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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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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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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01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7.25 19:11
조회
614
추천
17
글자
16쪽

16. 미지未知를 찾아(1)

DUMMY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쉘터와 꽤나 멀리 떨어진 어느 산등성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먼저 나와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던 창현은 멀리서 몇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입을 크게 벌렸다.


"여!"


"니가 어떻게..?"


팔을 흔들며 건들거리는 명모를 보고 한 말이었다. 아주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기가 막혔다. 이럴까 봐 주훈과 장로, 그리고 태무이자 큰 형님 격인 준우에게만 몰래 말했던 것인데 보기 좋게 일이 틀어진 것이다. 그들이 먼저 얘기를 흘리진 않았을 테니, 냄새를 맡은 명모 녀석이 아무나 잡고 닦달했음이 틀림없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네놈 새끼 혼자 어딜 놀러 가려고?"


그악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녀석이 내심 밉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따라붙었는지 대충 아는 까닭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창현은 피식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한쪽만 남은 팔로 어깨동무를 걸며 명모가 더욱 크게 웃었다.


"어차피 니가 싫다고 해도 같이 갈 거였는데, 잘 생각했다."


"어련하시겠냐. 다른 사람들은?"


"말 안 했어. 애들은 남아 있어야지."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다른 녀석들마저 우르르 따라나서겠다고 할 게 뻔했다. 그럼 마을의 안전에 공백이 생길테고, 사람들은 동요할 것이다. 그것은 명모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창현은 그를 밀어내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빠진 사람 없이 전부 모였다.


"이만 가시죠."


에첵과 덕문, 하르착과 이르웨스 그리고 명모까지 합류하여 총 여섯 명이 된 일행은 그렇게 태백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현은 손목에 매달린 마을의 보물, 나침반을 확인하며 방향을 잡아 나갔다. 날이 완전히 풀려 있어서 걷기에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대양이라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일행 중 누구도 정확한 지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북쪽에 있다는 것 외에는 주어진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단 무턱대고 북쪽을 향해 길을 잡는 것뿐이었다.


"너, 근데 우리가 뭐하러 가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한참을 가던 중 문득 생각난 모양인지 창현이 넌지시 물었다. 물론 급하게 따라나선 명모가 알 턱이 없었다. 창현이 한숨을 내쉬며 이전 한백과 나누었던 대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딱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아니라 옆에서 걷던 에첵과 덕문도 같이 듣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그들은 여행의 목적을 알게 된 셈이었다. 설명이 지금의 사정에까지 이르자 명모가 대뜸 눈을 치뜨며 소리쳤다.


"아니! 길도 모르고 이렇게 대책 없이 가는 법이 어딨어!"


"너는 그럼 대책이 있어서 따라왔냐?"


명모가 답답한 듯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거라며? 거기가 어딘지나 알고 가야 맞는 거 아니겠냐고. 아우 속 터져."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고 길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디 잠깐 사냥 나가는 것도 아니고 멀리 떠나는 건데 계획이란 게 있어야지. 넌 가끔 보면 참 무식하단 말이야."


"니가 언제부터 그런 거 일일이 따지면서 살았냐.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창현은 할 말이 궁색했는지 얼렁뚱땅 말을 끊어버렸다. 북쪽의 큰 산. 장님 문고리 찾는 격이라 명모가 화를 내도 사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쩌랴. 말 그대로 넋 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다만 대양 인근까지만 가면 에첵과 덕문이 어떻게든 길을 알아보리라는 기대는 해봄 직했다.


사실 창현이 믿는 바는 그런 막연한 기대뿐만이 아니었다. 떠나오기 전 한백이 허공에 띄워준 지도를 보았던 것이다. 거대한 대륙에 혹처럼 붙어 있는 땅 한반도와, 또 그들이 지금 자리 잡고 있는 태백산의 위치까지 세세히 묘사된 지도였다.


창현은 거기에서 중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백산의 산줄기가 등뼈처럼 이어져 북쪽과 남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산맥이 이어져 있다면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양이 있을 만큼 크고 깊은 산은 이 태백산맥과 이어진 줄기 가운데 있을 거라는 게 창현의 생각이었다. 그런 이유로 창현 일행은 산을 따라 이동하는 고된 방법을 선택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산과 평지, 혹은 계곡과 개울을 건너뛰며 끈질기게 산을 끼고 나아갔다. 낮에는 길과 먹이를 찾았고 밤이 오면 괴물을 피해 비막을 파고 쉬었다.


여정은 어느새 열 하루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적지 않은 듯 일행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발걸음도 그에 따라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그렇게 힘든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때마침 깊게 파인 골짜기 하나가 그들의 눈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기괴하게 뭉그러진 땅덩어리가 거대하게 갈라져 있는 모양새였다. 돌아서 가려면 아예 못 갈 것도 아니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창현은 그냥 가로질러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려운 상황이었나 일행은 두말하지 않고 건널 준비를 했다. 창현이 먼저 밧줄을 들고 뚝 끊어진 단층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기어 올라간 뒤 밧줄을 나무둥치에 단단히 묶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 명씩 그 밧줄을 잡고 창현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로한 에첵은 덕문의 부축을 받아야 했으므로 맨 마지막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일일이 손을 내밀어 도와준 후 창현은 밧줄을 거둬들여 갈무리했다. 그 사이 덕문과 에첵은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둘다 거친 숨을 토해내는 걸 보니 만만치 않게 힘이 든 모양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그들은 다시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에첵을 하르착에게 맡긴 덕문의 안색이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오는 내내 덕문과 하르착, 이르웨스가 번갈아 가며 에첵을 부축하거나 업어 왔던 것인데, 중년에 접어든 덕문으로서는 그것조차 부담이었을 터였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본 창현이 덕문을 향해 물었다.


"왜 굳이 이 힘든 길을 가십니까?"


덕문은 숨을 고르며 걷다 창현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에도 허리가 아픈지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도 대양에 대해 아는 사람이 가야 자네가 편하지 않겠나?"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묻는 것은 에첵입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굳이 함께하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창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간 계속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여정 내내 에첵은 힘들어했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힘들었다. 이들이 대양에서 떠나온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도망자가 아닌가? 왜 도망쳐 왔던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한단 말인가? 지난날 창현은 괴물에 쫓겨서, 이들은 같은 인간에게 쫓겨서 거친 야지를 헤매지 않았던가?


그 인연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것은 참으로 기묘하고 신비한 일이지만 아직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게 사실이다.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덕문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넘어온 계곡보다 위험하고 힘든 길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직 나타나진 않았지만 괴물의 위협도 무시할 수 없겠죠. 제 의문이 이상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네."


창현이 거듭 강조하며 말하자 마지못해 동조하는 덕문이었다.


"호장님이라면 아는 바가 있을 텐데요. 단지 길이 험하고 힘든 건 둘째 문제입니다. 같이 헤쳐 나간다면 조금 늦더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만약 지난번처럼 괴물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온다면 에첵의 생명은 누가 보장합니까? 또 그렇게 가서 도착한 대양에 무슨 상이 있겠습니까?"


처음 만났던 그 날, 그들을 둘러싼 괴물을 떠올리며 창현이 웅변하듯 따져 물었다. 떠나올 때부터 의아했지만, 지금 같이 힘든 여로를 겪는 와중에 그 의문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더 절실히 와 닿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부탁이네만 나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말아 주게."


조용히 뇌까리는 그의 목소리가 우울하게 잠겨 있었다. 그가 모르는 유대와 서로 간의 존경이 생각보다 강력하게 이어져 있는 것인가. 왠지 창현은 덕문을 괴롭히는 것 같아 이 이상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쨌거나 에첵이 더욱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것은 다름 아닌 대양 사람들일 거였다. 뒤를 돌아보자 하르착과 이르웨스 형제가 에첵을 부축하며 걷는 모습이 보였다. 명모는 그들보다 앞에서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위험하면 안전하게 가도록 하고, 너무 빠르다면 약간 천천히 가도 될 게다. 기한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조금 늦더라고 괜찮을 것이다. 창현은 자신이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계곡을 지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맨 앞에서 걷던 창현이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웠다. 계곡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허리를 막 돌아 나왔을 때였다.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창현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낡고 쇠락하여 무너져내린 도시가 일행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산과 산이 나뉘고 다시 잇닿아 뻗어나가는 중심. 도시는 거기에 있었다. 키 큰 풀과 잡초가 무성할지언정 나무는 별로 없어서 인간들이 지었음이 분명한 그 건물들, 오래된 폐허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산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도시로 들어서게 되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쓰러져 회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쭉쭉 뻗어 있는 키 큰 풀들은 바람에 쓸려 넘어지며 쉬익쉬익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야... 이게 대체 다 뭐냐."


"...낸들 알겠냐."


명모가 옆에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떠듬거렸다. 물론 창현이라고 이게 뭔지 알 리가 만무했다. 한백에게서 들은 바도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곳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의 유산이라는 것과 그렇기에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일행은 유적 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사실 도시라고 하기엔 규모가 조금 작은 듯했다. 약간 큰 마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규모를 떠나서 과거와 지금의 생활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퇴락하고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유적 이곳저곳에는 아직도 이삼 층이 넘어가는 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본래의 모습이 얼마나 크고 웅장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고개가 저절로 꺾여져 올라갔다. 일행은 거대한 석조 구조물들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를 걸으며 두리번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일행은 미처 다 무너지지 않은 어떤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문짝은 진즉에 떨어져 나가 진입하기가 아주 쉬웠다. 작은 단층의 건물이었는데 이것도 원래는 규모가 더욱 컸던 것 같았다. 다행인 점은 초라한 외형과는 달리 제법 튼튼해 보인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좋은 점이란 그게 다였다. 건물 안은 각종 쓰레기와 먼지로 인해 쉴 곳은커녕 발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대충 앉을 자리만 치워놓고 나니 벌써 밖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녁놀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밖을 내다보며 일행은 저마다 말이 없었다. 도시는 더없이 적막하고, 황폐하였다. 보이는 것이라곤 살풍경하게 무너진 건물들이며 깨어져 나뒹구는 길바닥뿐이지만 창현의 눈에는 오백 년 전 이곳에 가득했을 사람들이 보였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들어왔다 나가며 서로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 어떤 이는 물건을 사고 어떤 사람은 고함도 치겠지. 평범한 일상과 평범하지 않을 각자의 사정이 얽혀 돌아가는 거리.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나 듣던 장면이 이름 모를 도시의 거리에서 겹쳐 보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제는 잔해만 남은 도시가 모든 것을 생생히 보여주진 못하지만 창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늘은 영락없이 여기에서 쉬어야겠네. 근데 여기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아직 대양 사람들과는 어색한 명모가 창현의 옆에 와 앉으며 말을 걸었다. 건물 내부를 돌아보고 온 모양이었다.


"글쎄. 우리야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엔 이런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거겠지?"


"모르긴 몰라도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왜? 너는 이런 거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왜 없어. 예전에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거 아냐. 이 건물을 봐. 돌을 깎았을까? 그런 거 같진 않아. 이렇게 반듯하게 될 리가 없잖아. 저 밖에 녹슬어있는 것들은 분명 철일 텐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넌 궁금하지도 않냐?"


명모는 소년 같은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한백의 지하 쉘터까지 본 마당에 이런 것이 놀랍다면 이상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히 그랬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쉘터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곳이 아니라, 그와 같은 인간들이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며 삶을 살아가던 생활의 한복판임을. 명모에게는 그 사실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난 별로 안 궁금해. 당장 내일 먹을거리도 모르는데 그런 것까지 궁금해할 시간이 어딨냐?"


괜스레 찬물을 끼얹는 말에도 개의치 않는듯했다.


"예전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진짜였나 봐. 저 길 건너편 건물을 봐. 날지 못하면 저렇게 큰 건물은 지을 수 없었을 거야. 정말 놀랍군. 어릴 적 들었던 옛날얘기들은 모두 진짜였어!"


"보지도 못한걸 니가 어찌 아냐?"


감동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명모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타박했지만 사실은 창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낮에만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자신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봐 그게 맘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그저 피식 웃어버렸다.


"현정이도 이걸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응? 뭐라고?"


뒤이어 들린 명모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창현은 미처 듣지 못했다. 그들의 대화는 재미없게 끝나버리고 곧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명모는 꿈을 꾸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그만의 꿈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이름 모를 도시를 뒤로하고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모두가 여독에 지친 상태였지만 어쨌든 가야 할 길이었다.


* * *


산을 따라 여행한 지 어언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페이트를 총 네 번 마주쳤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다. 큰 규모도 아니었을뿐더러 새로 얻은 힘에 완벽히 적응한 창현을 막기란 저열한 페이트들로서는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명모는 자기도 나설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창현이 냉정하게 거절했다. 굳이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많이 따뜻해졌다지만 북쪽으로 올라온 탓인지 산속에서의 체감온도는 그리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았다. 산속은 여전히 추웠고, 그들은 지쳐 있었다. 특히나 에첵은 기력이 크게 쇠하여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때가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걸음에서 점점 힘이 빠져갈 무렵, 돌연 덕문이 창현을 불렀다. 막 큰 개울을 건너와 젖은 옷을 말리고 있을 때였다.


"혹시나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내가 길을 인도 할 수 있을 것 같군. 거의 다 왔네."


쉘터를 떠나온 지 두 달 하고도 여드레가 지난 날이었다. 마침내 대양이 가까워 온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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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18. 급전직하急轉直下(3) +2 21.09.26 293 13 16쪽
68 18. 급전직하急轉直下(2) +2 21.09.19 272 11 16쪽
67 18. 급전직하急轉直下(1) +2 21.09.12 283 13 14쪽
66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4) +6 21.09.05 404 12 14쪽
65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3) 21.08.29 344 11 14쪽
64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2) 21.08.22 349 15 12쪽
63 17.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1) +2 21.08.18 379 16 11쪽
62 16. 미지未知를 찾아(5) +2 21.08.14 408 17 18쪽
61 16. 미지未知를 찾아(4) +2 21.08.08 421 19 12쪽
60 16. 미지未知를 찾아(3) +2 21.08.04 430 16 12쪽
59 16. 미지未知를 찾아(2) +4 21.07.30 523 15 14쪽
» 16. 미지未知를 찾아(1) +1 21.07.25 615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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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4. 새로운 안식처(4) +1 21.06.27 636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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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4. 새로운 안식처(1) +1 21.06.18 722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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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3. 눈 속에서 피는 꽃(4) +1 21.06.16 621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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