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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삼정 님의 서재입니다.

은풍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사무삼정
작품등록일 :
2019.12.26 11:30
최근연재일 :
2020.05.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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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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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8,230

작성
20.01.1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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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3

DUMMY

태정은 남궁선미의 토라진 말투가 신경쓰였다.

‘사숙께선 남궁세가에서 우리 점창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왜이리 늦으실까?’

남궁세가는 이십년전부터 회남도(훗날 안휘,호북)에서, 무림과 군부에 영향력이 있는 세가였다.

남궁세가 가주의 동생은 군부에 진출하여 상장군을 하고 있었고, 남궁세가는 제법 큰상단을 운영하는 무림의 영향력 있는 세가로 발돋움 하고 있었다.

그런 남궁세가에서 몇 년전부터 점창산과 청성산 도장과 함께, 하남도의 소림사의 재정을 후원하며 매년 거액을 기탁(寄託)하여 도와주고 있었다.


태청이 남궁선미의 기분을 살필 때 해가 멀리 산너머에 걸쳐 있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침묵이 흐르고, 저마다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찬은 처음 보는 황하강의 황토빛 강물이 석양의 햇빛에 금빛으로 잊혀져 갈 때, 초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왕두와 함께 진방식 이후 만화전장으로 향할 때, 초린의 비단결 같은 손을 잡고 애틋한 인사를 나누던 장면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때 초린의 얼굴에 물들던 홍조가 눈물 때문이었는지 수줍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비단결 같은 그 손을 일각만 아니 반각만 더 잡았으면 한번쯤 안아주고 올 수 있었으리라.

한참 분위기 좋았는데 흥을 깨버린 왕두을 생각하니, 왕두의 쥐어박기 좋은 그 뒤통수를 그냥 두고 온 것이 억울하였다.

‘이놈의 자슥. 다음에 초린이 오빠고 뭐고....한번만....’

한편 표씨 사형제가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졸졸졸 따라다녀, 혼인을 약속한 초린 생각조차 잊게 만들었던 십일일(十一日)의 지난날이 생각나 그 형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궁선우도 자혜선인 영운을 기다리다, 석양의 황하강에 취한 듯 창밖을 바라보며 불현 듯 시를 읊었다.

“문여하사서벽하 (問余河事棲碧山)” [그대 왜 푸르른 산에 사는가 묻기에]

남궁선우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이 다음 구절을 받아주지 않아, 고개를 살짝 갸웃둥 하더니 입을 떼었다.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 [대답 없이 웃는 마음 저절로 한가롭네]

남궁선우는 동생을 살피더니.

“도화유수묘연거 (桃花流水杳然去)” [도화가 흐르는 냇물이 아득히 멀어지는]

“싫어. 갑자기 왜 나한테 그래. 저기 저 표사에게 받아 달라고 해. 흥”

전에는 선우가 한구절 하면 선미가 받아주었는데 심기가 상했는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남궁선미의 말에 이찬에게 쏠리고 있었다.


이찬이 남궁선우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마지막 구절을 받아주었다.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인간사 벗어난 다른 세상이 있네]

“이소협이 시도 좋아하는 것 같구료.”하고 자혜선인 웃으며 말하였다.

“워낙 유명한 시라 알고 있는 두 개의 시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찬이 유일하게 아는 두 개의 시중 하나라 하자, 남궁선미가 코웃음과 함께 비웃었다.

“흥, 그렇겠지.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알걸요?”

촌구석의 표사 따위가 시를 알까 하였으나, 무난히 넘기자 남궁선미는 두 개의 시중 하나라고 하자 콧방귀를 끼며 이찬을 무시하였다.

남궁선우는 동생 선미의 행동이 평소와 다름을 느끼고 의아한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이소협,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이소협이 좋아하는 시 한번 들어보세.”

연로한 영운은 화제를 바꾸고 있었고, 자혜선인 본인도 궁금했는지 이찬을 찬찬이 쳐다보았다.


이찬이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떼고 있었다.

“이위징진예 (以爲澄眞濊)”

“사화수실정 (思澕水實淀)”

“군첨지착경 (君瞻之錯鏡)”

“여편파약산 (戾片播若霰)”

이찬이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처음들어 보는 시일세. 너무 글자가 어렵네.”

“흥, 어디서 이상한 걸 시라고 우기는 거 아니예요?”

“무슨뜻인가?”

“동쪽에 있는 열두살 소년이 지었다고 합니다. 가상세계(假像世界)라는 시입니다.”

[맑은 것이라 여겼으나 참은 더럽고]

[물이 깊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얕으니]

[그대가 보는 것은 착각의 거울이요]

[어그러진 조각은 싸락눈처럼 흩어지나니]


일행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남궁선미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소녀를 놀리려는 거죠?”

“아니오.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싯구에 생각나서, 한 소년이 지었던 시가 떠올랐소.”

이찬은 다시 한번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남궁선우의 시에서 시의 뜻과는 또다른 웅장한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며 칭찬하였다.

황하강을 바라보며 냇물에 비유하여, 시를 떠올린 남궁선우의 기상을 남다르게 보았다.

이찬의 칭찬에 분위기는 풀리고, 남궁선우가 이찬에게 관심을 보였다.


남궁선우가 일어서며 포권을 하고 소개하였다.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선우라 하오.”

“용호방 출신의 만화표국 표사 이찬이라 합니다.”

남궁선우가 동생을 바라보았다.

“동생 남궁선미라 해요.”

얼떨결에 젊은 도사 태정도 인사를 했다.


자혜선인이 사해(四海)는 동도(同道)라며 다같이 어울리자 하여 함께 자리를 했다.

“창천소룡(蒼天小龍) 남궁소협은 남궁세가의 소가주로 문(文)에도 뛰어나다네. 그런데 이소협을 보니 일반표사로 보이지 않네.”

표북이 자혜선인의 말을 듣자, 얼씨구나 하고 말하였다.

“저희 은공도 비룡신표로 사길현에서는 이름이 제법 났습니다. 머리도 아주 뛰어난 천재같은 분입니다.”

표북은 이제 두 번째 표행인 이찬을 과장되게 말했다.

“흥, 천재는 무슨. 겨우 시 두편 아는 것 가지고. 너무 허풍이 심한 것 아니예요?”

“남궁소저의 눈은 속일수 없는 것 같소. 단번에 알아보시니. 하하하”

이찬의 웃음에 다들 한바탕 웃으며, 남궁선미의 말에 어색해졌을 분위기를 바꿨다.


사형제중에 말이 적던 둘째 표남이 입을 열었다.

“제가 봐왔던 분들 중에 천재적인 자질을 갖춘 것은 맞습니다.”

자혜선인은 인사외에 말만 듣고 있었던 표남의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표남은 허광대사와 만났던 일 그리고 자신들에게 무공을 준 것과, 심법을 이찬이 만들어서 보강해준 이야기를 하였다.


영운은 허광대사와 친한 사이로 서로 땡중, 고집불통이라 불렀다.

불제자로 술과 고기를 하는 허광을 땡중으로, 정도를 걷는다며 불의를 보면 앞뒤없이 꽉 막힌 행동을 하는 영운을 두고 서로 허물없이 부르는 호칭이었다.

“땡중이 좋은 일을 했구만. 눈이 아직 늙지는 않은거 같네~. 심법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 줬다니. 허~.”

“사숙님, 문파의 조사도 아니고 심법을 만들었다는게 믿겨지십니까?”

태청의 물음에 자혜선인 영운은 잠시 생각을 했다.

자신도 어려서 배운 심법에 맞게 무공을 익혔지만, 심법을 만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하고, 땡중하고 같이 했다하니 사실일걸세.”


남궁선우가 호기심이 동하여 이찬을 보고 말했다.

“이소협이 그리 대단하다하니 비무를 해보고 싶소. 어떠시오?”

모두 궁금한 얼굴로 이찬을 바라보았다.

“저는 표물을 지키는 표사입니다. 표행중에 비무는 할 수 없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이찬의 말에 모두 실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영운자가 말했다.

“사질이, 저 사형제(四兄弟) 중 한명과 해보는 것이 어떤가?”


태정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있었다.

낭인처럼 떠도는 자들로 표사도 했었다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이류정도로 보이는 무사와 비무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겨도 본전 찾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태정도사님, 저도 보고 싶어요.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멋지게 한수 가르쳐주세요.”

남궁선미의 말에 태정은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사형제분들이 원한다면 한번 해보지요.”

표씨 사형제도 자신들의 성취가 궁금하였고, 이름 있는 점창산의 도사와 비무가 흔한 일이 아니여서 허락했다.


객잔 앞 황하강쪽에 있는 공터에, 자혜선인 일행과 지방수 일행이 모였다.

객잔 안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주변에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행인 몇몇이 구경하고 있었다.

태정은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나, 자신이 이길 것이라 믿었기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비무이지만 진검을 사용해서 하기로 하였다.

“사일승검(射日昇劍) 태정이라 하오. 비무이니 손속에 사정을 두길 바라오.”

“사형제중 둘째인 표남이라 하오. 한수 가름침을 받겠소.”

“사일검법이라 하오. 극의는 깨닫지 못했으나, 가볍지는 않을 것이오.”

“사방검법이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소.”


해가지는 강변을 배경으로 둘은 마주섰다.

삼초식을 주고 받고 칼에서 불꽃이 튀었는데, 두 마리의 학이 춤을 추듯 보였다.

태정은 이초식의 공방을 더주고 받고는,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이류정도로 여긴 표북에게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신의 힘을 다하진 않더라도, 검기까지 사용해야 될 상황이 온 것이다.

이대로 마무리 지으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


태정의 칼에 검기가 서리고 있었다.

표남도 태정의 변화에 맞춰 검에 진기를 불어 넣었다.

표남의 검에도 푸르른 검기가 서렸다.

‘아니, 이자가 검기를’

태정은 표남의 검에도 검기가 서리자, 이류로 여겼던 표남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태정은 팔할정도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표남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반각 동안의 공방을 표남이 받아내자, 태정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망신살이 뻗쳤구나.’

태정이 더욱 진기를 불어 넣고 공격을 하려 하였다.


표남은 표남대로 태정도사의 공격을 반각동안 받아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은 턱턱 막혀왔지만, 자신이 언제 검기를 이룰 줄 알았겠는가.

허광대사의 사방검법의 이름처럼 태정도사의 사방에서 전해오는 검을 막아내었고, 이찬이 알려준 ‘두표심법’으로 십오년 넘게 토납법으로 이루지 못한 검기를 발출하였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솟구치는 기운에 표남은 호승심(好勝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불성설(語不成說)

자신이 이름 난 점창의 젊은 도사를 이기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좋았고, 십오년의 서러움이 씻어내는 행동이어도 좋았고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처철한 몸부림이라 해도 좋았다.


이찬은 두사람의 비무에서 어려서 할아버지 풍진에게 들었던 투기(鬪氣)에 대해 떠올렸다.

당시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이찬의 눈앞에서 펼쳐진 두사람의 비무.

아니 표남의 모습에서 투기(鬪氣)를 깨닫고 있었다.

싸우려는 투지(鬪志)나 이기려는 호승심 그리고 해(害)하려는 살기(殺氣)와 다른, 풍류도의 투기(鬪氣)는 한단계 오르려 하는 이의 순수한 열정(熱情)이며 노력(努力)의 총화(總和)라고 했던가.


이찬은 다른 형제에 비해 말 수가 적어 좀처럼 친해지는 것이 더디었던 표남이, 자신이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주는 말과 초식의 운영을,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수없이 반복하며 수련하던 모습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은풍도삽화진.png


작가의말

항상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회에 올라간 가상세계의 한시를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팽이트위즈님.

글을 읽고 삽화를 스케치해주신 만산님께 감사드립니다.

삽화는 글 후미에 넣었네요. ^^


무협소설에서 중국의 한시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을

조금은 깨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황조가’, 이번에는 팽이트위즈님의 창작한시 ‘가상세계’를 넣었네요.


추천과 선호 꾹꾹 눌러주시고~ 응원으로 알겠습니다. 꾸벅~

휙휙~ 글적거리고 갑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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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황도(皇都) 장안에서 (여독(旅毒)이나 풀도록 하세나!) +1 20.01.20 2,813 42 12쪽
25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7 (아! 이건 악몽(惡夢)이야) +1 20.01.19 2,804 44 12쪽
24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6 (아! 이건 악연이야) +3 20.01.18 2,806 45 11쪽
23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5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1 20.01.17 2,869 45 10쪽
22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4 +2 20.01.16 2,941 45 10쪽
»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3 +2 20.01.14 2,984 46 11쪽
20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2 +1 20.01.13 2,987 44 10쪽
19 황도(皇都) 장안으로 가는길 1 +2 20.01.11 3,026 47 7쪽
18 황도행(皇都行). 유주로 가는길 4 +1 20.01.10 3,035 47 14쪽
17 황도행(皇都行). 유주로 가는길 3 +1 20.01.09 3,047 46 11쪽
16 황도행(皇都行). 유주로 가는길2 +2 20.01.08 3,004 50 9쪽
15 황도행(皇都行). 유주로 가는길1 +1 20.01.07 3,253 43 12쪽
14 비룡채 식구(?) ~ 아니신가! 2 +1 20.01.06 3,113 43 10쪽
13 비룡채 식구(?) ~ 아니신가! 1 +2 20.01.04 3,210 45 10쪽
12 이찬 만화전장에서 일을 시작하다 2 +2 20.01.03 3,280 50 13쪽
11 이찬 만화전장에서 일을 시작하다 1 +1 20.01.02 3,414 46 12쪽
10 용호방에서 진방식을 치르다. 그리고... +1 20.01.01 3,649 50 22쪽
9 용호방에서 내공(?)심법을 배우다 2 +1 19.12.31 3,521 49 9쪽
8 용호방에서 내공(?)심법을 배우다 1 +2 19.12.31 3,665 50 10쪽
7 용호방에서 소진방식 +1 19.12.30 3,739 47 7쪽
6 용호방에서 소무공교두를 만나다 +2 19.12.29 4,017 48 9쪽
5 중원행을 준비하며 용호방으로 +2 19.12.28 4,438 54 11쪽
4 왕두와 소진방 그리고 오기촌에서 +2 19.12.28 5,041 58 14쪽
3 삼한을 뒤로하고 오기촌(五氣村)에 2 +2 19.12.27 5,767 57 8쪽
2 삼한을 뒤로하고 오기촌(五氣村)에 1 +1 19.12.26 9,334 71 7쪽
1 +1 19.12.26 10,709 6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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