면 사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아까 함정을 봤겠지? 그게 바로 내 작품이라네! 땅 파느라 어찌나 애를 먹었는지."


"그렇군."


"아무튼 뭔가 있을까 싶어 나와봤는데 잡히라는 짐승은 없고 웬 머리 검은 짐승만 빠지다니, 이제 생각해보니 내 운도 참 박하군그래. 하하하! 사실 나야말로 깜짝 놀랐지 뭔가."


통쾌하게 웃어젖히는 정택에 반해 덕문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까 부딪힌 뒷머리를 무의식중에 쓰다듬었다. 잘못했다간 정말 골로 갈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대양에 있어야 할 자네가 왜 여기 있는가?"


실컷 웃던 정택은 웃음을 그쳤다.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덕문이 대양을 탈출하고 난 뒤의 상황을 먼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걸 뺀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군웅들은 곧 흩어졌네. 왕궁이 약탈당하고 이미 불타올라 문설주 하나까지 남지 않았기 때문이야. 생각해보게. 헐벗고 굶주린 군웅들이 뭐 볼 게 남았다고 계속 모여 있겠나. 당장 먹고 살 거리가 문제인데."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굴 앞에 모닥불을 지폈다. 밀려오는 산그늘처럼 정택의 목소리도 음울하게 깔렸다.


"하지만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들은 흩어지지 않았어."


"군인들 말이로군."


덕문은 저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그들은 흩어질 이유가 없었지. 이미 부와 권력을 가진 데다가 지닌바 무력이 곧 생계인 그들이 어딜 가겠나. 다만 왕이 사라졌으니 새로운 권력자를 기다릴 뿐이었지."


이번에도 덕문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새로운 권력자? 그게 대체 누군가?"


"자네도 눈치채지 않았나? 설마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설마.. 전재학?"


정택이 그의 말을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통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사실 폭동은 그놈이 주도한 것이나 다름없네."


덕문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이름을 한 번 더 되뇌었다.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여러 궁정 대신들 가운데서도 왕과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호장이란 직함 덕분에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사이였는데, 감히 그가 이런 무도한 짓을 벌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덕문은 멍해지는 정신을 겨우 수습했다.


"그 놈이.. 확실한가? 이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닐세."


떨리는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이번엔 옆에서 지태가 말을 받았다.


"전재학.. 그자는 전부터 군인들을 포섭해 왔었습니다. 군웅들이 그 정도로 모일 때까지 군의 개입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몰랐을 리도 없고요. 우리끼리의 얘기지만 그자가 뒤에서 군중들을 선동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실 왕께서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된 것도 다 그놈 때문이 아닙니까?"


"자네 말이 맞네. 구린내가 너무 많이 나. 아무튼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전재학 그놈이 군대를 완전히 장악했다네. 본색을 드러낸 거지. 전에도 그놈 권력이야 대단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왕이나 마찬가지야. 그에 반하는 대신들이 여럿 죽어 나갔다고 하면 믿겠는가? 군대까지 장악한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힘은 대양에 없다고 봐야 하네."


누가 소리 내어 읊어주지 않아도 덕문은 알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반역이라고. 생각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고 털이 곤두서는 단어였다. 단순히 삶이 고단한 하층민의 봉기였다면 이토록 분하지는 않으리라


재물을 써서 더 큰 재물을 끌어모으고, 다시 그것으로 사람을 부려 힘을 기른 자. 술과 마약과 여자로 왕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 국정을 농락한 자. 그게 전재학이란 자였다. 그는 본래 수단이 치밀하고 결단력 또한 과감하여 남의 눈에 띄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기실 일대 효웅이라 불러야 마땅한 인물인 것이다.


단순히 제 배만 불리는 줄 알았는데, 감히 반역을 준비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 아둔해 보였다. 하지만 그만 어리석었다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왕에게 충성을 바치던 다른 대신들도 눈치채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대양 사람들의 안색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대양의 어두운 앞날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덕문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서 떠난 건가? 자네들마저 떠나면 대양은 어떡하라고?"


"별수 있겠나? 완벽히 자기편이 되어야만 살려두는데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거기 남아 있겠냐 말이야. 뜻은 있으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도 아직 많아. 우린 운이 좋았던 거지."


비록 왕의 일을 돕는 자는 아니었으나 뛰어난 학식과 인품으로 세간에 호평이 자자했던 정택은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 군 내에 퍼져있는 인맥 덕에 뜻이 맞는 다수의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대양을 탈출한 것이 벌써 한 달이 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대양은 예전의 대양이 아닐세. 모든 것이 전재학 그놈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보자면 지금의 대양은 백색만이 살아남는 도시가 되었다는 거였다. 사람을 흑과 백, 두 가지로 나누는 것도 위험한 일일진대 다른 한쪽마저 완전히 말살하려 한다는 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권력에 복종했다. 그렇지 않다면 치안을 유지하던 군인들이 칼끝을 돌려 자신들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왕의 집이 불타는 사달이 난지 이제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대양은 어느새 전재학의 독재 체제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기가 막힌 현실이었다.


"그래도 반감을 느끼는 군인들이 꽤 된다는 게 다행일세. 계획을 실행할 확률이 높아졌어. 그리고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이들도 많아. 그래서 진작 탈출했음에도 이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


"자네들처럼 탈출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그렇지. 그런 김에 자네도 찾아볼 겸 했지. 자네가 어느 구석에서 객사할 위인은 못 되지 않은가?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말이야. 내 운은 박하다고 해도 자네 운수는 대통인가 보네. 하하하!"


정택이 애써 웃어 보였지만 분위기는 별로 나아지질 않았다.


"내 운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만난 건 정말 다행한 일이지. 자네, 대단한 일을 했네."


"어디 대단하다 뿐인가. 기왕이면 이렇게까지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해주게."


두통이 치미는지 덕문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돌연 정택을 바라보며 물었다.


"계획이 있다 그랬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정택이 말했다.


"간단해. 암살이네."


이어지는 말을 듣고 덕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전재학. 그놈만 죽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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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1) +2 21.08.18 379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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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미지未知를 찾아(4) +2 21.08.08 421 19 12쪽
60 16. 미지未知를 찾아(3) +2 21.08.04 429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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