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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劉遷) 님의 서재입니다.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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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천천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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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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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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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뭘 해도 종잣돈은 필요하다.

DUMMY

반도체 전쟁이 승자를 기다림


4. 뭘 해도 종잣돈은 필요하다.


뭘 하려고 해도 종잣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시장에서 나물을 소쿠리에 담아 놓고 파는 할매도 아는 사실이다.


당연히 나도 미국에서 뭘 해보려면 종잣돈이 필요했고 나는 첫 번째 종잣돈을 위해 루빅큐브를 미래에서 훔쳤다. 앞으로도 몇 개 더 훔칠 거라서 특별히 양심에 가책이 생기지는 않았다.


난 MIT 교수들은 세상과 떨어진 고고한 학자들이라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사업에 대한 지식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MIT는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된 대학이라 그런지 많은 교수들이 사업자금을 끌어오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정식 사업체를 만드는 법, 어떤 물건을 어디에 발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세무 처리하는 법까지 능통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업적인 부분보다 내 나이가 너무 어려서 법적으로 내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이 부분은 짐 케인이 내 법적인 후견인이 되어 해결해 주었다.


짐은 현재 미국에서의 내 법적 후견인인 윌리엄 모건 장군과 연락해 자신이 내 후견인이 되고 싶다고 했고 윌리엄 모건은 흔쾌히 허락했다.


처음 큐브를 만들 때 각각의 면을 색깔있는 플라스틱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가격 절감을 위해 그냥 매끄러운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며칠 뒤 샘플이 나왔고 짐과 나는 샘플을 MIT 학생들에게 풀었고 그때부터 MIT 교정 안에는 온통 3X3 큐브를 만지작거리는 학생과 교수들로 넘쳐났다. 글쎄 교수들도 그걸 가지고 노느라 연구에 지장을 줄 정도더라고.


짐 케인과 나는 대박을 예감했고 실제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이름을 짐 케인 교수는 내 이름을 따 시누큐브라고 하자고 했지만 난 3X3 큐브를 고집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3X3 큐브나 시누큐브라는 이름 대신 사람들은 MIT 큐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격은 하나에 2달러로 정했는데 그건 소매 가격이고 완구 도매상에 넘기는 가격은 1달러 남짓이었고 한 개를 팔 때마다 내게는 50센트 정도가 떨어졌다.


처음 만들었던 10만 개가 매진되는 데는 2주도 걸리지 않았고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급히 생산시설을 확충했다.


큐브를 발매하고 한 달쯤 지난 뒤 식탁에서 메리가 물었다.


“이제 시누의 재산이 10만 달러는 넘었지?”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판매량이 40만 개 정도니까 현금만 대략 20만 달러 정도인데 앞으로 팔릴 물량이나 큐브의 재산권을 생각하면 시누의 재산은 이미 100만 달러가 넘는다고 봐야지.”


이 시대는 100만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진짜 백만장자(millionaire)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메리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말했다.


“시누가 세계 최연소 백만장자가 된 거야?”


“상속으로 그 정도 재산을 지닌 아이가 있을 수 있으니 아마 세계 최연소 백만장자는 아닐 거고 자기 실력으로 백만장자가 된 건 세계 최연소가 맞을 거야.”


메리는 내 뺨에 키스를 했다.


“시누 미국에 온지 반 년도 안 되어서 백만장자가 된 걸 축하해.”


내가 미국에 온 건 1957년 4월이었고 지금은 9월이니 정확히 5개월이었다.


짐이 말했다.


“시누, 처음 널 MIT에 받아들인 건 네 장래를 위해서였는데 지금 네 실력은 이미 MIT라는 학교에서는 더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는구나. 혹시 학교를 나가서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니?”


MIT는 내게 굉장히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내가 MIT에 입학하는 걸 허락해줬을 뿐 아니라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 것을 넘어 내가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학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짐 케인이라는 후원자를 연결해 주고 또 단순한 학비 면제 이외에 생활비와 용돈까지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막대한 혜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내가 MIT를 학년을 채워 졸업해야 한다거나 연구실에서 일해야만 한다거나 어떤 성과를 얻을 경우 일정 부분을 학교에 기부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조건이 하나도 없는 일방적 혜택이었다.


이런 부분은 정말 미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장래성이 있는 소년을 잘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과라고 자부하는 것이 이들의 가치관이었다.


“랩에서 연구하는 것 중에 재미있는 게 몇 개 있으니까 학교에는 조금 더 있고 싶어요.”


전자공학쪽 교수들은 전부 내 실력을 인정해서 요즘은 학점 이수에 대한 우려 없이 랩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사정이 그런만큼 나는 당연히 MIT 안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리고 요즘 화제의 MIT큐브의 발명자가 나라는 것도 유명했는데 의외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동아시아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라는 이름을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잊혀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동아시아인으로 소개하는 것이 사람들의 이해가 빨랐다.


때문에 신문이나 언론에서 MIT큐브의 발명자로 내 이름이 거론될 때도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동아시아인일 뿐이었다. 이걸 확실히 느낀 것이 바로 엄마, 아빠와 편지 연락을 하면서였다. 한국에서 전화는 너무나 비싼 물건이었고 내가 엄마랑 아빠와 연락을 나누는 방법은 편지뿐이었는데 내가 언론에 소개되어 꽤 유명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빠의 편지에는 내가 부자가 됐다거나 유명해졌다는 글귀는 한 줄도 없었고 그저 날 염려하는 문장들뿐이었다.


나는 짐 케인 교수에게 말한대로 당분간 학교에 더 머물기로 했다. 나는 학교 안에서 꽤 여러 랩을 돌아다녔고 이미 해결사로 유명해서 전자공학이나 고체물리학 관련으로는 내가 랩에 오는 걸 환영하지 않는 교수는 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컴퓨터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나를 정말 환영했다.


이 시대 컴퓨터라는 건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완전한 트랜지스터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은 겨우 2년 전이었고 아직 진공관 컴퓨터가 남아 있었으며 MIT조차도 컴퓨터는 지극히 귀중한 물건이었고 자체적으로 TX-0라는 트랜지스터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1955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은 1956년에 했으니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티소라고 불리는 TX-0 컴퓨터에 사용된 트랜지스터조차 해괴하기 이를 데 없어 겉모습은 진공관과 똑같아 보였다.


진공관보다야 훨씬 안정적이고 내구성이 강하고 전력도 적게 들지만 크기 자체는 진공관에 비해 그다지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불과 3,600개의 트랜지스터가 사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다.


그래도 이걸 만든 사람들은 컴퓨터의 크기가 작아지고 전기가 적게 들고 안정적이라고 아주 좋아했다.


그런 무식한 컴퓨터도 링컨 연구소라는 MIT 캠퍼스와 조금 떨어진 미 공군에서 위탁한 연구소에만 존재했고 MIT 컴퓨터실에 있는 컴퓨터는 아직 진공관 컴퓨터였다.


나는 이 진공관 컴퓨터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나는 유독 고장이 잦은 이 진공관 컴퓨터의 한 논리 부분을 트랜지스터로 바꿔서 달아주었고 그들은 당장 내게 컴퓨터실 자유 출입권을 주었다.


거기다 원시적인 컴퓨터라고 해도 미래에서 컴퓨터를 약간은 다뤄봤던 내 경험은 그들에게 꽤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천공카드를 밀어넣는 직원에게 말했다.


“링컨 연구소의 컴퓨터는 천공카드 없이 명령 입력이 가능하대요. 게다가 출력도 프린터가 아니라 모니터에 바로 출력되고요.”


모니터에 화면이 출력된다고 해도 미래에 이야기할 그런 그래픽은 아니고 벡터 디스플레이에 의한 오실로스코프 같은 그래프 정도가 전부였지만 모니터 디스플레이 자체가 없어서 프린터에 텍스트로 출력되거나 하던 것에 비하면 이 시대에는 엄청난 진보였다.


컴퓨터를 돌리던 직원(대학원생이 아니라 정식으로 대학에 고용된 직원이었다.)이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내년이나 내후년은 되어야 여기로 올 거야. 당장은 지금 이 진공관 컴퓨터도 구경도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불편한 건 없어요?”


“다른 건 네가 트랜지스터로 명령처리부를 바꿔줘서 괜찮은데 기억 장치가 너무 불안해. 너도 알다시피 윌리엄스관(음극선관의 일종)은 너무 불안하잖아. 이 주위에 트럭 한 대만 지나가도 기억이 지워질 때가 있어.”


“자기 코어 메모리를 사용하는 거 아니었어요?”


자기 코어 메모리는 1955년에 중국계 과학자인 왕안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아직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건 너무 비싸다고 대학에서 돈을 안 줘. 대학의 지원 자금은 지금 새로 만들고 있는 TX-2에 다 들어가고 있어. 이런 구닥다리 컴퓨터 개조에 쓸 돈은 없다네.”


“얼마나 비싸길래 그래요?”


“비트당 1달러라고 하더군. 지금 이 컴퓨터 사용하는 워드가 18비트니까 4K워드만 해도 74,000달러가 들어가는 거지. 그러니 느리고 불안정해도 윌리엄스관을 쓸 수밖에 없어.”


이 시대에서 74,000달러의 가치를 생각하면 대학에서 돈을 안 주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비싼 거였어요?”


“그래도 트랜지스터나 진공관 메모리에 비하면 아주 싼 거지. 진공관은 얼마나 들지 상상도 못하겠고, 트랜지스터로 만들어도 비트당 10달러 아니 20달러는 나올걸.”


트랜지스터로 이 시대에 메모리를 만들려면 트랜지스터 4개는 들어가야 하니 진짜 그 가격이 나올 거 같았다.


나는 그 엄청난 가격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내가 쓰던 폰의 메모리가 4GB였는데 40억X8X20하면 이 시대 가격이 나온다. 물론 1Kb당 24비트 추가되는 건 덤이다.


“그럼, 메모리를 싸게 만들 수 있으면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겠네요.”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할걸. 세상에 컴퓨터가 몇 대나 있다고 그게 큰돈이 되겠어.”


“가격이 싸지면 컴퓨터 숫자가 늘어날 수 있잖아요.”


“그래도 세상에 컴퓨터를 쓸 일이 많지 않잖아. 미국 전체로 따져도 100대나 필요할까?”


뭐 그게 이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 컴퓨터는 5대만 있으면 충분하다던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거다.


직원이 계속 말했다.


“지금 링컨 연구소에 있는 TX-0는 그런데 64비트 워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메모리에만 백만 달러가 넘게 들어간 거지. 공군이 정말 돈지랄을 하는 거지.”


이 시대 미군은 정말 돈이 많았다. 링컨 연구소 자체가 미국의 새로운 방공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곳이니 미 공군이 돈을 퍼붓는 것도 당연했다.


“근데 TX-0도 벌써 구식이라고 TX-2를 만들고 있고 TX-2가 완성되면 TX-0은 여기로 보낼 거라고 하던데요.”


“그렇긴 한데 TX-0의 메모리는 그대로 TX-2에 재활용되고 메모리는 빼고 보낼 거야.”


하긴 이 시대에 백만 달러가 어디 껌값인가? 그걸 재활용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컴퓨터실을 나왔다.


컴퓨터실 직원의 예상과 달리 컴퓨터는 앞으로 무서운 속도로 늘어날 것이고 메모리를 싼 가격에 공급하면 분명히 돈이 된다.


아직 IC도 개발되지 않은 시대였고 트랜지스터 또한 제작비가 꽤 들어가는 물건이라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때문에 내가 생각한 물건은 이 시대의 대세 메모리는 자기 코어 메모리였다.


자기 코어 메모리는 자석으로 만들어진 고리에 가로, 세로 그리고 대각선의 전선 세 가닥을 밀어 넣어서 자기장으로 고리를 회전시켜 정보를 기억시키는 장치다.


자석으로 고리를 만드는 것을 제외하면 트랜지스터와 달리 그다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자기 코어 메모리의 가격이 비싼 것은 오로지 미국의 인건비가 너무 비싸서 그런 것이다.


자석 고리를 작게 만들고 값싼 한국의 인건비로 만든다면 충분히 채산성 있는 사업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생에는 인텔이 DRAM을 상품화하기 이전까지 홍콩이나 대만에서 이 자기 코어 메모리를 만들어 미국에 납품했고 미국에서 처음 비트당 1달러 하던 가격을 최종적으로 비트당 1센트까지 낮췄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한국은 홍콩이나 대만보다 임금이 더 저렴하다. 구리 전선 정도는 지금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자석 고리도 제조 장치만 한국으로 가져가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자석 고리를 한국에서 제조하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만들어서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


굳이 내가 가서 공장을 경영할 필요도 없다. 아빠가 한국에 있으니 아빠에게 공장을 만들라고 해도 된다.


꽤 괜찮은 일감 하나를 한국으로 가져가는 것이니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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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 무어의 법칙 +19 24.06.05 8,885 276 12쪽
33 33. 트랜지스터와 TTL +19 24.06.04 9,292 282 13쪽
32 32. 화폐개혁 +28 24.06.03 9,502 290 13쪽
31 31. 문어발을 만드는 이유   +33 24.06.02 9,798 278 12쪽
30 30. 한국의 산업혁명 3 +29 24.06.01 10,136 287 13쪽
29 29. 한국의 산업혁명 2 +22 24.05.31 10,304 285 12쪽
28 28. 한국의 산업혁명 1 +27 24.05.30 10,299 309 13쪽
27 27. 코스코(KOSCO) +20 24.05.29 10,187 290 13쪽
26 26. 보이지 않는 위험 +23 24.05.28 10,409 298 13쪽
25 25. 아시아 시장 +18 24.05.27 10,531 305 12쪽
24 24. 워키토키 +18 24.05.26 10,424 325 14쪽
23 23. 우주에서 돈이 쏟아져 내린다. +18 24.05.25 10,764 302 13쪽
22 22. MOSFET +26 24.05.24 10,636 293 12쪽
21 21. 1959년의 사정 +12 24.05.23 10,888 288 12쪽
20 20. 다시 미국으로 +16 24.05.22 10,854 299 13쪽
19 19. 대한조선공사 +27 24.05.21 11,073 282 13쪽
18 18. 가발 +17 24.05.20 10,856 29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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