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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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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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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14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6.27 16:09
조회
636
추천
20
글자
11쪽

14. 새로운 안식처(4)

DUMMY

"정말 쥐새끼 같군. 인간. 그래, 창현이었던가. 아까 네 기세는 다 어디로 간 거지?"


"네놈도 말로만 그러지 말고 좀 제대로 해보지 그래?"


진 역시도 로이드만큼이나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먼저 놈을 붙잡아 놓은 후, 이놈의 눈앞에서 다른 인간들을 도살하려는 계획은 아무리 봐도 완벽했지만 정작 중요한 저놈이 잡혀 주지 않는 바에야 실행으로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리조리 피하며 맞받아치는 실력이 생각 보다 뛰어나 어지간히도 약이 올랐다. 진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럼 제대로 해주지!"


사실 인간들을 멸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인 그로서는, 지금의 행동이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로이드를 믿는 마음이 크다고는 하나, 완벽한 작전 수행을 위해선 제를렉인 그가 직접 괴물들을 통제해야 옳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개인적인 감정이 끼어든 이상 그것은 이미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결과가 어찌 되든 말이다.


진의 판단이 옳든 그르든 창현으로서는 당장이 급했다. 더 대답할 여력도 없는지 창현은 이제 입을 꾹 다문 채 방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의 공세는 겉으로 봤을 땐 단순하게만 보였지만 실은 전혀 단순하지가 않았다.


뻗어오는 팔을 피하고자 하면 마치 오래된 수렁에 빠진 것처럼 몸이 느려지는 거였다. 앰드라흐를 변형한 힘이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었다. 직접 타격을 받지 않더라도 그보다 강한 힘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니 피로가 누적되는 것은 당연했다.


"크윽.."


진의 눈이 불타오르듯 빛나자 창현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한층 심해졌다. 스치지도 않았는데 살이 뭉개지는 듯한 충격과 통증이 엄습했다. 진이 한 번씩 손을 내저을 때마다 한 뼘 넘게 쌓였던 눈이 분분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저절로 부러져 나갔다.


그래도 창현은 정신없이 발을 놀려 공세를 피하는 와중에도 한 번씩 칼을 휘두르며 억지로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무기력하게 피하기만 하면 아무리 그라도 결국은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몸이 개조되어 강한 힘을 손에 넣었으나 이상하게 이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창현은 한순간도 몸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여 나갔다. 그렇게 한동안 공방을 주고받던 그들은 어느새 인간과 괴물이 뒤섞인 전장에서 벗어나 있었다. 창현을 따라가며 팔을 휘두르던 진은 그것을 눈치채고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놈!"


진이 이를 갈며 다시 한번 팔을 뻗었다. 거센 바람이 그의 팔을 타고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양팔을 동시에 사용한 이 공격은 지쳐있던 창현이 피하기엔 너무나 빠르고 강맹했다. 결국 창현은 가슴에 일격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현의 발이 땅에서 떴다. 교전 이후 처음 맞춘 유효타였지만 진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았다. 앰드라흐를 머금은 손으로 직접 타격한 것이었는데 창현이 동물 같은 반사신경으로 위기의 순간 팔을 교차해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금의 타격은 공격 부위가 가슴에서 팔로 바뀌었을 뿐, 막았다라고 하기에도 무색한 위력이었다. 그 증거로 창현은 훨훨 날아 뒤편으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발산된 앰드라흐의 영향인지 팔을 감싸고 있던 가죽 토시가 걸레 조각처럼 찢겨져 있었다.


"우웩!"


등부터 떨어진 충격에 내장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창현은 한바탕 피 섞인 오물을 쏟아내고선 입가를 닦으며 다시 일어났다. 진이 오만한 자세로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지난날 그들이 조우했을 때는 창현이 조금의 이득을 보았지만, 오늘은 손해를, 그것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손해를 보았다.


창현의 육신은 아직까지 진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근육만 강화되는 게 아니었다.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장기들까지 효율이 극대화되고 튼튼해졌다. 지금도 강한 충격을 몸으로 직접 받았지만 진이 그에게 다가오는 짧은 사이 어느 정도 회복하여 일서 설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일어서는 창현을 보며 진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로 강한 생명체는 기필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늘을 본 직후였다. 새벽이 임박해 있었다.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지금쯤 하늘은 심해처럼 검은 청색을 띠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을 부르는 희뿌연 새벽빛이 번지면 `어어` 하는 사이 태양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창현에게 집착한 나머지 시간을 고려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임무는 끝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아침도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전에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했다.


"너는 궁금하지 않은가?"


창현은 아직 핏기운이 가시지 않은 침을 뱉어대며 물었다. 그도 새벽이 다가왔음을 눈치챈 것이다. 시간은 그의 편이었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황이 유리해질 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다.


밤이 오늘뿐만은 아닌 것이다. 오늘 이 자리를 벗어난들 안전해질까? 이가촌을 멸망시키고 여기까지 추격해온 이 괴물들이 오늘의 실패를 안고 얌전히 돌아갈 녀석들인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가촌 사람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생존을 위한 계속되는 괴물들과의 사투만이 남게 될 것이다. 창현으로서는 오늘 결착을 보는 것이 좋았고, 사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


"무엇이 말이냐?"


진이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감정의 찌꺼기를 대충이나마 털어낸 그는 이제 얼른 이 상황을 종결하고 임무를 끝마치고 싶었다.


"내가 어째서 너에게 도망쳤는지."


"물론 네놈이 내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 아닌가? 두렵겠지. 그래서 저 사람들에게서 날 떼어놓으려고 한 거고. 너무 당연한 얘기라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진이 팔을 내리쳤다. 야힌의 핏속에 잠재된 보이지 않는 힘, 그 힘을 극한까지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제를렉. 그의 팔을 타고 앰드라흐가 다시 발산되었다.


퍽!


아까의 충격을 미처 덜어내지 못한 창현의 발걸음은 한층 느려져 있었고, 결과적으로 진의 공격을 다시 허용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건 방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창현은 다시 한참을 날아가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둥치에 등을 처박았다.


"컥.. 쿨럭!"


이번엔 정통으로 가격당했다. 상세가 보통이 아닌지 붉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일어나기 위해 손을 버르적거리며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펑!


날 듯이 뛰어온 진이 아직 땅바닥을 기는 창현의 배를 걷어찼다. 가죽북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창현은 나무를 훨씬 지나쳐 뒤쪽 공터에 떨어질 만큼 멀리 날아갔다.


허공을 타고 점점이 피가 흘렀다. 진은 정말 죽일 생각으로 찼던 것이다. 다시 땅바닥에 처박힌 창현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유령처럼 다가온 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잠시 벌레처럼 쓰러져있는 창현을 내려다 보았다. 진의 얼굴은 이제야 비로소 풀려있었다. 그는 창현의 목줄기를 한 손으로 그러쥐고 들어 올렸다.


상체가 들리고, 곧 다리도 공중에 떴다. 허공에 뜬 창현의 붉은 눈동자와 진의 시선이 얽혔다. 한껏 붉어진 얼굴로, 돌연 창현이 웃기 시작했다.


"푸흐흐흡..! 컥..컥..!"


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웃지? 죽을 때가 되니 미친 건가? 하긴 두렵기도 하겠지."


"나는!"


창현이 소리쳤다. 그의 눈은 피를 흘려낼 것처럼 더욱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놈이 두렵지 않아! 물론 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그것 때문이 아니야!"


창현은 목이 눌려 숨이 막혀오는 상황에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에 한과 분노가 서려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곧 닥쳐올 죽음의 위협에도 저렇듯 당당하다는 것은 진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수께끼와 같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지? 어차피 넌 지금 내게 죽는다. 물론 네놈의 알량한 속셈도 눈치채고 있었지. 나를 네 무리에서 떨어뜨려 놓고 시간을 끌 속셈 아니었던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지금쯤 그토록 네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인간들은 모조리 죽어 페이트들의 뱃속에 들어가 있을 거다."


이번엔 진이 말을 하다 말고 미소를 지었다. 승자의 미소였다. 결국 이렇게 끝날 싸움이었다.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원래는 네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죽이려 했지만.. 계획이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니까. 뭐 상관없어. 시간이 많이 지났군. 그냥 죽어라. 네 어리석은 만용과 무지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멍청하지만 그래도 용맹한 점을 높이 사서 특별히 네 심장은 내가 먹어주겠다."


진이 빠르게 말을 마치고 반대편 손을 들어 올려 손톱을 곧게 세웠다. 단번에 목을 따버릴 요량이었다.


"...개소리 하지 마."


창현은 진이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죽음이 목전에 찾아와 있는 상황인데도 이상하리만치 그는 냉정해 보였다. 창현의 억눌린 외침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론 난 너보다 약하고 네가 나를 죽일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아니야! 틀렸어! 난 살기 위해 도망친 게 아니었어! 네놈을 죽이기 위해 도망쳤다! 넌 인간을 얕봤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어! 인간은 죽음 앞에서 도망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어!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때는! 죽어 이 개자식아! 한백!!"


광적으로 외치는 창현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남기며 길게 울려 퍼지고, 그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선가 환상처럼 붉은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세이프티 프로그램 가동, 생체 스캔 시작. 바이탈 사인(vital sign) 확인 완료. 스캔 결과 비(非)인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입장을 불허합니다."


햇빛도 아니고 달빛과도 다른 신비로운 붉은 빛. 제 삼의 목소리가 그 빛을 뒤따라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진의 비명이 처참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어느새 쉘터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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