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군의 요구
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11. 공군의 요구
미국에 도착하자 엄마와 아빠를 뉴욕으로 데려갔다. 이 당시는 일본인들도 뉴욕을 보면 그 어마어마한 마천루들에 압도당하던 시대라 엄마랑 아빠는 정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미국의 국력과 경제력에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
뉴욕 관광을 마친 뒤에야 매사추세츠로 와서 내가 머물고 있는 케인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아빠랑 엄마는 케인 부부에게 자식을 맡겨둔 입장이라 정말 고맙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고 부부에게서 내 얘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나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한국에서 돌아왔는지라 큐브 컴퍼니와 DEC를 찾았다. 우연이라기 보다 좀 더 관리하기 쉽도록 두 회사는 바로 이웃에 위치해 있엇다.
고든 카파는 큐브 컴퍼니의 사장이 된 후 상당한 실적을 내고 있었다. 각종 광고와 언론 노출에 힘입어 큐브와 캐리어 모두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든이 말했다.
“큐브와 캐리어 둘 다 홍콩에서 이미 짝퉁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신경쓰지 않는 게 나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히트 상품이 등장하면 홍콩이나 대만 그리고 몇 년 있으면 한국에서 모방 제품이 등장하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냥 신경 끄고 미국이나 서유럽 그리고 일본에 그 모방 상품들이 퍼지는 걸 좌시하지 않는 정도 이상은 대처가 불가능하다.
저런 모방이나 짝퉁이 아예 불가능한 고기술 제품이 아닌 한 이건 누가 나와도 못 막는다.
나는 큐브 컴퍼니의 사장 고든 카파에게 물었다.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 사업체를 차릴 건데 어떤 사업에 투자하는 게 좋아 보여?”
고든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미국 같은 선진국 경제에서 경제를 운용하는 방법을 배웠고 개발 도상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투자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어. 그러니 한국에 맞는 상품은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 네가 한국 상황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일본이 패전 이후에 무슨 산업에 도전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을 거야. 다만 개발 도상국이 가장 먼저 성공하는 품목 한 가지는 알려줄 수 있는데 바로 섬유제품이지. 합성섬유가 나온 현재에도 섬유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제품이라 인건비가 싼 나라일 수록 유리해. 그러니 제일 먼저 섬유에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정확한 판단이다. 전생에 내가 읽은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한 책들에서 선진국 전문가들의 조언은 거의 쓸모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의 경험이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한국이 최초로 만들어 낸 경쟁력 있는 산업도 바로 섬유산업이었다.
그렇게 파고들기 시작하자 전생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6, 70년대 한국에서 제일 먼저 팔아치웠던 게 가발, 섬유, 신발, 합판이었던가? 그리고 경제 발전과 함께 시멘트와 철근 수요가 폭발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뭘 시작하는 게 좋을까? 합판의 경우는 부산에 이미 명동목재와 창성기업이라는 경쟁력 있는 합판 회사가 있다. 명동 목재는 우리 세대 부산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는 회사였고 창성기업도 개인적인 인연으로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런 회사들이 이미 버티고 있는 합판 업계에는 일부러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런 회사들과 경쟁을 하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다른 품목을 알아보는 게 좋다.
그렇다면 다른 품목은 뭐가 좋을까? 섬유라고 해도 종류가 워낙 많아서 어떤 걸 먼저 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다 깨달은 것이 있는데 섬유를 만들든 신발 을 만들든 먼저 공장이 있어야 하고 공장을 만들려면 시멘트가 있어야 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은 지금 제대로 된 시멘트 공장이 없다. 그나마 있는 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던 삼척에 있는 시멘트 공장인데 생산시설이 무척 낡아 생산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생산량 자체도 보잘 것 없었다.
지금 한국에 시멘트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냐 하면 집들이 선물로 시멘트 한 포대만 가져가면 그게 최고의 집들이 선물이 될 정도다.
아무리 구식 건물이라고 해도 건물의 수리나 이런저런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등 사용처가 많은 게 시멘트인데 그만큼 귀하고 또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시멘트인지라 최고의 집들이 선물이 시멘트인 것이다.
그리고 건물을 지을 때 시멘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철근이다. 철근이라면 철강 회사에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포항제철 같은 종합 제철소를 만들려면 지금 화폐로 2억 달러는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꿈꾸기 어려운 거액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켄 올슨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미국에 돌아왔으면 우리부터 찾아와야 할 거 아냐.”
“여긴 제 회사이니 제 회사부터 먼저 찾는 게 당연하죠. DEC에서 나는 최대 주주일 뿐이고 켄과 웨슬리가 경영자잖아요.”
“농담하지 말고 빨리 와서 소식을 좀 들어 지금 당장 주문이 빗발치고 있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야.”
나는 조금 의아했다.
“컴퓨터가 그렇게 많이 팔리는 물건도 아닌데 무슨 일이에요?”
“공군에서 한 번에 PDP-1을 4대나 주문해 왔어.”
이건 좀 대단한 일이 맞았다.
“여기서 이야기하지 말고 DEC로 가죠.”
우리는 함께 DEC로 가서 사정을 들었다.
켄이 말했다.
“네가 한국으로 떠난 뒤에 바로 공군에서 사람을 보내서 PDP를 빨리 납품해 달라고 요구해 왔어.”
“공군에서도 로켓을 발사한 데요?”
“아니 로켓이 아니라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조기경보기 그 조기경보기인가 뭔가를 만드는 데 소형화된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제야 이해가 갔다. 조기경보기 개발은 생각보다 훨씬 빨라서 2차대전이 끝난 40년대 후반에 이미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조기경보기 최대의 문제는 제대로 된 성능을 가지면서 비행기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당시에 진공관을 사용한 미니컴퓨터 비슷한 뭔가를 만들어 여객기나 폭격기를 개조한 기체에 실어 봤지만 성능이 기대 이하였다.
사실 진공관 컴퓨터로 비행기에서 실을 수 있는 쓸 만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 아닌가.
“그래서 PDP-1을 납품하기로 한 거예요?”
“아니 아직 납품 계약을 맺지는 않았어.”
“왜요? 한꺼번에 4대나 주문이 들어왔는데 그걸 거절해요? 혹시 가격을 너무 깎고 시간을 너무 촉박하게 완성해 달라고 했어요?”
웨슬리가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 의견을 먼저 들어보려고 뒤로 미뤘어. 솔직히 조기경보기용 컴퓨터는 육군이나 해군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로켓 발사와는 달리 시간이 좀 있으니까 네 의견을 들은 뒤에 결정하자고 했어.”
“그런 걸 7살짜리 애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공군이 응낙하던가요?”
“응, 네가 생각보다 유명한 건지 공군에서 파견 온 장교도 네 이름을 말하니까 바로 응낙하던데. 큐브보이라는 네 별명까지 알고 있었어.”
어라, 내가 그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나?
“정말이에요? 정말 공군에서 내 이름까지 알고 있다고요?”
켄과 웨슬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웨슬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공군 장교도 네 이름을 들어봤는지 네 이름을 꺼내니까 널 꼭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 조기경보기와 차기 방공망 건설에 대해서 네 의견을 물어보고 싶다고 말이야. 그래서 우린 네가 엄마 젖이 먹고 싶어서 한국에 갔고 미국으로 돌아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 그랬더니 네가 돌아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더군. 근데 엄마 젖은 안 먹고 왜 벌써 미국으로 돌아온 거야?”
난 한숨을 쉬면서 동생이 생기게 된 일과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는 사정을 설명했다.
웨슬리와 켄은 내가 동생이 생기게 됐다고 하자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켄이 말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만약 태어나면 너랑 8살 정도 차이가 나겠군. 동생이 충분히 귀여울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전생에는 형제가 없었는지라 궁금해서 물었다.
“나이 차이가 적으면 동생이 귀엽지 않아요?”
켄이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귀엽긴 뭐가 귀여워, 얼마나 귀찮은지 말도 못해. 엄마는 툭하면 동생 보라고 하지 툭하면 울면서 보채지. 나이 좀 들면 마구 기어오르고, 툭하면 엄마에게 일러바치고, 하여간 없는 게 훨씬 낫지. 그래도 여덟 살쯤 아래면 귀여울 거야.”
웨슬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켄은 남동생이 있어서 그런 거고 여동생은 좀 다를 수도 있어. 그런데 부모님이 미국으로 오셨으면 부모님도 미국에서 사실거야?”
“나도 그렇게 하자고 졸랐는데 미국은 익숙하지 않다고 거절하셨어요. 동생을 낳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실 거예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군에 바로 연락했고 공군 장교는 그날 바로 워싱턴에서 날아왔다.
장교가 말했다.
“우리 공군은 육군과 해군에서 운용 중인 PDP-1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조기경보기의 레이더 통제용으로 그런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PDP-1 4대를 주문하고자 합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의 컴퓨터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대화형 컴퓨터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고성능 컴퓨터입니다. 우리는 이미 벡터 디스플레이 모니터로 처리 결과를 출력하고 있으니 레이더와의 상호작용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시대의 레이더의 디스플레이도 벡터 디스플레이이니 지금 PDP의 출력장치로 사용하는 오실로스코프용 모니터를 개조한 것과 공통점이 적지 않았다.
공군에서 PDP를 보고 마음에 들어한 부분도 바로 그 부분 같았다.
장교가 말했다.
“우리 공군에서 PDP 컴퓨터를 마음에 들어한 점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혹시 공군을 위한 좋은 조언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흑판에다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PDP도 성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대의 컴퓨터로 여러 개의 레이더를 제어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여러 대의 PDP-1을 항공기에 설치하고 이렇게 레이더 통제관들의 자리를 배치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발전기는 따로 설치해서 전력공급에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 왕복기관 항공기는 전력을 만들어 낼 출력이 부족해서 권하지 못하겠습니다. 강력한 제트 엔진 항공기라야 충분한 전력을 뽑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기체 내부에 이런 식으로 휴식 공간을 만들어 통제관들이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장교는 내가 그림을 그려가며 하는 설명을 듣자 깜짝 놀라서 물었다.
“혹시 이전에 조기경보기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장교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게 그들이 조기경보기를 이렇게 배치해서 사용하려고 하는데 내가 그 부분을 보지도 않고 정확히 맞추니까 놀라지 않는 쪽이 더 이상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미국에 온지 1년도 안 됐는데 그걸 어떻게 국방 기밀을 어떻게 알겠어요.”
공군 장교는 입이 벌어졌고 켄과 웨슬리는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라 한쪽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공군 장교가 요청했다.
“혹시 공군에 와서 우리와 함께 일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이건 소련에 대항해 미국의 안전을 지키는 중대한 일입니다.”
“저는 이미 벌려 놓은 일이 있어서 공군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PDP-1를 육군과 해군에 납품했고 또 다른 주문도 처리해야 합니다.”
“이건 국가를 수호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국방상의 위협을 심하게 느끼고 있고요. 애국심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장교가 애국심이란 단어를 꺼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켄과 웨슬리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웨슬리가 말했다.
“이봐요, 시누는 미국인이 아니에요. 미국인도 아닌 애에게 애국심을 꺼내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7살짜리를 끌고 가서 군에 가둬놓고 일을 시키겠다는 얘깁니까?”
장교는 웨슬리의 말을 듣자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 계속 안보 문제로 고민하다보니 실언을 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으니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군 장교가 깍듯이 사과하자 켄과 웨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웨슬리가 계속 말했다.
“뭐 댁도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거 같으니 그만 됐수다. 그럼 우리가 PDP-1 4대를 납품하면 되는 거요?”
“그게 8대를 부탁드립니다. 조기경보기만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해 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주문이 늘어났습니다.”
웨슬리가 놀라서 물었다.
“8대라면 한 대 50만 달러씩 400만 달러나 됩니다. 정말 8대가 맞습니까?”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군 예산이 요즘 엄청나게 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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