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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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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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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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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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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랜지스터라디오

DUMMY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13. 트랜지스터라디오


IC 발명은 산업계 전체 아니 인류 문명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엄청 뉴스다. 그러나 의외로 그 반향은 크지 않아 신문이나 과학 잡지에 뉴스 한 토막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특허만 등록하고 상품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관련 특허가 내게 있고 또 관련 기술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이걸로 다른 사람은 돈 못 번다.


그리고 내가 특허만 출원하고 관련 발표를 하지 않은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생에 IC의 발명자로 기록되고 찬양받은 사람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다. 로버트 노이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와 함께 인텔의 공동 창업자다.


그러니까 반도체 역사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인데 나는 이 사람들의 명예를 모조리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따로 IC 제작에 관한 발표를 할 때까지 상품화나 선전을 중단할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었고 다른 사업상의 핑계를 댔다.


“우리가 이미 PDP-1으로 엄청난 주문을 받고 있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특허만 등록해 두면 남에게 빼앗길 염려는 없으니까 일단 PDP-1을 더 팔아먹는 데 노력하도록 하죠.”


내 주장도 타당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여기 있는 공돌이들 중에 내가 가장 사업수완이 높다는 사실은 다들 인정하고 있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우리가 개발한 이 평면 트랜지스터로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는지부터 시험해 보도록 해요. 우리가 더 싼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고 바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계약을 끊었다가 우리가 몰랐던 문제점이 드러나면 낭패니까요.”


이론적으로 분명히 괜찮았지만 실제로 만들었더니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는 공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이번에도 반대 의견은 없었다.


우리는 새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에 맞는 보드를 설계하고 바로 PDP-1의 제작에 들어가 보았고 10일도 지나지 않아 결과는 아주 좋다고 나왔다.


우리는 이 새로운 PDP-1에 <PDP-1 플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대 298,000달러로 가격을 낮추고 새로운 기능 몇 가지를 더 붙였다. 새로 개발한 IC 레지스터는 채용하지 않았는데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IC 레지스터를 채용할 경우 속도가 많이 빨라진다는 게 확인되었지만 지금은 컴퓨터의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당장 컴퓨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IBM은 아직 IBM 700 시리즈라는 진공관 컴퓨터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의 성능이나 속도보다 안정적인 지원과 서비스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IBM의 컴퓨터를 구입한 기업이나 기관 중에 이 문제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고객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IBM의 지원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기계의 성능이나 속도보다 훨씬 중요했다.


다만 IBM이 욕을 먹고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천공카드였다. 80컬럼 IBM 천공카드는 이 시대 컴퓨터 저장장치의 표준이었다. 입력도 천공카드로 하고 출력도 천공카드로 하는데 이 천공카드 판매에 의한 수입도 IBM의 큰 수입 중 하나였다.


IBM의 서비스와 컴퓨터 성능에 만족하는 고객들도 이 천공카드 사용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불만이 대단했다.


그 빈약한 저장용량과 그로 인한 부피도 큰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사용상의 불편함이었다. 어차피 컴퓨터에 속도를 기대하는 시대가 아니니까 입출력 속도에는 큰 불만이 없어도 컴퓨터에 일일이 천공카드 묶음을 가져다 넣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다.


어쩌다 실수해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그걸 다시 맞추는 것도 큰 문제였다. 사용자들은 천공카드 묶음 옆에 대각선으로 줄을 그어 두고 이렇게 천공카드가 흩어졌을 때 다시 정렬하기 쉬운 편법을 발명했다. 그러나 그런 편법을 사용해도 불편하다는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천공카드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고 천공테이프와 자기 테이프를 저장장치로 사용했다.


천공테이프는 천공카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종이 테이프였는데 이 구멍으로 정보를 읽고 저장했다. 가령 한 줄에 8개의 구멍이 있으면 1바이트의 정보가 저장 가능했다.


자기 테이프 저장장치는 녹음용을 주로 사용하는 오픈릴 테이프를 정보의 저장장치로 사용하는 기계였다.


속도나 저장효율 면에서는 자기 테이프가 우수하나 천공테이프는 가격이 싸고 또 컴퓨터에 정통한 사람은 천공테이프에 뚫린 구멍을 보고 바로 정보를 읽는 것도 가능했다.


그걸 보고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 당시는 정보처리의 양이 방대하지 않았고 기술자들이 기계어에 너무 익숙해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DEC에서 일하는 켄 올슨부터 시작해서 스탠 올슨까지 모두 천공테이프를 읽을 줄 안다.


이렇게 각각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DEC는 자기테이프와 천공테이프 두 종류의 저장장치를 내놓았지만 많은 고객들이 자기 테이프 대신 천공테이프를 저장장치로 선택했다.


하여간 우리 DEC에서 만든 PDP-1은 사용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크기가 작아 차지는 공간이 적으며, 운용비가 적다는 장점 때문에 꽤 많은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공군의 주문 이후 다른 곳에서도 많은 주문이 밀려왔는데 특히 학교의 주문이 많았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로 학교에서는 과학과 기술 교육에 훨씬 많은 자원을 배분하기 시작했는데 그 첨단으로 컴퓨터를 교육하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대학뿐만 아니라 좀 큰 고등학교에서도 컴퓨터에 대한 문의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컴퓨터를 들여놓는 학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장 대중적인 어셈블리어와 코볼어와 포트란 프래그래밍 언어를 만들어 판매하는 동시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처리하고 관리할 수 있는 프래그램을 만들어 같이 끼워 팔았다.


덕분에 DEC에는 컴퓨터 제작을 하드웨어 기술자만이 아니라 전문 프로그래머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다.


나는 이런 기술자들 이외에 영업망과 서비스 지원 인력도 보강하게 했다.


나는 켄과 웨슬리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IBM은 지금 천공카드를 사용하는 진공관 컴퓨터를 팔고 있는데도 연간 수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그게 다 IBM의 사후 지원과 서비스 대한 고객사들의 신용 때문이죠. 그러니 우리도 이 사후 지원과 서비스망은 반드시 갖춰야만 해요. 또 고객들에 대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칠 교육 시스템도 갖춰야 해요.”


DEC의 1958년 매출이 2천만 달러를 넘으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또 절반 이상의 순수익이 예상되는지라 켄과 웨슬리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학교 같은 데서 오는 주문에는 교육도 같이 시켜달라는 요구가 반드시 같이 들어오고 있으니 아예 전문 시스템을 만드는 게 좋겠어.”


“그리고 PDP-1과 PDP-1 플러스의 뒤를 이을 PDP-2의 개발을 서두르세요. 그리고 PDP-2에는 PDP-1에서 미뤄뒀던 IC 레지스터를 본격적으로 넣도록 하죠.”


웨슬리가 물었다.


“그나저나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얘기가 사실이야?”


“그 얘긴 누구에게 들었어요?”


“고든에게 큐브 컴퍼니에서 트랜지스터를 왜 따로 상품화 안 하냐고 물어보니까 네가 전부 한국으로 가져갈 거라고 하던데.”


“내 여동생이 이제 좀 자랐으니까 부모님이 한국으로 갈 때 나도 따라가려고요. 근데 한국에서 몇 가지 일만 처리하고 바로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아마 2, 3개월 안에 돌아올 거예요.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고요.”


“알았어. 부모님을 따라 귀국한다는 데야 뭐 할말이 없지. 하지만 지금 큐브 컴퍼니와 DEC에는 네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마.”


“알아어요. 급한 일만 처리하고 바로 돌아올게요.”


내 여동생이 장시간 비행에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자라 6월에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내 여동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 여동생의 이름 문제로 엄마, 아빠랑 상당히 실강이가 있었다.


미국에 등록할 이름은 간단하게 엄마를 챙겨주고 산후조리까지 해준 빌 모건의 아내 엘리 모건의 이름을 따서 엘리라고 지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할 한국 이름이 문제였는데 엄마랑 아빠의 구시대적 작명 감각이 나를 좌절시켰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미자’나 ‘미순’이가 어떻냐는 말에는 정말 쓰러질 뻔했다.


“엄마 여자애 이름 뒤에 ‘자’를 붙이는 건 일본식이라서 지금 벌써 촌스럽다는 얘기가 나온단 말이야. 그리고 순이도 너무 옛날 이름이라서 촌스럽게 들려.”


엄마랑 아빠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미자와 미순이를 취소했다. 그러나 21세기적 감각으로 내가 추천한 이름은 아빠가 이상하게 들린다고 했다.


“오히려 그 이름이 이상하지 않아? 그냥 한국에 돌아가서 작명소에서 짓는 게 낫지 않겠니?”


“미국에서 아기 출생 등록을 할 때 미들 네임도 같이 올려야 하니까 미들 네임을 한국식 이름으로 넣는 게 좋다고 봐. 그러니 지금 여기서 지어. 지금 지아라는 이름은 어때? 지아는 미국에서도 여자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


엄마는 정지아라는 이름을 몇 번 읊어 보더니 바로 반대했다.


“그 이름은 절대 안 돼. 무슨 부엌에서 낳은 애 같은 이름이잖아.”


정지는 경상도 사투리로 부엌을 말한다. 정지아라고 하면 부산이나 경상도 사람들은 바로 부엌에서 낳은 아이라고 놀릴 게 뻔했다.


결국 엄마, 아빠와의 장시간 의논 끝에 여동생의 이름은 로마자로 표기하기 편한 하린으로 정했고 미국에는 ‘엘리 하린 정’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을 등록했다.


처음 부모님은 아이를 출산한 이후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아기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안 좋으니까 몇 달 정도 더 자라면 한국으로 가. 6월이 되면 방학이라 나도 한국으로 갈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한국 공장에서 사용할 기계도 주문하고.”


아빠와 나는 몇 가지 한국에서의 사업 아이템 의논하다가 결국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트랜지스터부터 시작해서 저항, 커패시터, 코일, 스피커, 스위치 같은 부품은 전부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져가서 조립만 한국에서 하기로 해. 그리고 라디오만이 아니고 자기 코어 메모리도 한국에서 만들면 아주 저렴하게 만들 수 있어. 일단 라디오 케이스는 여기서 플라스틱 사출 기계랑 금형을 가져가면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어. 보드를 제작하는 기계도 우리 회사에서 만든 걸 가져가면 되고.”


자기 코어 메모리는 이미 아빠에게 설명했기 때문에 아빠도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아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전부 미국에서 가져가면 수송비가 만만찮을 텐데. 트랜지스터를 빼고 나머지는 가까운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낫지 않겠니?”


사실 아빠 말대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훨씬 싸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국교가 없어서 정식 수입이 어렵잖아. 일단 미국에서 수입하고 하나씩 한국에서 국산화하는 게 좋겠어. 트랜지스터 이외에는 특별히 어려운 게 없으니까 플라스틱 사출 기술만 확립되면 다른 건 다 쉽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이때 한국은 일본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었다. 국교가 맺어지지 않았으니 공식적인 무역도 거의 없었고 수출은 몰라도 일제 수입품은 전부 밀수품이라고 봐도 좋았다. 수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부품 수입도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빠가 일본 부품 수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부산은 일본과 가까워 부피가 적은 물건이라면 밀수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절은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기만 해서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시대라 특별히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가 가는 게 아니라면 적당히 불법을 저질러도 사람들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말했다.


“밀수로 이런 대량의 부품을 수입하는 건 너무 어려워. 그리고 만약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들어갈 추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미국에서 수입하는 쪽이 더 나아. 게다가 미국과 유럽에 수출할 제품이니 미국 부품을 사용하는 게 더 좋기도 하고.”


아직 일제 물건은 미제 물건에 비해 조악품이라는 말을 듣는 시대라 일제 부품으로 만들었느냐 미제 부품으로 만들었느냐는 가격 결정에 꽤 중요한 시대였다.


아빠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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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트랜지스터와 TTL +19 24.06.04 9,276 28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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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문어발을 만드는 이유   +33 24.06.02 9,780 278 12쪽
30 30. 한국의 산업혁명 3 +29 24.06.01 10,117 287 13쪽
29 29. 한국의 산업혁명 2 +22 24.05.31 10,288 285 12쪽
28 28. 한국의 산업혁명 1 +27 24.05.30 10,280 309 13쪽
27 27. 코스코(KOSCO) +20 24.05.29 10,171 290 13쪽
26 26. 보이지 않는 위험 +23 24.05.28 10,392 298 13쪽
25 25. 아시아 시장 +18 24.05.27 10,513 305 12쪽
24 24. 워키토키 +18 24.05.26 10,408 325 14쪽
23 23. 우주에서 돈이 쏟아져 내린다. +18 24.05.25 10,750 302 13쪽
22 22. MOSFET +26 24.05.24 10,618 293 12쪽
21 21. 1959년의 사정 +12 24.05.23 10,869 28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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