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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몽키님의 서재입니다

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58,285
추천수 :
3,597
글자수 :
481,064

작성
17.04.24 19:25
조회
594
추천
40
글자
10쪽

비에타의 미궁 4층 1

DUMMY

“윽, 눈부셔.”

영이 광원 없이 사방에서 공평하게 쏟아지는 밝은 빛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 파티는 뒤에 이어질 긴 불평을 기대했는데 그 뒤가 없었다.

‘설마 그걸로 끝?’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파티의 이목이 영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밝아진 환경에 눈을 적응하느라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진짜 그게 불평의 끝이었던 것 같아서 올리브가 참다못해 말했다.

“방금 그걸로 끝?”

“무엇이?”

“아니, 너라면 으윽, 눈이 부셔! 내 눈! 내 안의 어둠이 빛에 침식되어간다! 이런 걸 외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편협한 사고 방식이야. 태초에 빛과 어둠이 있었다. 어둠만 있으면 어둠의 존재를 모르고 빛만 있으면 어둠의 존재를 모르기에 빛과 어둠은 떨어질 수 없으며 결코 하나를 두고 사라질 수 없음이라.”

과연. 자칭 성녀님다운 말씀이었다. 만약 영이 신관으로서 파티에 참가했다면 다들 신관님다운 말씀에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세레나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중2병의 특성에 대해 생각했다. 중2병 환자의 대다수는 인간을 하찮게 취급해서 큭, 하찮은 닝겐 따위가. 뭐 이런 말을 한 번 쯤은 하는데 영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둠을 찬양하고 자기 몸에 어둠이 봉인되어 있어서 내부에서 격렬하게 싸움을 하네 마네 등등 손발이 오그라드는 설정이 있었지만 인간을 하찮게 본다거나 어둠의 반대 속성인 빛을 증오하는 등의 행위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정말 중2병이라면 태생적으로 천성이 반듯한 사람이고 설정이라면 그래도 천성 자체가 나쁘지 않은 사람인 듯 했다.

‘그래도 자기 사명을 타인의 생명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건 알겠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파티가 전멸하는 걸 여러 본 지켜봤다는 점에서 약간의 생명 경시가 느껴졌다. 숙련된 궁수 영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엔 최선을 다하나 신관 영이 필요한 일에선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는 걸 우선시한다.

‘신관이라 그런가.’

영의 신성력을 보자면 그만큼의 능력을 받았으니 그만큼 신에게 봉사하고 충실이 따르는 것이 이해는 된다. 다만 덕분에 죽어나간 파티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을 뿐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영이 한 말을 모두 믿는 건 곤란했다. 어쨌든 숨겨진 정체가 고위 신관이라는 것이 현재 세레나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다. 그리고 그런 몸에 흑염룡을 봉인한 것이 사실이고 정체를 숨겨야되는 것 또한 사실이라 치자. 백 번 양보해서 진짜 전부 다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중대한 의문이 남는다.

‘모험가를 왜 하지?’

이건 진짜 큰 의문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물어볼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도록 가급적 멀리하는 게 이득 아닐까. 세레나가 영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동안 영은 그럭저럭 있어보였던 이미지를 또 자기 손으로 시궁창에 집어 던졌다.

“라는 말은 모두 빛의 교단에서 뿌린 거짓 선동이다. 진짜 태초엔 빛도 어둠도 없는 공허가 자리했다. 공허는 무였으며 후에 위대한 정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빛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어둠으로 격하되었으니 이것이 위대하신 암흑신의 진정한 신격이며 진정한 태초의 진실인 것이다.”

“나 저거랑 비슷한 말 시간의 신 광신도한테 들었어.”

“난 공간의 신.”

“빛의 신 쪽에서도 저 얘기 하던데.”

태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어느 신이 먼저 생겼나. 신자들끼리 치열하게 싸우는 얘기를 두고 올리브가 신랄하게 평가했다.

“하여간 교세 없는 신 신자들이 제일 집요해.”

세상엔 교세가 강한 메이저 신과 교세가 약한 마이너 신이 있다. 신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어째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신이 신자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이 교세에 영향을 미쳐서다.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신은 당연히 존재하기에 신앙이란 믿음이 아닌 봉사와 충실함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신은 자신들에게 충실한 신자에게 힘을 빌려주는데 어째 시간, 공간, 빛, 어둠, 뭐 이렇게 거창한 신들은 신성력을 받은 사람의 수가 적거나 없었다. 대신 금의 신, 오수의 신, 감기의 신, 이렇게 허접한(?) 신들은 신자와 소통이 원활하고 힘도 곧잘 빌려주기에 교세가 크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사람들이 주신을 고르는 기준이 명확했다. 내게 도움이 되거나 나의 신념과 어울리는가. 세레나도 한때 나태의 신을 주신으로 모실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신의 존재가 불확실했던 전생의 기억이 남아 결국 아무 신도 모시지 않기로 했지만.

3층의 절반을 탐사하는 동안 탐사대끼리 대화가 많았는지 탐사대는 전원 영이 믿는 주신을 알고 있었다. 파티는 세레나에게 어떤 주신을 믿느냐 묻지 않았다. 지레 짐작으로 미궁의 신이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건 아닐지. 세레나는 로브를 뒤집어 쓴 주황색 눈깔의 조상 따위 정말로 끔찍했다. 멋대로 제물을 받아 멋대로 살려놓다니.

4층의 길은 초심자인 스라이가 맡았다. 4층에 몬스터가 적은지, 초심자의 행운이 발휘되었는지 탐사대는 꽤 오래 돌아다니는 동안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았다. 출몰 몬스터를 찾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휴식을 취하는 것. 탐사대가 정한 오늘의 룰이다.

1층은 계층이 다르니까 제외하고 2층은 언데드와 새끼 코카트리스, 3층은 언데드가 주된 출몰 몬스터였다. 이런 식이면 빛이 가득한 4층의 경우 자연스럽게 새끼 코카트리스의 강화판이 등장할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올리브가 무언가를 감지하고 탐사대에게 신호했다. 파티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코너 쪽으로 몸을 숨겼다. 올리브와 시력이 좋은 영이 멀리서 다가오는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했다. 눈보다 귀가 먼저 몬스터의 정체를 밝혔다.

워우우우우우~.

‘늑대?’

난데없는 개소리에 세레나는 출몰 몬스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늑대라니. 먹을 것도 없는 미궁에 도대체 뭘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고민하는 건 이 세계 사람다운 반응이 아니다. 미궁은 그런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에 미궁. 어쨌든 늑대라면 그렇게 낯선 몬스터는 아니었는데...

“미궁개다.”

‘개야?’

늑대가 사라지고 올리브가 한 말에 세레나는 당황했다. 미궁쥐에 이은 미궁개에 등장. 이런 식으로 치면 2층에서 등장했던 코카트리스는 그냥 미궁닭이나 미궁병아리로 지칭해야 하는 게 아닐지.

‘미궁이 동물농장이야? 몬스터 조합이 왜 이래?’

1층은 쥐, 2층은 닭, 3층은 언데드니까 넘어가고 4층에는 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몬스터 배치였다. 던전 설계자가 있으면 그렇게 날로 먹을 속셈이냐고 멱살을 잡고 싶어질 정도였다.

세레나는 개라는 동물에 선입견이 있어 우습게 보고 있지만 사실 미궁개는 무습게 볼 난이도의 몬스터가 아니다. 무리짓는 습성이 있어 반드시 대여섯 마리씩 몰려다니고 전투에 돌입하면 하울링을 해 주변의 동료를 불러 모았다. 미궁개 5마리야 파티가 손쉽게 상대한다 치자. 서른 마리, 마흔 마리가 넘어가는 미궁개에 포위당한 후에도 만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또한 미궁개는 철저한 선공 몬스터에 자기 침입자의 인기척을 느끼면 구역을 벗어나서라도 추격한다. 자연스럽게 파티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난이도가 갑자기 확 올랐습니다, 대장.”

“여기까지 수월하게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겠지.”

“미궁개라... 전투 돌입하면 반드시 포위당하는데...”

포위당하지 않더라도 침입자를 쫓아오는 미궁개 무리와 추격전을 각오해야 한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미궁에서 그렇게 도망다니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결국 올리브가 제안했다.

“안되겠네~. 내려온 게 아깝지만 돌아가야겠어.”

미궁개의 무서움을 모르는 세레나만 빼고 전원 동의했다. 세레나만 혼자 어안이 벙벙해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우리야 어떻게 전투한다 쳐도 포위당한 상태에서 공주님을 지키기는 힘들어요. 사람 수도 적고.”

이렇게 갑자기 올라가면 세레나의 계획에 지대한 영향이 생긴다. 세레나가 미궁개가 그렇게 상대하기 힘든 적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아우아우~! 월월!

사방에서 개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이런 젠장, 들켰나봐!”

개 수십 마리가 한 번에 짖으니 굉장히 시끄러웠다. 탐사대는 미궁개에게 쫓기기 전 속히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였다. 바삐 발을 놀리는 탐사대의 걸음을 멎게 한 건 층 전체를 흔들리게 만든 진동이었다. 돌벽이 흔들리며 흙먼지와 작은 돌조각이 탐사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부한 먼지 속에서 세레나가 진동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을 말했다.

“지, 지진?”

“외부에서 지진이 나도 미궁은 흔들리지 않아요! 이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진원의 원인을 찾던 파티는 몇 번 코너를 돌고 돌아 자욱한 흙먼지 속 원흉을 찾아냈다.

“저건...”

구석에 있던 원흉이 서서히 고개를 틀었다. 원흉의 시야가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은 곳에 있어 크기를 짐작케 했고 고개와 함께 서서히 발이 움직이는데 그 때마다 나는 소리와 육중함이 상대의 무게를 알렸다.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존재의 박력에 탐사대는 상태이상 혼란에 걸렸다. 영이 상태이상에 저항했다.

“다들 정신 차려! 이 쪽을 봤다!”

따닥.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바닥과 부딪쳐 이런 단단한 소리가 나는 것은 발굽이 있는 생물의 특징이다. 들려오는 소리는 4개보다 많았다. 다리는 여섯, 머리에 붙은 것은 날카롭게 곡선으로 휜 뾰족하고 거대한 뿔. 가라앉은 돌먼지를 뚫고 보이는 강렬한 안광.

비에타의 미궁 4층의 지배자가 그 위엄을 온전히 드러냈다.

“양?”

메에에에에에.

다리 여섯 달린 양이 울었다. 고작 양이 울었을 뿐인데 세레나의 뇌내에서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세레나는 이게 뭘 뜻하는지 뒤늦게 직감했고 모험가들은 이미 알아챈 상태였다.

“계단으로 도망쳐! 강적이다!”

비에타의 미궁 4층 강적 미궁양이 파티를 향해 돌진 자세를 갖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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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 갈릭마요
    작성일
    17.09.13 01:22
    No. 1

    작가님 이전 편에서 주사위던지기로 정한 4층 초심자는 브브였던 것 같은데 이번 편에는 스라이로 적혀있네요 확인 부탁드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7.12.02 04:55
    No. 2

    음, 그렇네요. 이전편은 보브 였는데 말이죠.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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