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닉슨 쇼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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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56. 닉슨 쇼크 2
지금 세계에서 미국 이외의 선진국이라고 하면 누구나 영국, 프랑스, 서독을 꼽는다. 여기에 일본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아직 일본은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약간 애매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있기는 한데 여기는 남북의 경제격차가 워낙 크고 문제도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사회의 한 축 소리를 들어서는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뭐하다.
일본의 경우 경제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서 선진국 대열에 포함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아닌 전체 부의 규모로 따진다면 작년에 일본이 독일을 추월했다.
어쨌든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되면 화폐가치가 올라갈 나라는 이 4개국인데 여기서 영국은 제외했다. 영국은 영국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한 경제 위기를 80년대까지 겪을 예정이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남은 나라는 서독, 프랑스, 일본이다. 프랑스는 우리가 라디오 팔아먹을 때마다 라디오 장사꾼이라고 구박을 해대서-대신 자기네 라디오 팔아먹으려고 그랬다- 조금 마음에 안드는 면이 있긴 해도 뭐 어쩌겠나 이익이 되면 뭐라도 다 해야지. 솔직히 미래정보를 이용해서 프랑스 돈을 빼먹는 거라 안타깝지는 않았다.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현금 170억 달러 가운데 150억 달러를 그렇게 일본, 서독, 프랑스 순으로 투입하기로 했고 가장 많이 투자를 한 곳은 역시 일본이다. 당연히 일본이 투자했을 때 가장 먹을 게 많아서 그렇다.
아버지가 뭔가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근데 미국이 금태환을 중지하면 주식은 오히려 떨어지지 않을까?”
“당연히 떨어지겠죠.”
“그런데 주식에도 투자한다고?”
“지금 당장 투자할 곳은 채권이랑 부동산이에요. 주식은 당연히 미국의 발표 이후에 매입해야죠. 그때 전 세계적으로 폭락할 건데 그때를 노려야죠.”
아버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환율 차익으로 돈을 벌어놓고 주식으로 다 까먹어 버리면 허탕 아닌가.
내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투자하면 큐브와 DEC 그리고 한국 신하그룹의 유동성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염려될지 몰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투자하는 건 전부 내 개인 재산이고 회사가 가진 자금은 한푼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큐브와 DEC 그리고 한국의 신하그룹도 연속된 흑자로 돈이 넘쳐나 유동성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대충 투자처를 결정하고 난 뒤에 조선소 이야기를 꺼냈다.
남궁진이 내게 물었다.
“26만톤 유조선도 이미 60척이나 건조했으니 더 이상 건조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이미 조선소에서 손을 뗐어도 그래도 장래 전략에는 조언을 할 수 있으니 말일세.”
내가 말했다.
“해운 피크는 끝나는 거 같죠?”
“아무래도 내년까지가 피크이고 내후년부터는 슬슬 정상화될 거 같아.”
“그럼 내후년부터 석유운임이 얼마나 떨어질 거 같아요?”
“지금의 1/4 수준으로 떨어질 거야. 사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높은 거지.”
“그럼 지금부터는 10만 톤짜리 수에즈막스를 준비하도록 하죠.”
수에즈막스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를 말하며 지금은 대략 10만 톤 정도다.
“자네 말은 수에즈 운하가 다시 개통될 거라고 보는 거구먼.”
“솔직히 지금도 너무 길었죠. 아마 73년 혹은 74년 즈음에 어떻게든 해결을 볼 거예요.”
“그러기에는 이스라엘이 너무 강경하지 않나? 골다 메이어 수상은 시나이 반도를 통째로 먹어버리려는 거 같던데. 여자가 정말 독해. 우리 배가 그때 수에즈를 통과하지 않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지.”
현재 수에즈 운하가 봉쇄된 이유는 운하 양쪽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각각 점령한 채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 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배짱 좋은 해운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수에즈 운하에는 통과 중에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에서 그대로 발이 묶어 오도 가도 못하는 배가 몇 척 있다. 당연히 배에 탑승한 선원들도 배 위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이집트 당국에서 따로 우편번호까지 만들어줬을 정도다.
솔직히 배에서 내려 육지로 가겠다고 하면 이집트든 이스라엘이든 막지는 않을 건데 해운회사에서 배와 화물을 잃을 위험 때문에 계속 배에 머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수에즈 건너편 시나이 반도를 통째로 점령하고 앉아 있으면서 완전히 자기네 땅으로 삼기 위해 작업 중이었다.
분명히 3차 중동전처럼 이스라엘이 계속 주변 아랍국가들을 무력에서 압도한다면 그 일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집트는 대국이에요. 지금 군사적으로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도 절대 국력에서 이스라엘에 뒤떨어질 나라는 아니죠. 게다가 사다트는 나세르와 달리 인내할 줄 아는 정치가예요. 반드시 뭔가 수단을 부릴 것이고 또 미국이 이대로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예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는 미국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는 미국이 세계 전략을 펼치는데 반드시 필요했다.
비록 베트남에서 쫒겨날 처지에 놓였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는 미국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했다.
난 미래를 보고와서 이집트가 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을 크게 한 방 먹이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아직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인상은 3차 중동전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의 압도적 무력과 오합지졸 아랍군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런 미래를 알고 있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이집트의 군사적인 반격 대신 미국이 수를 쓸 거라고 말했다.
남궁진이 그 문제 대신 다른 문제를 물었다.
“근데 자네는 그렇게 돈이 많은데 한국에는 더 투자하지 않을 생각인가?”
“이미 광양제철과 울산의 정유와 석유화학에 크게 투자했고 다른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한꺼번에 투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한국에 인플레이션만 일으킬 거예요.”
나는 이미 광양제철에 제2고로를 설치하고 있고 울산이 정유공장과 석유화학을 크게 키우고 또 한국에 거대한 석유 비축기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몇 년 있으면 오일쇼크로 유가가 폭등하는 데 그때 내가 비축한 석유는 몇 배 가치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투자한 것도 한국에는 심한 인플레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면 진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우려가 있었다.
“근데 석유 비축기지는 왜 그렇게 규모를 크게 만드나? 혹시 유가가 오를 거라고 보는 건가?”
“유가가 오를 걸로 보기도 하고 북한의 움직임 때문에 우리도 좀 준비해 둘 필요가 있기도 해요.”
“자네도 북한의 움직임이 위험하다고 보는구먼.”
아뇨 별로 위험하게 안 봐요. 지금 북한이 천리마 운동이 쫄딱 망해서 경제가 엉망이에요.
나는 속마음과 반대로 이야기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있으니까 북한은 남한을 먹을 기회는 이때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실제로 요즘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순히 일반인이 아니라 정치가나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조차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북한 경제가 폭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서방 세계에는 아마 나 혼자뿐일 것이다.
북한은 딱 이때 경제가 진짜 폭망했는데 이전까지 전후복구를 위해 같은 공산권 국가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해줬는데 이게 그 지원이 다 끊어진 데다 천리마 운동을 위시한 여러 경제 정책이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노동인구도 남한의 절반이 안 되기 때문에 경제 정책을 펼칠 때 세심한 목표 설정이 필요했는데 북한은 전후 복구과정에서 이룬 성과를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너무 무리한 목표를 잡았다.
그러잖아도 한정된 자원을 무리한 목표에 죄다 쏟아부으니 지금까지 이룬 경제적 성과마저 후퇴해 버렸다. 생산 시설은 늘어나지 못했는데 기존 생산 시설에 들어가야 할 자원이 다른 곳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런 실패를 전부 숨기고 실제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듯이 국내와 국외에 선전하고 있어 이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많았다.
2, 3년 정도 지나면 이 선전이 전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 정가에서는 만약 한국에서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 것인지 열띤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을 지원해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지만 베트남의 경우에 비교해서 막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속으로는 회의적인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아예 처음부터 참여하지 말아야 하며 주한미군도 이 기회에 전부 철수하자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남한과 베트남은 사정이 다르고 또 인구나 경제력에서 북한에 비해 남한이 유리하다고 미국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여기서 꽤 도움이 되는 것이 내가 울산과 광양에 세운 중화학 공장들이었다.
울산과 광양은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 최대의 중화학 공업단지들인데 이 공장들이 공산권으로 넘어가면 미국의 대전략에 엄청난 장애가 되니 미국이 한국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고 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그래서 요즘 네가 무기 공장들을 건설하려고 하는 거구나. 혹시 미국이 손을 떼는 일이 있어도 한국 자체적으로 북한과 싸울 수 있게 말이지.”
“뭐 그런 셈이죠.”
나는 아빠와 함께 중공업 단지를 건설하고 기계 공장들을 세우면서 이를 이용해 무기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들을 만들고 있었고 이미 소총을 비롯한 몇 가지 무기는 완성품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북한을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때문에 무기 공장들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정부의 관계를 좀 좋게 하자는 심정과 내 정체를 들킨 뒤에도 내가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한국의 안보나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밀덕후 취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굳이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나 남궁진 사장에게 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마침 남궁진 사장이 있는 김에 하린이의 진학 문제를 꺼냈다.
“하린이가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데 그거 어쩔 거예요? 설마 한국 학교에 보낼 생각은 아니죠? 한국 학교에 보내면 머리부터 당장 단발로 싹둑 잘라버릴 건데 난 그거 정말 보기 싫어요.”
나는 한국 학교에 보낼 경우의 문제와 미국 학교에 보낼 문제를 잘 설명했다.
아빠도 이 시대 한국 학교의 문제는 잘 알고 있어서 하린이를 한국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 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렇다고 하린이를 미국 학교에 보내면 하린이 엄마가 같이 미국으로 가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면 자네 혼자 남아서 짝 잃은 기러기 꼴이 되는 게 그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니 하지 말게.”
“지금은 아니지만 신우가 자랄 때도 하린이 엄마가 하린이를 데리고 자주 미국으로 가서 신우를 보살피느라 혼자 있는 데는 제법 익숙합니다.”
“그때야 하린이가 신우와 서먹서먹한 사이가 될까 봐 그런 거고. 신우에 이어 하린이까지 미국 학교에 보내면 하린이 엄마는 진짜 한국에 드물게 오게 될 텐데 그러지 말게. 부부는 그렇게 멀리 떨어지는 게 아닐세.”
“그럼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세요?”
“마침 하린이가 미국 국적이 있으니 차라리 한국 안의 외국인 학교에 보내거나 그게 아니면 일본으로 와서 일본 학교에 보내게. 일본이면 하린이 엄마도 자주 한국으로 드나들 수 있고 그게 안 되면 자네가 일본에 자주 와도 되잖나.”
“외국인 학교는 그렇다치고 일본 학교에 장점이라도 있나요?”
“한국에는 아직 그런 학교가 없지만 일본에는 상류층 전용 학교가 있다네. 학교에 수영장도 있고 교실 청소도 학생이 하지 않고 따로 청소부를 고용해서 하네. 나도 손주를 일본 학교에 보내서 알고 있지. 마침 하린이가 일본어도 곧잘 하지?”
하린이는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를 붙여서 영어 이외에 프랑스어와 일본어도 제법 할 줄 안다.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일본 애들은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차별하지 않나요?”
남궁진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좀 웃긴데 재일교포 애들은 그렇게 차별을 하면서 한국인은 또 차별하지 않아. 외국인이라서 오히려 신기해 하고 친절하게 대하지. 우리 손주나 내 주위 사람 몇몇이 겪어 봐서 알아. 한국인이라 차별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아버지와 나는 꽤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린이를 일본 상류층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 수십 년간은 일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일본에 인맥을 만들어둬도 나쁘지 않을 듯싶어서였다.
- 작가의말
재일교포와 달리 한국인이 일본 학교에 입학할 경우 오히려 외국인이라서 신기해 하고 차별하지 않더라는 건 80년대에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던 학생의 경험담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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