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쿼츠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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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반도체 전쟁을 기다림
47. 쿼츠 혁명
내가 정체를 드러낸다고 해서 언론에 내 이름을 드러낸다거나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예전처럼 정체를 숨기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나서게 하거나 하는 일은 이제 않겠다는 뜻이다.
하여간 수에즈 운하 봉쇄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이 막히면서 운임료가 폭등했고 운임료 폭등은 고스란히 신하해운의 이익으로 들어왔다.
원역사보다 경제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의 1967년 수출액은 원역사의 1971년 수출액 10억 달러를 넘어서는 12억 달러였는데 신하해운의 순이익만 9억 달러였다.
더구나 이 9억 달러에는 세금도 거의 없었는데 이는 신하해운이 활동은 한국에서 하면서도 보유 선박들의 국적이 전부 편의치적국인 시에라리온이나 파나마 국적이어서 그랬다.
남궁진 사장은 수에즈 봉쇄 이후로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고 오늘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67년 결산이 9억 달러니까 68년 결산은 두 배를 잡으면 될 거야.”
정진철이 물었다.
“작년에 그만큼 벌었는데 올해는 더 된다고요?”
“현재의 세계 선복량과 선박 건조량을 계산해 보니 대충 71년까지는 계속 이익이 오를 거야. 그때까지 최소한 지금 수준의 이익은 계속 들어올 거야.”
“그게 계산이 됩니까?”
“내가 몇 년을 배로 밥을 벌어먹었는데 그걸 계산 못 하겠나. 자네 아들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똑똑하다는 소리 듣던 놈이야.”
“그런데 수에즈 운하는 언제쯤 다시 뚫일까요?”
“글쎄 나도 처음에는 열강들의 개입으로 올해는 뚫릴 걸로 봤는데 지금은 그럴 기미도 안 보이지? 아무래도 이스라엘이 저걸 빌미로 확실히 이집트를 손보려는 모양이야. 그렇게 되면 둘 사이에 뭔가 정치적으로 해결나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지.”
“우리야 이걸로 돈을 버니 좋긴 한데 국제정치라는 게 만능 해결사라는 게 아닌 걸 알게 되어서 좀 그렇네요. 전 이스라엘 정도면 열강이 재채기만 해도 얼어서 수에즈 운하를 열어줄 줄 알았어요.”
“그 부분은 나도 그렇게 봤는데 아니라서 다행이지 뭔가. 그나저나 이번에 항공공사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며?”
“예, 그래서 지금 인수를 생각 중입니다. 혹시 뭔가 이쪽으로도 아는 거 있으세요?”
“난 뱃놈이라 항공은 몰라.”
“그래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공군 출신을 사장으로 앉히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생각이 어떠세요? 왜 얼마전 공군에서 제대한 사람들 몇 명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군인이지 사업가가 아니잖아. 항공기에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우리가 할 건 항공기 수리가 아니라 여객기로 돈 버는 거잖아. 항공공사가 왜 만년 적자였겠어. 다 군인들이 위에 앉아 있어서 그런 거잖아.”
“에이, 그건 군인들 탓만 할 수는 없죠. 애초에 한국에서 여객 인원이 적어서 그런 거지 경영진 탓은 못하죠.”
“그래서 얼마에 인수할 수 있을 거 같은가?”
“지금 채무가 30억 정도 되는 모양인데 그걸 안고 가면 20억 원 안으로 될 거 같네요. 그래도 한국 최대의 항공사라고 괜찮은 여객기 몇 대가 있어서 그 정도는 줘야 할 거 같네요.”
현재 환율이 달러당 250원 정도이니 대략 800만 달러 정도의 가격이었다.
“항공사가 있으면 베트남으로 사람 나르기도 편할 테니 그 정도 가격이면 인수해도 되겠네. 작년 한 해 순이익만 9억 달러인데 뭐가 안 되겠어. 자네 아들 말대로 지금은 확장해야 할 시기이니 팍팍 질러.”
1968년이 되면서 한국에서 권력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왔다. 바로 정부의 권력이 약해지고 민간의 힘이 많이 강해진 것이다.
원역사에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경제 발전의 공으로 그 집권 정당성을 획득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군부나 정부가 경제 발전의 공을 주장하기 어려운 게 지금 한국의 경제 발전은 오로지 정진철과 신하그룹 때문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 중에 하나인 가발 산업도 신하가 제일 먼저 시작했고, 합성섬유도 신하에서 나왔고, 수출용 신발도 전부 신하고무의 신발이고, 집이나 빌딩을 짓는 시멘트도 과거의 원조 시멘트에서 신하 시멘트로 바뀌었고, 또 자동차도 신하의 자동차였다.
한국 최대의 조선소 두 개도 신하의 것이고 지금 한국의 기간산업으로 발전하고 잇는 정유산업과 석유화학도 신하의 것이었다. 지금은 종합 제철소도 짓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정부에서 경제 발전은 현 정부의 지도력 덕분이라고 선전해도 먹혀들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정진철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여권과 야권 둘 다 그랬다.
그러나 정진철은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치 참여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다.
덕분에 오히려 정치권에서 정진철의 입김이 더 강해졌는데 여권과 야권의 차기 주자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소문이었다.
*
항상 붙어 다니기 좋아하는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4인치 웨이퍼 한 장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고든 무어가 말했다.
“이게 자네가 그렇게 원하던 CMOS 시계용 IC일세.”
“CMOS를 드디어 완성했어?”
“그래 이게 그 결과물이지.”
웨이퍼에는 회로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기존의 집적회로보다 훨씬 소형이었다. 우리 큐브는 보통 4인치 웨이퍼 한 장에서 집적회로 250개 정도를 뽑아내는 데 여기에 보이는 건 대충 봐도 두 배가 넘어 보였다.
“이거 모두 몇 개야?”
“600개”
“수율은 어느 정도지?”
“지금은 70% 정도라서 400개 좀 넘게 뽑아내지만 좀 지나면 90%를 넘을 수 있을 거야.”
“기존 집적도보다 훨씬 올렸네.”
“응 기존 1/2 크기에 집적도는 트랜지스터 300개 수준이니 확 올린게 맞지.”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집적도보다 CMOS라는 거지.”
“CMOS가 전기를 절약해주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MOSFET 집적회로는 크게 PMOS형과 NMOS형 집적회로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에 개발한 CMOS는 이 PMOS와 NMOS를 결합한 것으로 이게 왜 중요한 개발이냐 하면 전기를 극도로 적게 먹는다는 것이다.
CMOS를 설명할 때 흔히 예로 드는 설명이 바로 전기 냄새만 맡아도 움직인다는 것일 정도다.
21세기의 CPU처럼 엄청난 고속으로 가면 전기를 많이 먹는 건 비슷해 지지만 아주 작은 연산을 할 때 CMOS를 사용하면 정말 전기를 적게 먹는다.
새로 개발하고 있는 쿼츠 시계에서 사용할 집적회로로 CMOS를 개발하게 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크기가 제한되어 있는 손목시계에 넣을 수 있는 전지는 버튼 전지뿐인데 이 버튼 전지 하나로 1년 넘게 시계가 돌아가도록 하려면 CMOS를 사용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쿼츠 시계에는 한가지가 더 필요한데 바로 바늘을 구동하는 방법이다.
쿼츠 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시계의 바늘이 부드럽게 회전하지 않고 1초에 한 번씩 탁탁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생경하게 다가왔는데 이는 정말 오랜 시간에 걸친 고뇌의 결과다.
처음 쿼츠 시계를 구상했던 사람들은 도저히 시계 바늘을 구동하는 방법 찾기 못해 고심했는데 바로 1분에 한 바퀴를 돌릴 정도로 느린 모터를 찾기 못했기 때문이다.
기계 관련 기술자를 찾아가서 의논을 해봐도 1분에 한 바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저으며 “세상에 그렇게 느린 모터가 어디 있습니까?”라면 반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 내가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 바늘을 구동하는 부분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
그리고 이 반도체와 바늘 구동법만 해결하고 나면 쿼츠 시계의 다른 기술은 전부 갖춰진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 무리 없이 쿼츠 손목시계를 발표할 수 있었다.
1968년 5월 우리는 세계 최초로 쿼츠 손목시계 큐브트론을 발표했다.
첫 쿼츠 손목시계라는 역사적 가치도 있기 때문에 가격은 개당 200달러로 정했다.
원역사에서 세이코가 첫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을 내놓았을 때의 가격이 45만 엔이었으니 우리 큐브의 시계는 파격적으로 저렴했다.
사실 쿼츠 시계는 지금 시점에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고 있는 기술로 원역사에는 1969년 12월에 세이코를 시작으로 미국과 스위스에서 연달에 발표된다.
그러나 이들의 기술은 상당히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집적회로를 만드는 기술이 없고 또 만들어진 집적회로를 시계의 무브먼트와 연결하는 기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원역사의 세이코 아스트론은 시계 안에 고도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가 전부 하나하나 납땜으로 전선을 배치하고 연결해서 구동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집적회로의 패키지 기술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처음부터 여기에 맞게 설계된 무브먼트용 보드에 자동기계로 연결해서 선을 연결해 주면 끝이었다.
그러니 무브먼트 자체의 제조원가는 집적회로까지 합쳐도 1달러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시계를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이 시대는 시계 자체가 하나의 재산으로 인정되는 시기라 좀 더 가격을 올려 200달러로 가격을 책정했다.
한 달에 10초 미만의 오차를 가진 최신 기술의 시계가 200달러 가격에 발표되자 어마어마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언론에서도 우리의 쿼츠 손목시계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들의 공짜 선전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시계의 생산은 인건비 때문에 역시 한국에서 제작했다. 우리가 자동기계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무브먼트를 한국에 보내면 한국에서 만든 시계 케이스에 넣고 브레이슬릿(시계 줄)을 연결하면 상품으로 완성되어서 세계로 보내진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도 우리의 PDP를 이용한 자동기계가 일부 사용되었다. 지금은 한국의 인건비가 워낙 저렴해서 굳이 이런 부분까지 자동화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미 한국의 산업혁명 이후 한국 인건비도 빠르게 오르고 있어 미리 이에 대비해서 자동화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큐브의 CEO 고든 카파가 투덜거렸다.
“그렇게 자동으로 할 거면 한국으로 보내지 않고 미국에서 해도 되지 않아?”
“그래도 한국에서 만드는 게 훨씬 싸잖아.”
“이 정도 원가와 이익률이라면 인건비가 별로 의미가 없으니까 하는 얘기야. 오히려 브랜드 효과를 위해서 한국보다 미국에서 만드는 게 더 나았어. 더구나 최신 자동기계까지 사용하니까 더욱 그렇지.”
“하지만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생산은 그렇지 않지. 이미 한국에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공장이 만들어져 있고 시계 바늘이나 다이얼 같은각종 부품까지 전부 생산하고 있으니까 그쪽에서 만드는 게 나아. 게다가 솔직히 미국 브랜드는 쳐줄 거 같아? 고급 시계 사는 사람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게 그거라고 여길걸.”
솔직히 내가 한국과 미국의 브랜드 차이를 왜 모르겠나. 하지만 원역사에서 인텔이 그렇게 시계 만들어서 고급 시계로 팔아먹으려다가 쫄딱 망했다고. 세상은 스위스 시계가 아니면 절대 고급으로 쳐주지 않아. 그랜드 세이코가 왜 그렇게 극한의 마감으로 유명하겠어 스위스 아니면 그렇게라도 안 하면 고급 시계로 안 쳐주니까 그런 거지.
“아니 그래도 미국이랑 한국은······, 아 됐어. 더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그나저나 이거 정말 엄청난 판매량인데. 올해 안에 백만 개 판매도 가능하겠어. 이거 이러다 우리가 스위스를 통째로 망하게 만드는 거 아냐?”
“그러잖아도 스위스에서는 난리가 났을 걸.”
우리가 200달러라는 상당한 고가로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스위스 시계 업계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우리 시계를 뜯어보면 원가가 얼마나 저렴한지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서는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할 것이다.
우리 예상은 정확했다.
스위스 시계업계도 이미 쿼츠시계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태였는데 우리 시계를 뜯어보고 자신들의 기술로는 도저히 동일한 수준의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야 최신 집적회로 제작 기술이 총동원되었는데 심지어 CMOS의 경우 우리 라이벌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도 만들지 못하는 기술이다.
우리 시계가 버튼 전지 하나로 4년을 구동 가능한데 비해 지금 다른 회사의 기술로는 1년을 넘길 수 없었다.
우리 시계는 미국의 소비가 집중되는 11월이 되자 더욱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1968년 한 해에 세계적으로 110만 대가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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