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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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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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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064

작성
17.04.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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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비에타의 미궁 4층 3

DUMMY

미궁양은 생각보다 미궁개의 추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궁개나 탐사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평상시의 미궁양은 일정 구획을 느릿하게 순회한다. 미궁개가 냄새와 소리, 파티가 흘리고 간 쓰레기 등의 오물로 집요하게 파티를 추적하는 것에 반해 미궁양은 자신의 시야에서 어느 정도 거리의 직선상에 파티가 들어오지 않는 한 파티를 쫓지 않았다. 대신 시끄럽게 멍멍 짖는 미궁개는 거대한 귀를 퍼덕이며 쫓아갔기 때문에 미궁양의 뒤만 졸졸 따라가면 미궁개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뒤를 보면 전멸이지만. 하하하.”

다행히 미궁의 폭은 미궁양이 몸을 돌리는 게 불가능한 크기였다. 미궁양이 몸을 돌리는 건 갈림길에서나 가능하다. 미궁양이 느릿하게 몸을 돌리고 있는 동안 탐사대는 충분히 다른 갈림길로 도주할 수 있다.

파티가 휴식을 결정한 건 강적 미궁양과 조우하고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체감상으론 하루가 훌쩍 지난 듯 싶었다. 강적과 조우하는 바람에 흥분 상태가 되어 다들 피곤한 걸 잊은 건 아닐까. 세레나가 추측하기론 그랬다. 세레나 자신 또한 아드레날린이 팍팍 분비된 것인지 잠이 영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야해!’

세레나는 눈에 불을 켜고 잘 준비를 했다. 뭔가 어감이 이상했지만 어쨌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자기 위해 가방에서 침낭을 꺼냈다.

“음... 공주님? 미궁개는 기동력이 좋으니까 침낭에 들어가지 마시고 그 위에서 주무세요.”

여차하면 튈 준비를 해야 하니 침낭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올리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레나는 곧장 수긍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침번이 아닌 휴식조의 사람들도 침낭을 꺼내지 않고 돌바닥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침낭까지 펼치고 누울 준비를 한 건 그녀가 유일했다.

“......”

세레나는 너무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자려고 준비했단 기분에 머쓱했다. 그래도 잠을 포기할 순 없었다. 잠을 자고 꿈을 꾸는 것이 그녀가 미궁에 들어온 목적이었다.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휴식을 취해서 선잠을 자느니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파티도 세레나를 특별대우하는 걸 당연시여기고 불만을 품지 않으니까 누릴 수 있는 건 누려야했다.

흥분으로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와중 멀리서 들려오는 아련한 양 울음소리에 전신의 긴장이 쑥 풀렸다.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

메에에에, 메에에에에.

먼 곳에서 들려오는 양 울음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면서 세레나의 의식도 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아직 눈을 감은 상태지만 세레나는 알았다. 지금 자신은 꿈을 꾸고 있다. 기묘한 부양감이 세레나의 의식을 수면 아래에서 끄집어내고 세레나는 눈을 떴다. 그녀를 다시 미궁에 발 들이게 한 원흉 리처드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리처드의 차림새는 마지막으로 꿈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리처드가 아직 메사의 미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보자마자 멱살을 잡고 뺨을 후려갈기고 명치를 존나 세게 때릴 작정이었으나 자기 전에 들었던 양 울음소리에 묘한 탈력감이 생겨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세레나는 냉철한 이성을 갖고 미친놈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처드가 개소리를 한다면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정보를 끌어내리라.

“흐지의 미궁에서 기다리겠다는 게 무슨 뜻이지?”

“건강해 보이는구나. 다친 곳도 없어 보이고.”

“미궁에 나간 적 없다는 게 무슨 의미야?”

“아직 미궁 초입이라지만 내려가는 속도가 빠르구나. 대단해. 나는 말이다, 미궁 1층에서 2층을 내려가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리처드가 정말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몇 번을 죽었는지...”

소드마스터가 자기는 미궁에서 많이 죽었다고 자조하며 세레나를 대견하다고 칭찬하신다. 세레나의 안에서 울컥 화가 치솟았다. 저 미친 새끼는 이성을 유지하며 대하려고 해도 세레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세레나는 울화를 참았다. 인내하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 세레나는 이성을 유지한 대가로 내내 가장 궁금했던 걸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리처드. 네 말대로 나는 미궁에 들어왔어. 그런데 내가 알기로 넌 내가 미궁에 들어가는 걸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리처드가 그녀의 꿈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리처드는 말했다. 세레나, 미궁에 들어갔구나. 그것은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한탄에 가까웠다. 바꾸고 싶으나 바꿀 수 없는 일. 이미 벌어졌기에 돌이킬 수 없는 일. 리처드는 세레나가 미궁의 신과 만난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조언부터 남겼다.

미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저주인지 조언인지 알 수 없는 말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세레나에게 큰 힌트가 되었다. 좀 더 친절했으면 좋았겠지만 부모님도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가 그런 파격 서비스를 해줄 리 없었다.

“네 말대로야.”

“그런데 지금 난 미궁에 있어. 날 미궁에 들어오게 만든 사람은 너고 말이야.”

“지금도 난 네가 미궁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단다.”

“날 미궁에 들어가게 부추겨놓고 세상이 망하지 않으려면 흐지의 미궁 99층에 오라고 말하면서?”

리처드의 태도가 변했다. 리처드는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를 취했다. 언제 이 꿈이 끝날지 모르지만 괜히 대답을 재촉해 엉뚱한 대답을 얻느니 제대로 된 대답을 듣겠단 생각에 세레나는 기다렸다.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이 새끼가!”

물론 미친 새끼는 정상인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분을 참지 못한 세레나가 정말로 명존세때를 실천하려들자 리처드가 빠르게 말했다.

“미궁에 혼자 들어가진 않겠지, 세레나.”

“당연하지!”

“파티원이란 참 잘 죽지 않니.”

자기가 공들여 키운 파티도 아니면서 리처드는 파티원들의 개복치스러움을 한탄했다. 리처드는 파티원이 죽을 때마다 자살해서 파티원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혼자서 미궁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 번 미궁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나니 혼자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더구나.”

리처드가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연신 말했다. 덕분에 메사의 미궁 공략이 지지부진했다나 어쨌다나. 이어 그가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너뿐이란다. 너 또한 그렇지 않니?”

“그야... 당연하지.”

세상에 오로지 둘. 주황색 외눈을 가진 사촌 남매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말해도 믿지 못하고 미쳤다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특히나 세레나는 부친과 모친의 병력으로 인해 진짜 실성했냐는 의혹을 사기 쉬워서 입 밖에 담기 쉽지 않았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너는 나의 이해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이해자를 얻길 바란다면 내 목숨을 노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야?”

“그와 이건은 별개. 나는 세계의 멸망을 바라고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고 네가 고통스럽지 않길 바란다.”

리처드는 새삼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하나 뿐인 눈에 광기가 흘러 넘쳤다.

“아주 모순적이구나. 난 네가 나처럼 신의 저주에 농락당하길 원치 않는 한편으로 네가 날 이해해주길 바라. 그러니 세레나, 죽고 싶다면 나를 찾아오고 나를 막고 싶다면 나를 찾아오도록 해. 네가 바라는 모든 질문의 답은 미궁 안에 있으니.”

언제는 미궁에 들어가지 말라더니 이제는 아예 미궁에 들어가라고 내몰고 있었다. 세레나는 미친놈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한숨을 쉬었다.

세레나는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탐사대는 공주님이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개운하게 잠들지 못해서 그런다고 오해했다. 세레나는 꿈속에서 벌어진 대화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언자를 찾았다. 파티원 중에서 가장 미친 사람에 가까운 영이 낙점되었다.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는 건 쉬웠다. 세레나가 볼일을 보고 싶다고 나서면서 영을 지목하면 그만이었다. 공주가 볼일을 보는데 남자가 따라갈 수 없으니 모험가 중 한 명이 따라나서는 건 당연한 일. 세레나는 내친 김에 볼일도 봤다. 미궁에서 볼일 보는 일도 슬슬 익숙해져서 처음만큼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아는 자 중에 체계적이고 획기적으로 실성한 자가 있는데 말이다.”

“저런.”

영이 안타깝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어둠을 사랑하는 모험가는 어쨌든 사람을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을 죽이려고 하더니 갑자기 자길 이해해달라면서 새로운 미친짓을 벌인단다. 그 미친자는 무슨 생각일까? 나는 감히 그 생각을 추리하기 어렵구나.”

“중요한 점은 그 실성한 자가 이해를 바란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가?”

세레나가 주목한 부분은 새로운 미친 짓이었는데 영은 이해를 바란다는 점을 지목했다. 세레나 혼자선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견해였다.

“외롭다는 것이겠죠. 결국 모든 인간은 외롭지만 그 자는 자기가 죽이려던 사람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할 정도로 외롭다는 것. 어쩌면 죽이려고 했던 일 자체가 외롭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 왜, 미친 살인마들은 사람을 죽이면 그 망령이 자기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정신 상태가 비범한 인물이라 그런지 세레나가 생각지 못한 얘기가 술술 튀어나왔다. 세레나는 영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그 자가 벌이는 새로운 미친짓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해자를 얻고 이해를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면 크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관심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건데?”

“어울리지 마세요. 진짜 획기적으로 미쳤네요.”

영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말 어울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떻게해야 미친 사촌 오라비의 관심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세레나는 답이 없단 생각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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