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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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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289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6.17 15:29
조회
638
추천
21
글자
10쪽

13. 눈 속에서 피는 꽃(5)

DUMMY

쒜에에엑!


칼은 서슴없이 진의 목줄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전 창현이 보여주었던 그 어떤 칼질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였고, 그만큼 강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합!"


사방이 한동안 칼바람 소리로 들끓었지만 그뿐, 무언갈 베지는 못했다. 진의 몸놀림을 따라잡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챙!!


허공으로 날카로운 금속성이 퍼져나갔다. 마침내 진이 피하지 않고 직접 칼에 맞섰던 것이다.


귀청을 찢을 듯한 그 소리를 듣고도 창현은 좌절하지 않았다. 한 번이 실패했다고 두 번, 세 번까지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창현은 칼을 회수하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응?"


그러나 칼은 바위에라도 짓눌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차 힘을 주었지만 요지부동, 소용이 없었다. 놀란 창현은 고개를 들어 괴물을, 정확히는 괴물이 왼손으로 잡아채고 있는 칼을 쳐다보았다.


진은 찰나의 순간에 오른손의 손톱으로 칼을 튕겨 낸 후 거의 동시에 왼손을 뻗어 칼의 뒷등을 움켜잡았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창현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고 동시에 팔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죽기 살기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창현과 진의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흡!"


진도 눈을 가늘게 뜨며 칼을 고쳐 잡았다. 막대한 힘이 칼을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창현과 진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끝까지 힘을 풀지 않았다.


"누가 먼저 지치나 내기할까?"


창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 역시 온 힘을 끌어다 쓰고 있었지만 왠지 이 괴물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괴물의 대한 분노. 굳이 그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 녀석에게만은 그냥 지고 싶지가 않았다.


"좋다. 무엇을 걸 텐가?"


"목숨을 걸지!"


그러나 그들의 내기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뿌득! 탱!


이를 악문 둘 사이에서 칼이 그만 버텨주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창현은 창과 칼, 무기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 칼이 부러지자마자 그들은 서로 당기던 힘에 못 이겨 뒤로 튕기듯 물러섰다.


겨우 자세를 바로잡은 창현이 진을 노려보았다. 상황은 극도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는 유리한 조건 속에서 싸웠던 적이 있던가. 양 주먹을 그러쥐며 으르렁거린다.


"네놈만 없다면 오늘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창현은 곁눈질로 열심히 상황을 살폈다. 그래도 생각만큼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힘겨우나마 사람들은 꾸준히 도망치고 있었고, 어쨌든 이 밤도 지나가고 있었다. 스스로가 시간만 잘 벌어준다면 오늘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꼭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린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었군, 인간. 네 녀석이 이렇게 건방진 줄은 몰랐다."


"건방지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능력이 되지 못하는 자에겐 건방이지만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자신감이라고 하지."


서로 눈빛을 맞대고 있는 그들은 마치 영역을 놓고 경쟁하는 두 마리 맹수 같았다.


"꺄아악!"


진이 여유 있게 창현의 도발을 받아칠 때였다. 이제 막 산등성이를 넘어가던 일행들 가운데서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따귀를 맞은 것처럼 창현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익히 아는 목소리였다. 절대 비명으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현정아!`


주훈의 동생이자 그의 동생이기도 한 그녀. 장신의 괴물, 로이드가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 올리는 모습이 창현의 붉은 눈동자 속에 투영되었다. 진 곁에 있던 로이드가 어느 틈에 움직였는지, 도망치는 이가촌 일행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밀려오는 페이트에 맞서 제자리를 지키기도 급급한 상태였다. 창현의 심박이 급격히 두방망이질 쳤다. 치솟아 오르는 흥분이 붉은 그의 눈을 더욱 선명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배짱이 좋은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창현의 고개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했다. 팔을 교차시켜 정면에 세운 건 순전히 본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퍽!!


그리고 다음 순간 팔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창현은 뒤로 한길이나 나가떨어졌다. 진의 발길질에 걷어 채인 것이다. 이번 일격은 제법 크게 들어갔다.


"크윽!"


가슴을 옥죄는 고통에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격을 막아낸 팔은 아예 감각마저 죽어버린듯 했다.


"고통스러운가?"


쓰러진 창현의 곁에 서서 진이 물었다. 창현은 아직도 정신을 온전히 차리지 못하고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벌레처럼. 진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발로 창현의 목을 밟았다.


연약한 인간의 피부가 발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말랑말랑하고, 부들부들한 인간의 피부가 일으키는 적나라한 떨림. 발아래 깔린 나약한 생명의 끝을 지금 그가 쥐고 있는 거였다.


진은 돌연 발기했다. 죽어가는 생명. 그것의 미약한 경련이 진에게 더 없는 쾌락과 흥분을 선사했다. 미개한 짐승과 페이트로는 안된다. 그런 미천한 생명이야 열이든 백이든 죽어봐야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것보단 조금 더 뛰어난 것이 필요했다. 보다는 위대한 것이 더욱 좋았다.


머리로는 부인하겠지만, 이 붉은 눈의 인간이야말로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합당한 존재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생식기가 발기까지 하며 흥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가학적인 쾌락이 뒤늦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르르 흘렀다.


"크륵..! 크륵.. 컥.."


발끝에 살짝 힘을 주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달콤한 선율을 감상하듯 진은 눈을 감고 창현의 억눌린 비명을 만끽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보았다. 꽉 조인 숨통으로 가래 끓는 소리가 요란했다. 펄떡이는 경동맥의 진동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저 가느다란 목은 이제 단번에 부러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 녀석의 죽음 이후에는 저 인간들을 마저 처리하면 될 터였다. 그럼 임무는 무사히 마무리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의 이 유희가 너무나 값지지 않은가. 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생명을 또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진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발에서 극심한 통증이 치솟아 올랐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걸음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으며 창현이 일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이봐, 괴물."


창현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피를 흘리듯 더욱 붉어진 눈. 거기에선 기이한 광채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마치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난 괴물이 아니라 토페익투족의 제를렉, 진이다. 인간, 너는 날 계속 놀라게 하는구나."


"그런 거 몰라. 어쨌든 맛은 잘 봤다, 괴물. 난 네가 증오스러워. 너를 포함한 여기 이곳에 모인 모든 괴물들을 증오한다! 그래서 너희를 싸그리 잡아 죽일 생각이야."


밟혔던 목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창현이 쏟아내듯 저주의 말을 했다. 침을 뱉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진은 왜인지 모르게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위대한 제를렉인 자신을 무시하고 증오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대도 그랬다.


"증오하면 어쩔 테냐, 인간! 너의 나약함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말이다."


"인간.. 인간이라! 진이라 그랬나? 나 역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 너는 괴물이지만 지성을 가졌고 강력하다. 인정하지. 그러나 기억해라! 나는 이창현이다! 인간이면서 나는 이창현으로서 존재한다. 너를 죽일 사람이 누군진 알고 죽어라!"


"분명 너의 이름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겠지. 이창현. 좋다. 날 죽인다고 했나? 그 말을 돌려주마. 나 역시 너를 죽일 것이다! 보아라. 너의 오만이 나약함을 감춰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너는 나를 증오한다고 하지만, 나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 너의 생명이 오늘 끝난다면 너의 증오 역시 오늘까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지."


진의 어조에는 힘이 있었으며 자신감과 즐거움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창현 역시 그것에 주눅이 든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눈은 붉으나 탁하지 않았고 맑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처럼 기분이 점점 고조 되고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고양감이 정수리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창현의 머릿속에선 줄곧 한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던 현정의 모습. 찢어질 듯한 비명성. 분노가 앞섰지만 지금 그가 이기는 유일한 길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서 이 위기를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그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현은 몸을 뒤로 뺐다. 분당 백회가 넘어가는 심박이 온몸으로 피를 가져다 나르고 거기엔 기원을 모르는 거력이 담겨져 있다. 금방 그의 몸은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빠름. 그것은 마치 가속을 시작한 로이드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뭐하는 짓이지?"


진은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상대가 도망가 버리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을 깨닫고 창현을 따라 몸을 날렸다. 사방에선 혼전이 계속되고 피비린내는 허공을 떠도는데, 아침은 아직도 멀리 있었다. 그렇게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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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18. 급전직하急轉直下(4) 21.10.03 240 14 14쪽
69 18. 급전직하急轉直下(3) +2 21.09.26 292 13 16쪽
68 18. 급전직하急轉直下(2) +2 21.09.19 271 11 16쪽
67 18. 급전직하急轉直下(1) +2 21.09.12 283 13 14쪽
66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4) +6 21.09.05 404 12 14쪽
65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3) 21.08.29 344 11 14쪽
64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2) 21.08.22 348 15 12쪽
63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1) +2 21.08.18 379 16 11쪽
62 16. 미지未知를 찾아(5) +2 21.08.14 407 17 18쪽
61 16. 미지未知를 찾아(4) +2 21.08.08 421 19 12쪽
60 16. 미지未知를 찾아(3) +2 21.08.04 429 16 12쪽
59 16. 미지未知를 찾아(2) +4 21.07.30 522 15 14쪽
58 16. 미지未知를 찾아(1) +1 21.07.25 614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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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4. 새로운 안식처(5) +3 21.07.04 652 22 14쪽
54 14. 새로운 안식처(4) +1 21.06.27 636 20 11쪽
53 14. 새로운 안식처(3) +3 21.06.25 628 21 11쪽
52 14. 새로운 안식처(2) +3 21.06.20 660 19 15쪽
51 14. 새로운 안식처(1) +1 21.06.18 722 18 15쪽
» 13. 눈 속에서 피는 꽃(5) +3 21.06.17 639 21 10쪽
49 13. 눈 속에서 피는 꽃(4) +1 21.06.16 621 24 10쪽
48 13. 눈 속에서 피는 꽃(3) +2 21.06.15 628 25 13쪽
47 13. 눈 속에서 피는 꽃(2) +1 21.06.14 627 24 13쪽
46 13. 눈 속에서 피는 꽃(1) +1 21.06.11 638 23 12쪽
45 12. 과거로부터(5) +1 21.06.10 654 23 12쪽
44 12. 과거로부터(4) +1 21.06.09 654 22 10쪽
43 12. 과거로부터(3) +1 21.06.09 688 23 13쪽
42 12. 과거로부터(2) +1 21.06.08 698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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