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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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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천천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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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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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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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한조선공사

DUMMY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19. 대한조선공사


아빠를 통해 가발에 대해 떵떵 큰소리는 쳤어도 사실 아무 문제도 없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원역사에서 바로 한국이 세계 가발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면서 고속 성장한 이면에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중국 당시 중공의 인모를 수입 금지 시켰던 정치적인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장차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할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설사 한다고 해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지금 현재는 미국의 정치적 도움을 전혀 기대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산업에서 한국이 엄청난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걸로 착각을 많이 하는데 한국은 저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을 뿐이다.


가발은 엄연히 패션 제품이고 패션이라는 건 가격보다 디자인이 훨씬 중요한 상품이다. 한국 가발 산업이 70년대 들어서 기세가 꺾이고 이후 YH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이 디자인 트렌드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생각과 달리 21세기에도 한국 가발 산업은 살아남은 곳이 제법 있다. 바로 소규모 업체로 이 디자인 트렌드의 변화에 적응한 업체들이다.


그럼 나는 미래를 생각해서 여기에 맞는 소규모 업체를 만들려고 하느냐면 절대 아니다. 나는 굉장히 큰 대규모 가발업체를 만든 뒤 70년대에 이 노동자들을 섬유업체로 전환할 생각이다.


지금 한국은 실업인구가 너무 많다.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수입이 너무 적었고 농촌의 인구는 실업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필요없는 노동력이 많기 때문에 이들도 잠재적 실업인구로 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산업은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이 아니라 이들 실업인구를 대량으로 고용해 줄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아빠가 말했다.


“샘플을 이렇게 다양하게 보내야 하는 거야?”


“가발은 패션 산업이라서 디자인 다양성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지.”


“그래서 미국에서 패션잡지를 대량으로 보내게 한 거구나.”


나는 미국의 고든 파카에게 미국 서점에서 패션잡지와 미용 관련 잡지를 대량으로 사서 보내게 하고 또 중고잡지도 최대한 많이 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렇게 들여온 미국 패션과 미용잡지들은 무조건 여공들에게 보게 했다. 영어는 몰라도 상관없었다. 잡지들에 나온 사진만 보면 된다.


그리고 극장의 간판장이들에게 잡지에 나온 사진 중에 최신 유행의 헤어 디자인 사진을 패널에 그리게 해서 공장 벽에 걸었고 며칠 단위로 이 그림들을 바꾸게 했다.


이렇게 최신 유행에 마구 노출시키면 싫어도 최신 유행에 눈을 뜨게 되고 그 가운데 새롭게 디자인 감각을 개발하는 사람도 나오게 될 것이다.


얼마 뒤 가발 샘플을 보냈던 회사들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소한 액수였고 샘플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싶었다. 사실 그쪽에서도 처음부터 모험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대응해서 주문한 수량에 관계없이 빠르게 상품을 생산해서 보냈고 그렇게 상품을 소량으로 거래한 다음부터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1958년 11월 서울에서 허철원 과장이 내려와 우리 공장을 방문했다.


허철원이 먼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먼저 300만 달러 가발 수출을 축하드립니다.”


아빠도 대답했다.


“아직 약속한 천만 달러 수출에 미치치 못하네요. 그러나 올해 안에 꼭 이룩하겠습니다.”


“아닙니다. 300만 달러 수출도 엄청난 수출이라 대통령까지 대단히 큰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장관께서는 아직 인모 수출 금지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올해 안으로 반드시 해드리겠다고도 약속하셨고요.”


나는 이때 아빠 옆에 있었고 허철원이 나를 보더니 덕담을 했다.


“이 애가 그 소문난 천재 아드님이군요. 정말 똑똑하게 생겼습니다. 아빠를 닮아 잘생기기도 했고요.”


허철원은 그러나 내가 아빠의 브레인에다 자금원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눈으로 보지도 않고 그걸 생각해 내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허철원은 몇 가지 인사말을 더 한 뒤에 본론을 꺼냈다.


“정 사장님은 혹시 영도에 있는 대한조선공사를 아십니까?”


아빠와 나는 동시에 소리쳤다.


“아!”


허철원은 나를 힐끗 본 뒤에 말했다.


“알고 계신 모양이군요.”


“부산 사람이면 대부분 대한조선공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태종대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깐 조선소 주변을 구경하기도 했고요.”


“혹시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영도 태종대에 놀러 갔던 일이나 돌아오는 길에 조선소를 구경한 건 사실이다. 그때 아빠와 조선소를 우리가 인수하면 어떨지 잠깐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저도 부산 사람이라 대한조선공사에 대해 소문을 약간 들은 게 있는데 솔직히 조선 수주도 없고 기계 공장 몇 개 빼고는 거의 놀고 있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싸게 인수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노동자들만 승계해 준다면 인수 비용 없이 채무도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대한조선공사라는 건 일본이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을 무렵에 만든 조선소로 원래 이름은 조선중공업이라고 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106m짜리 드라이독이 있어 대략 6천 톤 정도의 배를 수리하거나 건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망하고 한국이 해방된 이후로는 제대로 된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시설이 많았다. 솔직히 한국에서 제대로 된 조선 수요가 있을 리 없어 30톤 미만의 목조어선을 만드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런 목조어선 수요도 충분하지 않다 대부분은 조선소에 부속된 기계 제작 시설을 이용해 간단한 기계를 만들어 파는 게 고작이었다.


해방 이후 정부에서 대한조선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몇 번이나 조선소를 정상화해 보려고 노력해도 일감 부족은 해소되지 않아 그때마다 적자만 보고 실패했다.


아빠는 이미 나와 한국 조선산업의 실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


“솔직히 한국 조선업은 지금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원조를 주고 미 해군이 수리 일감을 주니까 그걸 기회로만 보고 턱도 없이 조선소를 만들기도 했고요.”


허철원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한국 조선업계의 실태는 아빠가 말한 그대로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 해군의 일감이 많이 생겼을 때 대한조선공사를 정상화할 생각보다 미국의 원조 자금을 따먹을 생각으로 수요도 없는 조선소를 너무 많이 세웠다.


지금 한국은 조선 일감은 미 해군의 수리하는 일감이 대부분인 데 비해 조선소는 작은 수리용 조선소까지 합쳐 200개에 가까웠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조선소는 대선조선철공소로 대한조선공사의 6,000톤 드라이독보다 더 큰 36,000톤짜리 드라이독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자국 선박의 수리를 위해 준 원조 자금으로 만들어 자금 문제가 없었고 미 해군이 계속 일감을 주고 있어 대한조선공사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자금이나 일감 문제가 없지만 만약 미 해군의 수리 일감이 줄어들면 대선조선철공소가 위험해질 거라는 평이 많았다.


미래 지식을 가진 나는 앞으로 한국 조선산업이 얼마나 발전할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지식이 없는 현재 한국에는 조선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대한조선공사는 특히 문제인데 바로 10억 환이나 되는 부채 때문이었다. 부채만 없다면 어떻게 경영을 정상화할 수도 있는데 저 부채와 지불해야 하는 이자가 대한조선공사의 경영정상화를 막고 있었다.


이렇게 문제 많은 대한조선공사였으나 한 가지 장점도 있었다. 바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술자들이었다. 대한조선공사에는 조선소 말고도 기계 제작소가 있었고 다른 부분은 몰라도 대한조선공사의 기계생산시설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나마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한조선공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빠가 말했다.


“허 과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조선공사가 짊어지고 있는 10억 환의 부채는 부채를 탕감해 준다고 해도 너무 큰 부담입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만약 이 부채를 우리가 채권자와 현실화한 환율의 달러화로 지불할 수 있게 상공부에서 편리를 봐주시면 우리가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겠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부 공식 환율은 1달러당 500환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상공부에서도 한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 환율부터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지금 달러 암시장에서는 대개 1달러당 5천 환 정도로 거래하는 데 사실 이것도 좀 비정상이기는 했다. 시중에 돌고 있는 달러가 워낙 귀하니 이렇게 고평가되어 거래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보다 좀 낮은 3, 4천 환 사이가 적정 환율이 아니겠냐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금 정부 공식 환율이 이 모양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대통령이 이 이상 환율을 정상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한국의 정부 공식 환율이 턱없이 낮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현재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화는 미국의 원조와 미군이 군속들에게 지불하거나 주한미군 장병 한국에서 소비하는 생활비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환율을 낮춰놔야 한국에 떨어지는 이익이 크다는 게 대통령이 지금의 환율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상공부에서는 거의 전원이 대통령의 이런 환율 정책에 반대하고 있었고 재무부에서 소수 인원이 찬성하고 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아빠의 말은 대한조선공사의 채무 10억 환을 현실화한 환율로 채권자들에게 달러로 지불하겠다는 뜻이었다. 10억 환을 정부 공정 환율로 지불한다면 2백만 달러가 들어가지만 암시장 가격으로 지불하면 20만 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꽤 거액 거래인지라 암시장 가격보다 좀 더 낮춰서 거래한다고 해도 30만 달러 정도면 충분하다.


아빠가 이렇게 요구할 이유는 충분했다.


허철원 과장이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지금 환율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상공부에서는 장관을 포함한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대통령의 의견이 너무 확고해서 누구도 환율 문제를 손을 못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무척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모른 척 할 테니 채권자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하긴 정부에서 대통령 명령을 거역하면서 이런 거래를 밀어주는 건 절대 무리다. 모른 척하겠다는 건 허철원 과장으로서는 최선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그럼, 허 과장께서 채권자들에게 살짝 운만 띄워주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빠와 나는 조선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대한조선공사를 정상화하는 방법은 채무를 일시에 모두 지불해서 채무 문제에서 해방되는 게 최우선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었다.


당연히 나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부분은 허철원 과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했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정진철은 허철원 과장의 주선으로 대한조선공사 채권단과 자리를 마련했다.


정진철은 주선한 허철원 과장을 밖으로 내보내고 채권단에게 바로 말했다. 허철원 과장을 내보낸 이유는 그는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1달러당 4,500환의 비율로 채무를 한 푼도 깎지 않고 바로 지불하겠습니다. 이 안을 받아들이겠다면 대한조선공사를 우리가 인수할 것이고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할 수 없습니다.”


채권단은 조금 웅성거리더니 잠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양해를 부탁했다.


정진철이 밖으로 나가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허철원 과장과 담소를 나눴다.


안에서 한참이나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채권단은 문을 열고 정진처에게 말했다.


“정 사장님은 1달러당 4,500환을 말씀하셨지만 그건 암시장 가격이라 우리도 그 가격에 달러를 처분하려면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니 1달러당 4,000환으로 해 주십시오. 우리도 올해 분의 이자 같은 우수리를 모두 떼고 10억 환으로 채무액을 결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정 사장께서 25만 달러를 지불해 주시면 채무가 전부 해결됩니다.”


정진철은 조금 생각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우리의 대한조선공사 인수가 결정되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부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반도체 만들어야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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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트랜지스터와 TTL +19 24.06.04 9,222 280 13쪽
32 32. 화폐개혁 +28 24.06.03 9,436 288 13쪽
31 31. 문어발을 만드는 이유   +33 24.06.02 9,733 2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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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한국의 산업혁명 2 +22 24.05.31 10,243 284 12쪽
28 28. 한국의 산업혁명 1 +27 24.05.30 10,233 308 13쪽
27 27. 코스코(KOSCO) +20 24.05.29 10,123 28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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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아시아 시장 +18 24.05.27 10,465 30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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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1959년의 사정 +12 24.05.23 10,815 28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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