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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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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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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1,064

작성
17.04.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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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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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복습 2

DUMMY

결심을 했다고 바로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었다. 일단 세레나가 미궁을 나가지 못하는 처지이니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쳐줄 스승이 미궁에 들어와야 한다. 미궁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건 비에타의 미궁을 탐사하는 탐사대와 보조대원, 본래 미궁 1층을 관리하던 경비대였다. 미궁의 경비가 강화된 만큼 전처럼 아무나 드나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세레나의 마법 복습(?)은 니도 여왕의 허가가 필요했다.

세레나가 시녀 편에 전달한 학습 의사를 니도 여왕은 흔쾌히 허락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토굴 같은 곳에 일국의 왕녀가 감금 비슷한 꼴을 당했으니 소일거리가 필요하다면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허가가 떨어졌다고 바로 복습을 시작하는 게 아니다. 니도 여왕이 미궁 입장을 허락할 만한 신뢰를 쌓아둔 인물이 필요했다. 그러한 인원은 모두 탐사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공주의 교사가 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인력낭비이기도 했고. 세레나는 선생이 정해질 때까지 기초 마법서를 정독하며 독학했다.

‘오랜만에 책을 읽었더니 머리가.’

오래 읽진 못했다. 30분 정도?

필리아는 학습에 힘쓰느라 피곤해진 주인을 위해 욕조를 뜨거운 물로 채웠다. 세레나가 미궁 1층에서 목욕하는 호사를 누리는 동안 필리아는 옆에서 질질 짰다.

“밖에 지천으로 널린 게 천연 온천인데 안에서 새로 데운 물로 목욕하셔야 하다니. 가엾은 우리 공주님.”

세레나의 목욕 시중을 돕던 하녀가 필리아에게 엄청난 눈빛을 보냈다. 어둠 속에서 등장한 스켈레톤의 살기에 필적했다. 필리아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비슷한 한탄을 늘어놓았다. 세레나는 과거, 흐지의 귀족 영애 중 몇이 필리아는 다 알고 저러는 쌍년이라 욕하던 일들을 떠올렸다.

비에타의 하녀와 시녀들은 랜디 백작 부인이 천하에 둘도 없는 빙그레 쌍년이라고 욕하고 다닐 것이다. 고향과 거리가 먼 타국에서 나날이 하락하는 랜디 백작 부인의 평판에 세레나는 고개 숙여 조의를 표했다.


며칠 뒤, 기다리던 마법 선생이 찾아왔다. 세레나는 마법 선생의 얼굴을 확인하고 의문을 표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는가, 랜디 백작.”

“격조하셨습니까, 공주님.”

“나야 아무 일 없이 평탄했지. 여긴 어찌 들어왔소?”

랜디 백작은 사랑하는 부인과 부인이 모시는 주인을 위해 비에타에 협조를 구하긴 했으나 일단은 제국의 귀족이다. 니도 여왕이 백작의 미궁 입장을 허락해줄 리 없는 것이다. 덕분에 랜디 백작은 사랑하는 부인을 찾으러 비에타에 오고난 뒤에도 줄곧 생이별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세레나는 상당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필리아를 자주 미궁 밖으로 심부름 보내려 애썼지만 필리아는 모든 일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김으로서 회피했다.

랜디 백작의 시선은 세레나가 아닌 옆의 필리아에게 꽂혔다. 세레나는 변함없는 백작의 애정으 내심 흐뭇하면서도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박수를 쳤다.

짝짝.

“백작! 정신 차리게!”

“죄송합니다, 공주님. 미력한 몸이지만 제가 공주님께 마법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마법을 가르치겠다는 부분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연금술사들은 기본적으로 마법에 조예가 깊기 때문이다. 세레나가 궁금한 건 어떻게 미궁에 들어왔냐는 부분이다. 어떻게 니도 여왕의 허락을 받았는가.

“니도 여왕이 그대의 미궁 입장을 허락했다고?”

“미궁에 관한 정보를 제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고작 맹세로...”

“주신께 맹세했습니다. 맹세를 어기는 순간 제가 이룩한 황금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평생 가난에 시달릴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맹세였다. 필리아가 깜짝 놀랐다.

“여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혼자 결정하세요?”

“걱정마세요, 부인! 제가 만약 거지가 된다면 그 전에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겠습니다!”

“그런 바보 같은! 난 당신이 부자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구요!”

“흐윽, 필리아!”

“소프!”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의 눈물을 흘렸다. 세레나는 머쓱해져서 다시 박수를 쳤다. 이번엔 축하하는 의미였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필리아는 덩달아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랜디 백작에겐 긍정적인 일이었다. 랜디 백작은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했다.

“예전에 기초를 배운 적 있지.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안 쓴지 오래되었더니 막상 필요할 때 시전이 안 되더군.”

“전 전혀 몰라요.”

“마력은 감지하실 수 있습니까?”

“가능하네.”

“아니요.”

필리아는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고 세레나도 처음부터 기초를 복습하길 희망했기 때문에 수업은 기초 중의 기초부터 시작됐다. 마법의 시작은 마력을 느끼는 것. 세레나는 이미 느끼 수 있으니 마법서를 정독하게 시키고 필리아는 랜디 백작의 도움을 받아 마력을 감지하는 요령을 익혔다.

“어찌보면 잘 된 일입니다. 미궁 내부는 마력의 농도가 짙고 움직임이 활발해 마법을 배우기 좋은 환경이거든요. 주문 시전도 쉽죠.”

밖보다 쉬운 곳에서 용을 써도 마법을 성공하지 못한 세레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필리아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스스로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세레나가 만약 필리아보다 뒤쳐진다면?

세레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열심히 해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레나는 수업 첫날 1위계 기초 마법 주문을 모두 성공했다. 미궁에서 용을 써도 안 됐던 것이 책상 앞에선 너무 잘 됐다. 결국 만악의 근원은 스트레스였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스트레스 훈련을 받지만 세레나는 공주로서 마법을 익혔다. 그녀의 스승들은 설마 세레나가 미궁에 들어가 몬스터나 암살자에게 쫓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거란 생각을 못했을 것이니 스승을 탓할 일은 아니다.

랜디 백작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정해졌다. 필리아는 미궁과 남편 버프로 두 번째 수업에서 마력을 느끼는데 성공했다. 세레나는 두 번째 수업에서 과거 그녀가 이룩했던 경지 근처에 도달했다. 세레나가 3위계 마법 주문을 성공시키는 걸 지켜본 랜디 백작이 침착하게 말했다.

“공주님... 정말 재능이 있으셨군요.”

“그런 말을 하면 마치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솔직히 안 믿었습니다.”

3위계 마법 주문을 쓸 수 있다는 건 어디가서 나 마법사요,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소리다. 시간 많은 귀하신 몸이 취미로 배운 선에서 그쳤다고 생각했던 랜디 백작은 수업 내용을 수정해야 했다. 세레나는 이제 19살이고 19살에 3위계 마스터면 훌륭하다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세레나는 본인 입으로 마법에서 손 놓은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12살에 3위계를 마스터했으니 진짜 재능이 있었다.

“공주님, 성실히 수학하셨다면 어쩌면 4위계나 5위계 마법사가 되셨을 지도 모릅니다. 왜 그만두셨습니까?”

흐지 왕국에서 소드 마스터가 났나 했더니 여기 대마법사의 재목이 숨어 있었다. 랜디 백작은 자기가 더 아까운 나머지 계속 캐물었다. 세레나는 한참의 고민 끝에 진실을 밝혔다.

“4위계부턴 너무 어려워져서 공부하기 싫었네.”

“어려워지면 좋잖아요? 공부하면서 희열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음. 백작 그대가 그런 족속이라는 건 알겠어. 나는 아니네.”

전생의 기억을 갖고 환생한 이점을 살려 수월하게 뺄 수 있는 진도가 딱 3위계 마법까지였다. 이후부턴 너무 어려워서 노력과 근성이 필요한데 세레나는 그때 이미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몸이었다. 세레나는 기억을 되짚었다.

‘그때 어머니의 우울증이 악화되어서...’

어머니의 우울증은 갑자기 왕세자비가 된 부담감과 지인들이 몰살한 충격에서 기인했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하필 임신 중에 비극이 일어나 세레나를 낳는 일 자체가 난산이었고 산모의 육체는 회복되었지만 정신은 회복되지 않았다. 세라프를 낳으면서 좀 더 심화되고, 모순적이게도 리처드가 귀환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왕세자비 자리에서 물러날 줄 알았다가 선왕이 그대로 사망하면서 왕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왕세자비의 책임을 다하는 것도 버거웠던 여인이 왕비의 책임을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4위계부턴 노력과 근성과 집중이 필요한데 영 환경이 안 좋았다 이 말이다. 또한 세레나도 나름 깨우친 바가 있었다. 환생 초기에만 해도 애교있는 딸로 분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낫게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야망이 있었고 수포로 돌아갔다. 혹시 세계를 구하는 영웅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아닌가 싶어 마법과 정령술에 힘썼는데 계속 살다보니 그것도 아니더라. 뭐 그런 깨달음이다.

목에 100만 골드가 걸렸던 몸으로 생각하건대, 만일 자신이 주인공이라면 영웅 소설이 아닌 굴림류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가. 세레나는 그런 확신을 얻었다. 인생 꽃밭인 줄 알았더니 인생 개똥밭이었다.

“곤란하네요. 저도 4위계를 마스터하지 못해 공주님을 가르칠 수준이 안 되는데.”

“그렇지는 않네. 내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지.”

“무엇입니까?”

“돌아다니면서 마법을 못 써.”

그건 심각한 문제가 맞다. 가만히 있어야 집중이 잘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다 맞아 죽는다. 랜디 백작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세레나에게 돌아다니면서 마법을 사용하라는 과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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