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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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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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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11.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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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
19쪽

하트의 반(VAN) - 2-19 조우(5)

DUMMY

랭더발의 영주 카뷔에 에르디스. 그 때문에 여러 번 위기에 처했고 지금 그가 보낸 암살자들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 이렇게 우연히 여기서 그를 대면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여기 와서는 습격 받은 적 없습니까?”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카뷔에 에르디스를 응시한 채 헨터만이 물었다.

“없습니다 아직.”

바다 건너 이쪽으로 와서는 아직 누구에게도 공격 받은 적 없다.


“그럼 당신이 여기 와 있는 건 아직 모르나 보네요.”


몇 번이나 뒤에서 일을 꾸민데다 자객까지 보냈으니 엘리어트에 대해 영주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추격해 오지 않았다면 아직 엘리어트가 이곳에 있는 건 모른단 뜻이 됐다.

정확히 확신 할 순 없어도 적어도 엘리어트가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그를 보고 있는 것은 모를 것이다.


“랭더발 영주가 여기 있을 줄 알고 온 건 아니죠 설마?”

혹시나 하는 얼굴로 헨터만이 이번에는 엘리어트를 향해 확인했다.

“그럴 리가요.”

얼굴도 모르는 랭더발 영주를 바다 건너 이쪽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다.



준비해 둔 연설이 생각보다 길었는지 두올린 영주의 목소리는 계속 성 안뜰을 울렸다. 그러는 동안 랭더발 영주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엘리어트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실 카뷔에 에르디스는 아까부터 거의 미동이 없었다. 영주의 연설을 듣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성의 없는 얼굴도 아니다.

얼핏 감정을 읽기 어려운 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까 이쪽을 향했을 때 보았던 눈동자.

지금은 다시 사그라든 것처럼 고요한 눈은 아까 이쪽을 향한 것 같았을 때, 일순간이지만 사람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움을 보았다. 이빨을 드러내지 않지만 맹수와 같은 습성을 가진 자란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엘리어트가 카뷔에 에르디스를 보고 있는 동안 테라스 뒤로 이어진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밖으로 나와 서 있던 사람들을 헤치고 남자는 카뷔에 에르디스의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랭더발 영주에게 목례를 한 일렌 키히스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짧지 않은 얘기였는지 한참 떨어지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카뷔에 에르디스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기색으로 보아 서로 간에 익숙한 사이인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카뷔에 영주에게 붙어 있는 키히스를 보며 엘리어트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일렌 키히스가 랭더발에 속한 자라면, 아젠에서 아이들을 데려간 게 랭더발 영주의 뜻이라고 봐야 한다.


언젠가 시라와 함께 랭더발이 어떻게 그 많은 기하 족을 모아 기사단을 만들었는지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기사단으로 만들었나. 그러나 그렇게 결론을 짓는 건 너무 여러 가지 의문을 남겼다.


전할 말이 끝났는지 키히스가 이제 카뷔에 에르디스에게서 떨어졌다.


“옆에 사람들은..”

키히스가 테라스에서 다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엘리어트는 물었다.

“누군지 압니까?”

카뷔에 에르디스 외에도 다른 세 명의 남자들이 영주 옆에 있다.


“왼쪽은 아마 군도의 코넬 레이보스일 겁니다.”

영주의 왼편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턱짓을 하며 헨터만은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모르는 얼굴이네요.”


새벽녘에 들렀던 부두에는 한 번도 항해에 나서지 않은 배 한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아까 헨터만은 들어갔다 나온 배로, 부두를 떠나본 적이 없는 그 배 안에서는 웬만한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얘기들이 비싸게 흘러 나오곤 했다.


“압니까?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더 해주어야 하나 싶었는지 헨터만이 확인했다.

“군도의 수장이란 건 압니다.”

대꾸하며 엘리어트는 이번에는 두올린 영주의 왼편에 서 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두올린은 라곤의 서쪽 국경 근처에 위치했고 거기서 라곤의 국경을 완전히 벗어나면 거기서부터는 수백 개의 섬들이 자리잡고 있는 군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들이 끝없이 이어졌는데 섬 하나하나가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섬이 수 백 개가 되다 보니 라곤으로 서도 영 무시못할 존재이기도 했다.


거친 바다를 배경으로 섬에 뿌리를 두고 살아서 인지 섬에 살고 있는 군도인은 애 어른 할 거 없이 모두 전사와 같았다. 그러므로 그들 전부를 놓고 보자면 라곤의 가장 강력한 영주국인 파비앙이나 아드리엥을 합쳐 놓은 것 못지 않다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라곤 전체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바다를 무대로 할 경우 그들은 가끔씩 상상도 못할 힘을 발휘했기에 라곤으로서도 괜히 척을 져 적으로 만들어 두려 하지 않고 있었다.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기에 이전에는 섬들 간에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호전적인 섬사람들이다 보니 서로 간에 크고 작은 싸움도 있곤 했지만 그러나 지금 헨터만이 말한 저 코넬 레이보스라는 자가 새로이 군도의 수장이 된 이후로는 큰 싸움이나 문제없이 몇 년간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군도에서 그래도 가까운 편인 이 북쪽 지방에서, 그러므로 수백 개의 군도를 하나의 힘으로 통합한 저 코넬 레이보스라는 자의 이름을 모르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저런 사람이 왜 여기 있습니까.”

엘리어트가 다시 물었다.

“축제를 보러 왔을 거라더군요.”

배 안에서 들은 얘기를 곰곰이 떠올리며 헨터만은 한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라곤에 제법 호의적이라고 하던데. 거리가 가까워선지 가끔 구경하러 오는 것 같습니다.”


헨터만의 말을 들으며 엘리어트는 이번에는 코넬 레이보스란 남자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몸집이 좋고 다부져 보이는 체격에 검은 수염이 가슴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는데 그다지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았지만 수염이 있어선지 제대로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카뷔에 에르디스와 얽힌 일만 아니면 사실 그보다 훨씬 만나보기 힘든 자가 바로 저 코넬 레이보스라는 군도의 수장이었다.


여러모로 마주치기 힘든 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게 정말 우연일 뿐인지 거기에 대해 잠깐 생각하는데 엘리어트의 눈에 문득 테라스 뒤 쪽 성벽 꼭대기에서 펄럭이고 있는 깃발이 보였다.


성 위에 작은 깃발 몇 개가 꽂혀 있었지만 바람이 없어 접혀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부터 기분 좋게 불고 있는 바람에 옆으로 느리게 펄럭이고 있는 깃발에는 엔지프가 바꿔치기 하려던 인장과 똑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성에 들어와 처음으로 엘리어트는 멈칫했다.


바뀐 인장은 두올린의 것이다.


슬로런을 비롯한 도둘들을 사주한 것도 두올린이었으니 자신들의 인장을 바꿔치기 하도록 한 것이 두올린이란 뜻. 자기들의 인장이면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토렌의 성에서 바꿔치기 하게 만들었을까. 전체를 다 알지 못하니 여러 가지 작은 사실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네요.”

아직 인장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헨터만이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모인 사람들만 봐도 뭔 일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영주의 연설이 이제 막바지로 향하자 다시 한 번 크게 환호성이 일었다. 귀가 따가웠는지 한 쪽을 귀를 살짝 누르며 헨터만이 무심코 찡그렸다.

“뒤를 좀 캐봐야 겠습니다. 일단 랭더발 영주부터.”

“굳이 몰래 캐보지 않아도...”

생각에서 벗어나며 엘리어트가 대꾸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겁니다.”


헨터만 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지금껏 모습을 감추고 있던 랭더발 영주가 이런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행보를 감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모르긴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려고 나타난 것은 아닐 게 분명하다.


“축제가 얼마나 계속됩니까?”

옆에 있는 남자를 향해 갑자기 엘리어트가 물었다. 옆에서 영주를 향해 몇 번이나 박수를 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부터 사흘이요.”

별걸 다 묻는다는 듯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리며 남자가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사흘. 길지 않은데도 혼잡한 축제가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굳이 첫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은 없다는 뜻.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랭더발 영주가 한 자리에 오래 머물 리는 없다.


“성 한 번 되게 크네.”

주변을 확인하고 그 때쯤 시즈가 두 사람에게 돌아왔다.

“뭐하러 이렇게 불편하게 지어놨는 지 모르겠어요.”

동서남북 네 곳의 탑을 기준으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원형으로 넓었다.

“경비 서는 것만 해도 엄청날텐데.”

성탑 간 성벽의 거리만 봐도 위에서 경비를 하는 병사들의 수가 다른 성보다 많이 필요한 구조였다.


“어떻습니까?”

헨터만이 물었다.

“별 건 없어요.”

그냥 불편해 보인다는 것뿐 수상한 점은 없었다.

“당장 눈에 띄는 건.”

이렇게 축제가 시작되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병사들을 풀어두는데 그 때문인지 성벽 위 경비는 오히려 허술하다고 하면 허술했다.

“그냥 평범하게 짓지 뭐하러 고생스럽게 저래놨는지 모르겠네 진짜..”

혼자 그 넓은 성벽을 왔다 갔다 한 게 억울했는지 시즈가 투덜댔다.



길게 이어지던 연설이 끝나고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두올린 영주가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도 이제 사라지는 게 좋겠습니다.”

투덜거리는 시즈의 옆에서 위를 쳐다보며 헨터만은 말했다.


카뷔에 에르디스가 엘리어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분명하니 괜히 여기서 알짱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멀리 있는데도 어떻게든 없애려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걸 알면 어떻게 나올 지 불을 보듯 뻔했다.


“고작해야 도둑들 일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산채 사람들 때문에 나서다 괜히 랭더발 영주와 마주칠 이유는 없다.


“덕분에 랭더발 영주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던 건 고맙지만 당신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 끼어들 거 없이 이제 아스드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헨터만의 말을 들으며 엘리어트는 아직 테라스 쪽을 보고 있었다. 테라스위의 영주들은 하나 둘 씩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레스니악 때 만해도 나에 대해서 별 관심 없었잖습니까.”

엘리어트가 말했다.

“그 때랑 지금은 다르죠.”

으쓱하며 헨터만은 대꾸했다.


“내 안전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그 제일 끝에서 뒤를 따르던 카뷔에 에르디스를 보며 엘리어트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겠고요.”


여기서 랭더발 영주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왜 그가 여기 있는지,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두올린과 얽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이제부터 분명히 알아 두어야 했다.


“아스드로 돌아가는 건 그 후입니다.”


조용했지만 목소리가 단호했기에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무는 헨터만을 내버려 둔 채 엘리어트는 다시 테라스 쪽을 보았다. 카뷔에 에르디스의 모습은 사라지고 테라스는 이제 텅 비어있다.


이대로 근처에 숨어든 채 조용히 일이 돌아가는 걸 지켜볼까. 헨터만에게 말한대로 몰래 캐보지 않아도 결국 목적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알게 될 때보다 조금 더 빨리 알 필요는 있었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면 움직이는 것은 키히스 같은 그의 수하들일테니 그 쪽을 쫓아 볼까.


생각해 보니 일렌 키히스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있다. 알았다면 마주쳤을 때 그렇게 순순히 사라지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알게 된다면서요. 그럼 당장 여기 있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헨터만이 이의를 제기했다.

“섣불리 접근할 필요가 없단 거지 아무 것도 안하겠단 뜻은 아닙니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데도 아까 전에 직감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구분해 냈다. 헨터만 같은 사람이면 허술하게 굴지는 않겠지만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런 자를 들쑤시고 다닌다면 공연한 경각심만 주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쩌잔 겁니까? 그럼.”

미간을 긁적이며 헨터만이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여기 계속 있는다고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계속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응할 시기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지켜봐야죠 그러니까.”

모호한 말이 알아듣기 어렵다는 듯 헨터만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엘리어트에게 맡긴 이상 판단에 따르는 것도 그의 일이었으니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헨터만은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 뜻이 그렇다면 일단 두고 보죠 그럼.”


주변의 소란스러웠던 기색은 조금씩 옅어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길 분위기를 풍기며 몰려 있던 사람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서 나가기는 해야겠죠?”

농담처럼 헨터만이 다시 말했다.

“그래야죠.”

대꾸하며 엘리어트가 몸을 틀었다. 그나마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썹 한 쪽을 손으로 문지르며 헨터만도 그를 따라 몸을 돌렸다.


“아, 같이 가요.”

얘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내내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시즈가 얼른 두 사람을 따라 걸음을 뗐다. 분주한 사람들과 함께 세 사람의 모습이 곧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방으로 들어가자 조용히 문이 닫혔다.

복도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한 뒤 문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널찍한 방을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간 뒤 그는 앞에 놓인 테이블을 짚고 섰다. 몸을 기울며 체중을 팔에 싣는다. 그 상태에서 잠시 꿈쩍 않고 가만히 있다.


축제가 열리는 성 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탑이어선지 사방은 조용하고 방안에서는 남자의 숨소리만 들렸다. 요구한데로 근처에는 성의 시종들이나 병사들이 없었다. 아까 얘길 전하고 키히스는 마르테나에게로 갔으니 지금 그는 온전히 혼자였다.


한참 테이블을 짚은 채 그렇게 서 있던 카뷔에 에르디스가 이윽고 테이블에서 손을 뗐다. 조금 전 테라스에 있을 때까지는 무표정했지만 자세를 바로 하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 전과 달리 노골적인 짜증이 드러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그의 계획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첫걸음을 우스꽝스러운 친목 도모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게 그는 조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 영주가 마련해 놓은 화려한 다과 상자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구석 한 쪽에 있는 나무로 된 술병을 들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술이 목을 타고 넘어 가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독한 술을 물처럼 마시고는 잠시 후 그가 손을 내리며 입가를 훔쳐 냈다.


사실 카뷔에 에르디스는 굉장히 성미가 급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자였다. 물론 목적을 위해서라면 오래 기다릴 줄 알고 치밀하고 느리게 움직일 줄도 알았지만 그 첫발을 내딛게 되자 이제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와 있었다.

만약 여기서 그의 계획을 방해할 무언가라도 나타난다면, 아마 단순히 없애버린다는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의 계획. 방대한 대륙인 라곤이기에 가능했고 그리고 그러기에 한참을 준비해야 했던 계획이 이제 시작된다.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라곤에서 북쪽 지방은 수도의 영향력이 아주 미미했기에 독립된 다른 나라라고 해도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따로 두 개의 땅으로 분리하기 위해 카뷔에 에르디스는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아시오트 글렌 후작과 약속한 대로, 이 북쪽 대륙에서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수도에서의 진격은 글렌 후작이 막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일들을 시작으로 이 북쪽 지방 전체의 패권은 자신이 갖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라곤의 나머지는 글렌 후작의 손에 들어간다. 그가 왕이 될 지 아니면 허수아비 왕을 내세울지는 아직 모르지만 거기까지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거래의 내용이었다.


카뷔에 에르디스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북쪽 지방 전체의 통치자가 된다면 순순히 후작의 뜻에 순순히 따를 생각은 없었다. 일단 먼저 이 북쪽 지방 전체를 아우르게 되면, 그 다음 라곤의 이름은 바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평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얼굴이 조금씩 다시 차가워졌다.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작은 시작에 도취되어 망상에 빠지는 얼간이는 아니었으니 지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계획을 되짚어 보는 것뿐이다. 부스러지도록 힘이 들어간 손으로 술잔을 쥔 채 카뷔에 에르디스는 여전히 눈앞의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붉은 눈의 기하족으로 구성된 그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막강하다. 하지만 그들만으로 그의 야망 전부를 이룰 수는 없었다. 그 만큼 라곤은 거대했다. 계획대로 이 땅의 주인이 되려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 영주국들과 손을 잡아야 했고 그것은 힘으로 밀어 붙인다고 얻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랭더발이 가진 검은 기사단의 힘을 보여주고 몇 몇 영주에게서는 이미 확답을 받아 두었다. 하지만 레스니악에서 예상 밖에 뒤를 물리게 된 뒤 그들 중 몇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약속을 받아냈다고 해도 영주들의 태도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었다. 자신만큼 이 북쪽 지방의 영주들도 보통 머리를 굴리는 자들은 아니다.


그가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목 주위 근육이 팽팽히 드러났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더 이상의 계산 착오는 있어서는 안 된다.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조금 전에는 음미할 겨를도 없이 마셨던 술로 시선을 돌리며 이제 천천히 그가 술잔을 기울였다.


작가의말

오랜만입니다.. 화요일부터 연재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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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하트의 반(VAN) - 2-17 잠행(4) +4 14.06.01 1,557 69 18쪽
164 하트의 반(VAN) - 2-17 잠행(3) +14 14.05.18 2,124 75 17쪽
163 하트의 반(VAN) - 2-17 잠행(2) +6 14.05.15 1,945 69 17쪽
162 하트의 반(VAN) - 2-17 잠행(1) +12 14.05.11 1,828 69 13쪽
161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8) +10 14.05.06 1,982 79 22쪽
160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7) +30 14.05.04 1,903 93 23쪽
159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6) +14 14.05.01 1,908 86 18쪽
158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5) +14 14.04.30 1,685 79 13쪽
157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4) +14 14.04.29 2,013 76 7쪽
156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3) +18 14.04.27 1,750 75 15쪽
155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2) +17 14.04.24 2,041 77 13쪽
154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1) +11 14.04.22 2,254 80 9쪽
153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0) +8 14.04.20 1,776 83 24쪽
152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9) +12 14.04.17 2,406 76 13쪽
151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8) +12 14.04.16 2,135 79 21쪽
150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7) +13 14.04.15 2,091 79 9쪽
149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6) +6 14.04.13 2,159 74 14쪽
148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5) +8 14.04.05 2,337 79 15쪽
147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4) +12 14.04.03 1,944 73 15쪽
146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3) +4 14.04.03 2,139 69 13쪽
145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2) +4 14.04.01 2,256 70 9쪽
144 하트의 반(VAN) - 2-16 엘리어트(1) +2 14.03.31 3,234 183 11쪽
143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7) +8 14.03.29 2,088 75 13쪽
142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6) +6 14.03.28 1,874 68 10쪽
141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5) +10 14.03.26 1,780 65 7쪽
140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4) +2 14.03.25 2,370 170 16쪽
139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3) +4 14.03.24 2,202 65 15쪽
138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2) +8 14.03.22 2,596 65 12쪽
137 하트의 반(VAN) - 2-15 보쇼의 성(1) +8 14.03.21 2,367 75 12쪽
136 하트의 반(VAN) - 2-14 베이그릴스(5) +10 14.03.20 2,438 82 8쪽
135 하트의 반(VAN) - 2-14 베이그릴스(4) +16 14.03.19 2,135 75 7쪽
134 하트의 반(VAN) - 2-14 베이그릴스(3) +4 14.03.19 2,248 83 15쪽
133 하트의 반(VAN) - 2-14 베이그릴스(2) +6 14.03.18 2,482 76 16쪽
132 하트의 반(VAN) - 2-14 베이그릴스(1) +14 14.03.17 2,834 82 18쪽
131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6) +6 14.03.15 2,319 76 11쪽
130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5) +10 14.03.14 2,658 75 8쪽
129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4) +6 14.03.13 2,733 85 15쪽
128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3) +6 14.03.12 2,647 86 14쪽
127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2) +12 14.03.11 3,048 84 20쪽
126 하트의 반(VAN) - 2-13 이센제(1) +6 14.03.10 2,903 76 18쪽
125 하트의 반(VAN) - 2-12 쉐네드 +6 14.03.09 3,009 75 15쪽
124 하트의 반(VAN) - 2-11 기하의 족(3) +12 14.03.06 2,888 85 27쪽
123 하트의 반(VAN) - 2-11 기하의 족(2) +20 14.02.25 2,548 89 10쪽
122 하트의 반(VAN) - 2-11 기하의 족(1) +23 14.02.23 2,761 93 11쪽
121 하트의 반(VAN) - 2-10 글레린(2) +10 14.02.21 2,437 98 17쪽
120 하트의 반(VAN) - 2-10 글레린(1) +10 14.02.19 2,638 114 15쪽
119 하트의 반(VAN) - 2-9 아스드(2) +17 14.02.16 3,409 107 18쪽
118 하트의 반(VAN) - 2-9 아스드(1) +16 14.02.13 3,382 113 12쪽
117 하트의 반(VAN) - 2-8 아쉬 +16 14.02.11 3,056 110 13쪽
116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8) +23 14.02.09 2,643 119 17쪽
115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7) +9 14.02.09 2,760 111 16쪽
114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6) +20 14.02.07 2,790 109 19쪽
113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5) +12 14.02.06 3,226 114 15쪽
112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4) +9 14.02.04 3,299 103 10쪽
111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3) +22 14.02.03 2,906 95 9쪽
110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2) +12 14.02.02 3,128 111 16쪽
109 하트의 반(VAN) - 2-7 레스니악(1) +16 14.01.30 3,153 113 15쪽
108 하트의 반(VAN) - 2-6 전조(5) +6 14.01.29 3,014 117 11쪽
107 하트의 반(VAN) - 2-6 전조(4) +7 14.01.29 2,934 115 18쪽
106 하트의 반(VAN) - 2-6 전조(3) +7 14.01.27 3,112 114 10쪽
105 하트의 반(VAN) - 2-6 전조(2) +16 14.01.26 3,511 111 14쪽
104 하트의 반(VAN) - 2-6 전조(1) +13 14.01.19 4,156 118 21쪽
103 하트의 반(VAN) - 2-5 시마르(2) +9 14.01.16 3,340 116 11쪽
102 하트의 반(VAN) - 2-5 시마르(1) +13 14.01.15 3,686 110 17쪽
101 하트의 반(VAN) - 2-4 재회(6) +19 14.01.13 3,425 126 6쪽
100 하트의 반(VAN) - 2-4 재회(5) +29 14.01.12 5,115 13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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