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2-10 글레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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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글레린(2)
글레린의 몇 몇 마을에 봄가뭄이 심해졌다는 보고에 영주의 지시로 병사들은 지금 마을에 관개 수로를 설치하는 중이다. 마을 서너 개를 동시에 잇는 작업에 글레린 병사들이 마을 별로 몇 백씩 투입 되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인근 산을 통과해 땅을 파고 두꺼운 나무관을 길게 묻어 마을까지 끌어오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출발이 되는 지하수원이 지금 엘리어트가 있는 막사 근처에 있었다.
식수원으로도 이용할 물이 있는 곳이니 매몰되거나 오염되게 하지 않기 위해 지하수원 근처를 정리하는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다 지하수 주변에 쌓여 있는 흙이나 작은 바위들을 제거하려고 병사들 중 하나가 화약을 사용했는데 지반이 예상보다 약하고 화약틀 터뜨린 곳이 하필 산사면과 이어지고 있어서 화약을 터뜨리고 잠시 후 우르르 하는 진동과 함께 흙더미가 무너지며 이쪽으로 덮쳐 왔다.
병사들이 같이 매몰되는 건 다행히 면했지만 며칠 동안 고생해서 만들어둔 지하수원은 그대로 다시 흙더미에 묻혔다.
“전부 다시 작업을 하려면 며칠이 더 걸릴지 모르는데요.”
주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같이 매몰될 뻔 한 걸 겨우 피한 병사들이 흙먼지 투성이로 콜록거리며 말했다.
“언제 또 무너질지도 모르고.”
엘리어트를 막사에 두고 병사를 따라 온 시라는 지하수원이 있던 곳에 높이 쌓여 있는 흙더미를 보았다. 지하수가 있는 아래부터 생각하면 매몰된 깊이는 높이가 이미 사람 키의 몇 배는 된다.
매몰된 것도 문제지만 복구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오래 끌면 식수원이 오염된다. 그렇다고 제거하는데 또 화약을 썼다가는 다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시간을 줄이는 건 화약뿐이다.
시라는 흙더미가 쏟아져 내린 산사면 쪽을 쳐다보았다. 사면은 그 뒤로 다시 높은 산과 연결된다.
단순히 위쪽에 쌓여 있던 흙이 폭발로 인해 순간적으로 아래로 꺼진 거면 다행이지만 지반 구조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는지 모르니 역시 함부로 폭약을 쓰는 건..
“일단 장비를 가져와서 주변에 안전망을 설치해 둬.”
어떻게 할 지 생각하며 병사를 향해 시라는 말했다.
두꺼운 나무 말뚝이 순서대로 땅에 박히고 주변에 있는 나무와 말뚝 사이에 수백 개의 밧줄이 연결된다. 그 사이에 새끼줄을 꼬듯 천을 끼워 넣으며 병사들이 혹시 모를 산사태에 대비할 만한 망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동안 시라는 폭약이 담긴 나무통 앞에 서 있었다.
“어쩌게?”
화약이 들어 있는 통의 개수를 확인하는 걸 보고 엘리어트는 물었다. 조금 전 막사에서 나와 그도 시라가 있는 곳으로 왔다.
“반대쪽에서 확인을 좀 해보게.”
단순히 하부가 비어 토석이 아래로 꺼지면서 내려온 건지 아니면 지반이 연결되어 있어 충격에 흙더미가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 온 건지 그걸 알아야 작업을 할 수가 있다.
“또 폭약을 쓰는 건 위험하니까..”
병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뒤쪽으로 이어지는 경사가 가파른 산의 단면을 보면서 시라는 말했다.
지층이 다르면 이쪽에서 하는 일이 산까지 영향이 가지 않을 테니 폭약을 써서 지하수원을 덮고 있는 흙더미를 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알아 보지 않고 사용할 수는 없다.
병사들이 작업을 끝내면 물러나 있게 한 뒤 산 뒤로 넘어가서 확인을 해볼 생각이다. 아래에서 봤을 때 다행히 산사면이 그다지 높지 않다.
“도와줄까?”
무슨 생각인지 눈치 챘는지 옆에서 엘리어트가 말했다.
“아니야. 손님으로 왔는데 이런 일에 신경 쓰게 하면 안 되지.”
당치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시라는 화약통 몇 개를 손에 들었다.
봤던대로 경사는 급했지만 언덕에서 이어지는 산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산사면 꼭대기로 올라와 시라는 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작업을 마치고 병사들은 그의 지시대로 자리에서 멀찌감치 물러서고 있었다.
몸을 숙여 그 자리에서 그는 산을 이루고 있는 흙을 손으로 문질러봤다. 토양이 진흙에 가깝다. 쉽게 산사태가 일어날만한 토질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무가 없는 게 걸리지만 토질을 보면 크게 산사태가 날만한 상황은 아닐 것 같은데.”
뒤 따라 올라온 엘리어트가 주위를 보며 말을 했다.
“내 생각도 그래.”
손을 털며 시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확실히 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엘리어트를 보았다.
“오지 말라니까.”
“가만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좀 미소지으며 엘리어트가 말했다.
미안한 듯 한숨을 섞어 그를 보며 시라는 몸을 돌렸다. 먼저 큰 폭으로 뛰어 내려가는 시라의 뒤에서 엘리어트 역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와 산사면 끝에서 시라는 주위를 확인했다. 마을이 있는 쪽도 아니고 가까운데 짐승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충격으로 산사태가 일어난다면 반대쪽으로도 쏟아져 내리는 흙더미가 있겠지만 토질이 진흙이고 충격의 근원지가 아니니 운이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병사들이 있는 쪽은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등에 매고 온 화약통 대 여섯 개를 사면 바로 아래에 내려 놓고는 두 사람은 거기서 떨어졌다. 불붙은 화살을 시라가 그쪽을 향해 쏘았다. 하나의 화약통을 터뜨리고 화살 두개를 당겨 두 개의 화약통에 동시에 불을 붙였다.
쾅-하는 서너 번의 폭발음과 함께 화약통이 있던 자리에서 사방으로 흙이 튀었다. 산사면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사람은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위에서 우르릉거리는 낮은 소리와 함께 곧 바닥이 살짝 진동하기 시작했다. 잡아 당겨지듯 아래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무너지고 있는 흙더미에 휩쓸리지 않게 옆으로 두 사람이 몸을 날렸다.
흙더미는 느리고도 묵직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대단히 무시무시한 기세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키는 훌쩍 뛰어 넘으며 덮쳐 오고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흙들을 옆으로 피하며 그 가장자리에서 두 사람은 아래로 흘러 내리고 있는 흙더미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 올라 가기 시작했다.
아까 있었던 산사면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가 시라는 그대로 지하수원 쪽을 내려다 보았다. 지층이 저쪽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아래를 내려다 보니 다행히 병사들이 무사함을 알리는 커다란 흰 천을 흔들고 있었다.
“괜찮겠는데.”
아래에서 펄럭이고 있는 흰 천을 보며 옆에서 엘리어트가 말했다.
“이 정도면.”
“응.”
다행이라는 듯 미소지으며 시라가 대꾸했다.
옆 마을에 갔던 영주와 기사들은 그날 밤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자 엘리어트는 곧 병대가 야영을 준비하고 있는 제일 안 쪽 막사로 불려 갔다.
“케이우드.”
엘리어트가 영주에게 불려간 사이 시라는 병사들과 함께 지하수 입구가 다시 매몰되는 일 없게 하기 위해 주변을 보강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잠깐 와 보게.”
그러고 있는 그를 향해 병대 지휘관 포에베 경이 다가와 손짓을 했다.
“아스드에서 온 손님과 아는 사인가?”
옷에 묻은 흙을 살짝 털어내며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향해 포에베 경이 물었다.
“어릴 적 친굽니다.”
질문이 조금 의아했지만 순순히 시라는 대답했다.
“그래?”
무슨 이유가 있어선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는 대장을 시라는 잠시 보았다.
“그걸 묻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되묻는 소리에 대꾸하지 않으며 포에베 경은 나무 탁자 한 쪽에 몸을 기대고 섰다. 잠자코 시라는 그가 다시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앞으로 아스드에서 하는 일에 아마 글레린도 뜻을 같이 하게 될 거야.”
포에베 경은 말했다.
“무슨 일 말입니까?”
“랭더발과 대적하는 일.”
“랭더발과 전쟁이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아직 그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잠시 그를 보다가 포에베 경은 다시 말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쪽에서 아스드로 사람을 보낼 생각이야. 내 생각에 자네가 가주었으면 하고.”
아직 말하는 의도가 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얼굴로 시라는 입을 뗐다.
“가서 뭘 하라는 겁니까?”
“영주님께서 아스드 영주와의 의리보다 조금이지만 더 중요시 하시는 게 있다면 그건 우리 글레린 백성들일 걸세.”
짧게 난 턱수염을 쓸어내며 경은 말했다.
“그러니 아무리 대의가 있더라도 위험한 싸움에 섣불리 발을 들이는 건 안 될 말이란 거지.”
이런 건 확실히 해두어야 했으므로 포에베 경의 말에서 느껴지는 바에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시라는 되물었다.
“아스드를 염탐해 오란 뜻입니까?”
“염탐이라기 보다는 정찰이라고 해두지.”
포에베 경이 다시 턱수염을 손으로 문질렀다.
“자네보고 뭘 어쩌란 건 아니야. 아스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그걸 파악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 때까지 우린 아직 중립인 거고.”
기색이 진지해지는 그를 향해 경은 다시 말했다.
“부담 가질 건 없어. 아마 아스드의 영주님께도 지금 내가 자네에게 한 것과 비슷하게 말이 전해 질 거야. 우리 영주님이 뒤에서 일을 꾸미는 분은 아니시니까.”
글레린 영주도 지금 이런 얘기를 아스드에서 온 남자에게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만 자네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글레린의 입장도 달라진다는 것만 명심했으면 하네.”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잠시 있다가 곧 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라는 온순해 보이는 인상에 성격도 유해 거의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그래서 기사들 뿐 아니라 병사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청년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글레린 병대를 책임지는 부지휘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글레린에 있어서는 최연소 지휘관인 만큼 그 만큼 실력이 믿을 만 했고 그러면서도 또한 중요한 일에는 냉정하게 판단 할 줄 알았다.
“그럼 부탁하네.”
이만한 일에 적임자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포에베 경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포에베 경과 조금 더 얘기를 하고 잠시 후 시라는 그의 막사 밖으로 나왔다. 막사 밖은 불빛 하나 없었지만 머리 위로 크게 떠있는 보름달 덕에 걸어가는 길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야영지 안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조금 전 포에베 경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포에베 경은 신경 쓸 거 없다고 했지만 분위기를 봐서 결국 글레린은 아스드 영주와의 의리보다는 실리를 택하겠다는 입장이라는 뜻이었다.
언제 만들어 진 건지 야영지 중간쯤 에서 가장자리에 쳐 있는 울타리가 보이자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 한 쪽에 등을 기대고 서며 그는 저쪽에서 불을 피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 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스드라..’
영주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실리를 따질 수 밖에 없었고 또 자신도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엘리어트와 연관된 일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라는 울타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영주의 막사 쪽을 보았다.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아서 인지 막사 안의 분위기는 왠지 진지하게 느껴졌다. 잠깐 그 쪽을 보다 곧 고개를 돌려 시라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 보았다.
‘오스티아... 오래도 됐네 이제.’
어렸을 때 오스티아에 있다가 열 두 살 무렵 이곳 글레린으로 와 본격적으로 기사 수업을 받기 시작했으니 그곳을 떠난 게 정확히 14년 전이다. 이렇게 다시 엘리어트를 만나고 나니 잠깐 옛날 추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어릴 때 오스티아에 있으면서 니겔이나 알폰스 녀석들과 곧잘 어울려 놀 곤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때라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 종일 동네를 뛰어 다니며 놀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고 다니다가 언젠가 나무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를 엘리어트가 구해주는 걸 본 적 있었다. 그건 자신이 쟈피라는 이름을 붙인 녀석이었다.
사실 그 고양이는 나무에 올라가는 건 잘 하는데 내려오는 건 못해서 가끔 그렇게 울고 있는 걸 들은 걸 들은 적 있었다. 그 역시 구해주고 싶었지만 그 때까지 나무 타기는 해 본적이 없었다.
몇 번 나무에 오르려고 시도 했었지만 미끄러지는 통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너무 심하게 우는 고양이를 내버려 두고 돌아온 게 마음에 걸려 밤에 다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나무위에서 고양이를 안고 내려 오는 걸 보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달이 바로 머리 위에서 환하게 밝았던 날이라 내려오는 사람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팔에는 나무에 오를 때 난 거였는지 아니면 고양이에게 할퀸 거였는지 상처가 잔뜩 나 있었지만 녀석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소중히 쟈피를 안고 있었다.
그 뒤부터 동네에서 엘리어트를 볼 때마다 그는 가끔 그쪽을 힐끔거렸다. 녀석은 별로 말이 없어 보였고 늘 혼자였는데 그러면서도 뭐 그렇게 돌아다니는 지 동네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곤 했었다.
그러다 언젠가 한 번은 책을 읽으면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 걸 본 적 있었다. 걸어가면서도 책에서 눈 한 번 떼지 않고 있었다. 늘 조용한 녀석이라 그러고 가고 있는 게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책은 그럴만큼 재밌는 책이긴 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트레다 전기 하권. 자신도 엄청 좋아했던 책으로 그 상권은 열 번도 더 읽은 책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하권을 통 구할 수가 없어서 뒤를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가서 빌려 달라고 해볼까, 한동안 고민했었다.
결국 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엘리어트에게 말을 걸지 못한 겁쟁이 같은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 기억은 한동안 길게 그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사실 친구가 되고 싶었다. 니겔이나 알폰스와 노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녀석과 어울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에서 마주쳐도 먼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땐 진짜 왜 그랬는지..’
어렸다고는 하지만 한심한 과거에 무심코 한숨을 지으며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오래 전 일이라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였지만 그 때의 여러가지 아쉬움들이 남아서였을까. 엘리어트를 다시 만난 것에 사실 그는 예상외라고 할 정도의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막사 밖으로 엘리어트가 걸어 나왔다. 근처에 그가 있는 걸 봤는지 나오자마자 이쪽을 쳐다보는 엘리어트를 향해 시라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주님께 얘기 들었지?”
엘리어트가 걸어오자 그가 물었다.
“그래.”
“나도 포에베 경께 말을 들었어.”
시라는 덧붙였다.
“내가 같이 가게 될 거야. 아마도 감시자로.”
엘리어트는 그를 보았다.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건 좀 웃긴가.”
그 시선에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시라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할 말 같은데 그건.”
좀 미소지으며 말하고는 엘리어트는 그의 옆에서 통나무 기둥에 몸을 반쯤 기대고 섰다.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그가 옆에 기대 서자 한 쪽 발을 뒤로 해 통나무에 얹으며 시라는 말했다.
“아마 이건 아스드 영주님께서 기대했던 정확한 답은 아니었을 텐데.”
“어느 정도는 예상 하셨을 거야.”
엘리어트는 말했다.
“글레린 영주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 계셨을 테니까.”
그래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됐을 것이다. 단순히 인사 차원이 아닌 아스드 영주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직접 글레린 영주에게 확인시키고자 했던 것 같았다.
자신이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지 아직 이 상황을 다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마 대충 그런 의도였을 거라고 엘리어트는 생각했다.
“어쨌든 좀 석연치 않은 상황인 것 분명해."
뒤에 있는 통나무 위에 팔꿈치를 대며 시라가 중얼거리듯 다시 말했다.
잠시, 두 사람 다 각자 생각에 빠졌는지 말이 없어졌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까?”
어차피 결정된 거 꾸물거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곧 시라가 말했다.
“그래.”
별로 이견이 없었는지 엘리어트가 대꾸했다.
"아스드라.. 오랫만에 글레린을 떠나 있겠는 걸."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 보며 시라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잠깐 시라쪽을 보다가 엘리어트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한테 나쁜 일은 아니어야 할텐데."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설마.. 그렇진 않겠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엘리어트의 말에 마찬가지로 농담으로 받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소리로 대꾸하며 시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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