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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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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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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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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477

작성
21.05.1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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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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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글자
7쪽

0. prologue.

DUMMY

2140년. 세계는 종말을 고했다.


* * *


"이번엔 자네가 고생해 줘야겠네."


뼈만 남아 왜소한 체구에 허리까지 굽어 더욱 볼품없어 보이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노인은 진물이 흐르는 눈으로 앞에 선 검은 가죽옷의 청년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돌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이 흙으로 막힌 작은 방이었다. 탁자와 의자만 있을 뿐 흔한 집기 하나 없었다. 가운데 원탁으로 여섯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는데 모두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울 만큼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모습이었다.


"염려 놓으시지요 촌장님. 이번엔 성과가 있을 겝니다."


옆에 앉은 대꼬챙이처럼 빼빼 마른 노인이 촌장을 향해 말했다. 청년으로 착각할 만큼 우람한 덩치의 노인도 걸걸한 목소리로 같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저놈이 보기엔 뺀질거리는 거 같아도 실력은 출중하니 마음 편히 먹어도 될 겁니다."


촌장이라 불린 노인이 그 목소리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되어야지. 그래, 이번엔 동쪽으로 가겠지?"


"그렇습니다."


자리가 어렵다는 듯 청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가 아니라 마을의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어려울 자리였다. 마을 원로들이 모두 모여 진행하는 회의이니 누가 어렵지 않을까. 청년은 담이 작은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담되는 속을 달래며 이번 장로회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행(同行)은 없네. 자네 혼자야. 지난겨울 희생된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몇 명 같이 보내련만... 경계에서 더 사람을 뺄 수 없다는 걸 자네도 알 걸세. 겨울이 끝나고 괴물 놈들이 부쩍 빈번해졌어."


촌장의 목소리에 탁자 위에서 조용히 타오르던 등잔불이 불안한 모습으로 휘청거린다. 사실 출행이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걱정되는 것이었다. 벌써 생환하지 못한 이들이 여럿인 마당에, 청년을 혼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음..."


누군가의 가느다란 신음성이 퍼지고 앉아 있던 다른 노인들의 얼굴이 갑자기 나이를 더 먹은 듯 침중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무사히 다녀오겠습니다."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깨고 청년이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지만, 내심 그는 자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약간 흥분되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왔던 출행이었으니 피가 끓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받게."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촌장이 다른 말 없이 아대 하나를 내밀었다. 무두질한 가죽띠 위에 동그란 돌이 붙어있는 독특한 물건이었다. 마을에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귀한 나침반이었다.


"언제 떠나겠는가?"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준비가 모자라면 안 될 게야. 무운을 빌겠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장로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밖으로 나가면 조급함을 버려야 해. 언제 어디서 위험이 나타날지 모르니 말이야."


"항상 몸조심하게."


그중 건장한 체구의 장로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살갑게 말했다.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몸 관리 잘해! 안 되겠다 싶으면 얼른 돌아와. 그런다고 욕은 하지 않을 테니."


청년도 빙긋이 미소 지으면서 답해 주었다.


"예. 그러지요."


청년은 깊이 읍(揖)을 하고 방에서 물러 나왔다. 문을 열자 어둡고 긴 복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통로의 끝에서 밝은 빛무리가 번져와 청년의 눈을 따갑게 찔렀다.


한참을 걸어 밖으로 나오니 오전의 햇살이 온 산을 내리쬐고 있었다. 떠나는 날로 정말 제격이었다. 청년은 큰 숨을 들이쉬었다.


`가볼까?`


작은 산 지하를 파서 생활하고 있는 이가촌(李家村)에서 청년, 창현이 나온 것은 지구 멸망 후 500년간의 빙하기가 끝난 2675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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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4) +4 22.02.10 162 5 14쪽
86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3) 22.01.25 117 6 12쪽
85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2) 22.01.18 123 5 12쪽
84 23. 갈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1) 22.01.10 126 7 11쪽
83 22. 방황하는 분노(2) +4 22.01.03 137 6 14쪽
82 22. 방황하는 분노(1) +2 21.12.27 146 8 14쪽
81 21. 피와 욕망(3) +2 21.12.20 177 8 15쪽
80 21. 피와 욕망(2) +2 21.12.12 143 6 14쪽
79 21. 피와 욕망(1) +3 21.12.05 154 6 14쪽
78 20. 어둠에 잠긴 도시(3) +2 21.11.27 164 6 12쪽
77 20. 어둠에 잠긴 도시(2) +6 21.11.21 169 8 14쪽
76 20. 어둠에 잠긴 도시(1) 21.11.14 191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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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19. 자유로움에 관하여(3) +1 21.10.25 194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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