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비디오 게임의 여명기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53. 비디오 게임의 여명기
큐브에서 돈 나오는 기계, 돈 열리는 나무를 개발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매사추세츠 도시 전체에 퍼졌다.
우리가 판매를 시작하기 전부터 큐브의 전화통은 불이 났고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기계를 들여놓은 가게 주인들이었다.
처음에는 동전 회수원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보려다가 결국 큐브 본사로 찾아와 자신들 가게에 놓인 기계를 팔라고 요구했다.
오늘도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중년 사내가 찾아와서 여직원 하나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아니 그냥 기계를 우리 가게에 설치하게 한 담당자를 만나고 싶다니까.”
응대하던 여직원도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우리도 그게 누군지를 모른다니까요. 저랑 아저씨 사이인데 뭔가 알면 당연히 말씀드리죠. 상부에 문의해 봤는데 누군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며칠 뒤에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얘기뿐이었어요.”
“우리 가게에 기계를 설치했으면 누구 담당자가 있을 거 아냐. 동전을 회수해 가져가는 사람에게 물어 봐도 자기들도 모른다는 대답뿐이고 진짜 답답해 죽겠어.”
“저희도 답답해 죽는 건 마찬가지예요. 지금 아저씨 말고도 여기 들락거리는 분들 우리 직원 빼고는 전부 그 퐁 기계 때문에 온 사람들인데 우리도 며칠째 같은 말만 반복하니 답답해 죽겠어요. 상부에 문의해 봐도 어느 선까지 올라갔다가 결정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만 내려오고 있다고요.”
“그럼 고든 카파 사장이 직접 관할한다는 얘긴가?”
여직원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속삭였다.
“이건 아저씨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카파 사장 위에서 내려온 건지도 모른 데요.”
“그건 뭔 소리야? 사장보다 위라니?”
“이건 우리 회사 안에서 도는 소문인데 고든 사장 뒤에 우리 회사의 오너가 있대요. 우리 회사의 중요한 발명은 그 오너가 주로 했는데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 정체를 숨기고 있대요. 이번에 나온 퐁도 그 사람이 발명했다는 얘기예요.”
“아니 미국에서 자기 정체를 왜 숨겨? 범죄자야?”
“범죄자는 아니고 외국인인데 정체가 드러나면 그 나라 독재자가 그 나라에 남아 있는 가족이나 친척을 인질로 잡고 재산을 빼앗아 갈 위험이 있어서 그런대요.”
수염 가득한 중년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아직도 그런 애들 드라마 같은 소문을 믿는 거냐?”
“그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리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자기들이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있는 소문이래요.”
수염난 중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던 사람이 일어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 들리도록 소리쳤다.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왔어요. 퐁 기계를 사고 싶은 사람은 내일부터 따로 창구가 만들어질 거니까 거기로 오시면 되고 자기 가게에 기계를 놓으신 분은 내일부터 우리가 서류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퐁을 사러 왔던 사람들이 방금 소리친 사람에게 몰려들었다
“제게 모이셔도 소용없어요. 방금 전화 받는 거 보셨으니 저도 방금 전화로 지시만 받은 거 아시죠?”
담당자가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퐁의 대량 생산에 대한 준비는 퐁을 시중에 풀기 전에 이미 완비해 두었다.게임 캐비닛을 만들 합판은 한국에 주문했던 게 이미 몇만 개 분량이 컨테이너에 넣어진 채로 도착해 있었고 한국의 신하전자에서 만든 모니터도 똑같이 컨테이너에 넣어져 도착해 있었다.
이를 조립할 라인은 고든이 퐁 게임을 처음 해 봤던 날 바로 허락을 받고 따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준비조차도 부족했다. 전생에 퐁게임을 처음했던 게 1975년인가 76인가 그 즈음이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대학 주변에 새로 생긴 게임점에 놓인 여러 기계식 게임기들 속에서 퐁 게임 앞에 사람들이 모인 걸 본 게 내가 처음 비디오 게임을 본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기계식 게임기라는 물건이 있었는데 주로 스프링이 달린 고정된 전자빔으로 된 총을 쏘아 표적을 맞추면 표적이 넘어가는 그런 사격 게임이나 미니카를 운전하는 운전게임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게임들 속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것이 바로 퐁이었는데 아마 일본에서 퐁을 카피한 게임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주로 축구라고 불렀다.
하여간 전생의 경험 때문에 퐁의 인기는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벌어진 일은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전생의 내 경험과 전생에서 읽었던 여러 게임 서적들 때문에 퐁이 최초로 붐을 일으킨 비디오 게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 같은 인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부터 시작한다고 알고 있었지 퐁 자체가 이런 붐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은 몰랐다.
고든이 물었다.
“일단 지금 만들어 놓은 건 2천 대뿐이라는 얘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어. 그나마 이것도 이미 부품을 준비해 둬서 급하게 조립만 하면 되어서 가능했던 거야.”
“부품은 몇 대 분량이 준비되어 있어?”
“1만 대.”
“한국에 2만 대 아니 3만 대 분량을 추가 주문하고 최대한 생산을 서둘러.”
말을 마친 고든이 옆에 서 있던 랄프 베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축하해요, 랄프. 드디어 백만장자가 되셨네요.”
퐁 게임 한 대당 랄프 베어에게 100달러가 떨어지게 계약되어 있었다. 추가 주문분까지 합치면 그는 400만 달러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랄프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든 카파와 악수하며 고맙다고 치사했다.
“이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이네요.”
고든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신우 이 친구 옆에 있으면 그런 놀람의 연속이 오히려 정상이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낸 아이디어는 둘이 테니스를 치듯이 공을 주고 받는 것이고 점수를 추가하는 거나 소리를 추가한 것 그리고 튕기는 각도와 속도에 따라 공의 방향이 바뀌고 속도가 바뀌는 건 신우가 한 겁니다.”
“그래도 게임의 발상 자체는 랄프의 발명이니까 이건 정당한 대가예요. 그리고 신우도 랄프와 마찬가지로 퐁 게임기 한 대당 100달러씩 가져가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나도 퐁 게임기가 팔릴 때마다 100달러씩 받기로 했는데 큐브가 이제 완전 내 회사가 아니라 주식회사가 되어 큐브의 수입이 바로 내 수입이 아니게 되어서 이렇게 따로 받기로 계약했다.
세금 문제가 있긴 한데 그것도 변호사들이 나 자신을 법인으로 등록해 둬서 별문제 없다.
고든이 계속 말했다.
“일단 잘 팔리니까 기쁘기는 한데 이거 분배가 문제야. 지금 퐁을 팔라는 주문이 장난이 아니야.”
“일단 매사추세츠 시내의 사람들에게는 1인당 한 대씩만 팔아. 그리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한 번에 3대 판매로 제한해.”
“불만이 꽤 많을 텐데.”
“물량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리고 퐁 게임 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까 지나치게 많이 매입했다가 손해를 볼 수 있다고도 말하고.”
“근데 요즘 내게 퐁 게임기를 달라는 개인적 청탁이 엄청나게 들어오는데 신우 네게는 퐁 게임기 구할 수 있냐는 청탁이 안 들어와?”
“당연히 내게도 엄청나게 들어오지. 난 주로 MIT 교수들에게 들어오는데 진짜 고민이야.”
지금 나와 고든 최고의 고민이 바로 이거다.
퐁 게임기가 돈이 열리는 나무라는 소식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아직 소문에 불과하지만 MIT 교수들이나 직접 기계를 설치한 가게의 사람들에게는 눈으로 직접 확인한 팩트다.
목만 좋으면 한 달에 기계값이 빠지고 그 이후부터 고스란히 수입으로 남는 돈 열리는 나무가 눈앞에 있는데 욕심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래서 온갖 인맥을 동원해 나와 고든에게 청탁을 해오고 있었는데 나는 주로 내 법적 보호자였던 제임스 케인 교수를 통해 MIT 교수들로부터 청탁이 들어오고 고든에게는 우리 직원들을 통한 청탁이 들어왔다.
DEC의 스탠 올슨도 내게 쪼르르 달려와 자기에게도 팔 수 없냐고 말해서 내가 화를 냈다.
“재산이 1억 달러 넘는 사람이 구멍가게를 욕심내? 우리도 물량이 없으니까 그만둬.”
예전에 떨어졌던 DEC 주가가 최근에 다시 많이 올라서 지금은 스탠 올슨의 재산이 1억 달러가 훨씬 넘었다.
이런 주위의 청탁은 무시해 버리면 제일 간단하게 처리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쌓아둔 인맥이 작살날 수도 있는지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고 우리는 백여 대를 이 인맥을 통해 분배할 수밖에 없었다.
퐁이 일으킨 파장은 엄청났다. 이미 언론에서도 퐁의 붐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 시작했고 퐁이 시중에 풀린지 두 달이 채 안 되어 이미 시장에 복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퐁은 내부 회로를 보면 제작이 결코 어렵지 않다. 아직 CPU는 사용되지 않고 중요한 부품이라면 TTL칩 몇 개와 기억장치로 DRAM이 사용되고 있었고 이런 부품들은 전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이라 복제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따로 팀을 만들어 이런 복제 기계 제작자들을 찾아서 고발했다. 그러나 아직 이쪽에는 저작권법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판례가 없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우리는 다른 몇 가지 특허를 등록해 두어서 복제업자들을 주로 특허 침해로 고발할 수 있었다.
특히 화면의 공이 막대에 부딪칠 때 소리가 나오는 점과 공이 부딪치는 각도에 따른 공의 방향전환이나 빠르기의 전환등은 우리가 처음 만든 게 맞아 특허 등록이 쉬웠다.
다만 패들을 조작해서 광점을 움직이는 부분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는 기술이라 특허 등록이 불가능했다. 대신 이를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부분에서의 독자성을 특허로 등록했다.
이런 특허의 장점은 따로 기술을 개발해 복제하는 것은 막을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 회로를 그대로 복제해서 팔아먹는 복제업자는 고소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행히 아직 시중의 복제업자는 따로 회로를 설계하고 독창성을 드러내는 수준의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고 단순히 우리 회로를 그대로 카피하는 수준이라 고소가 가능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법으로 고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 복제업자들이 자기들도 불법적인 카피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온갖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자신들을 블랙마켓의 불법업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몰래 숨어서 우리가 눈치챌 수 없게 거래하니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설치된 기계가 우리와 조금 다른 거라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겉모습만으로는 우리가 만든 정품 퐁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금방 도달해서 겉모습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해졌다.
1970년 4월에 등장한 불법복제품은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직접 만든 우리 기술자들도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차이점이라고는 모니터가 우리가 쓰는 한국 신하의 제품이 아니라는 차이점뿐이었다.
미국에서 신하에서 만드는 흑백모니터를 구하는 일을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래서 모니터만큼은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하다가 우리에게 들통난 것이었다.
그리고 1970년이 되면서 드러난 문제 하나는 미국 내에서도 이런데 외국에서는 불법 복제품을 찾아내는 게 더욱 어려웠다.
1970년이 시작되자마자 퐁의 붐은 바다를 건너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까지 퍼져나갔고 한창 전쟁 중인 베트남에까지 퍼져나갔다.
베트남에는 미군이 많아서 이들을 상대로 퐁 게임이 인기를 끌기도 했고 또 베트남이 나라 자체는 가난해도 미군 주둔 덕분에 돈을 번 부자들이 제법 많아 퐁을 즐기는 인원은 제법 되었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 퐁이 유행하자마자 바로 불법 복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는 주로 야쿠자들이 이런 불법 복제 시장에 뛰어들었고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마피아들이 이쪽 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복제품은 특히 수준이 높아 우리 기술자들도 구분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퐁으로 떼돈을 벌고 또 한 편으로 불법 복제품과 싸우는 사이 갑자기 백악관에서 내게 초대장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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