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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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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294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8.04 19:25
조회
429
추천
16
글자
12쪽

16. 미지未知를 찾아(3)

DUMMY

"일단 괴물 놈들은 아니고, 좋은 뜻으로 온 것도 아니고?"


칼을 빼 들고 내뱉은 첫 마디가 이거였다. 송진처럼 찐득거리는 적의가 그의 말끝마다 매달려 있었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란 말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상황이 그랬다.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면면을 보아하니 다들 잔뜩 굳은 얼굴에, 손에는 무기까지 쥐어져 있는 마당인지라 명모는 대뜸 싸움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나타난 이들은 전부 다섯 명이었다. 머릿수만 보아선 확연히 열세였다. 그러나 강철을 두드리는듯한 혹독한 망치질로 정련되어온 명모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작지만 이물스럽게 빛나는 칼을 손끝으로 돌리며 명모가 그들을 쓸어보았다. 눈빛이 그의 칼처럼 오연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성미가 어디로 가겠는가.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다시 외쳤다.


"어이.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날 잘못 잡았어. 누구야 니들?"


슬금슬금 다가서던 그들은 명모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외려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명모는 그 미묘한 기색을 바로 알아챘다. 무기라고 집어 든 창을 심하게 떨어대는 모양새와 그만큼 흔들리는 눈빛들을 보면 그것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기세에서 압도된 이상 머릿수는 무의미해진다. 토끼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그사이에 떨어진 늑대 한 마리를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 순간 명모는 한 마리 사나운 늑대였다.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명모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좋았다. 지난 몇 달간 줄기차게 휘둘러온 칼을 시험할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괴물이 나타날 때면 창현이 전부 처리해버리는 통에 사실 그는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욕구불만뿐이면 다행이련만 그보다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어떤 응어리라고 해야 했다.


"뭐라는 거야 너는? 호장님은 괜찮아? 좀 세게 던진 거 같은데."


그때 창현이 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왔다. 한 번에 박차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흙이 무너지며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조금 지체된 것이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면서 명모에게 투덜거리다가 뒤늦게 지금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창현의 눈이 둥그레졌다. 갑자기 함정에 빠진 것도 황당한데 올라와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인물들이 창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모양새가 영 어설픈 게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어처구니없는 상황임은 확실했다. 명모는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묻는다. 니들은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지랄이냐?"


표정을 굳히며 명모가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창현을 돌아보며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 이제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사고를 저지르기 직전 장난꾸러기의 얼굴 같았다.


"역시 말로는 안 되겠구만."


"어떻게 하려고?"


"보고만 있어 짜샤."


"야 잠깐만.."


창현이 어떻게 말릴 새도 없이 본격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그였다. 건들건들 목을 한 바퀴 휘돌리자 뚜둑,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살벌했다. 몸 상태는 더없이 좋았다. 잃었던 몸의 균형 역시 그간의 뼈를 깎는 수련으로 상당 부분 되찾은 상태였다.


"가볍게는 안 끝날 줄 알아!"


그리 빠르지 않던 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뛰는 와중에 한 번 크게 발을 구르자 허공으로 몸이 솟구쳐 올랐다. 그대로 구덩이를 지나친다 싶은 순간, 명모의 신형이 어느새 창을 든 자들 앞으로 번개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늑대의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창을 든 이들은 당황했는지 어어,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허공에서 시선과 시선이 얽히고, 곧 칼과 창이 맞부딪히며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요란히 퍼졌다.


따다닥!


반사적으로 내민 창에 힘이 실렸을 리가 없다.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창대를 추스르느라 바쁜 그들 앞에서 명모는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일 회전한 칼이 아직도 허둥거리는 창을 때렸다.


딱!


창이 훨훨 날아 옆에 있는 바위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 창의 주인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충격을 받아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명모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훌쩍 뛰어 거리를 벌린 뒤 기다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쇄도해 들어갔다. 창이 가진 이점을 놀랍도록 철저히 무력화 시키는 움직임이었다. 재게 놀리는 발밑으로 거칠게 흙이 튀었다.


그는 자신감이 차오름을 느꼈다. 격돌 직후,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균형이 무너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팔에 힘이 빠지지도 않았다. 어느새 도착한 그들 앞에서 명모가 칼을 휘둘렀다.


`견심수류(見心水流)!`


쉬이익!


이가촌의 `칼 귀신`이라는 말은 그가 만든 견심수류도법에서 비롯했다. 유려하게 선을 수놓듯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창현은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과연!'


바람을 가르며 쏘아낸 예리한 파공음이 먼저 만든 선들의 뒤를 쫓았고 거기에선 삼엄한 기운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창을 든 이들은 그 칼에 서린 기운을 감히 맞받지 못하고 분분히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한 바퀴 허공을 가른 칼은 다시 반전하여 물처럼 도도히 흘렀다. 작은 개울물처럼 졸졸 거리다가도 빈틈이 드러나면 광폭한 급류가 되어 세차게 몰아쳤다.


명모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근육을 더욱 단단하게 조여나갔다. 수련의 성과가 눈에 보여서인가. 흥이 오르며 그에 따라 움직임이 더욱 경쾌해졌다.


다시 뛰어올라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비트는 중에, 명모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창현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웃는 듯 마는듯한 미묘한 표정. 몸이 돌아가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명모는 정확히 봤다고 생각했다.


`쳇!`


그동안 창현을 보면 피어오르던 이상한 감정. 그것의 정체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열등감과 질투심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해 지난 시간 그토록 처절히 수련에 매진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버둥 치면 칠수록 `쓸모없음`이란 단어만이 짙어지고, 그럴 때마다 창현은 언제나 저런 시선으로 조용히 바라봐 주었었다. 불편했다. 사실 그보다는 더러웠다.


그런데 칼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런 생각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 아닌가.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해지듯이 명모는 그간 쌓였던 응어리를 풀어내는 심정으로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어떤 배설감이라고 해도 좋을 느낌이었다.


"합!"


크게 기합성을 내지른 뒤에 한바탕 장내를 휩쓸고 지나간 칼을 되돌려 다시 쏘아냈다. 창을 든 인물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창 기세를 올려 나가던 칼이 중간에서 갑자기 저지당하고 말았다. 어떤 이의 칼이 정면에서 그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캉!


날카로운 기음이 고막을 건드렸다. 명모가 쭉 찢어진 눈으로 잡아먹을 듯 쏘아보았다. 중년에 접어든 듯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사내였다.


"해보자 이거냐?"


연배로 치면 한참이나 위겠지만 칼을 섞는 마당에 어디 나이가 대수인가. 의당 말이 곱게 나갈 리 없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에 거친 호흡, 눈빛은 맹수의 그것처럼 강렬했다. 그러나 옅은 살기마저 드러내 보이는 명모 앞에서도 중년인은 시종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칼을 가로막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열이 바싹 오른 명모가 얼굴을 붉히며 본격적으로 힘겨루기를 시작하려 했다. 그때 중년인의 입이 열렸다.


"대양에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자넨 누군가?"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우린 거기로 찾아가는 중이라고.`


바보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명모는 계속 힘을 썼다. 칼을 쥔 손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안 되자 이번엔 무게중심을 앞으로 급격하게 이동시키며 쳐내듯 팔을 흔들었다. 고착된 상황에 변화를 주려 한 것이다.


끼기긱.


하지만 중년인은 요지부동, 마치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쇠끼리 비벼지는 마찰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지는데, 그때 뭔가 깨달은 듯 명모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잠깐! 아저씨 대양을 알아?!"


이제야 그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명모가 외친 다음 순간에, 마침 뒤에서도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택!"


덕문의 목소리였다. 눈앞에서 적과 칼을 맞대고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명모는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운에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덕문을 부축하려는 하르착과 이르웨스가 먼저 보였다. 그리고 끝내 그들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키는 덕문이 보였다.


"정택!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경악에 휩싸인 덕문이 몸을 바로 세우고 다시 한번 외쳤다. 진정 이런 식으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친우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어조에 절절히 묻어 나왔다. 외침이 울려 퍼진 후, 명모는 맞대고 있는 칼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덕문.. 살아있었나!


"정말 자네가 맞나?"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초연했던 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살아 있었던 것이다. 막연히 어딘가로 달아나 살아 있을 거라 여겼지만 확인할 수 없던 사실. 그리고 마음속 어두운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던 불길한 예감들... 이 모든 것들이 이 순간 일시에 해소되었다.


"그래.. 내 그럴 줄 알았지!! 믿고 있었다네. 친구. 믿고 있었어!"


정택은 팔에 힘이 빠져 더 이상 칼을 들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칼을 떨어뜨리며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반대로 얼굴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혼자 허공에 팔을 뻗고 있는 모습이 우스워 명모도 어정쩡하게 팔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활극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다. 명모는 괜히 바닥에 침을 탁 뱉고 뒤돌아섰다. 그의 뒤엔 아직도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창현이 있었다. 입맛이 썼다. 명모는 침을 한 번 더 뱉었다.


"다 했냐?"


"퉤! 그러게 진작 좀 말해주면 오죽 좋아!"


"어휴... 병신."


"너 뭐라 그랬어! 욕했지 지금!"


"아냐. 얼른 가자고."


"이런 젠장! 욕한 거 다 알아!"


"아니라니까?"


큰 소리를 내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어느새 덕문이 그들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창현은 씩씩거리는 명모를 떨어뜨리고 감회에 젖은 덕문을 바라보았다. 주저앉아있던 정택이 일어나 다가오고는 모습도 보였다. 창현이 말했다.


"설명은 나중에 해주실 거죠?"


정택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덕문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곧 정택과 덕문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들은 한참을 울면서 상봉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루해진 명모가 한마디 하기 전까지.


"아 안 가요?! 해 떨어지겠네."


그제야 장내를 정리한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떠나갔다. 정택이 거처로 삼고 있다는 동굴을 향해서였다. 반나절이 조금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땅거미가 깔릴 무렵 즈음 그들은 목적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어느 산기슭 아래에 자리한 커다란 동굴이었는데, 거기엔 꽤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호장님! 아니 에첵까지!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람들이 덕문과 에첵을 보더니 우르르 몰려나와 호들갑을 떨었다. 익히 대양에서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느라 또다시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창현과 명모는 처음 겪는 이 상황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즐거운 잔치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명모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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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18. 급전직하急轉直下(3) +2 21.09.26 293 13 16쪽
68 18. 급전직하急轉直下(2) +2 21.09.19 271 11 16쪽
67 18. 급전직하急轉直下(1) +2 21.09.12 283 13 14쪽
66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4) +6 21.09.05 404 12 14쪽
65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3) 21.08.29 344 11 14쪽
64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2) 21.08.22 348 15 12쪽
63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1) +2 21.08.18 379 16 11쪽
62 16. 미지未知를 찾아(5) +2 21.08.14 407 17 18쪽
61 16. 미지未知를 찾아(4) +2 21.08.08 421 19 12쪽
» 16. 미지未知를 찾아(3) +2 21.08.04 430 16 12쪽
59 16. 미지未知를 찾아(2) +4 21.07.30 522 15 14쪽
58 16. 미지未知를 찾아(1) +1 21.07.25 614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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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4. 새로운 안식처(5) +3 21.07.04 653 22 14쪽
54 14. 새로운 안식처(4) +1 21.06.27 636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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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4. 새로운 안식처(2) +3 21.06.20 660 19 15쪽
51 14. 새로운 안식처(1) +1 21.06.18 722 18 15쪽
50 13. 눈 속에서 피는 꽃(5) +3 21.06.17 639 21 10쪽
49 13. 눈 속에서 피는 꽃(4) +1 21.06.16 621 24 10쪽
48 13. 눈 속에서 피는 꽃(3) +2 21.06.15 628 25 13쪽
47 13. 눈 속에서 피는 꽃(2) +1 21.06.14 627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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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2. 과거로부터(5) +1 21.06.10 654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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