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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와 불가사의한 미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래스몽키
작품등록일 :
2017.03.09 18:09
최근연재일 :
2018.12.25 23: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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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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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1,064

작성
17.04.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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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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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비에타의 미궁 4층 6

DUMMY

1층까지 오고가는 것도 일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혼자 남은 투위블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언데드와 함정은 걱정이 덜한데 비에타의 미궁 특유의 어둠이 문제였다. 어둠을 사랑하는 영 마저도 어둠 속에서 심안을 깨우치라느니, 어둠과 하나가 되면 괜찮다느니의 개소리를 하지 않고 진지하게 혼자 남은 투위블은 걱정했다.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자가 어둠에 갇히면 미칠 수 있지.”

어쨌든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비에타의 미궁 어둠은 유난스러웠다. 스라이가 던진 짐가방 속 랜턴 세 개를 모두 사용해도 전투에서 제 기량을 뽐내지 못할 것이다. 돌아다니는 건 당연히 어렵고.

그래서 파티는 세레나를 업었다. 정확하게는 스라이가 사라진 짐가방 대신 공주를 업었다. 파티야 미궁을 1층까지 이동했다가 4층까지 다시 이동해도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세레나는? 어딘지 모르는 층의 초심자로서 탐사대의 부적 역할을 해줘야하는 세레나는 그렇게 힘든 일정을 버티기 힘들었다.

체력이란 오랜 기간 다부지게 쌓는 것이지 단기간에 갑자기 쌓는 것이 아니다. 세레나도 마법을 복습하면서 나름 근력과 체력을 다졌지만 미궁에서 한 사람 몫을 하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세레나는 수치를 잊고 스라이의 등에 업혔다. 부끄러웠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샘 쳤다. 세레나가 느릿느릿 걷는 동안 투위블이 언데드에게 둘러싸여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고 있을지 누가 아냔 말이다.

업힐 땐 머뭇거리지 않았지만 막상 업히고 나니 한없이 불편했다. 세레나는 스라이의 등에 완벽하게 달라붙지 못했다. 달라붙는 쪽이 업는 입장에서도 힘이 덜 든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여졌다. 가슴이 닿아서라는 뭐 그런 러브코메디적 이유는 아니었다. 가슴 까짓 거 닿을 수도 있지!

‘업힌 게... 얼마만이지.’

환생자의 이점을 살려 세레나는 일찍 철든 공주였다. 왕세자의 장녀였다가 왕의 장녀가 되었으니 철없이 업어 달라 떼를 쓰면 모를까, 선뜻 공주를 업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더욱이 상대가 남자라면.

본래 세레나를 가장 많이 업어줘야 했을 사람은 그녀를 한 번도 업지 않았다. 다음으로 많이 업어줬어야 할 할아버지 또한 세레나를 지나가는 동네 아이보다 무관심하게 대했다. 오빠가 있다면 몇 번 업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세레나는 누나로 태어나 남동생만 있고 오빠가 없으니 제외다.

하나 살아남아서 돌아온 사촌 오라비는 남처럼 데면데면했기에 악수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설마 그 데면데면했던 사촌 오라비가 부모님의 목을 날리는 짜릿한 스킨쉽을 할 줄이야. 세상은 역시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겼다.

비에타의 미궁 탐사대는 미궁 1층까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2층에 들렀을 때 세레나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리치를 두려움에 찬 눈으로 응시했다. 올리브는 앞으로는 미궁 2층에도 물자를 두자고 제안했다.

후에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굳이 1층까지 갈 필요 없이 2층에서 물자를 보충하는 게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궁 하나를 장기 공략하는 모험가들은 그렇게 하기도 한단다.

마법사들은 미궁의 특성을 이유로 질문했다.

“그러다 물자가 미궁에 흡수되면 어떡하는가?”

“그래서 주기적으로 바꿔. 공략이 완료된 층은 한 달, 아닌 층은 일주에서 이주 사이? 3층 공략이 완료되면 거기에도 거점을 마련하는 게 좋겠죠. 어쨌든 1층에서 3층 가는 계단까지 오는 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물자도 아낄 수 있으니까.”

“타당한 의견이군. 폐하께 건의해보겠다.”

물론 탐사대와 공략대 입장에선 미궁에 갇힌 듯 한 기분이 들게 되는 비인도적인 작전이지만 공략의 효율성 증대엔 효과적일 듯 싶었다. 탐사대는 2층에서 대기 중이던 경비대를 먼저 1층으로 보내 짐을 꾸려두도록 명령했다. 경비병을 통해 대략적인 시간을 확인한 올리브가 반나절 쉬고갈 것을 제안했다.

“반나절 사이에 죽을 양반이었으면 이미 죽었겠죠~.”

“무슨 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투위블 경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휴식은 중요해.”

그렇게 말하는 올리브와 영은 쌩쌩했다. 결국 모두 세레나 때문에 한 발언인 것 같아서 세레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공주님!”

1층에 올라간 세레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필리아였다. 세레나가 미궁 탐사에 나선 뒤에도 필리아는 미궁 1층에서 상주하며 자신의 주인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필리아가 두 팔을 벌리고 세레나에게 다가오자 세레나를 업고 있던 스라이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업혀서 올라오는 것도 큰일이었다. 세레나는 필리아가 눈물을 흠뻑 쏟아 적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훔쳤다. 필리아는 온천물을 욕조에 가득 담아 대령했다며 얼른 거기로 가자로 세레나를 잡아 이끌었다. 세레나로선 아주 곤란했다.

“필리아, 저기.”

“네?”

“보면 알겠지만 투위블 경이 미궁에 고립되어서 구하러 가야해.”

“어머나, 세상에. 얼마나 무서우실까.”

마음씨 고운 필리아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어느 기사에게 닥친 불행에 동조했다. 세레나는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내가 그 층의 초심자거든.”

“공주님~ 4시간 뒤에 봐요~.”

탐사대가 정한 휴식 시간이 4시간이었다. 필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탐사대는 세레나를 버려두고 도망갔다. 세레나는 필리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필리아가 세레나의 시녀지 세레나가 필리아의 시녀가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한 번 더 들어가야해.”

“왜 공주님이 기사를 구하러 들어가셔야 하는데요?”

“필리아. 사람 목숨이 걸려 있잖니.”

“공주님 목숨이 더 귀해요. 어떻게 일개 기사와 흐지의 유일한 왕녀이신 공주님의 목숨이 같을 수 있나요. 흐지의 기사들이라면 공주님께서 자기 때문에 미궁에 들어가게 내버려두느니 자결했을 거예요.”

남의 나라 사람 남의 목숨이라고 말이 과했다. 필리아는 긴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레나를 오랫동안 상전으로 모셔왔고 상전이 무엇에 약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세레나는 필리아의 미모를 아끼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히 여기진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필리아가 쓸 수는.

“앞서 경비병이 짐을 꾸리기 위해 올라왔기에 공주님이 돌아오셨다고 세자 전하께 연락을 드렸어요. 미궁 밖에 세자 전하가 와 계실 거예요.”

흐지 왕국이 자랑하는 제일의 미녀 필리아가 박력있게 화를 냈다.

“전하가 허락하시면 가셔도 좋아요.”

‘걔가 허락할 리 없잖아.’

세레나는 구석에 몰렸다.


세레나가 사랑하는 꽃쓰레기는 변함없는 미모를 자랑하며 미궁 입구 쪽에 서서 세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자의는 아니었는지 예쁜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는 니도 여왕의 허락을 받지 못해 미궁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세레나와 동생의 만남은 미궁의 입구에서 이뤄졌다. 세라프는 미궁의 밖, 세레나는 미궁의 안. 세레나는 며칠 만에 만난 동생이 반가워 미궁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했다.

‘나가도 되는 걸까.’

세레나가 지금 여기서 나가버리면 그녀의 회귀 포인트가 갱신된다. 리처드의 말이 맞다는 가정 하에, 그처럼 몇 년(?) 동안 포인트를 갱신하지 않고 버틸 생각은 없지만 일단 지금은 갱신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세레나가 이러고 있는 동안 투위블 경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닥쳤다면 갱신하는 순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레나가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세라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줄줄 늘어놨다.

너 미쳤냐. 당장 나와라. 미궁에 계속 있으니까 뇌에 곰팡이가 피었다. 너 저번에 했던 말 잊었냐. 니가 가면 나도 갈 거야. 우리 안 데리고 갈 거면 미궁 다시 들어갈 생각 꿈에도 하지 마라. 기사가 널 구하느라 떨어진 걸 왜 걱정하냐. 그게 걔네 일이다.

세라프는 내내 짜증내고 화를 냈다. 듣는 세레나도 점점 열이 치솟았다.

“날 구하려다 그렇게 된 자를 어떻게 외면하겠니!”

“닥치고 나와!”

세라프가 세레나의 손목을 잡고 강하게 잡아당겼다. 덕분에 세레나는 넘을까 말까 그렇게 망설이던 미궁의 경계를 넘었다. 세레나는 세라프를 밀치고 다시 미궁으로 들어갔지만 포인트는 이미 갱신되었을 것이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무슨 미친 소리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너, 너무 세게 당겼어? 아파?”

내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던 세라프는 세레나의 격정적인 반응에 놀라 세레나를 걱정했다. 세레나는 머릿속이 혼잡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에게 빼액 화를 내자 세라프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누나 따위, 미궁에서 죽어버려!”

죽긴 누가 죽냐. 세레나는 미궁에서 죽어도 그건 제대로 된 죽음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 있는 누나에게 할 말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세레나는 그대로 갚아줬다.

“난 미궁에서 절대 안 죽으니까! 너야말로 콱 죽어버려!”

세레나는 팩 돌아섰다. 분을 못 이긴 세라프가 앞서 했던 말을 잊고 누나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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